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2.명경지수(明鏡止水)

작성일
2022-12-05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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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2. 명경지수(明鏡止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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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푹 자고서 일어나 창밖을 보니 동평호에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몽환적이고 아름다워 보이자 부지런히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가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조용히 새벽의 공기를 마시면서 걸었다. 하루 중에서도 이런 순간이 가장 좋은 것은 하루를 얻었다는 다행스러움과 어제도 후회가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안도감이 겹쳐서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지광이 언제 나왔는지 앉아서 물안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천천히 다가갔다. 지광은 우창이 오는 것을 보고서도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하랴.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우님도 잘 쉬셨구나. 오늘은 우리의 공부터로 가봐야지?”

“아, 그렇지요? 급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그것조차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가시는 것입니까? 이런 곳에서 공부해도 좋긴 하겠습니다만. 하하~!”

“오늘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해가 지기 전에 수우산(水牛山)에 도달할 것이네. 그곳에서 100일만 공부하고 돌아가세.”

“그런 산도 있었습니까? 금시초문입니다.”

“뭇사람에게 잘 알려진 곳은 소란스러워서 풍광을 즐기는 것에는 좋을지 몰라도 공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네. 수우산은 예전에 잠시 머무르면서 기공(氣功)을 연마하던 곳인데 지금이야말로 아우님에게도 매우 좋은 효과를 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 그리고 모두 내력(內力)을 쌓아서 귀가한다면 아마도 통찰력은 더욱 깊어지고, 심지(心志)는 훨씬 넓어질 것이니 분명히 보람이 있을 것이네. 하하하~!”

“아, 형님께서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셨습니까? 우창은 처분만 따르겠습니다. 어디든 다 좋습니다만, 말씀을 들어보니 얼른 가보고 싶어집니다. 하하하~!”

“다행히 석달열흘간에 먹고 쓸 비용은 충분히 마련이 되었으니 세상사를 모두 잊고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境地)에서 노닐어 보세. 하하하~!”

“여부가 있습니까? 기대가 더욱 커집니다.”

우창을 바라보던 지광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 어제의 점괘는 내가 봐도 참으로 신기하더군. 그런데 궁금했던 것이 있었네.”

“아, 그렇습니까? 무엇인지 말씀하시지요.”

“항상 아우가 풀이하는 점괘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말이네.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소상하게 드러나는 것인지? 아니면 때론 명료하고 때론 희미하기도 한 채로 나타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네.”

“아하, 그러실 만도 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점괘도 하늘의 날씨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지광이 호기심을 보이면서 다시 물었다. 지광의 물음에 우창은 수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문득 우창의 보는 곳에는 물새가 아침 사냥을 나왔는지 날쌔게 아침으로 먹을 고기를 채어서 물고 날아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형님, 오늘같이 날이 맑으면 앉아서도 십 리 밖에 무엇이 있는지 잘도 보이지 않습니까? 점괘도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단순히 간지(干支)라는 문자(文字)로 드러났는데도 그것조차 외부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반복적으로 점괘를 운용해 보면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때로는 점괘라도 해도 한밤중에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캄캄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하하~!”

“아우가 그렇게 말하니 거짓은 아닐 테고, 지나친 겸양(謙讓)도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러한 현상이 생긴다고 보는지가 궁금하네.”

지광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창을 보고 또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창이 도리어 지광에게 물었다.

“형님은 지기(地氣)를 볼 적에 항상 손바닥을 보듯이 화맥(火脈)과 수맥(水脈)을 또렷하게 보이십니까? 아니면 때로는 명쾌하지만 또 때로는 희미해서 지맥의 흐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지광이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것이잖은가? 어떻게 기감(氣感)으로 보는 세상이 점괘로 보는 세상과 같을 수가 있느냔 말이네.”

“그래서 어쩌면 이러한 것이야말로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이치가 아닐까요?”

“오호~! 그런가? 그렇다면 문자를 의지하거나 느낌을 의지하거나 간에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그와 같은 현상을 볼 수가 있단 말인가?”

“맞습니다. 아니, 그게 맞지 싶습니다. 어제의 점괘는 손바닥처럼 명쾌했으나 또 다른 날의 점괘는 흐리멍덩해서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아서 진땀을 흘리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하하~!”

“왜 그런 일이 생긴다고 보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생각 중이라서 정리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지껏 생각한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볼 수는 있겠습니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네. 경청할 테니 직접 임상하면서 느낀 그대로 설명해 주면 고맙겠네.”

지광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서 우창도 진심으로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했다.

“우선은 질문자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간단합니다. 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간절하면 답도 명쾌하게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답도 그저 그런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

지광이 생각에 잠긴 듯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이어서 설명했다.

“어제의 경우에는 딸이 실종되어서 혈안이 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와 같이 간절하다면 점신(占神)도 무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점괘를 명쾌하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 그건 일리가 있군. 또 다른 이유도 있나?”

“또 다른 이유는 점괘를 풀이하는 자의 안목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우제의 몫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의뢰자의 질문을 받았을 적에 질문자와 얼마나 교감을 하느냐는 것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때로는 지나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풀이하는 마음도 간절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런데 말이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점괘가 나온 이상 흐리멍덩할 수는 없지 않겠느냔 말이네. 문자에 포함된 의미는 명쾌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네.”

지광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우창도 그 뜻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설명을 보탰다.

“우제도 그것이 신기합니다. 어쩌면 해석하는 수준이 더욱 높아진다면 그러한 점괘조차도 답은 제대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대강만 보이고 또 때로는 세밀하게 보이는 차이는 아마도 이 두 가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와 답변자의 관계도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그렇다면 말이네. 거의 같은 시간에 간절한 사람이 묻고, 또 급하지 않은 사람이 물었다면 점괘는 같은 것이 될 텐데, 이러한 경우를 당한다면 어떻게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역시 형님은 참 날카로우십니다.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하하~!”

“아무렴, 그랬겠지. 그래 어떤 결론을 얻었나?”

“점괘를 풀이하는 해석자의 마음가짐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검객이 문득 두 명의 적이 나타나서 칼을 뽑는다고 했을 때 상대가 고수라면 같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신경이 살아서 예민해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않게 되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되지 싶습니다. 결국은 마음을 호수처럼 평정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번 길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하하~!”

“아, 그건 이해가 되는군. 결국은 명상으로 마음을 평정하게 하면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되어서 간절하게 묻거나 대략 묻거나 해답이 잘 보이겠지만, 마음이 불안정하다면 잔잔하던 수면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과 같아서 답도 혼란의 소용돌이를 맞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령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면서 오만무례(傲慢無禮)한 표정과 말투로 자신의 궁금한 것에 답을 달라고 하더라도 마음에 분노(忿怒)가 생기지 않는다면 차분하게 해답을 찾게 되겠지만, 행여라도 내부에서 자신도 모르게 역정(逆情)이 일어난다면 간지의 이치도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옳지, 전적으로 동의하네. 그러니까 점괘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묻는 자와 답하는 자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지?”

“물론 아직도 명쾌하지는 않습니다만, 생각하기로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 형님의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우창은 지광이 이렇게 묻는 이면에는 스스로 깨닫거나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문했다. 그러자 지광이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내 생각에는 말이네. 수호신(守護神)이 개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네.”

“예? 수호신이라니요?”

“사실 그대의 학문이 그리 얕은 수준이 아닌데도 말이네. 때로는 잘 보이고 때로는 안 보인다는 것이 단지 마음의 평정에만 연유한 것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네.”

“아니, 그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창은 지광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지광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수호신이 있어서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서 때로는 해답을 막아버리기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네. 아우님은 영계(靈界)에 대해서 깊이 생각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흘려버렸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지.”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생각보다 복잡한 내막이 있겠습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맞네~! 그 문제도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그리고 수호신이 보호막(保護幕)을 쳐야 한다면 그에 호응하는 산천의 기운인들 협조하지 않겠는가?”

“정말이지 형님의 말씀은 항상 얕은 경계를 넘나드는 듯합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에 지광도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했다.

“만약에 산천의 기운이 수호신으로 변해서 제자를 보호한다면 아무리 공부가 깊고 마음이 호수처럼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그것이 어떤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혹 그것은 봐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수호신이 가려놓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라네.”

“과연~! 맞습니다.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밝힐 필요가 없거나, 혹은 그러면 안 되는 그야말로 천기누설(天機漏泄)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도 있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두고서 넘어가면 되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않겠나? 이미 공부를 할 만큼 했음에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이면에는 어떤 사유(事由)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라네. 하하하~!”

“역시 형님의 말씀은 항상 깊이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점괘는 수호신도 답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 남자도 간절했고, 우제도 답을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함께 작용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네.”

“와우~! 참으로 신기합니다. 단순하게 주고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에는 훨씬 더 복잡한 무엇인가가 얽혀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항상 스스로 공부가 부족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에서 일말의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하하~!”

“나도 생각을 할 만큼 해 본 다음에 내린 결론이긴 하네. 물론 더욱 정진해서 수호신의 표정까지도 볼 수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망상일 수도 있지 싶네. 하하~!”

“아닙니다. 수행은 원래 끝이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형님께서도 수행처에 가시면 오행 공부에 몰입하게 될 것이고, 100일 후가 되면 점괘를 자유롭게 운용하는 수준이 될 것이니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나도 그래 보고 싶네. 아우님이 점괘를 자유롭게 운용하는 것을 보면서 항상 주도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니 말이네. 나는 땅이 보여줘야만 볼 수가 있으니까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네.”

“그러셨습니까? 형님께서도 답답한 것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보고 듣는 줄로만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농담 삼아서 말하자 지광도 웃으면서 받았다.

“영안(靈眼)을 뜬 자는 아래로 내려오고 문안(文眼)을 얻은 자는 위로 올라가다가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 만나게 될 날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비로소 많은 의문이 해소되리라고 보네. 그날까지 또 우리는 묵묵히 수행하면 되겠지. 하하하~!”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데 진명이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어서 오세요~!!”

우창과 지광이 식당으로 가자 모두 앉아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우리가 너무 긴 산책을 했나 보군. 기다리게 했으니 말이네. 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 웃으며 아침밥을 먹었다. 그리고 도중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를 살피느라고 주인이 오가면서 챙겼다. 이렇게 아침을 먹은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섰다. 객잔의 여주인은 다음에 지나는 길에 꼭 와서 쉬고 가라면서 아쉬워했다. 마차에 일행이 모두 오르자 염재가 채찍을 흔들었다.

“이제 어디로 방향을 잡고 가면 되겠습니까?”

마차가 출발할 준비가 되자 염재가 지광에게 물었다. 다른 일행도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서 지광을 바라보자 지광이 간단히 말했다.

“북향(北向)~!”

“알겠습니다. 우리 마차는 북향하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복창하고는 마차를 몰았다. 염재의 옆자리에는 진명이 앉았고 나머지는 안에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저마다 생각에 잠겼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그 대신에 말발굽의 소리가 계속 울렸다.

“동향(東向)~!”

갈림길을 앞두고서 또 지광이 외쳤다. 염재가 지광의 말소리를 듣고서 이정표(里程標)를 보니까 ‘수우산(水牛山)까지 40리’라는 표시가 보였다.

“정 사부께서 목적지로 삼은 곳이 혹 수우산인지요?”

“그렇다네. 우리가 앞으로 백일(百日)을 머무를 수행처라네. 하하~!”

“아, 그렇습니까? 기대됩니다. 예전에도 들어본 적은 없는 산입니다.”

“그렇다네. 태산(泰山)이나 화산(華山)은 물론이고, 태항산(太行山)이며, 황산(黃山)도 있지만 수우산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네. 하하~!”

지광은 수우산을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저절로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나왔다.

“스승님께서 수우산을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염재는 언제나 그렇듯이 집요했다. 수우산으로 향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인데 기왕 가는 길에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면 또한 공부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는 재차 물었다. 염재의 물음에 지광도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지. 무엇보다도 거대한 암석(巖石)으로 이뤄진 수우산이기 때문에 기공(氣功)을 수련하기에는 매우 적합한 곳이라네.”

“아, 그러니까 산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산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하기는 거산과 함께 갔었던 산도 기운이 강력해서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체험도 했었는데 그보다도 더 기운이 강하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지, 환경(環境)의 중요성이야 내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을 한 단계 높여 줄 기운이 기다리고 있으니 열심히 수행만 하면 된다네. 하하~!”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다시 물었다.

“인연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 참으로 맞습니다. 보통의 땅이거나 그만도 못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서 혼신의 기운을 모아서 아무리 끙끙대봐도 기운이 생기지 않는 것의 이유도 모르고 있을 텐데 밝은 스승님을 만난 인연으로 이렇게 필요한 곳을 찾아가면서 공부한다면 공력(功力)이 얼마나 증가하겠습니까? 생각만으로도 이미 즐거움이 가득해집니다.”

“원래 전설에 의하면 그 산은 수우산이 아니라 청산(靑山)이었다네. 더구나 소를 닮지도 않은, 그냥 거대한 화강암(花崗巖)의 바위산일 따름이지. 그 산 아래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소를 키웠더라네. 그냥 보통의 소가 아니라 일반의 소에 비해서 세 배나 되는 큰 소였는데, 소의 성질이 난폭해서 주인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서 팔아 없애려고 해도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아무도 그 소를 사려고 하지를 않았더라는 거야.”

“당연히 그랬을 만합니다.”

“그러던 차에 소를 매우 잘 다루는 목동을 맞아서 돌보게 되었는데 이 소는 목동을 본 후로는 목동에게만은 고분고분하여 낮에는 산으로 다니면서 풀을 뜯기고는 밤이 되면 소와 함께 잠을 자고 했는데 날이 갈수록 목동의 보살핌으로 소는 더욱 윤택이 나고 크게 자랐다네.”

“제대로 인연을 만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잘 지냈는데, 하루는 주인이 생각하기를 소가 크니까 잡아서 고기로 팔기로 했던 모양이네. 그것을 알게 된 목동은 소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자 소도 알고는 목동을 위로하느라고 머리를 핥자 목동은 더욱 슬피 울다가 소의 등에서 잠이 들었더라네.”

“참 안타까운 일이었겠습니다.”

“목동의 꿈속에서 자신이 돌보던 소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생사(生死)는 하늘에 있으니 그대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네’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서 깜짝 놀라서 말했지. ‘아니 그대가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나?’라고 말이네. 그러자 소가 다시 말했다지? ‘나는 원래 태상노군이 타던 청우(靑牛)라네. 하늘의 규칙을 범해서 귀양살이하러 온 것인데 이제 그것이 다 풀려서 다시 하늘로 가게 되었으니 슬퍼할 일이 아니라네.’라고 말이지. 하하하~!”

그 말에 염재가 고개를 돌려서 지광을 보고 말했다.

“비록 전설이겠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축하해야 하겠기도 합니다.”

“목동이 잠에서 깨어나서 보니 소는 간 곳이 없고 소가 웅크린 모습으로 바위산이 하나 생겼더라네. 산세(山勢)는 특별하지 않음에도 강력한 천기(天氣)가 내왕(來往)하는 이유도 이러한 것에서 연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 시인(詩人)과 묵객(墨客)도 즐겨 찾았다는군. 특히 당(唐)의 이백(李白)도 자주 찾았다고 전하는데, 그 후로는 점점 잊혀갔지. 그래서 지금은 조용하게 수행하는 사람만 알아서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네. 하하하~!”

“아하~! 천기가 강한 산이라서 어쩌면 그러한 전설이 생겨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하튼 기대가 많이 됩니다. 그런데 산에는 머물만한 움막이라도 있는지가 또 걱정입니다.”

“아, 그것은 걱정하지 말게. 내가 10년 전에 머물렀던 암자가 있다네. 우성암(牛聖庵)이라고 하는데 깊은 불심을 가진 보살이 부처님을 돌보고 계시니 우리가 굶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인지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하하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먹을거리는 제자가 열심히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산과 함께 마을을 오가는 목동이 되겠습니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산기슭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 바위틈 사이로 나 있어서 걷지 않아도 되었다. 산세의 형상도 과연 황소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암자는 계곡과 계곡의 사이를 끼고 올라가자 널따란 바위를 의지하고서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규모가 작기는 해도 3채의 건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행이 암자의 마당에 도착하자 초로의 60세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회색의 도포를 입고 나와서는 지광을 발견하고 반갑게 맞았다.

“아니, 이게 누구세요. 지광 거사께서 오랜만에 나들이하셨네요? 오늘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기에 무슨 손님이 오려나 싶었는데 반갑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화련(華蓮) 보살께서도 여전하십니다. 시절 인연이 되어서 나들이했습니다. 환영해 주실 줄은 알았습니다만, 한동안 소란스러울 것도 각오하셔야 하겠습니다. 하하하~!”

주객이 인사를 나눈 다음에는 각자 이름과 나이를 소개하고는 방부터 배정(配定)했다. 지광과 우창은 한 건물에 붙은 두 방을 쓰기로 하고, 염재와 거산도 따로 되어있는 한 건물에 각기 방을 하나씩 배정받았다. 그리고 현지와 진명은 보살이 거처하는 건물의 옆방에서 머물기로 정하자 고요하던 암자에는 삽시간에 활기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