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 제30장. 정신(精神)/ 20.열정의 온도(溫度)

작성일
2021-11-0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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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제30장. 정신(精神) 


20. 열정의 온도(溫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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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에 잠겼던 채운이 다시 물었다.

“스승님, 다시 기초적인 것을 여쭤봐야 하겠어요. 아무래도 뭔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듯한 느낌을 해결하고 싶어요. 헤아려 주세요. 호호호~!”

“무슨 말이든 기탄없이 하는 것이 사제간(師弟間)의 대화(對話)이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궁금한 것을 말하면 되지.”

“고마워요. 그럼 말씀을 드릴게요. 촛불의 열정은 정(丁)이에요. 그렇다면 병(丙)은 어디에서 찾죠?”

“불빛~!”

“촛불의 불빛이 병(丙)이라는 말씀이세요?”

채운의 말에 우창이 다시 물었다.

“태양은 빛인가?”

“맞아요. 햇볕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촛불의 빛은?”

“그것도 마찬가지로 불빛이네요. 아~ 그래서 병정이 같이 있다는 말씀이셨군요. 이제 병화(丙火)를 찾으려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어요.”

“다행이군. 하하하~!”

“그건 이해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양초의 형태는 이름이 양초이므로 금(金)이고, 불을 붙였을 적에 양초의 녹은 물은 액체이니까 수(水)가 되고, 녹은 물을 빨아올리는 심지는 목(木)이고, 심지에 불이 타는 것은 화(火)이고, 토(土)는...... 토는 뭐죠? 그런데 토는 없는 건가요? 양초에서 토를 찾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대입해야 할까요? 양초 하나를 놓고서도 오행을 모두 찾아내고 싶어서 안날이 났는데 여기에서 막히네요. 호호호~!”

“그게 어렵나? 양초가 서 있게 하는 것이 토(土)야.”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양초가 누워서 타면 어떻게 될까?”

“그야 제대로 탈 수가 없죠. 물은 흘러버릴 것이고, 심지만 타고 꺼져버리겠네요. 아, 그러니까 양초가 잘 타오를 수가 있도록 세워놓는 것이 토란 말씀인가요? 그래도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드는데요?”

“그럼 양초의 덩어리를 토(土)라고 해도 되네. 그렇게 되면 금(金)은 양초라는 이름에 부여하면 되니까 말이네. 하하하~!”

“그게 훨씬 나아요. 호호호~!”

“아무렇게나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다면, 토(土)인 양초의 덩어리에 불을 켜면 화생토(火生土)로 양초를 녹여서 액체를 만들어요. 이때가 되면 심지는 수생목(水生木)으로 액체를 빨아올리고, 목생화(木生火)로 촛불이 타오르네요. 맞죠?”

“틀렸네.”

“예? 어디가 틀렸죠?”

“목생화(木生火)의 이치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하겠는걸. 하하~!”

“왜 틀렸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문제가 없는데요?”

“심지가 불을 피우는 것은 맞아. 다만 생극(生剋)의 관계를 잘못 말했다는 뜻이네.”

“목생화(木生火)가 아닌가요?”

“아닐세.”

“그럼요?”

“화극목(火剋木).”

“예? 오행의 공부가 참 어렵긴 하군요.”

채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항의(抗議)와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파고들다가 보니까 우창이 뭔가 꼬여서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데 너무 깊이 들어가면 미쳐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라고 여겨졌던 까닭이다.

“목생화(木生火)라면 상생(相生)일 테니까 목(木)도 살고, 화(火)도 살아야만 된다는 이치는 알겠는가?”

“그야 물론이죠. 그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화극목이라고 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이에요.”

“촛불이 타고 있을 때 목은 어떻게 되었나? 심지 말이네.”

“아, 초의 심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심지는 타서 없어지죠.”

“그렇게 하고서도 목생화라고? 아직도 이해되지 않나?”

“예? 음.... 그건 목생화라고 하기 어렵네요. 그렇다면 화극목의 공식도 있단 말인가요?”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 하하하~!”

“오행의 생극(生剋)이란 그런 것인가요?”

“물론이네.”

“모든 오행에는 생극의 이치가 있었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냥 외워서 알고 있었던 목생화하고 화생토하고 토생금하고 금생수하고 수생목하는 상생(相生)과, 목극토하고 토극수하고 수극화하고 화극금하고 금극목하는 상극(相剋)으로 끝이 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어요.”

채운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서 혼란이 생겼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보통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런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오행의 생극에 대한 이치를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겠어요. 정말 심오(深奧)해요.”

“그렇지? 그래서 우리 학당(學堂)의 이름이 왜 「오행원(五行院)」인지도 이해를 하셨기를. 하하하~!”

채운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제야 비로소 오행의 생각에 대한 이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확연(確然)히 깨달았다. 말로만 심오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를 깊이 통찰(洞察)한 자만이 깊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운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혔다. 감격(感激)의 눈물이었다.

“스승님, 채운은 당연히 오행(五行)의 이치를 여태까지 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스스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어요. 양초 하나에 깃든 오행의 이치도 모르고 살았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지나온 세월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그렇지만 이제라도 바로 알게 되었으니 속이 다 후련해요. 정말 이 마음을 보여드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호호호~!”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우창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무슨 마음인지 알지, 나도 다 겪어 본 나머지인걸. 하하하~!”

“정(丁)의 천변만화(千變萬化)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니까 작게는 촛불부터 크게는 용광로의 거센 불길까지도 모두 정화(丁火)의 영역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채운의 말에 우창이 덧붙였다.

“화산(火山)도.”

“예? 화산 말씀인가요?”

“그래,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 그 화산의 열기도 바로 정화(丁火)라는 것을 생각해 둬도 되겠네. 하하하~!”

“아하~! 맞아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지하의 용암(熔岩)도 모두 정화(丁火)네요? 그렇다면 이 땅의 온기조차도 정화(丁火)가 되는 것이잖아요?”

“모든 동물(動物)이나 식물(植物)에도 정(丁)은 있다는 것도 알아두게. 심지어는 바위에도 정이 들어있다는 말이네.”

우창이 바위에도 정화(丁火)가 있다고 말을 하자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예? 바위에도 정화가 있다는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불에 타지도 않잖아요?”

“불에 타지 않는 것과 바위에 정화가 들어있는 것이 무슨 관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불에 타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까? 그야 어떤 불이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하하하~!”

채운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예? 바위가 불에 타기도 한다는 말씀인가요?”

“아, 채운은 잘 모르는가 보군. 원래 바위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아니야. 바위는 불에서 나왔지. 그래서 화생금(火生金)의 이치를 따르게 되어 있지. 높은 열을 가하면 바위도 액체가 되는 거라네.”

“예? 정말로 놀라워요. 사유(思惟)에는 끝이 없네요. 호호호~!”

“서양 사람인 섭씨(攝氏)가 만든 온도계(溫度計)로 논한다면 6,000도(度) 정도가 되면 모든 것은 녹아서 액체가 된다더군.”

“예? 그건 무슨 말씀이죠?”

“아, 옛날에 노산에서 공부하던 고월(古越)이라는 도반(道伴)이 알려준 이야기[114화 참조]가 문득 떠올랐네. 하하하~!”

“그분은 또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지네요. 동서고금(東西古今)의 깊은 이치를 꿰뚫고 계신 분인가 싶어요.”

“그렇게 말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라네. 언젠가 인연이 되면 만날 수도 있으려니 싶군.”

그러면서 자원을 바라봤다. 자원도 문득 고월이 떠오르는지 잠시 생각이 잠긴 표정이었다. 다시 채운이 말했다.

“도대체 6,000도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요? 얼마나 뜨거운 불이면 바위도 녹는지가 궁금해서 말이에요.”

“물을 그릇에 담아서 불에 올려놓으면 끓게 되지?”

“맞아요. 차를 마시려고 해도 반드시 물을 끓여야 하니까요.”

“그것을 섭씨의 온도계로 측정하면 100도가 된다는군.”

“그런가요? 온도계라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섭씨가 기온(氣溫)을 측정할 방법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이라는데, 물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를 0도(零度)라고 정하고, 물이 끓는 온도를 100도(百度)라고 기준으로 삼았던 거야. 그렇게 해서 그 기계로 끓는 기름 솥의 온도를 재니까 260도가 되고, 촛불을 재니까 1,400도가 되었다지 않는가.”

“와우~! 정말 놀라운 기계네요. 그렇지만 그 기계로 잰다고 해도 바위가 녹는 온도는 측정할 수가 없겠는걸요?”

“왜?”

“아니, 불 속에 그것을 넣으면 그것조차도 녹아버리고 말 텐데 어떻게 기계를 그 안에 넣어서 측정하겠어요?”

채운의 말에 우창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군. 그런데도 그 기계를 이용해서 서양의 연구가들은 태양의 표면에 있는 온도가 6,000도라는 것을 알아냈다더군. 물론 믿을 수는 없는 말인데, 일리는 있어.”

“예? 하늘의 태양이 6천 도라고요? 정말 믿기 어렵네요. 그래도 스승님께서 일리가 있다고 하시니까 그 이치가 궁금해요. 그나저나 오늘의 가르침도 신천지(新天地)네요. 이러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을 것이며, 그것이 정화(丁火)의 이야기라는 것은 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죠. 정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땅을 치고 통곡하겠어요. 호호호~!”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문득 염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업무가 많은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잊고 있었지만 염재의 서양에 대한 상식이 여기에 추가되었더라면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채운이 다시 독촉하는 듯이 말했다.

“아니, 끓는 물이나 기름은 그렇다고 해도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온도를 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싶어요. 어서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요.”

우창은 채운의 지식(知識)에 대한 열정을 느끼면서 가슴이 훈훈해졌다. 누구라도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창도 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열기(熱氣)는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도공(陶工)이 도자기를 만들 때 초벌구이를 한 다음에는 유약(釉藥)을 바르는데 그 유약이 용융(熔融)하는 온도는 대략 1천도 내외라는 거야. 그런데 불빛을 보면 온도의 변화에 따라서 빛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지.”

“아 그건 일리가 있어요. 그런데 작은 촛불 온도와 가마의 장작불 온도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인가요? 그것도 참 신기하네요.”

“불은 그렇게 되는 것이 한계(限界)이고 구조(構造)인 거지. 용암(熔岩)의 온도도 그 언저리라고 하니까 말이야.”

“아니, 바위가 녹는 용암 온도가 촛불 온도와 같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걸요.”

채운이 감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열(熱)의 온도가 있으면 빛도 온도가 있다는 것은 음양의 이치에 부합하겠지? 아니 ‘빛의 온도’라고 하기보다는 온도가 그만큼 되었을 적에 빛이 달라진다는 일정한 이치를 발견한 것이라고 해야 더욱 정확하겠군.”

“그렇다면 촛불에서의 열과 빛이 서로 통용(通用)이 된다는 뜻이네요?”

“촛불의 색은 무슨 색이지?”

“겉은 노란색이잖아요? 안쪽은 어둡고 말이에요.”

“맞아 그래서 촛불의 겉은 노란색인데 그 온도는 1,400도가 되고, 속은 어두운색인데 800도가 된다는 거야. 이렇게 불의 온도를 측정하다가 일정한 온도가 되면 그 빛도 같다는 것에 착안(着眼)하고는 연구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밝혀졌다는 사실이라는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불의 온도는 1,400도를 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태양의 6천 도를 찾아냈죠?”

“채운이 이렇게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네. 정말 끝까지 가봐야 할 모양이네. 과거의 우창을 보는 것 같군. 하하하~!”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채운도 희망이 보이는 건가요? 호호호~!”

기뻐하는 채운에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자고. 나도 고월에게 들었던 이야기라서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니까 말이네. 우선, 자연에서 얻는 연료인 나무로 얻는 온도가 그렇다는 이야기지. 연료를 끝없이 연구한 결과 특별한 연료까지도 찾아냈다는 거야.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니까 이 정도에서 빛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정도로 하면 어떨까?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본론에서 벗어나기도 하니까 말이지.”

“이미 해 주신 말씀만으로도 넘쳐나게 충분해요. 그렇다면 정(丁)은 어떤 연료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6천 도까지도 타오를 수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맞아.”

“참, 사람의 몸도 따뜻하잖아요? 여기에 대한 온도도 연구가 되었나요? 그건 궁금해요.”

“물론이지. 섭씨의 온도계로 36.5도가 나왔다더군. 정상적인 사람의 체온이라니까 여기에 열이 오르면 37도가 될 것이고, 내리면 35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정상적인 체온이 아니기 때문에 병환이 생긴 것으로 봐야 할 수도 있겠지?”

“그런 온도계를 하나 갖고 있으면 참 좋겠어요. 호호호~!”

“엄마는 아기의 체온을 자신의 이마를 아기의 이마에 대어보고 알잖아. 그러한 것도 체온을 측정하는 방법이었던 거야. 하하하~!”

“아, 맞아요. 그러니까 몸의 온도는 36.5도라는 것이지요? 정말 놀라워요.”

채운의 표정을 본 우창이 짐짓 웃으며 물었다.

“만약에 학문을 태우면 온도는 얼마나 올라갈까? 하하~!”

“예? 그건 모르겠는데요? 공부하는 책을 태운다는 말씀은 아니신 거죠?”

“물론이지. 열정(熱情)을 불태운다고 하잖아. 선남선녀에게 필요한 연정(戀情)의 온도는 얼마일까?”

“그것은 남녀의 불타는 사랑이라고 하니까, 촛불이 타는데 나오는 온도라고 봐서는 1천4백 도겠네요. 호호호~!”

“옳지, 그렇다면 학문을 연구할 적에 나는 열정의 온도가 남녀의 애정 온도와 비교해서 어떨까?”

“아마도 학문의 열정 온도는 1천 도겠어요.”

“오호~! 그렇다면 애정의 온도보다는 낮지 않은가?”

“당연하죠. 계속 1천4백 도로 타오르면 학문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겠죠.”

“그건 무슨 말이지?”

“남녀의 뜨거운 사랑도 3개월을 넘기 어렵잖아요. 그 이유는 더 타오르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학문의 불길은 넘치지 않을 만큼의 열정으로 꾸준히 타올라야 해요. 그래서 남녀의 열정보다는 낮지만, 대신에 꾸준히 타오르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호호호~!”

“그렇다면 학문의 열정 온도가 낮아질 수도 있을까?”

“당연하죠. 온도는 항상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경우에 내려간다고 할까?”

우창이 재미있어서 다시 묻자 채운이 말했다.

“만약에 공부하다가 시련을 만나거나 해서 공부할 마음이 식은 재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다면 공부에 대한 의욕이 바닥에 떨어지겠네요. 그렇게 되면 얼음이 얼게 된다는 0도가 되는 건가요?”

“사랑이 식어버리는 온도만큼이나 떨어지니 그럴 만도 하겠군.”

“참, 아무리 추워도 0도의 아래는 없는 거죠?”

“고월의 말로는 그런 것도 있다더군.”

“예? 그런 것도 있어요? 영도가 기준이라고 하셨잖아요?”

“섭씨가 만들 적에는 그렇게 만들었는데 나중 사람들이 개발을 시켰다더군. 그래서 최종적으로 알아낸 것은 영하(零下)가 있다는 거야.”

“아하, 영하가 생김으로 해서 영상(零上)도 만들어졌겠네요?”

“맞아. 하하하~!”

“그렇다면 영하는 어디까지 내려가는 걸까요? 설마 영하도 6천 도까지는 아니겠죠? 어쩌면 음양의 이치에 따라서 또한 6천 도까지 도달하는 걸까요?”

“고월이 해 준 이야기로는 영하의 측정에서 273도까지 내려가니까 더 내려가지 않더라지? 그러니까 아마도 더 아래는 없는 것으로 결정했다더군. 물론 수치(數値)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상상이 되지 않아서 나도 잊어버렸는데 오늘 채운이 묻는 바람에 문득 떠올리게 되었으니 채운의 열정은 아마 1,100도는 되지 싶군. 하하하~!”

“정말요? 돌머리를 녹여서 지혜로운 머리로 만들려면 1,400도는 되어야 할 텐데 참 큰일이에요. 호호호~!”

“너무 그렇게 공부하면 발광(發狂)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정화(丁火)답게 공부해야지. 하하하~!”

“예? ‘정화답게’라니요? 그건 무슨 뜻이죠?”

“아, 『적천수(滴天髓)』의 한 구절이 떠올라서 한 말이었네. 적천수의 정화 편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오거든.”

“그래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 책은 읽어보지 못했나 보군.”

“듣는 것도 처음이니 어떻게 읽어볼 수가 있겠어요?”

“아, 그런가? 하긴, 나중에 공부가 잘되면 적천수를 깊이 연구해 볼 때가 올 것이네.”

“알겠어요. 모든 것이 다 궁금하지만 우선 정화에 대해서 들려주세요.”

“그러지. 정화편에 「旺而不烈(왕이불렬)하고 衰而不窮(쇠이불궁)이니라」라고 하는 구절이 문득 떠올랐네. 정화는 ‘왕성하더라도 맹렬하게 타오르지 않고, 쇠약해져도 꺼져버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라네. 그런데 불타버리면 정화답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하하하~!”

“아니, 불인데 왜 그럴까요?”

“음화(陰火)~!”

“아, 그것이 양화(陽火)와 음화(陰火)이 차이로군요. 정말 오행과 음양의 이치는 빈틈이 없네요. 호호호~!”

“그게 자연(自然)이라네.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더욱 신비(神秘)롭기만 하지. 하하하~!”

“항상 그렇게 자연의 이치에 감동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요. 제자도 어서 그러한 수준에 머무르기를 기대해야 하겠어요. 호호호~!”

“당연하지. 그것이 자연학자이자 철학자인 명리학자(命理學者)의 목적이기도 하니까 말이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채운은 잠시 우창을 감탄스럽게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정(丁)이 이러한 것이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어요. 모든 변화는 정(丁)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말이죠. 심지어는 학문조차도 정화가 없이는 변화할 수가 없네요.”

“맞아.”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도 정화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 것도 정화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사람이 살아서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도 정화의 도움을 받아서 피가 순환(循環)되어야 생존하는 것이니까 정화가 아니면 세상은 불 꺼진 재처럼 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오호~! 그것참 멋진 말이군~!”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하자 채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스승님, 이것이 공부의 맛일까요? 왜 이렇게도 스승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모두 가슴을 후벼 파면서 떨림을 주는지요?”

“아마도 그럴 것이네. 그 떨림은 내가 그동안 공부하면서 수도 없이 떨렸던 그 순간이기도 할 테니까. 그래서 떨림은 전이(轉移)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예? 그런 말도 있나요? 그것도 처음 들어요.”

채운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하품은 전이된다고 하던가?”

“그건 맞아요. 옆에 사람이 하품하면 같이 하품이 나오잖아요?”

“옆에 사람이 슬픔에 잠기면 또 어떨까?”

“그러면 같이 슬퍼지고 눈물도 흐르죠. 이러한 것은 또 무슨 이치일까요?”

“그것이 공명현상(共鳴現象)이라네. 소리에 메아리가 따르듯이, 스승의 가르침에 제자가 답하듯이, 어미 소의 울음에 송아지가 답하듯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공명이 일어나는 것이라네. 하하하~!”

“왠지 가슴이 훈훈해져요.”

“그것도 우창의 마음이 채운에게 전해진 까닭일 거야.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전달이 되겠지. 모두 그렇게 느끼지 않으시나?”

우창이 대중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하자 하나같이 동음(同音)으로 말했다.

“제자도 느낍니다~!!!”

우창은 그 소리가 천하에 두루두루 울려 퍼지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정화의 열기는 뜨거웠다.

문 바깥의 날씨도 폭염(暴炎)이지만 공부의 열기에 가득한 제자들의 열정(熱情)만은 못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창의 마음은 오히려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