[346] 제30장. 정신(精神)/ 28.부모의 역할(役割)
작성일
2021-12-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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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제30장. 정신(精神)
28. 부모의 역할(役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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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난 채운이 말했다.
“스승님, 그 말씀대로라면 혹시 무일간(戊日干)으로 태어난 사람은 과연 걱정이 많은 것일까요? 왜냐면 여태 들어본 이야기로 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조차도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마음이 있을 것만 같고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모든 것을 지켜 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당연하지.”
우창이 딱 잘라서 말했다. 때론 길게 설명하고 또 때론 간결하게 답하기도 하는 우창이었다. 채운도 그 의미를 잘 이해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답할 적에 우창은 이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편인(偏印)과 연결이 되는 것일까요? 편인은 의심도 많고 걱정도 많고 조심성도 많으니까요. 설명하시는 내용으로 봐서는 편인(偏印)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호~! 이야기 속에서 편인을 찾다니 역시 채운의 통찰력(統察力)도 보통이 아니군. 틀림없이 잘 파악했네. 무토(戊土)의 십성(十星)은 편인(偏印)을 담당하고 있다네. 하하하~!”
우창도 채운의 말에 유쾌하게 웃었다. 이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찾아내는 제자는 스승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행복해서 구름을 탄 것 같아요. 호호호~!”
“아무렴. 궁리를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호통도 치는 것이 스승의 할 일이잖은가.”
“이제야 왜 무토(戊土)를 고산(高山)이라고 하지 않고 하늘이라고 했는지를 확연(確然)히 깨달았어요. 정말 천간(天干)의 세상이 전혀 다른 경지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신기해서 저절로 감탄해요. 호호호~!”
채운이 이해를 한 것을 본 우창이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서 물었다.
“주역(周易)의 64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니, 갑자기 어렵기가 한량(限量)없는 주역에 대해서 말씀하시나요? 잘은 몰라도 그냥 아는 대로만 말씀을 드린다면, 건(乾:䷀)과 곤(坤:䷁)에서 나오죠. 그래서 건괘(乾卦)를 부친(父親)이라고 하고, 곤괘(坤卦)를 모친이라고 하잖아요. 62개의 대성괘(大成卦)는 모두 건곤(乾坤)에서 변화한 것이니까요. 스승님께서 기대하시는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호호~!”
“맞아, 『역경(易經)』에서는 건곤(乾坤)을 부모로 삼듯이 십간(十干)은 무기(戊己)를 부모로 삼는다네. 우주의 중심은 토(土)이듯이 간지(干支)의 중심도 토(土)가 되는 것이지.”
우창의 말에 웃음기를 뺀 채운이 의아해서 물었다.
“우주의 중심이 토라니요? 그건 무슨 의미이죠?”
“토(土)는 도(十)의 균형(均衡)이고, 우주(宇宙)도 그와 같은 균형으로 존재하는 까닭이지. 허공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질서정연(秩序整然)하게 운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잖은가?”
“아, 그렇군요. 잊고 있었어요. 호호호~!”
비로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설명을 이었다.
“모친(母親)인 기토(己土)는 가족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잠자리를 마련할 때, 부친(父親)인 무토(戊土)는 밖에서 가족들이 먹고살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네. 옛날에는 목숨을 걸고 사냥을 했고, 지금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을 통해서 재물을 벌어오니 비록 일은 달라졌더라도 그 책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되지 않겠나?”
“와~! 그렇군요. 부모의 희생(犧牲)으로 자란 자식들은 모두 스스로 자란 줄만 알고 부모공경을 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그야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네.”
“삼강오륜(三綱五倫)도 모르는 불효(不孝)가 아니고요?”
“삼강오륜이라고 하니 내가 물어볼까? 삼강오륜은 자연의 이치일까? 아니면 인위적인 관념(觀念)일까?”
“예? 인륜(人倫)이잖아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자연인지 인위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지금 생각해 보면 될 일이로군. 우선 삼강(三綱)이 무엇인가?”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에요.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니까 임금을 잘 섬겨야 하고, 부친은 자식의 근본이니 자식은 부친을 잘 따라야 하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근본이므로 지아비를 잘 섬겨야만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군, 그 삼강은 누가 만들었을까?”
“예? 그건 무슨 뜻이에요?”
“왕이 만들었을지, 아니면 백성이 만들었을지를 생각해 보란 말이네.”
“그야 왕이 만들었겠네요. 아, 그런 뜻이었구나. 부자위강은 부친이 만들었고, 부위부강은 남편이 만들었을 테니까 모두 남자가 만들었어요. 우왕~! 이러한 뜻이 있는 줄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놀랍네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흉악(凶惡)한 의도(意圖)가 숨어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라네.”
“정말이에요. 놀라워요. 삼강오륜은 당연히 인간이면 지키고 따라야 하는 덕목인 줄만 알았잖아요.”
“오호~! 그걸 알았단 말이지? 그렇다면 어디 그 의도를 찾아내 보게나.”
우창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채운이 말했다.
“스승님의 암시를 이해하고 보니까 그 내막이 보이네요. 우선 군위신강(君爲臣綱)이라는 말은 신하가 자신을 배신하고 목숨을 앗아갈까 봐서 벌벌 떨었던 임금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고, 부위자강(父爲子綱)은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속을 썩일까 봐서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부위부강(夫爲婦綱)은 아내가 남편을 버릴까 봐서 두려운 남정네들이 만든 것이었어요. 이제 의미를 알고 다시 보니까 참으로 가련한 왕과 부친과 남편이었네요.”
“그렇다면 그러한 것을 잘 따른 사람에게는 어떤 상(賞)을 줬을까?”
“상이 있었나요? 그냥 복종하는 것으로 다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건 생각나지 않아요. 무슨 상을 줬죠?”
“신하가 임금의 말을 잘 들으면 충신(忠臣)이라고 했고, 자식이 아비의 말을 잘 따르면 효자(孝子)라고 했지. 그리고 여인이 남편의 말을 잘 따르면 열녀(烈女)라는 상을 줘서 삼강(三綱)을 잘 따르도록 했다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옛사람들의 고심(苦心)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네요. 참으로 나약한 왕이며 아비이며 남정네였잖아요. 참 재미있어요. 호호호~!”
“그렇다면 오륜(五倫)의 이치도 살펴 볼텐가?”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잖아요. 물론 모두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또한 철저한 인위적(人爲的)이었네요. 삼강을 이해하고 나니까 오륜에 대해서는 재론(再論)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렇다면 삼강오륜은 다스리고자 하는 인간의 질서를 위해서 위정자(爲政者)들이 만들어 놓은 굴레라는 것을 알겠나?”
“물론이에요. 그렇다면 자연의 이치에서는 부모(父母)의 역할과 자녀의 역할이 어떻게 되죠?”
“내리사랑~!”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의미잖아요?”
“맞아. 내리사랑은 자연의 이치이고, 올리사랑이 없다는 것은 일방(一方)으로 진행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네.”
“올리사랑은 또 뭐죠? ‘위로 올라가는 사랑’이라는 뜻인가요?”
“그야 내리사랑이 있으면 올리사랑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말은 세상에 없다는 말이지 뭐겠나. 하하하~!”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키우는 것은 자식에게서 효도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사과나무는 사과를 키우는 뜻이 효도를 받기 위함이던가?”
“아하~! 그냥 자식이 태어났으니 먹여 살리고 키울 뿐이라는 뜻인가요?”
“아무렴.”
“자연은 참으로 냉정(冷情)하네요.”
“맞아.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자연일까?”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렇겠네요. 그런데 왜 효도를 하라고 하죠?”
“그야 자신의 노후(老後)가 걱정된 아비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지. 하하하~!”
“함정이라니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함정이라고 하니까 머릿속이 갑자기 어지러워져요.”
“세상 만물 중에 자식의 덕을 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야 인간뿐이지 않나요? 그래서 세상천지 만물 중에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하는 것으로 배웠어요.”
“뭐, 인간이 가장 귀한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나고, 밥 먹고, 사랑하고, 자식 낳고, 늙어서 죽는 것이 다른 동물과 다름이 있나?”
“그것은 완전히 같아요.”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지혜가 조금 뛰어나서 늙음과 죽음을 알고 있다는 것 정도겠지. 그래서 자식들에게 효(孝)라고 하는 올가미를 씌워서 자신이 늙어서 무력해졌을 때를 대비해서 봉양(奉養)하라는 세뇌교육(洗腦敎育)을 시켰다고 보는 것이 틀림없지 않을까?”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채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제 명료(明瞭)하게 이해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무기토(戊己土)의 자연심(自然心)은 무엇일까요?”
“자연의 무기(戊己)는 지상(地上)의 만물을 돌보는 것으로 그 몫을 다하고, 인간의 무기(戊己)는 가족을 보살피는 것으로 그 몫을 다 하는 것이라네.”
“아하~! 그래서 무토(戊土)는 편인(偏印)이 되고, 기토(己土)는 정인(正印)이 되는 것이로군요. 그러니까 인성(印星)은 항상 밖을 보살피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어요.”
“이제 어머니의 뒤통수에 눈이 있다는 의미를 알겠어?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뒤통수에 눈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맞아요. 당연히 그래야 하겠네요. 그러니까 기(己)로 태어난 사람은 모친처럼 남들을 보살피는 마음을 갖게 되고, 무(戊)로 태어난 사람은 부친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날 위험까지도 지키는 마음으로 항상 의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아,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각났어요. 십성(十星)의 관계에서는 부친(父親)을 편재(偏財)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치로 봐서는 편인(偏印)을 부친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잖아요?”
채운의 말을 듣고 우창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왜요? 제자가 잘 못 여쭸나요?”
채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채운의 궁금한 것에 대해서 말했다.
“덧셈과 뺄셈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 재미있어서 웃었다네. 하하하~!”
“그것은 또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쉽게 말씀해 주세요.”
“아무리 자연(自然)과 인생(人生)이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또한 다른 것이 있지 않겠느냔 말이네. 단독(單獨)으로 논할 적에는 부친이 편인이지만, 인간사(人間事)로 들어가서 논할 적에는 편재(偏財)가 된다는 말이라네. 하하하~!”
“그러면 모친은 정재(正財)가 되나요?”
“모친은 그대로 정인(正印)이라는 것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겠지?”
“당연하죠. 이 모순(矛盾)같은 이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리둥절하게 되네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네. 십간(十干)의 이치와 십성(十星)의 이치가 크게 보면 같지만 나눠서 세분하면 또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란 말이네. 지금은 오행(五行)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니 양토(陽土)와 음토(陰土)의 의미로만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겠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단순히 그것만도 아니지, 실은 서로 같은 이치의 다른 관점(觀點)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適合)하겠군.”
“점점 더 어려워요. 어려운 것도 쉽게 말씀하시는 스승님께서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난해(難解)한 설명을 하시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그건 심리적(心理的)인 관점과 물질적(物質的)인 관점의 차이를 동일시(同一視)한 까닭이라네. 마음으로는 부친이 편인이지만 물질적으로는 부친이 편재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데 이야기의 흐름상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아, 제자 생각만 했어요. 지금은 오행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궁금한 것이 꼬리를 물었네요. 호호호~!”
“그래서 때로는 꼬리를 과감하게 잘라야만 할 필요가 있다네. 하하하~!”
“예? 아, 호호호~!”
채운은 우창이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무안하지 않도록 슬며시 우스갯말을 넣어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자상함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쉽게 나오지 않은 것임을 비로소 느낄 수가 있었다.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오행에서는 무(戊)야말로 외롭게 가족을 위해서 일터로 나가야 하는 부친의 모습이 그려져요. 그렇게 온종일을 밖에서 전심전력으로 애를 쓰고는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 아내와 자식들이 애를 썼다고 알아주면 보람이 있겠지만, 저마다 일에만 빠져서 오는지 가는지 관심도 두지 않을 적에는 얼마나 외로울까요?”
“그래서 부친의 벗은 술이 되는 것이라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것이 있는지 채운의 말이 촉촉하게 젖어서 나왔다.
“참으로 불쌍해요....”
“그래서 죄업이 많으면 남자로 태어나서 부친이 되는 것이라고 하잖는가? 하하하~!”
“아니, 그런 말도 있어요? 처음 들어봐요.”
“아마도 그럴 것이네.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니까. 하하하~!”
“아, 그러셨구나. 그래도 이치에 맞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듣다가 보니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이 인륜(人倫)이기는 하네요. 호호호~!”
“효도가 나쁘다고 한 적은 없지? 다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戊)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네.”
“잘 알았어요. 스승님의 자상한 가르침으로 인해서 오행(五行)의 음양(陰陽)에는 어떤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를 대략 이해하게 되었어요. 참으로 중요한 것인데도 이러한 것에 대해서 마음을 쓰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르는 것이 없다면 어찌 공부인들 하겠느냔 말이지. 그래서 항상 다행(多幸)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네. 하하하~!”
“비로소 부모(父母)의 마음이 어떤 이유에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더불어서 오행은 자연의 현상(現象)에서 답을 찾는 것이 옳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무(戊)는 지키고, 기(己)는 돌보는 것은 그야말로 순수(純粹)한 자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려면 달걀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네.”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달걀에서 우주의 이치를 접할 수가 있나요? 그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해하면 되죠?”
채운이 묻는 소리에 우창이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채운이 그림을 보자마자 이해가 된다는 듯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와우~! 스승님의 달걀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이해가 되었어요. 달걀의 노른자는 땅이고 어머니네요. 그리고 흰자는 하늘이고 아버지네요. 더구나 달걀의 껍데기와 허공 밖의 우주가 서로 대면(對面)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요. 병아리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면 우주와 만나게 된다는 뜻도 되겠네요.”
“노른자의 기(己)가 하는 일은 뭘까?”
“그야 노른자 안의 씨앗에 해당하기도 하는 배반(胚盤)을 키우잖아요. 스승님께서 찍어 놓은 점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자신의 온 몸을 던져서 새끼를 키우는 역할을 하네요. 달걀 속에서 조차도 우주의 이치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참으로 놀랍네요.”
“이해가 잘 되었다니 다행이군. 달걀의 껍데기는 무얼 하지?”
“아, 맞아요. 달걀의 껍데기와 몸의 피부는 완전히 같은 것으로 봐도 되는 거죠?”
“물론이지.”
“그러니까 저 하늘조차도 허공으로 보이지만 염재의 말을 듣고 보니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껍질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또 궁금한 것이 생겼어요. 노른자 좌우로 있는 것은 뭔가요?”
“그것이야말로 지상(地上)에서의 중력(重力)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노른자인 난황(卵黃)이 항상 제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니 지상의 만물이 허공으로 떠다니지 않고 바닥에 붙어 있도록 해 주는 것과 같다고 하면 될까?”
“우와~! 완전히 일치하네요. 그 작은 달걀에서도 우주의 이치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네요.”
“흰자위인 난백(卵白)이 투명(透明)한 것도 허공과 닮지 않았나?”
“맞아요. 땅이 누런 것은 난황과 닮았다는 것도 참 신기해요. 크게 보면 우주에서 답을 찾고, 작게 보면 하나의 달걀 속에서도 우주가 있었네요. 병아리가 되기까지는 껍질이 보호해 주지만 밖으로 나오게 되면 허공이 보호를 해 줄테니까 결국은 껍질은 없어질 것에 잠시 의지하는 것이겠어요.”
“그렇지, 더 작은 메추라기 알이나 물고기의 알조차도 그와 같을 테니 모든 알은 다 이와 같은 이치로 태어나서 부화(孵化)가 되는 것이겠지?”
“아, 크기와 상관없이 그렇게 생겼으니 작용도 그렇게 하겠네요. 결국은 부모(父母)인 무기토(戊己土)는 새끼를 키우면서 모두 희생(犧牲)이 되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희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자식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이니까 영생(永生)의 이치와도 통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맞네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었네요. 참으로 재미있고도 놀라운 자연의 이치에요. 호호호~!”
“이제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목화금수(木火金水)에 토(土)가 없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예? 갑자기 계절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 주시려나 봐요? 그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세요.”
“토(土)는 땅과 하늘이니까 춘하추동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나저나 춘하추동의 사계절(四季節)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지?”
우창이 갑자기 계절에 대해서 묻자 잠시 어리둥절하던 채운이 답했다.
“계절이 변화하는 것은 태양과 관련이 있는 것이에요. 해가 길어지면 기온이 올라가서 여름의 하절(夏節)이 되고, 이와 반대의 경우로 해가 짧아지면 기온도 내려가서 겨울의 동절(冬節)이 되니까요.”
“맞아. 보통 오행을 공부하는 사람이 계절을 오행으로 말하라고 하면 계절은 넷인데 오행은 다섯이라서 곤란스럽게 생각하거나 혼란을 겪게 되는 수가 있는 것을 가끔 본다네.”
“아, 맞아요. 제자도 예전에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장하(長夏)를 넣어서 계절이 다섯 개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장하(長夏)는 무슨 뜻인가요?”
“그것이 바로 오행(五行)을 계절에 꿰어맞추려니까 웃지 못할 억지(抑止)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네. 하하하~!”
“그것을 배울 적에는 자못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무지(無知)한 보통의 사람들은 계절이 넷이라고 알고 살아가나, 오행을 공부한 사람은 지혜로워서 계절도 다섯 가지라는 말을 하면서 자못 자부심(自負心)을 느끼는 듯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뜻인가요?”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사계절(四季節)을 턱도 없이 오계절이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우스쾅스런 일인가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네. 하하하~!”
“그런데 장하는 미월(未月)이라고 하던데 미토(未土)와 서로 맞물려서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왜 유독 미월만 토월(土月)로 분리해서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진 못했지?”
“당시에는 뭘 몰랐으니까요. 지금만 같았어도 반드시 물어봤을 텐데 그때는 오직 가르쳐 주는 것이 모두 진리로 생각하고 열심히 외우느라고 여념(餘念)이 없었어요.”
“그것은 배우는 자의 허물은 아니네. 가르치는 자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소치(所致)일 따름이니까 말이네. 하하하~!”
“그것을 외우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죠. ‘다른 계절은 모두 3개월인데 어떻게 미월(未月)만 장하(長夏)라고 해서 겨우 한 달에 불과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봤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조차도 무슨 깊은 이치가 있나 보다 싶은 생각만 했어요. 호호호~!”
“맞아. 그렇게 의미도 모른 채로 가르치고 또 배우는 것도 인연이니까 말이지. 그것을 ‘숟가락 진리’라고 하지.”
“예? 숟가락 진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무슨 뜻이죠?”
“아, 숟가락이 밥의 맛을 알까?”
“숟가락이 어떻게 밥맛을 알겠어요?”
“마찬가지로 숟가락처럼 이치도 모른 채로 그냥 입으로 퍼 날라 주는 것만 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네. 하하하~!”
“아하~! 듣고 보니까 과연 적절한 비유네요. 맞아요. 채운이 예전에 배웠던 것은 숟가락 학문이었어요. 생각하면서 공부해야 하는데 모르면 도리가 없잖아요. 호호호~!”
과거의 공부에 대한 여정에서 흘려보낸 헛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쌓였던 억울함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채운이었다. 이렇게라도 말을 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우창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