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1.무자식(無子息)의 고뇌

작성일
2023-02-25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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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1. 무자식(無子息)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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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가 천천히 모는 마차가 수우산을 내려와서 평탄한 길로 접어들 때까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저마다 우성암에서 생활했던 나날들이 떠올라서였다. 마을을 지나서 염재가 가끔 먹을 것을 사러 나왔던 동평호의 번화한 거리를 보고서야 비로소 염재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맛보도록 할까요?”

“음, 그렇게 하지.”

“그렇다면 처음에 동평에 왔을 적에 들렸던 동평객잔(東平客棧)으로 가면 어떻겠습니까?”

“아, 그것도 좋겠네. 그렇게 하지.”

우창이 그렇게 하라는 말을 하자 염재는 마차를 동평객잔으로 몰았다. 길가의 풍경들은 이미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동(立冬)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느낄 수가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분 좋게 흔들리는 사이에 미시(未時)가 되기도 전에 마을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염재가 객잔에 마차를 멈추자 밖을 내다보던 주인이 깜짝 놀라서 뛰어나왔다.

“아니, 도사님께서 다시 저희 객잔을 찾아주셨네요! 반갑습니다. 호호호~!”

이미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용케 우창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사주를 봐 준 것이 인연이 되어서 가끔은 생각이 났을 수도 있겠거니 싶기도 했다.

“주인장도 잘 지내셨습니까? 지나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서 들렸습니다.”

“정말 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가끔 말씀해 주신 것도 생각나고 해서 뵙고 싶었거든요. 아직 점심은 드시기 전이네요? 어서 앉으세요. 맛있는 요리로 한 턱 내겠어요. 호호호~!”

우창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이 기분 나쁠 까닭이야 없으나 상담해 준 것이 고마워서 기억해 줬다가 밥을 대접하겠다니 싫어할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오행을 배워서 조언하는 것에 대한 보람까지도 덤으로 얹은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밥을 사 먹을 만큼의 형편은 되니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냥 먹을 만한 것으로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또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며칠 푹 쉬셔야 해요. 그동안 오는 손님들에게 도사님 이야기를 했더니 반드시 지나가는 길에 들리거든 꼭 잡아놓고 연락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은 것이 수십 건이니까 말이에요. 이번 길은 급하지 않으시죠?”

“아니, 그렇게 감당하지 못할 약속을 하셨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번 길이 급하지 않은 것은 또 어찌 아셨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여주인은 기분이 좋은지 또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에서 객잔을 한 지도 벌써 수십 년이랍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손님을 척 보면 바쁜 분인지 한가로운 분인지는 바로 알 정도의 내공이 쌓이기 마련이거든요. 오늘 도사님의 눈빛을 보니까 먼저처럼 광채가 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해진 것이 보였거든요. 이것은 긴장하지 않고 계신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렇죠?”

이렇게 콕 짚어서 말을 하니 우창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과연 한 가지 일에 오래도록 몰입하면 그 방면에서는 신기(神機)가 생겨난다는 말을 어제저녁에 태옹에게 들었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과연,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어서 바쁠 일이 없네요. 놀랍습니다. 하하~!”

우창이 칭찬하자 여인은 더욱 흥이 났는지 귀해 보이는 술을 들고 왔다. 이름은 「마고주(麻姑酒)」였다. 처음 보는 주명(酒名)이어서 염재를 바라봤다. 염재는 견문이 넓어서 혹 들어본 적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자 주인이 먼저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설명했다.

“아, 내력이 궁금하셨군요. 여기에 대해서 제가 말씀해 드릴게요. 마고주(麻姑酒)는 강서(江西)에서 나는 명주(名酒)랍니다. 우물의 이름이 마고천(麻姑泉)이라서 붙은 이름이고요. 마고산에서 나는 영지를 비롯한 약재 20여 가지를 사용해서 만든 술이라 향도 좋고 몸에도 좋다고 해서 아껴 둔 것인데 오늘 귀한 도사님이 오셨으니 기꺼이 내어 온 것이랍니다. 호호호~!”

이렇게 말을 한 다음에 밀랍(蜜蠟)으로 봉해져 있는 마개를 열고 한 잔씩 따르는데 그 향이 과연 집을 나간 정신도 돌아올 정도였다. 네 사람에게 잔을 따라주고는 자신도 잔을 가져와서 가득 채운 다음에 다시 만남에 대해서 축하하면서 말했다.

“자, 오늘은 제가 내는 것이니 편히 즐기시면 되고요. 이렇게 우선 한 잔 올립니다.”

우창도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인지라 잔을 들어서 답례하고는 단숨에 마셨다. 불기둥이 목을 타고 위(胃)까지 흘러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는 숨이 턱 막혔다. 그러자 진명도 얼떨결에 들어 마시고는 기침했다.

‘컥컥~!’

그 모습이 귀여워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진명도 멋쩍었던지 웃으며 말했다.

“술도 처음 마셔보지만 이렇게 독한 술은 처음 마셔봐요. 그런데 잠시 기다리니까 청향이 머리를 맑혀주는 것 같아요. 참 신묘해요. 호호~!”

그러자 주인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젊은 낭자께서도 뭘 아시네요. 좋은 술로 주연(酒緣)을 맺으셨으니 앞으로 술 복이 무량하실 거예요. 축하드려요. 호호호~!”

그러는 사이에 점원이 갖은 모양의 양념으로 치장을 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잉어요리를 가져다가 식탁에 올려놓자. 주인이 일일이 접시에 나눠서 담아 주고는 인사하고 돌아갔다. 마침 손님이 들어와서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염재가 말했다.

“먼저 상담한 것으로 인해서 마음에 해탈이라도 얻으신 것 같습니다. 저렇게 밝아진 것을 보니 염재가 보기에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 스승님께서도 그러실 것으로 미뤄서 짐작됩니다.”

“다행이로군. 자, 기왕 베풀어 주는 호의이니 맘 놓고 먹어보세. 하하~!”

연달아 산해진미가 식탁에 놓이자, 모두 우성암에서 간략하게 먹고 살았던 것을 보충이라도 하듯이 배불리 먹고는 차도 마시면서 담소를 즐겼다. 그 모습을 보던 주인이 웃으며 다가와서는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는 위층에 마련했어요. 각자 방을 하나씩 드릴 테니 편히 쉬시면서 언제라도 불편한 것이 있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그리고 저녁에는 방문자들이 있을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편안하게 쉬세요.”

여주인의 행동은 흡사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을 이제 이행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지금은 바쁠 일도 없으므로 그것이 싫지 않았다. 산속에서 공부하느라고 긴장했던 것에서도 벗어날 요량으로 받아들였다. 우성암에서도 편히 지낸다고 생각했음에도 어느 정도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었던 모양인지 긴장이 풀리고 나자 나른해서 푹신한 침상에서 깊이 잠들었다. 다른 일행도 그랬던 모양이다. 모두 방으로 들어간 후로는 조용해진 것을 보니 대략 짐작이 되었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란에 잠이 깬 것은 유시(酉時)가 되어서였다. 늦가을의 싸늘한 바람이 정신을 상쾌하게 했다. 넓은 객청에는 이미 7~8명의 손님이 특별히 마련된 빈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창 일행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래층에서는 저녁을 먹는 손님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였던 모양이다. 진명이 주인에게 내려가서 일어났음을 알렸고, 주인이 부리나케 올라와서는 우창에게 말했다.

“고단하셨던가 봐요. 잘 쉬셨어요?”

“예, 덕분에 곤하게 한숨 잤습니다. 그런데 벌써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요?”

“맞아요. 내일 와도 된다고 했는데도 내일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면서 꼭 봐야 한다고 해서 말릴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서 어떡해요? 호호호~!”

입으로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눈으로는 전혀 죄송하지 않은 표정으로 우창을 바라보는데 호기심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우창도 눈웃음으로 받아주고는 말했다.

“아닙니다. 죄송하기는요. 재미있을 따름이지요. 하하하~!”

우창의 말에 염재가 나섰다.

“스승님, 우선 생월생시라도 물어서 적어놓을까요?”

“아니네. 진명과 같이 상담할 것이니까 염재는 옆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할 테니 자리만 지켜주면 되겠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염재가 상담하고 싶은 손님들이 기다리는 방으로 가서 우창과 진명이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먹을 갈아서 붓도 적셔놓는 사이에 우창과 진명도 들어왔다. 방에는 기대감이 가득한 모습을 한 남녀들이 우창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우창도 눈빛으로 인사를 한 다음에 염재가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아서 한 바퀴 둘러봤다. 그사이에 염재가 순서를 정해줬는지 먼저 한 남자가 앞으로 다가와서 앉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용한 도사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소인은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고민이 큽니다. 선조(先祖)를 뵐 면목이 없어서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았으나 도무지 아이를 잉태하는 처가 없습니다. 이러한 고민도 도사님께서는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말해서 일말의 희망을 안고서 꼭 뵙고자 했습니다. 부디 명쾌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남자는 품에서 은자 세 개를 내어놓았다. 봐하니 가정의 형편은 구차하지 않은 모양임을 짐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례금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말을 꺼내는데 부담스러울 것을 염려한 우창이 하나만 받고 둘은 돌려주면서 말했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 사람을 보고서 영광이라고까지 해 주시니 과분합니다. 객잔(客棧)의 주인이 한 말은 모두 과장된 것이니 믿지 말고요. 그보다도 이 문제는 여기 제자에게 답을 구해봐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우창은 진명을 바라봤다. 이 자리에 진명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있었다. 사주를 갖고서 풀이하고 맺힌 문제는 오주괘로 해결하면 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진명의 숙명통을 활용한다면 또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있을 것인지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진명도 그 뜻을 알고는 숙명관법(宿命觀法)으로 들어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은 불과 찻잔에 차를 한 잔 채울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다. 진명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다른 손님들은 잠시 저쪽 방에서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얼른 알아차린 염재가 비어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는 것이 혹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은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염재가 얼른 방을 옮기라고 하는 바람에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따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차례가 되었을 적에는 오히려 그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말없이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잠시 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을 보면서 진명이 엄숙하게 말했다. 평소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집안에 자녀가 생기지 않는 것은 선대(先代)의 악업입니다.”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가 흠칫 놀라더니 바로 진정하고는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상님들은 대대손손으로 명문가의 귀족들입니다. 조정에서 왕을 보필하거나 천하를 누비면서 전공(戰功)을 세운 덕으로 받은 토지도 끝에서 끝이 안 보일 지경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디로 움직여도 제 땅을 밟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진명을 의혹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과연 제대로 볼 줄이나 알고 말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우창이 그 말을 받아서 답했다.

“과연, 그랬군요. 훌륭한 조상을 두신 덕에 부유함을 누리시는 것에 대해서는 축하합니다. 그러한 공덕도 적다고는 못하지요. 그런데 왜 자녀가 없을까요? 번창(繁昌)하는 집안에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담을 넘어가고 쇠락(衰落)하는 집안에는 적막(寂寞)이 감돈다고 했는데 지금 선생의 집은 활기(活氣)가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이니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우창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은 듯이 멍하던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소생도 그것이 궁금해서 도사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부디 명쾌한 해답을 부탁드립니다.”

“업보(業報)라고 제자가 말씀해 드렸잖습니까? 겉으로 인생사(人生事)에서는 지대한 공을 세웠을지 몰라도 그 공로는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의 피로 쌓은 혈탑(血塔)일 따름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위에 밟고 올라서서 얻은 결과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뜻과 하늘의 뜻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정작 염재가 옷깃을 여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관청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손바닥처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진명에게 물었다.

“도사님의 말씀이 일리는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소생에게 필요한 것은 대를 이을 아이입니다. 조상의 죄업이야 내가 알 바가 없고, 나는 그렇게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이 재산을 물려주고 관리할 자식이 태어나지 않는 것인지만 해결해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남자는 다시 품에서 은자를 다섯 개 꺼내놓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절박합니다. 이 젊은 도사님께서는 그러한 것까지는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부디 이 소원을 해결할 방법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염재가 우창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은자를 받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염재가 마련했던 주머니에 은자를 넣는 것을 보면서 진명이 말했다.

“이미 아저씨의 소원은 이뤄질 실마리를 찾았어요. 다만 제가 드리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렸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우창의 말에는 낙심천만(落心千萬)이었다가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무릎을 꿇었다. 참으로 간절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우창도 그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진명이 알아서 처리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가르침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재산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옥동자가 중요합니까?”

“그야 당연히 옥동자지요. 재산이 있다고 한들 물려 줄 자식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선생은 인과(因果)를 믿으시나요?”

“그야 뺨을 때리면 뺨을 맞는 이치이니 믿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건 무슨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지요?”

갑자기 말하는 진명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에게 진명이 약간 음성을 높여서 말했다.

“선생의 선근(善根)이 약간 있다고 하더라도 조상이 쌓은 악업(惡業)에는 만분지일(萬分之一)도 미치지 못하니 어린싹이 자라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린싹은 기름지고 보드라운 부엽토(腐葉土)에서 자라야 하는데 씨가 떨어진 곳이 온통 피범벅이 된 전쟁터이니 그 황폐함을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지경인지라 부인을 열 스물 얻는다고 한들 어디에서도 싹은 자라기 어려우니까요. 이 딱한 사정을 뉘라서 알까 싶네요. 후~~!”

이렇게 말한 진명이 우창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나머지는 우창에게 좀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우창이 남자에게 말했다.

“아직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까?”

남자가 원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우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부적이나 비방(秘方)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선대의 조상님이나 모욕하면서 뭘 하자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만 하나 얻을 방법이 있으면 되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이 우창에게 따져 묻는 것으로 봐서 내심 불만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워낙 객잔 주인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바람에 꾹꾹 눌러서 참고 있었다.

“자, 오늘의 점은 보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염재, 받은 복채는 돌려드리도록 하지.”

우창의 말에 염재는 받은 은자 여섯 개를 남자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가 화들짝 놀라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하도 의외의 말씀을 들어서 진정이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부디 답을 얻도록 마음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송구합니다. 무슨 말씀이라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제야 우창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부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 있고, 굿으로 풀어야 할 일이 있으며, 마음으로 풀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선생의 일은 이러한 것으로는 백날을 해봐도 아무런 효험이 없습니다.”

그 말에 남자는 더욱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아, 과연 도사님이십니다. 할 수가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조상님들을 편하게 해 드려야 한다고 해서 절에서 천도재도 지내드렸지요. 묘터가 절손지지(絶孫之地)라고 하는 지관의 말을 듣고서 좋다는 자리에 이장도 해 드렸습니다만 그래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오늘에야 듣게 되나 봅니다.”

“마음으로 지은 업은 마음만 돌이키면 됩니다. 동굴 속에 깃든 천 년의 어둠은 촛불 하나로 일시에 걷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지은 업은 몸으로 갚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간의 재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니 흡사 동족방뇨(凍足放尿)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됩니까? 아이는 생겨났다가는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유산이 되어버릴 뿐입니다. 이것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답답할 일이지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라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꼭 자식을 얻고 싶습니다. 부디 이 간절한 부탁을 저버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남자의 자세로 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 든 우창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예전에 유명한 관상가(觀相家)에게 자식의 관상을 보게 했던 사람이 있었더랍니다. 그 관상가가 이제 겨우 돌이 된 아들의 관상을 보고는 혀를 차면서 말했더랍니다.

‘아이는 굶어 죽게 될 거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화를 냈으나 곰곰 생각해 보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고쳐먹고서 아들이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더랍니다. 그러자 그 관상가가 말하기를,

‘오늘부터 적선(積善)해서 적덕(積德)하시오. 당신이 사는 집에서 사방 10리 내에는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항상 누구라도 양식을 얻으러 온다면 반드시 이 아이의 이름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게 30년을 하게 되면 당신이 죽고 나서도 아이는 굶어 죽는 것을 면할 것이오.’

라고 했답니다. 후에 아이는 장성했고, 아쉬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가세(家勢)가 급격히 기울어져서 걸인의 신세가 되었더랍니다. 먹을 것이 없자 아들은 문전걸식(門前乞食)하게 되었는데 10리 이내에는 그의 부친이 베풀지 않은 사람이 없는지라 모두 옛말을 하면서 굶지 않도록 보살폈답니다. 관상을 이기는 것이 적선이란 말이지요.”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도 이야기를 듣고서는 우창을 바라보면서 이해가 되었는지 말했다.

“그렇다면 소생도 덕을 쌓으면 자식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보다도 제 관상에는 자식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적덕(積德)은 없는 자식도 만드는 법이지요. 어서 돌아가서 전 재산을 풀어서 궁핍으로 끼니조차 잇지 못하는 10리 내의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내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다’는 자만심도 내려놓고 공덕(功德)을 쌓는다면, 부적과 굿과 불공을 하지 않고서도 저절로 총명한 옥동자가 태어나서 가업을 잇게 될 것이니 이것이 선생에게 주는 해결책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을 맺자 남자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도사님이십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태까지 자식이 없다는 생각만으로 급하게 결과를 바라면서 많은 돈을 썼습니다만, 그러한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명철한 도사님을 만나서 올바른 해결책을 얻었으니 오늘 이후로 그 말씀을 명심(銘心)하고 그대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한 남자는 다시 품에서 은자 네 개를 더 꺼내서 염재에게 건네주고는 고두백배(叩頭百拜)하고 돌아갔다. 남자가 돌아가자 우창이 진명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진명의 능력은 참으로 유용하구나. 이렇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는 목적으로 쓴다면 천지신명도 진명을 탓하지 않을 것이네. 하하하~!”

“역시 스승님이세요. 운만 띄웠는데 알아서 해결해 주셨네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잘 되어서 다행이에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주인이 뛰어 올라와서는 희색이 만면해서 말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해 주셨기에 저리도 만족해서는 제게 소개해 준 사레라고 하면서 은자를 세 개나 주고 갔을까요? 객잔에 일하는 식구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라는 말과 함께 말이에요. 참으로 신통방통하네요. 호호호~!”

주인의 호들갑을 들으면서 세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합장했다. 여인이 다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저 손님들과 이야기를 마치시면 거하게 한 상 차려 올리겠습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주세요. 호호호~!”

여인이 이렇게 한바탕 수다를 떨고는 내려가자 염재가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과연 어느 이치라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현지 누나도 같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울 텐데 혼자 계셔서 그게 맘에 걸립니다.”

우창도 염재의 말을 듣고서야 현지가 혼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얼른 데려오라고 했다. 이렇게 생생한 임상의 현장보다 더 좋은 공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호의 경험도 많으니 약간의 이야기 속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잠시 후, 현지가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왔다.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사이에 명상하면서 기다리다가 상담하는 곳으로 같이 참석하라는 염재의 말에 무척이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스승님께서 잊지 않고 불러주셨네요. 고맙습니다. 호호~!”

“그렇지 않아도 염재가 말을 해 줘서지요. 이리 와서 앉아있다가 혹 조언이 필요하면 청할 테니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하하~!”

“그야 여부가 있나요. 잘 알겠습니다. 폐를 끼치지 않고 앉아있을게요.”

현지까지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본 염재가 옆방으로 가서 말했다.

“다음 손님은 이리 오시지요.”

그러자 중년의 여인이 조용히 일어나서 염재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