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제30장. 정신(精神)/ 21.병정(丙丁)의 표리(表裏)

작성일
2021-11-1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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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제30장. 정신(精神) 


21. 병정(丙丁)의 표리(表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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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열정이 가득한 채운에게 말을 이었다.

“정(丁)은 학문하는 학자에게 불쏘시개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네.”

“그것은 이해가 되네요. 불쏘시개로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를 수가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뜻인가요?”

벌써 우창의 말을 알아듣는 채운의 수준이 급상승하고 있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은 채운에게 사용해야 할 말인가 싶기도 했다.

“맞는 말이로군, 오늘같이 더운 날은 정(丁)의 기운이 넘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스승님, 그런데 여름의 폭염도 정(丁)이라고 할 수가 있나요? 무서운 기세로 만물을 힘들게 하는 폭염은 아무래도 병(丙)이라고 기억이 되어 있어서 약간은 혼란스럽기도 해요.”

“채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다면 이해를 위해서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야겠군. 음화(陰火)는 열기(熱氣)이고 양화(陽火)는 광선(光線)이라고 기억을 하게.”

그러면서 우창은 붓을 들어서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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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그린 그림을 본 수경이 모처럼 의견을 말했다.

“스승님의 그림을 보니까 병(丙)과 정(丁)의 의미가 바로 전달이 되네요. 정은 봄날의 아지랑이 같고, 병은 여름의 폭염처럼 느껴졌어요. 그렇게 느끼면 되겠죠?”

“맞아, 수경이 느낀 대로 이해를 하면 될 것이네. 그러니까 때로는 열 마디의 말보다 간단한 그림이 더 이해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

“정은 솥에서 김이 오르는 모습이기도 해요. 병은 새벽에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살을 보는 것 같고요. 이것이 화(火)의 음양이었군요. 직선(直線)은 양(陽)이고 곡선(曲線)은 음(陰)이라는 이치와도 부합이 되어요. 자상하게 설명해 주신 채운과 스승님의 대화를 통해서도 깊은 이치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가슴이 아직도 울렁거리고 정신은 끓는 물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상쾌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호호호~!”

“그렇다면 다행이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시간이 알알이 맺혀서 삶에 채워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라네. 하하하~!”

수경의 말을 칭찬하면서 차를 마시고는 다시 수경에게 물었다.

“정(丁)은 사람의 몸을 편안하게 해 주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도 하는 효력이 있다는 것은 알겠어?”

우창의 물음에 수경도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사람의 몸에는 체온(體溫)이 있어요. 체온이 낮아지면 수족(手足)이 차가워지고, 그로부터 온갖 병이 발생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가장 무서운 것이 냉증(冷症)이죠. 결국 목숨을 마치게 되면 차갑게 식어 지면서 삶은 끝나게 되는 것이니까요.”

“오호~! 그건 또 새로운 관점인걸. 그리고 또?”

“그리고 몸 안에 해로운 병균(病菌)이 침입하게 되면 몸은 스스로 연료(燃料)를 태워서 체온을 높입니다. 가령 외부에서 사기(邪氣)가 침입해서 감기나 몸살이 나면 몸은 저절로 알아서 열을 높여서 병균을 몰아내게 되죠. 이렇게 몸을 지키는 것이 정(丁)인데, 더구나 마음이 식은 재처럼 차가워지면 삶의 의욕이 없어져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런 때도 정은 마음을 뜨겁게 달궈서 그러한 우울증(憂鬱症)에서 탈출해서 삶의 의욕을 다시 일으키게 만들어 주기도 해요. 이로 미뤄서 생각해 본다면, 정(丁)의 공덕은 그야말로 생명력(生命力)이라고 해도 되지 싶어요. 나름대로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들인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정리가 되었는데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해야 하겠어요.”

“오호~! 수경의 사유가 이리도 깊을 줄이야~! 과연 천부적으로 타고난 인품은 어디서 어떤 스승을 만나서 공부하더라도 빛을 발휘하기 마련인가 보네. 하하하~!”

수경은 자신의 생각이 이치에 타당하다는 우창의 말에 합장으로 화답(和答)했다. 대화를 통해서 화(火)의 이치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을 느꼈다.

오행원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우창이 문득 말 울음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염재가 막 도착해서 말을 매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염재가 우창에게 인사를 했다.

“스승님, 늦었습니다. 편안하셨습니까.”

“아, 염재구나, 안 그래도 궁금했지. 어서 오게.”

“급한 일이 있어서 남경(南京)에 다녀오느라고 못 뵈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오행원에서는 뜨거운 열기로 학문에 여념이 없을 도반들의 모습이 아른거렸지요. 조금 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틈을 내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공무(公務)의 소행에도 여념이 없을 텐데 잘했네.”

우창이 이렇게 말을 하고는 채운에게 물었다.

“염재는 몇 도(度)나 되어 보이는가?”

그러자 채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염재는 1천9백 도네요. 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타오르는 열정이 부러워요. 호호호~!”

“그렇지? 내가 봐도 그 정도는 되지 싶군. 하하하~!”

염재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자 오광이 간단히 그 연유를 말해주자 염재도 알아듣고서 같이 웃었다.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부럽습니다. 웬만하면 수업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국록(國祿)을 먹는 관원(官員)인지라 어쩔 수가 없기도 해서 또한 아쉬울 따름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형편대로 하는 것이 도인이라네. 하하하~!”

우창의 말에 염재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그러자 채운이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의 넓은 지식(知識)과 깊은 궁리(窮理)로 인해서 정화(丁火)에 대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어요. 이제 양화(陽火)인 병(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좋을지 설명해 주세요.”

“실은 이미 정(丁)을 말하면서 병(丙)에 대해서도 절반(折半)은 말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설명하면 모두 정리가 될 것으로 생각되네.”

“하긴, 그렇기도 하겠습니다만, 열(熱)에 대해서 너무 재미있게 말씀을 들어서 상대적으로 병화의 작용에 해당하는 광(光)에 대한 기대가 커졌어요. 호호호~!”

“무엇이 되었든 관심(關心)은 학문의 신장(伸張)을 가져올 테니까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으로 봐야 하겠지.”

“내친 김에 또 여쭤 볼게요. 그러니까 빛은 인체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가령 심장(心臟)은 정(丁)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병(丙)은 소장(小腸)의 의미로 봐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병의 의미가 왠지 전달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네요.”

“화(火)에는 두 가지가 있다네.”

“맞아요. 열(熱)과 빛이잖아요?”

“그것도 맞으나 인체에서 논하는 화는 군화(君火)와 상화(相火)로 논한다네. 심장의 화(火)는 임금과 같은 불이고, 외부의 화(火)는 재상(宰相)과 같은 불이라고 의학(醫學)에서 밝혀놓은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태양의 화는 재상의 불이라는 뜻인가요? 그냥 쉽게 생각하기에는 태양이 없으면 만물이 생존할 수가 없을 테니까 당연히 태양이 군화(君火)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고인들의 지혜가 그렇게 천박(淺薄)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옛사람들이 그렇게 본 이유를 알고 싶어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저마다 자신의 내부에는 임금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을까? 고관대작(高官大爵)이든 빈민(貧民)이나 심지어 노비(奴婢)라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동등(同等)하다는 관점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아, 듣고 보니까 그런 의미가 되네요. 고인은 인간의 계급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눈으로 통찰(洞察)했다는 것을 알겠어요.”

“인도(印度)에서는 계급별로 사람이 태어나는 방법이 다르다네.”

“예? 그럴 수가 있나요?”

“천민(賤民)은 발바닥으로 태어난다더군. 평민(平民)은 산도(産道)로 태어나고, 무사(武士)는 옆구리로 태어나고, 브라만은 정수리로 태어난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말을 누가 믿어요?”

“그것이야말로 교육이라는 거라네. 다들 아닌 줄을 알면서도 스스로 그렇게 자신의 신분(身分)의 계급에 따라서 제한하는 것일 따름이지.”

“그렇구나. 정말 놀랐어요.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어요. 그들은 왜 그렇게도 미개한 생각을 했을까요?”

“그건 개화(開化)가 되고 안 되고의 차원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념(觀念)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어. 그건 그렇고, 상화(相火)는 태양화(太陽火)를 말한다는 것만 알아두게나. 왕보다 신하의 힘이 더 강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나라는 올바른 통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은 왕조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네.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왕권(王權)이 무력하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도 되겠군.”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이야기가 되네요? 그건 또 그렇다고 하고, 사람에게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아, 채운은 더위를 먹는다는 중서(中暑)라고 들어봤나?”

“그야 들어봤죠. 여름에 폭염에 과하게 노출이 되면 일어날 수가 있는 현상이잖아요.”

“맞아. 그것이 바로 개인의 몸에서 일어난 역성혁명인거야. 그냥 두면 주인이 떠나고 객이 주인의 노릇을 하게 되겠지. 병이 든다는 말이야. 하하하~!”

“아하~! 나라가 뒤바뀌는 것과 개인의 건강이 무너지는 것은 같은 이치였던 거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법은 몰랐어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하하~!”

“그렇다면 태양화(太陽火)는 병(丙)이고 인체화(人體火)는 정(丁)이란 말이죠? 그래서 정은 일평생을 따뜻하게 몸을 지켜주고 병은 영원토록 지상의 만물(萬物)을 지켜주는 것이겠지요?”

“맞아.”

“그렇다면 사주(四柱)의 일간(日干)이 병(丙)이라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마도 소아(小我)보다 대아(大我)를 생각하면서 공익(公益)에 우선적(優先的)인 생각을 두고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많겠지. 원래 재상은 왕이 편안하게 통치(統治)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그 책임이듯이 말이네.”

“아, 그러니까 정신적인 면에서 본다면 정(丁)은 내부에서 따뜻한 온기가 밖으로 퍼져나가서 인정(人情)을 베푸는 것이 되고, 병(丙)은 외부에서 공익의 눈으로 자신을 돌이켜보는 형태가 되나요?”

“그렇지. 잘 이해하셨군.”

“그래서 병(丙)은 내성적(內省的)인 형태가 되고, 정(丁)은 외향적(外向的)인 모습이 되는 것이로군요. 맞죠?”

“맞아. 하하하~!”

“그러니까 양화(陽火)인 병은 밖에서 안을 향하고 음화(陰火)인 정은 안에서 밖을 향하는 음양의 이치에도 그대로 부합이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니까. 잘 이해하셨어. 하하하~!

우창의 확답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채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병정(丙丁)의 차이에 대해서 대략 그림이 그려져요. 그렇다면 화(火)는 영혼(靈魂)이라는 의미도 해석을 할 수가 있나요?”

“가능하지. 다만, 금(金)도 영혼이라는 것과 혼동(混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네.”

“금이 영혼인가요?”

“자아(自我)라고 하는 면에서 달리 이름을 붙이면 영혼이라고 해도 된다네.”

“경신(庚辛)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해서 그런가 봐요. 간단하게라도 설명을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우창이 오광에게 말했다.

“오광, 지금부터 금(金)의 음양(陰陽)에 대해서 새로 들어온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도록 하게.”

오광이 우창의 말을 듣고는 얼른 말했다.

“예,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제자가 이해한 만큼의 설명은 가능하지싶습니다.”

이렇게 우창의 말에 따라서 간단하게나마 대중을 향해서 경신(庚辛)에 대한 설명[319~323참조]을 했다. 오광의 간결(簡潔)하면서도 담백(淡白)한 설명을 듣자 모두 금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우창은 잠시 쉬면서 화(火)의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을지 생각을 해 봤다. 자칫하면 이들이 금과 화에 대한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승님 이와같이 설명해 드렸습니다. 부족함이 많겠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약간의 참고가 될 것으로 여겨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오광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 잘 설명했네.”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채운에게 물었다.

“채운은 어떤가? 이해가 좀 되었나?”

“잘 이해했어요. 주체(主體)와 자아(自我)와 정신(精神)의 의미가 금(金)에 있었다는 것은 또 새롭게 배웠어요. 열심히 정리해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겠어요.”

“그럼 되었군. 그렇다면 다시 마음과 주체(主體)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 말을 해 볼까?”

“예, 듣고 싶어요.”

우창은 답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채운에게 되물었다.

“채운이 생각하기에 그 차이가 뭘까?”

“예? 제자가 생각해 보란 말씀이세요? 너무 어렵잖아요. 호호호~!”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말하면 되고, 쉬우면 또 쉬운 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지 미리부터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다네. 하하하~!”

“알겠어요. 그럼 말씀드려 볼게요. 경(庚)이 주체라고 했는데 정(丁)은 마음이라고 해요. 경(庚)을 몰랐을 적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경을 알고 나니까 이것이 둘이서 충돌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참 안다는 것이 머리가 아픈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엉뚱한 소리는 말고 묻는 말에나 답을 해 보라니까.”

채운은 자신이 없는지 자꾸 겉도는 이야기를 해서 우창이 핵심으로 이끌어 들였다. 그러자 채운도 생각을 다잡아서 말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경(庚)은 마음이고 정(丁)은 등불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어요. 말하자면 정신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丁)이 그 마음의 나아갈 바를 밝혀주는 것이죠. 그래서 학문을 통해서 등불이 더욱 밝아지면 문명(文明)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밝은 지혜가 되니 경(庚)의 주체에 계(癸)는 지식(知識)의 쌓음이 되고, 정(丁)은 그 지식을 끌어내어서 자신의 길에 등불로 삼는 것이니까 자칫하면 마음이 정(丁)이라고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실로 정신(精神)은 경(庚)이고 경(庚)의 길을 밝히는 정(丁)으로 인해서 마음이 드러나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말을 잘하셨네. 핵심은 그곳에 있는 것이라네. 하하하~!”

“그런데 제자가 말을 하고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요?”

“그야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녹아들지 않은 까닭이지. 원래 금(金)은 백번을 달궈야 귀한 쇠가 되듯이 정(丁)을 만나서 녹이고 또 녹여가면서 점차로 밝은 영혼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라네.”

우창의 말에 이해의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 가슴으로 녹인다는 것은 경(庚)을 새로운 지혜로 녹이는 과정이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요?”

“아무렴. 열심히 공부하면 머리에 열이 나는 것을 겪어 봤나?”

“맞아요. 그래서 열이 날 적에는 잠시 쉬었다가 하잖아요. 호호호~!”

“그러니까 말이네. 정(丁)을 심장(心臟)이라고 하고 그 심장 안에서 단련을 받는 것은 경(庚)이라고 하면 되겠나?”

“아니, 심장(心臟)의 뜻이 다른 것이었네요? 마음이 들어있는 그릇이라는 말이었잖아요? 꽃바구니라는 말을 듣고서 그 바구니가 꽃인 줄로 생각했던 것과 같았잖아요? 참으로 멍청했어요. 이럴 수가~! 호호호~!”

“이제 이해가 잘 되셨나? 정(丁)은 경(庚)의 그릇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금(金)과 화(火)가 충돌할 일은 없겠군. 하하하~!”

“역시~! 스승님이시네요. 그렇게 한마디로 정리하면 되는 것을 이치를 통하지 못하니까 너저분하게 말이 길어지기만 했어요. 호호호~!”

“이것이 사중경금(巳中庚金)이라네. 하하하~!”

“와~! 정말요?”

“암, 경(庚)은 항상 화(火)를 만나야만 새롭게 변화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화를 만나지 못한 경(庚)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있다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로 녹이 슬어서 사라져가는 것이지.”

“아하~! 그러니까 항상 새롭게 달궈지는 경(庚)이야말로 사중경금(巳中庚金)이고 학자의 정신세계인 것인가요?”

“이제 이해가 되셨나?”

“와~! 스승님의 한마디가 참으로 명쾌(明快)하네요. 정말 오묘한 오행(五行)의 이치네요. 이렇게 심오(深奧)하고도 간결(簡潔)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네요. 감동이에요.”

채운의 생각을 따라서 동행하면서 우창은 즐거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에 동참하는 제자들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우창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젊어서는 열기가 있어서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다가도 나이가 들어서 노쇠하게 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럽게 된다네. 왜냐면 그것을 녹여서 내 것으로 만들 열정(熱情)이 부족한 까닭이지. 그래서 비록 육체는 젊었더라도 정신이 늙은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라네.”

“아, 그래서 부모님께 어떤 것은 고치면 좋겠다고 말하면 ‘그냥 내버려 둬 이대로 살다 죽을 테니까~!’라고 핀잔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러한 이치를 오늘에야 깨달았어요. 정말 놀라워요.”

“그렇다면 또 물어볼까?”

“예? 너무 어렵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호호호~!”

우창은 문득 초봄에 만났던 손헌(巽軒)이 떠올랐다.

“내가 만났던 노인은 나이가 70인데 젊은 사람이 새로운 이야기를 해 주면, 감탄하고 눈을 반짝이면서 그 이야기를 즐겨 듣더군. 이런 사람은 어떨까?”

“그야 몸의 나이는 비록 70이라고 하더라도 정신의 나이는 20세의 청년이잖아요? 아니, 그 말은 결국 정신은 떡국으로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정화(丁火)로 나날이 젊어지는 것인가요? 마치 쇠는 불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듯이 말이에요.”

“하하하~!”

우창이 대답하는 대신 호탕하게 웃는 것을 본 채운이 말했다.

“아하~! 그런 것이었군요. 육신(肉身)은 날마다 조금씩 늙어가나 정신(精神)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다시 새로워지는 것인가요? 그래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고 하는 것이었군요.”

“왜 아니겠나? 물론 육신은 누구나 같은 흐름을 타지만 정신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순간(瞬間)마다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떤가?”

그러자 채운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제자들은 항상 청년과 같은 열정으로 오늘 이 순간에도 새롭게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우창은 채운의 말을 들으면서 내심 흡족했다. 스스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언제라도 변화가 가능한 것이 정신이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려고 하면 어느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그렇다면 병(丙)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존재인가요?”

채운이 다시 병화(丙火)의 의미를 물었다. 누구라도 질문을 하면 그것이 우창에게는 정신의 연료(燃料)였다. 없는 힘도 생겨나고, 의욕이 충만하게 되는 까닭이었다.

“처음에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병(丙)이라네. 이것은 마치 충성(忠誠)스러운 신하가 왕의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지.”

“왕의 마음을 그슬리다니요? 그건 무슨 뜻인가요?”

“가령 신하가 말하는 거야. ‘폐하(陛下), 겨울에는 혹한(酷寒)이 찾아옵니다.’라고 말이네.”

“왕이나 평민이나 혹한은 매우 꺼리잖아요? 왕도 싫어할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받아들이죠?”

“그건 왕에 따라서 다르지. 갑왕(甲王)은 방법을 묻겠지. ‘그래 병경(丙卿)의 생각에는 내가 어떻게 그 혹한을 받아들이면 좋겠소?’라고 할 것이고, 을왕(乙王)은 ‘싫어, 추운 것은 싫으니까 오지 말라고 해~!’라고 하겠지.”

“아, 정말 역경(逆境)을 어떤 마음으로 수용(受容)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알겠어요.”

“갑(甲)에게 병(丙)은 식신(食神)이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는 운동도 하고 난로도 설치해서 혹한을 잘 견디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네.”

“그럼 을왕(乙王)은요? 겨울이 싫으니까 오지 말라고 하고 신하도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왕궁에 비단을 두르고 난로를 피우면서 겨울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호~! 채운의 이해력이 매우 깊군. 바로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네. 하하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병(丙)은 삶에서 만나게 되는 역경(逆境)이었군요. 그래서 병화의 본질이 십성(十星)으로는 편관(偏官)이 되나요? 정화(丁火)는 정관이라고 하셨으니까요.”

“당연하지. 정관은 순경(順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미 익숙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편관은 역경을 만나게 되었을 적에 진화(進化)할 것인가 거부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서는 것이라고 하겠네.”

“하긴, 그렇네요.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항상 역경이잖아요? 그러한 과정에서 그것을 이기고 살아남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갖는 사람은 점차로 그릇이 커진다는 것이 쇠를 자꾸만 불려서 그릇을 키우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잖아요?”

“물론이네. 태어날 적에 갖고 태어난 그것만을 천하의 보물인 줄로 생각하고 고이고이 간직하다가 죽음을 맞기도 하고, 어제 몰랐던 것도 오늘 깨닫고 기뻐하면서 죽음을 맞기도 하겠지. 이 둘의 삶은 겉으로 봐서는 별반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그 내면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전혀 다른 모습이겠어요. 그리고 제자는 후자(後者)의 길을 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오행원의 이 공간은 쇳물이 가득한 도가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연료(燃料)는 고금(古今)의 현인(賢人)들이 남겨주신 지혜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니 말이네. 하하하~!”

조용해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오행원에 우창의 음성이 낭랑하게 허공으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