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5.태옹의 예언(豫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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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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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5. 태옹의 예언(豫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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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예, 우창(友暢)입니다.”
태옹이 우창을 향해서 말하려고 하자 우창이 얼른 호를 말했다. 이름을 몰라서 그대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그래 우창은 이번 생에 할 일이 많군.”
“아, 그렇습니까? 그 일은 어떤 일입니까? 진심으로 알고자 합니다.”
우창이 거듭 묻자, 그 말에는 답을 하지 않고 현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현지도 얼른 우창이 한 대로 자신의 호를 말했다.
“현지(玄智)에요.”
“그래 현지가 과거세에 염재의 판결로 죽을 목숨을 살게 되면서 세상이 덧없음을 알고는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염재가 귀인이라고 해도 되겠군. 그래서 염재를 볼 때마다 마음속의 알 수 없는 감동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라네. 생명의 은인을 보는 것이 마치 광활한 벌판에서 어린아이가 잃었던 어머니를 만난 것에나 비유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
태옹이 이렇게 말하자 현지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감격하는 모습으로 합장하고는 말했다.
“현지가 생각하기에는 우창 스승님의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되었나보다 했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또 다른 인연의 고리가 있었네요. 염재를 볼 때마다 그러한 감정이 느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풀이할 단서가 없었던 까닭에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한마디의 말씀 중에 그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었어요. 앞으로도 염재를 위해서 할 수가 있는 것은 뭐든 하고 싶어요.”
“선인선과(善人善果)요 악인악보(惡人惡報)일 따름이라네.”
태옹이 이렇게 말하자 깊은 생각에 잠겼던 우창이 물었다.
“선사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오행 공부는 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사주를 연구해서 길흉(吉凶)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습니다. 하찮은 공부는 다 집어치우고 마음이나 닦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오릅니다.”
“그건 그대의 연분이 아니니 괜히 욕심을 부리지 말게. 허허허~!”
“아니, 공부에도 연분이 있는 것입니까?”
우창이 놀라면서 물었다.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간지(干支)의 바다를 허우적거리고 다닌 것만 같았는데 그것조차도 인연이란 말인가 싶어서였다.
“당연하지~!”
“그렇다면 여쭙겠습니다. 우창은 전생에 어떤 인연을 지었기에 이렇게 오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그대의 길인데 벗어나면 또 어쩌겠는가? 허허허~!”
“예? 어째서입니까?”
“만법귀일(萬法歸一)도 모르나?”
“알지요. 모든 이치는 하나로 통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옳지! 그렇다면 조물주(造物主)는 왜 만법(萬法)을 만들었겠나?”
“예? 그......건....”
“왜 생각해 보지 않았나?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게.”
“문득 생각하기에는 중생의 근기(根機)가 저마다 달라서인가 싶습니다만....”
“억조창생(億兆蒼生)의 정신세계가 모두 다르니 백천(百千)의 보살이 강호를 유람(遊覽)하는 것이 아니겠나?”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창은 오행귀일(五行歸一)의 길이란 말이네. 아직도 알아듣지 못했나?”
“아, 그러니까 우창의 금생(今生)은 오행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까?”
“그냥 가기만 하겠나? 그 길로 가면서 오행의 인연을 거둬야지. 허허허~!”
“그 말씀은.....?”
“공부가 깊어지면 그만큼 오행의 인연이 그대를 찾아서 모여들게 되어 있으니 살아 온 듯이 살아가면 될밖에. 허허허~!”
“말씀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우창도 진명처럼 과거의 인연들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싶단 말입니다. 그것에 대한 인연은 없는 것입니까?”
“없어~!”
우창은 태옹의 단호한 답변에 내심으로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말은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태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도 그대가 원한 것인데 무엇을 아쉬워하는가?”
“예?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바꾸겠습니다. 오행은 버리고 숙명통을 하고자 합니다.”
“허허허~!”
태옹은 우창의 말이 우습다는 듯이 크게 웃고서 말했다.
“어찌 밥만 먹고 산단 말인가.”
“예?”
“밥도 있고, 탕도 있고, 찬도 있어야 밥을 맛나게 먹을 것이 아니냔 말이네. 그러니 풍요로운 만찬을 만나려면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있어야 하듯이 진리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저마다 자기의 세계에서 장문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래야 멋진 세상이 되지 않겠나? 가령 모든 사람이 숙명통을 했다고 생각해 보게. 그게 무슨 재미겠나?”
태옹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그 말을 듣던 모든 대중이 폭소를 터뜨렸다. 과연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태옹에게 물었다.
“우창의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저마다 살아갈 인연과 몫이 있다는 가르침에 감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숙명통이 신기하고 재미있으나 그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이치도 알겠습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우창이 합장하고 감사를 표하자 태옹은 다시 진명을 향해서 말했다.
“누울 자리가 아니면 눕지를 말아야 하고, 뻗을 자리가 아니면 뻗지도 말아야 하네. 언제나 이치에 밝게 생각하고 오행도(五行道)를 열심히 닦으면서 꼭 필요한 때에 숙명통을 활용한다면 또한 무슨 걱정이 있으랴.”
“잘 알겠어요. 이제야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말끔히 정리되었어요. 신계(神界)와 영계(靈界)와 중생계(衆生界)의 사이에서 멋지게 살아볼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너무 좋아요. 오늘의 귀한 가르침을 주신 선사님과는 또 어떤 인연의 고리가 있었을지 궁금해요.”
진명의 말을 듣고 태옹은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광을 향해서 말했다.
“그대는.”
“예, 지광(地廣)입니다 선사님.”
“그래, 토지신(土地神)이 인도환생을 하셨으니 항상 지기(地氣)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로군. 그냥 신계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만고에 편할 텐데도 중생들이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도랑에 빠지고 자빠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원을 세웠으니 의미가 있는 일을 마음껏 하시게나.”
“그런 것입니까? 그래서인지 지기의 흐름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하고 있었나 봅니다. 소중한 가르침 감사히 받습니다.”
“오늘 내가 우성암에 들린 까닭은 그대들에게 꼭 필요한 진명에게 숙명통을 알려주고자 함이라네. 이제 그 목적을 이뤘으니 이만 쉬겠네. 내가 쉴 자리는 법당이니 신경을 쓰지 말고 각자 일들 보시게.”
이렇게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일어나서 법당으로 들어갔다. 다들 앉아서 묵묵히 있었다. 다만 진명만이 일어나서 법당으로 가서는 방석을 펴고 편히 눕도록 이불을 챙겨드리고 나왔다. 그 사이에 큰방에서는 이미 토론이 한창이었다. 진명도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형님의 땅에 대한 느낌이 어찌 그리도 영민하신가 했더니 원래 토지신이셨군요. 몰라뵈었습니다. 하하~!”
“괜한 소리 말게. 왜 태어나면서 전생을 잊어야 하는지를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네. 하하하~!”
“모르고 사는 것이 만고에 편하단 말씀이신 거지요?”
“맞아. 점쟁이는 점을 치고, 목수는 나무를 깎고 관리는 죄인을 심문하고 있으나 그것조차도 저마다 능력으로 사바세계에 풍요로운 밥상을 차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지 뭔가. 답답했던 가슴의 체증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로군.”
“정말 수우산에 오기를 잘했습니다. 이 모두가 형님의 덕택입니다.”
“그런 소리 말게나. 저마다 열심히 수행한 공덕일 따름이라네.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염재가 말을 꺼냈다.
“염재가 생각하기에도 비록 몇 사람이 되지 않는 우리 우성암의 대중들조차도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참으로 자연은 낭비가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진명 누나가 숙명통을 얻게 되었을 적에는 내심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태옹 선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것도 헛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치에는 어느 것이라도 양면성(兩面性)이 있다는 것을 진실로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 보니까 그 무엇도 부럽지 않습니다. 오직 제자가 타고난 능력을 연마하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견성(見性)이요 성불(成佛)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자는 진사부의 가르침에 따라서 오행의 이치를 더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더구나 정사부의 가르침을 받아서 천지(天地)의 기운(氣運)과 공감(共感)하고 체감(體感)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못 믿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두 사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큰 방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렇게 다들 말이 없이 생각에 잠기자 화련이 정적을 깨면서 말했다.
“과연 지혜로운 수행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네요. 이 우둔한 화련도 이 땅에 태어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니까 존재감이 느껴져서 자존감이 충만된 것이 느껴져요. 우성암을 지키면서 오가는 인연들과 만나서 물이라도 한잔 떠다 드리는 인연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확연히 깨달았어요. 여러분들 덕분이네요. 그리고 부처님의 인연법에도 감사드려요.”
이렇게 말하면서 진심에서 감사의 합장을 하자 대중들도 모두 합장하면서 그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자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서 휴식에 들었다. 우성암은 순식간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다음날 새벽.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련이 법당으로 예불하러 올라가자 있어야 할 태옹은 사라지고 이불은 한쪽에 개켜져 있었다.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조용히 떠났을 것으로 짐작을 한 화련은 밖으로 나와서 길 쪽을 향해서 합장하고 삼배했다. 마음으로 전송한 것이다. 이어서 지광과 진명이 일어나서 낯을 씻고는 법당으로 올라오다가 화련을 만나서는 정황을 듣고서 마찬가지로 밖을 향해서 합장배례로 전송했다. 저마다 매일 하던 그대로 수련에 들어갔다. 화련은 독경(讀經)하고 지광은 행공(行功)하고 진명은 1천 배를 했다. 우창도 조금 늦게 일어나서 평상으로 나와서 정좌(靜坐)하고는 산 아래를 바라보고 명상(瞑想)에 들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으나 한 시진이 지나자 서서히 생각들이 사라지면서 집중이 되었다. 문득 밝아오는 햇살에 산천의 초목(草木)들은 단풍(丹楓)이 내려앉고 있음을 느꼈다. 초록빛으로만 가득한 줄로 생각하다가 새삼스럽게 가을이 깊어간다는 것을 느끼자 냉기가 파고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우산에 들어온 지도 3개월이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땀을 흘리며 올라왔던 수우산에서 한순간처럼 보낸 날들이 떠올랐다.
“기온이 싸늘한 것이 결실의 계절이 되었죠?”
기도를 마친 현지가 이렇게 말하면서 평상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는 우창이 바라보고 있는 산 아래의 풍경을 보면서 조용히 앉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생각이 든 우창이 자세를 풀고는 현지를 보면서 말했다.
“어제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셨지요?”
“경험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것만 같아요.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어요. 더욱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온몸과 마음으로 깨달은 날이에요. 그러니까 현지의 두 번째 생일날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현지는 아직도 어제의 감동이 남아있다는 듯이 감정이 격해지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곡부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을 자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오행원을 떠난 시간도 거의 반년이 되어가는가 싶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어제저녁에 태옹의 가르침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저마다 자신의 업력(業力)으로 살아가는 거니까 그 모두를 다 잘할 수는 없는 일이라네. 오직 한 가지만 잘하는 것으로 금생(今生)의 일을 삼는 것이 좋을테니까 말이네. 남의 능력을 좋다고 해서 모두를 다 가질 수는 없는 까닭이지.’
이러한 말들이 귓가를 울리는 아침이었다. 현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사매(師妹), 내가 이제 곡부로 돌아갈 생각인데 같이 가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동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걸요. 설마 현지를 두고 떠날 생각은 아니시죠?”
이렇게 되묻는 말을 듣고서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이제 깨달을 것은 깨달았으니 돌아갈 준비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화련이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스승님도 이제 귀가하실 준비를 하셔야지요?”
“예?”
우창은 속내를 들키기라도 한 듯이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화련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태옹 선사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셨잖아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서 화련도 이제 귀한 손님들이 떠날 준비를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다만 모두 같이 돌아가실 것인지 여기에서 헤어질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과연 화련 보살님의 통찰력이 놀랍습니다. 그 순간에 어떻게 그러한 것까지도 살피셨습니다. 과연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우창은 오늘 아침에서야 그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떠올렸는데 어제 이미 그것을 간파하셨다니 과연 보살님의 직관력은 상상키 어렵습니다. 하하하~!”
“화련도 어제야 나름대로 약간의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걸요. 그리고 그동안 오행의 이치를 공부하게 되어서 너무 즐거웠어요. 적막한 수우산에서 함께한 여름 한 철의 즐거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예요.”
이때였다.
“아침 공양이 마련되었어요~!”
식당에서 진명이 소리쳤다. 모두 식탁에 앉아서 진명이 마련해 준 쌀죽으로 아침 공양을 했다. 여느 날 같았으면 공양을 먹으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들로 넘쳐났을 텐데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하게 아침을 먹는 모습이 달랐다. 죽을 먹고 나서는 다시 화련이 만들어 놓은 차를 마시면서 비로소 지광이 입을 열었다.
“아우님 덕분에 새로운 공부를 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 다음에 머물 자리는 같은 곳이 아니지 싶네. 아쉬움은 다시 만날 인연의 씨앗으로 남겨두세나.”
“형님께서도 올겨울에 머물 곳을 결정하셨지 싶습니다. 어디를 향해서 떠나시겠습니까?”
“예전부터 꼭 머물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산서(山西)의 태항산(太行山)이라네. 마침 거산(居山)이 동행할 뜻을 갖고 말하기에 우리 두 사람은 북향(北向)하기로 했네. 아우님은 다시 사랑스러운 제자들이 기다리는 곡부로 돌아가야 하겠지?”
“예, 아마도 그렇게 해야 하지 싶습니다. 형님의 가르침으로 지기(地氣)와 천기(天氣)에 대해서 얼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그렇게 서로 나누면서 이해하는 것이라네. 아우님은 오행의 이치를 알려주고 우형은 천지를 누비고 돌아다니는 기운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했다면 그것으로 큰 보람이지 않겠느냔 말이지. 하하하~!”
“다행입니다. 그런데 태항산으로는 언제 떠나시려고요?”
“찻잔을 놓는 대로 출발하려네 북쪽은 이미 눈이 내렸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하겠네. 처음에는 수우산에서 머물면서 겨울을 보낼까 싶었는데 태옹 선사가 머뭇거리는 마음을 끊어주셨으니 이제 내가 가야 할 길로 다시 매진(邁進)해야 할 모양이네.”
“역시 빠르십니다. 둔한 우창은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을 따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부디 보중(保重)하시고 또 다음의 재회(再回)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하자 지광도 마주 인사를 했다. 그리고 거산도 일어나서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떠날 채비를 하러 나갔다. 거산이 숙소로 가자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거산은 역시 이치(理致)를 궁리하기보다는 기감(氣感)을 타고 흐르는 것이 좋았던 모양이네. 올여름 동안 나름대로 적지 않은 소득이 있었던 모양인데 내친김에 축지법(縮地法)도 깨닫게 해 달라기에 그래보자고 했네. 혹시라도 아우님을 따르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는 말게나. 하하~!”
지광의 말에 우창이 감동했다. 세심한 배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님도 참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혹 우창을 따라서 곡부로 가겠다고 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알고 그 스승을 따르겠다니 이것이야말로 고마운 일이지 않습니까? 형님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실 테니 또한 걱정할 것도 없지요. 하하~!”
우창은 진작부터 거산의 품성은 궁리(窮理)보다는 직관(直觀)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행의 이치도 기본적인 것만 이해하면 더이상 권하지 않았던 것인데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았으니 축하할 일이었다.
잠시 후, 거산과 지광은 떠날 준비를 하고서 작별을 고했다. 염재가 마차로 동평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잠시 걷다가 어둠이 내리면 축지법으로 이동하면 마차보다 빠를 테니까. 하하하~!”
그 말에 염재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그렇겠습니다. 깊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보중(保重)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또 뵐 날이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저마다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을 하고는 두 사람은 홀연히 떠나갔다. 만남도 그렇게 이뤄지듯이 헤어짐도 또한 그와 같았다. 언제나처럼 화련도 이별에 대해서는 익숙한 듯이 담담하게 웃으며 전송했다. 그렇게 하고서 다시 남은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혹 보살님께서 명학(命學)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나 미진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은 혹시라도 묻고 싶은데 떠나는 분위기여서 망설이고 있을까 싶은 생각에 질문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자 화련이 말했다.
“아니에요. 이미 자상한 가르침을 받아서 더 궁금한 것이 없어요. 그리고 또 앞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만큼의 내공을 얻었으니까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요. 가끔 찾아오는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멋지게 활용할 수가 있을 거예요. 정말 깊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은 화련의 진심이 가득한 말에 합장으로 화답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뒤로 돌아 앉은 진명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나름대로 떠나기에 서운할 만큼의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화련이 진명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진명이 돌아앉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급하게 떠나는 것이 마치 진명으로 인해서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괜히 죄송스러워요. 그건 아니죠?”
“아니고 말고, 오고 감도 인연에 따라서 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하누. 자연의 거래법(去來法)을 모르는 범부(凡夫)들이나 하는 말인 것도 알잖아. 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어주는 화련을 진명이 와락 껴안으면서 말했다.
“정말 어머니처럼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진명도 우성암에 머물면서 명상을 더 하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오행의 이치를 우선 깨닫고 싶어서 진사부를 따르기로 했어요. 뒷날은 기약하지 않을래요. 만나면 또 즐겁고 못 만나더라도 기억 속에서 늘 함께할 거에요.”
진명의 말에 화련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현지도 작별의 말을 했다.
“만남은 쉬워도 헤어짐은 늘 어려워요. 아직도 강호의 이치를 깨달으려면 멀었나 봐요. 보살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을 잘 수행하겠어요.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헛된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할게요. 현지는 진명처럼 단호하지 못한가 봐요. 다음에 또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남겨놓고 싶어요.”
저마다 소회(所懷)를 나누면서 즐거웠던 우성암에서의 시간을 회상했다. 그러는 사이에 각기 짐을 꾸렸고, 염재는 여름 내내 잘 먹여서 살이 통통해진 말을 마차에 묶었다. 그리고는 짐이랄 것도 없는 간단한 보따리들을 마차에 싣고는 작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둘 마치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화련과 포옹한 진명이 손을 흔들면서 작별하자 마차는 산 아래를 향해서 움직였다. 화련은 일행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미소를 띠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