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 제30장. 정신(精神)/ 19.병정화(丙丁火)의 마음

작성일
2021-11-0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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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제30장. 정신(精神) 


19. 병정화(丙丁火)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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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에 잠겼던 채운이 다시 물었다.

“정화(丁火)를 통해서 열정(熱情)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열정이 없이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까 이것이 화(火)의 전부가 아닐까 싶어서 병화(丙火)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 주실지 궁금해요. ”

채운이 정화의 열정 이야기에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는 듯이 진지하게 다시 병화(丙火)를 묻는 것에 대해서 우창이 대답했다.

“생각해 볼까? 가슴에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그가 말을 한다면 말을 들으면서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으나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면 또한 알아볼 방법이 있을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채운이 다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가슴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굴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지 않을까요? 우선 공포심으로 좌절하는 사람의 얼굴빛을 생각해 봤어요. 잿빛이거나 검은빛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희망을 본 사람은 얼굴에서도 광채(光彩)가 나겠죠. 아,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서 생각해 보니까 희망(希望)은 병화(丙火)라고 할 수가 있을 것도 같네요.”

“오호~! 얼굴에서 빛이 난단 말인가? 그렇다면 얼굴의 빛만 보고서도 그 사람의 심중(心中)에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단 말이잖은가? 그것이 가능할까?”

“물론이에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어요. 오행원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의 얼굴을 봐도 알잖아요? 둘러보면 모두가 눈빛은 반짝이고 얼굴은 매우 밝아요. 이렇게 보인다면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용암(鎔岩)처럼 타오르는 열정이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어요?”

“그런가? 참으로 귀에는 달콤한 이야기로군. 실제로 그렇다면 참 좋겠네. 채운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얼굴빛을 꾸민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내면에서 그러한 열정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얼굴빛도 만들어 낼 수가 있지 않을까?”

“예?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렇게 물으시니 어떻게 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호호~!”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산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꾸며서 듣기 좋게 말하는 것과 얼굴을 밝게 꾸미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열정이 있기 마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오행원의 제자들은 학문에 대한 열망으로 가슴이 뜨거운 것처럼, 벼슬아치에게 아첨(阿諂)하고 그의 속마음을 헤아려서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뜨거운 가슴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 내부의 심중(心中)의 선악(善惡)은 논외로 하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안산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잠시 생각하면서 그 질문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폈다.

“당연합니다. 아첨을 하는 자도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열정은 목적이 있다는 뜻이니까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이 있어야 열정이 생기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가슴은 불타오르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그 영향으로 얼굴에는 광채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과정을 의미할 뿐이고 결과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습니다. 원래 열정이 좋다고 해서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되셨는지요?”

“동감입니다. 그러니까 빛이란 열정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정(丁)이 먼저이고, 병(丙)이 후가 된다는 것과 일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간지(干支)의 이치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네요. 스승님의 말씀대로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목적이 생기면 열정이 생기고 열정이 생기면 얼굴과 눈에 빛이 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화(火)의 음양(陰陽)에 대한 이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우창이 하는 말을 듣고서 안산이 궁금한 것이 풀렸다는 듯이 합장하자 이번에는 채운이 손을 들고 물었다.

“병정화(丙丁火)를 이해하는 것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까지 배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배웠을 적에 병화(丙火)를 태양이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봐도 될까요?”

“병화를 태양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이 없지. 다만, 열정이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라고 하고, 그 결과물로 주어지는 성공(成功)을 병화(丙火)로 보는 것도 알고 있다면 말이네. 하하하~!”

“예? 성공하는 것이 병화인가요?”

“어찌 한 가지로만 단정을 할 수가 있겠어? 다만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오히려 접근하기에 용이(容易)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아하~! 성공도 병화이고 영광(榮光)도 병화이고, 명성(名聲)도 병화라고 보면 되는 것일까요? 그야말로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러니까 정화(丁火)의 열정(熱情)으로 불철주야(不撤晝夜)의 노력이 쌓인 다음에 비로소 성공하게 되어서 병화(丙火)의 영광을 누린다고 보면 음양이 서로 함께 붙어 다닌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물론 성공했을 경우에 해당하겠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예? 그렇다면 열정적으로 노력을 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하기도 하나요?”

“아니, 그것을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얼마나 많은 학동(學童)이 글을 읽고 외워서 과거(科擧)를 보게 되지만 그중에서 합격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열정이 부족했다고 할 수가 있을까?”

“아니에요.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겠어요.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하겠네요. 그렇게 되면 좌절(挫折)을 하게 되겠어요. 좌절하게 되면 병의 상대인 임수(壬水)의 현상을 떠올려야 하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요. 정화(丁火)의 상대에 계수(癸水)가 있어서 열정의 상대편에는 위축(萎縮)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는데 병화에 대해서도 같은 의미로 임수를 적용해서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임수의 본질(本質)은 기체(氣體)라고 할 수가 있으니 명예(名譽)를 얻고자 하여 불철주야(不撤晝夜)로 공부를 했는데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낙방(落榜)을 했다면 어떨까? 그 마음이 허공의 공기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좌절(挫折)을 맛보지 않을까? 큰 의미로 본다면 임계(壬癸)는 모두 수(水)가 되므로 위축되는 것도 당연히 포함을 시켜야 하겠군.”

“알겠어요. 그렇게 정리를 할 수가 있겠네요. 그렇다면 병화의 좋은 면을 생각해 보고 싶어요. 마음에서 정화가 열정이듯이 병화는 뭘까요? 성공을 바라보는 것만은 아닐 테니까 말이에요.”

채운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고 우창도 그에 따라서 답도 이어졌다. 채운이 정화와 병화의 같고도 다른 점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떻게 답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깨달음을 줄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너무 휘황찬란(輝惶燦爛)한 광채(光彩)만 말한다면 그것도 병화를 좁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임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잠시 생각한 다음에 말을 이었다.

“정화를 열정으로 놓고 생각할 적에 병화의 의미는 인내심(忍耐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인내심이라고 한다면 역경(逆境)을 참고 견디는 것이잖아요?”

“맞아, 그러한 것이 바로 병화의 영향을 받는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열정만 있고 인내심이 없다면 목적을 이룰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사주에 병(丙)이 있는 사람은 인내심도 많으나, 반대로 병이 없는 사람은 인내심도 부족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겠지. 다만 인내심이 반드시 사주에서만 결정이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겠어요? 어떤 사람은 극심(極甚)한 고통(苦痛)을 받아도 꿋꿋하게 잘 견디고 또 어떤 사람은 사소한 아픔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팔자(八字)의 영향이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여인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제자는 우명주(禹鳴周)에요. 말씀만 듣다가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여쭤도 될지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게 되었어요. 병정화(丙丁火)의 이야기를 듣다가 다른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우창은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눈길이 덜 가기 마련이었다. 우명주는 나이가 좀 들어 보였다. 대략 30대 중반의 과묵한 여인이었다. 당연히 채운 등과 같이 입실하게 된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 답답하셨다니 무엇이든 말씀하셔도 되네.”

“예, 고맙습니다. 열정(熱情)과 광채(光彩)에 대해서는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명식(命式)을 풀이하는데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우선은 간지의 조합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심이기는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공허(空虛)한 이야기처럼 들려서 말이에요. 분위기가 좋은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조심스럽게 말하는 우명주를 보면서 우창도 느낀 바가 있었다.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제자의 생각으로는 실제로 사주를 풀어가면서 이러한 말씀을 듣는다면 오히려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든 생각입니다.”

“그야 당연하지. 무엇이든 물어도 되니 궁금한 것을 말씀하시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안심된다는 듯이 말했다.

“문득 생각하기에 사주를 풀이하는 것은 간지(干支)의 변화(變化)를 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맞아, 결국은 간지를 공부하는 목적이 사주를 풀이하고자 하는 것이니까 당연하다고 봐야겠지.”

“간지의 변화를 보면 되는데 왜 이렇게나 오행의 변화에 대해서 많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물론 스승님의 가르침이 중요하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사주를 보러 온 사람을 상대로 풀이할 때는 어떤 이익이 있을 것인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이러한 것을 여쭤봐도 혼나는 것은 아니겠죠? 호호호~!”

“암, 여부가 있는가. 잘 물었네. 하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예전에는 질문을 하다가 걱정을 들었던 적도 있어서 스승님께 뭔가 여쭐 적에는 과연 이러한 것을 물어도 되는지를 미리 스스로 검열(檢閱)하는 습관이 생겼나 봐요.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생각이 나는 즉시로 바로 여쭐래요.”

“아무렴. 그렇게 하면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겠나?”

“맞아요. 제자도 나중에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면 반드시 스승님께 배운 가풍대로 하도록 노력할 거에요. 호호호~!”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우명주의 말에 대해서 답했다.

“자, 사주를 풀이하는데 오행의 이치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했겠다?”

“옙~!”

우창이 설명을 위해서 채운의 사주를 다시 꺼내어서 앞에 펼쳤다. 모두의 눈길이 사주에 모였다.

“자, 이미 앞에서 본 채운의 사주를 살펴보도록 하겠네. 이미 기본적인 이치는 선행(先行)한 학습으로 깨우쳤기 때문에 바로 설명 하더라도 이해할 것 같으니까 그대로 이야기하겠네. 혹 이해가 되지 않는 제자들이 있다면 차차로 공부하면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것이네.”

우창은 혹시라도 오광과 안산이 이러한 이치를 아직은 모를 것을 고려(考慮)해서 이렇게 안심하라는 의미로 한마디 했다. 그러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답했다.

“예, 스승님~!!!”

우창이 미소를 한 번 짓고는 채운을 향해서 물었다.

“일간(日干)과 진중무토(辰中戊土)는 어떤 관계이지?”

“와우~! 제 사주로 공부하면 감사할 따름이죠. 그야 목극토에요.”

“아닐세.”

“예? 아니라니요? 무슨 뜻인지요?”

“토생목이라네.”

“토생목이면 진중무토가 일간(日干)을 생한다는 뜻인가요?”

“물론~!”

“그런가요? 설명해 주세요. 이해가 되지 않아요. 화토(火土)가 희용신(喜用神)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요?”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오행의 생극만을 공부하고서 어떻게 사주를 풀이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 궁금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 맞아요. 그렇게 풀이하는 것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말해 주는 것이라네. 이해가 되셨는가?”

“아, 알겠어요. 그렇다면 진중을목(辰中乙木)과 일간과의 관계는요?”

“그야 목극목이지.”

“아하~! 정말 신기한 것은 제자가 무엇을 물어도 스승님은 거침이 없으시네요. 어쩌면 그렇게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척척 답을 하시는지 참으로 신기해요. 호호호~!”

“그런가? 무엇이든 많이 생각하게 되면 누가 물어도 이미 나는 그에 대해서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했을 가능성이 많겠지? 그러다 보니까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대부분은 생각해 봤던 것이기 때문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그야말로 연습(練習)으로 쌓은 내공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정말 존경스러워요. 제자도 꼭 그렇게 닮도록 노력하겠어요. 호호호~!”

“물론이지. 그건 그렇고, 다시 묻겠네. 월지(月支)의 인목(寅木)과 일지(日支)의 진토와 관계는 어떻게 되지?”

“그야 당연히 토생목이잖아요? 조금 전에 일간의 갑목도 토생금이라고 하셨으니까 같은 조건이므로 답도 같겠어요. 이제 제자도 이해가 되었어요.”

“어허~! 활간법(活看法)을 모르니 그렇게 답을 하지. 하하~!”

“예? 무슨 말씀이세요? 틀렸다는 뜻인가요?”

“당연히 틀렸지. 이것은 목극토인 줄을 알아야지.”

“아하~! 기신(忌神)이라는 뜻인가요?”

“맞아. 희기(喜忌)는 항상 생극의 이치와 맞물려서 돌아가니까. 하하하~!”

“그렇다면 시지(時支)의 묘목(卯木)과의 관계도 목극토가 되겠군요?”

“당연하지. 같은 조건이란 이런 것이 같은 조건이야. 그렇다면 인목(寅木)과 묘목(卯木) 중에서 더 나쁜 녀석은 어느 글자일까?”

“예? 같은 목인데도 더 나쁘고 덜 나쁠 수도 있나요?”

“아무렴. 있고말고.”

우창의 말에 생각에 잠긴 채운이 잠시 후에 자신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음... 인목이나 묘목이나 일지 무토를 극하는 것은 같아요. 다만 음양의 차이에 의해서 묘극진(卯剋辰)은 음양이 다르고, 인극진(寅剋辰)은 음양이 같으니까 무토의 입장에서는 인목이 더 부담스럽겠어요. 그러니까 인목이 더 나쁘다고 하고 싶어요.”

“잘 판단하셨군. 그렇게 공부하면 된다네. 그렇다면 월지는 형제궁이 되고, 시지는 자녀궁이 된다고 하면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예, 형제자매를 물으면 자식보다도 더 부담스럽다고 말해 주고, 남편은 처남이나 처가의 형제와 자신의 자녀로 인해서 힘들게 된다고 해석하면 될까요?”

“오호~! 비약적(飛躍的)으로 발전할 조짐이 보이는걸. 하하하~!”

“제자가 답을 잘한 것이 맞죠? 어쩐지 그렇게 해석하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호호호~!”

“어때? 오행의 생극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주를 풀이하는데 유익하지 않다고 할 수가 있을까?”

우창의 말에 비로소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우명주가 말했다.

“모든 사주의 해석에는 기본적인 바탕에 오행의 관법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어요. 이제 두 번 다시 그러한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이해하셨다니 다행이네. 하하하~!”

그러자 이번에는 채운이 우창에게 물었다.

“도대체 스승님께서는 사물의 모습 하나하나를 놓고서 얼마나 깊고 또 넓게 사유하셨는지가 궁금해요. 스승님께서 이렇게 궁리하는 것도 팔자와 연관이 있을까요?”

문득 우창의 사주가 궁금해진 채운이 넌지시 좀 보여 줄 수 있느냐는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우창도 그 뜻을 이해하고는 바로 사주를 적었다.

320 우창사주

“자, 어디 채운이 풀어볼 텐가? 오행의 이치로 풀어보게나.”

“와~! 고맙습니다. 이렇게 제자의 호기심을 헤아리시고 바로 답변을 주시다니요. 그럼 부족하지만 궁리해 보겠어요.”

이미 다른 제자들도 우창의 사주를 적느라고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자 모두 적고 난 것을 확인한 채운이 보이는 대로 풀이를 했다.

“무생경(戊生庚)하고 진생신(辰生申)이에요. 정극무(丁剋戊)하고 사극진(巳剋辰)이네요. 정극계(丁剋癸)하고 사극계(巳剋癸)하고요. 사극사(巳剋巳)하고 정극사(丁剋巳)에요. 이로 미뤄서 판단해 보면, 부모와 형제는 모두 부담을 주게 되어서 일찍 고향을 떠나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중심으로 살아가는데, 남의 명을 받아서 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무엇인가를 궁리해서 몸으로 먹고살게 될 것이고 다행히 말년(末年)에는 자식의 인연도 좋겠어요. 그런데 무진(戊辰)이면 배우자의 인연은 좋다고 봐야 하나요? 이건 어떻게 봐야죠?”

“오호~! 배운 것을 바로 응용하는 순발력이 대단하군. 무진은 진토가 신금을 생하고 있으니 흉한 정도는 아니라고 봐서 무비진(戊比辰)으로 보면 되겠네. 즉 생극(生剋)과는 무관(無關)한 경우라는 뜻이라네.”

“그런데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요? 제자가 말을 해 놓고서도 올바른 말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호호호~!”

채운이 설명은 해 놓고서도 자신이 없는지 우창에게 물었다. 그것을 알고는 우창이 다시 정리 삼아서 채운에게 확인했다.

“생극(生剋)의 이치를 모르게 되면 무슨 말을 하는지 혼동이 올 수도 있으나 그것만 놓치지 않고 있다면 당연히 설명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정극무(丁剋戊)를 화생토(火生土)로만 보는 관점이라면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이 사주의 구조에서 화생토(火生土)를 논하는 것은 일반론이고, 상황에 따라서 일간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면 당연히 화(火)는 용신(用神)이나 극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알 것이 아니냔 말이지?”

“맞아요. 스승님께서만 알아듣고 다른 도반들이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겠으나 채운에게는 이렇게 보였어요.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단 말씀이네요. 다행이에요. 호호호~!”

“이것만 해결된다면 그다음에는 아무도 혼란스럽지 않게 오행의 생극에 대해서 정리가 되지 않겠나? 정극계(丁剋癸)도 기본적인 생극은 수극화(水剋火)가 되겠지만 사주에서 꼭 필요한 계수(癸水)를 허약하게 만들 뿐이고 화(火)가 무리를 지어서 계수를 증발(蒸發)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화극수(火剋水)라고 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서 눈만 멀뚱하게 뜨고 귀를 기울이던 안산이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 안산도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이렇게 자상한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비로소 이해하겠습니다. 만약에 진생신(辰生申)의 경우에도 일간(日干)이 허약(虛弱)하다면 도리어 신극진(申剋辰)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안산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안산이 드디어 이해를 잘하셨습니다. 생극이란 기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화극화(火剋火)도 보이고, 목생금(木生金)도 보이는 이치에 조금 더 접근하셨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우창이 설명하는 것을 듣고서 안산도 이해한 것을 보고는 다시 채운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다만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과 정신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을 모두 깨닫게 된다면 더욱 자유로운 오행의 이치를 누리게 될 것이네. 그리고 지금 토론하고 연구하는 이야기를 모두 마치게 된다면 아마도 심리적인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기준을 세울 수가 있을 것이네.”

“아,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그러고 보니까 저희 제자들이 너무 늦지 않게 오행원을 찾았다는 것을 알겠어요. 앞으로 차근차근 공부해서 한 방울의 물도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야 하겠어요.”

“아무렴. 그러셔야지. 나도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할 요량이라네. 하하하~!”

“잘 알았어요. 사주에 대한 것은 또 뒤로 미루기로 하고 정화(丁火)의 의미를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촛불이 정화이고 불빛은 병화라고만 생각하면 충분할까요?”

“아니지, 정은 열기(熱氣)이고, 이것이 마음으로 들어가서 열정(熱情)이 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는 올바른 세상을 이루는 커다란 힘이 되는 기준이라는 것까지 알아야지.”

“그건 정(丁)과 무슨 연관이 있기에 그렇게 관찰하게 되나요?”

“정관(正官).”

“아하~! 정관의 올바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熱望)도 정화(丁火)였나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음화(陰火)는 정관(正官)이라는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이었나요?”

“물론이라네.”

“그래요? 그렇다면 양화(陽火)는 무슨 십성이죠?”

“그야 당연히 편관(偏官)이 될 밖에~!”

“예? 이건 뭔가 연결이 될 길을 찾을 수가 있을 것같은데요?”

“어디 찾아보시게. 하하하~!”

“혹시 갑(甲)은 편재(偏財)로 연결이 되나요?”

“물론이지.”

“아하~! 이제 알겠어요. 천간(天干)을 십성으로 연결시키게 되는 길이 있었잖아요? 와우~! 그건 생각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어디 한 줄로 꿰어 보시려나?”

“그것은 어렵지 않겠어요. 을(乙)은 정재(正財)가 되고, 그래서 치밀하다는 말씀을 하셨네요. 그렇다면 임(壬)은 식신(食神)이고 계(癸)는 상관(傷官)이 되겠네요. 그러면 경(庚)은 비견(比肩)이고 신(辛)은 겁재일까요?”

“맞아. 이제 이해하셨군. 하하하~!”

“그래서 무(戊)는 편인(偏印)이 되고, 기(己)는 정인이 되는 것이군요. 이렇게 되면 십간(十干)은 결국 십성(十星)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치가 되나요?”

“맞아. 또 달리 말하면, 십성의 다른 말이 십간이기도 하지. 그리고 오행(五行)의 음양(陰陽)은 십성(十星)이라는 말도 되니까 이렇게 밀접한 관계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네.”

“정말 놀라워요. 처음에는 스승님의 분석이 좀 막연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 조합을 하고 보니까 매우 간명(簡明)한 이치였잖아요? 이렇게 궁리한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서 오행의 이치를 완전히 잊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아요. 잊어야만 자연스럽게 누릴 수가 있잖아요. 물고기가 물을 잊듯이 말이죠. 이제야 제 공부에도 희망이 보이는 것만 같아서 너무 즐거워요. 호호호~!”

채운이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연구하고 궁리했던 흔적들이 기쁨으로 보답을 해 주리라는 것은 예전에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제 더욱 연구를 깊이 하면서 이들에게 밝은 등불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둘러봤다. 그것조차도 정화(丁火)라는 것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