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업연설(業緣說) 혹은 연기설(緣起說)

작성일
2007-08-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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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성은 전생(前生)에 지은 업연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것이므로 전생의 행위가 중요하다고 보고 이번 생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개선을 하고, 선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고양(高揚)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형태로 설명을 하게 된다. 이것은 태어나면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기 이전에 뭔가 자신의 조상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전생 행위에 의해서 어떤 습관이 기록되면서 이것이 그대로 재연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살핀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

연기설(緣起說)이란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생겨나고 인연에 의해서 소멸된다는 논리이다. 열두 가지로 구분을 하여 설명이 진행되는데 또한 업연(業緣)에 얽혀서 필연적(必然的)으로 이끌려 가는 것을 말하고, 여기에 영향을 받는 주체는 본성(本性)이나 자아(自我)라고 하는 자신의 심리(心理)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주의 심리구조와 전생의 업연설을 연결시킨다면 설명할 방법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인용하는 경전(經典)으로는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이 있다. 예컨대 이번 삶에서 빈천한 것은 전생에 보시를 행하지 않은 까닭이고, 부유한 것은 전생에 공덕을 많이 닦았기 때문이라는 상대적(相對的)인 인과관계의 논리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모은 글이다.

모든 인연은 스스로 만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은 불교의 관점이 되겠는데, 불교에서는 모든 행위를 다 허망하게 살피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삼게 되므로 자칫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 결국엔 유교학자들로부터 공론(空論)이라고 하는 비난도 받았다. 어쩌면 너무 전생의 탓으로 돌리는 감도 있으므로 전생에 대해서 믿기 어려운 관점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의미가 없는 논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서 자평명리학에서는 태어난 이후에 대해서만 논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생의 업연에 대해서는 논외(論外)로 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