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추억(2013)⑤ 공자묘

작성일
2022-04-23 17: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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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추억(2013)⑤ 대남(臺南)의 공자묘(孔子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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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 대남의 공자묘다. 공자묘는 산동성 곡부(曲府)에 있는 공자 고향의 대성전을 봤으니 본부를 본 셈이기는 하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공자의 사당이 대북이 아닌 대남에 있었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들리면 몰라도 일부러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하는데 고웅을 돌아보고 있으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도 가보겠느냔 말이지. 아무래도 한자테러가 있을 예정이니 한자를 잘 모르거나 싫어하는 벗님이라면 재미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히고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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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기름을 얼마나 넣을까요?
낭월 : 타이난까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처음에 차를 받았을 때를 고려해서.
화인 : 그럼 일단 50리터만 채우고 볼게요.
낭월 : 그러렴. 남아도 할 수 없지 뭐.
화인 : 아깝잖아요. 호호호~!

대남은 대북과 상대가 되는 의미의 이름이다. 대(臺)를 줄여서 태(台)로 쓴다. 우리는 소리가 다른데 대만은 같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서남북으로 나눠지는 것도 아니다. 원래의 대북 중심지가 대남이었다는 것인데 아마도 당시에도 대남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대북이 생기고 나서 대남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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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과 대중, 대남은 그래도 대략 이해가 되는데 대동은 그 위치가 좀 어색하고 대서는 없는 것도 균형감은 없어 보인다. 대동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더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그건그렇고 지나는 길에 타이난 공부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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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원래는 적감(赤嵌)이었구나. 2000여 년을 수도이면서 중심이었던 대남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쯤의 상황이라고 해도 되려나 모르겠군. 신라 천 년의 고도이니까 비교해도 되지 싶다. 이렇게 유서가 깊은 곳에 공자묘가 있으니 글공부를 좋아하는 낭월에게는 궁금할 밖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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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기름의 분류를 무연의 비중으로 나누는 모양이다. 98, 95, 92로구나. 숫자가 높을 수록 고급이겠군. 뭘 넣어야 할지 몰라서 주유원에게 맡겼더니 렌트한 차에 들어가는 종류가 대략 정해져 있는 모양인지 알아서 넣어준다. 든든하게 채우고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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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복무구(仁德服務區)가 휴게소다. 대만의 휴게소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잠시 들어가 봤다. 이름으로 봐서 사설업체가 아니라 국영인가 싶다. 인덕(仁德)을 보니 벌써 공자향이 풍겨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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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묘 앞에 차를 대고서 들어가려다 보니 엇! 지미집? 오늘도 뭔가 촬영이 있는 모양이다. 장비들을 세팅하느라고 분주한 모습에서 유명한 곳임을 짐작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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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의 안내도구나. 대남공자묘(台南孔子廟)가 중심에 있고, 그 뒤로 대천후궁(大天后宮)이 있고, 천후궁 뒤로는 적감루(赤崁樓)가 있군. 적감루가 왜 적감루인지는 대남 역사를 보니 알겠고, 그 왼쪽으로 가면 안평고보(安平古堡)가 있군. 이 정도는 돌아봐 줘야 대남 구경을 잘 했다고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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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분장을 한 사람들이 안 보이는 것으로 봐서 영화를 찍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재미가 없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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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공자묘(臺南孔子廟)구나. 와보고 싶었던 곳에 오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둘러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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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문화자산국에서 알려주는 공자묘 이야기다. 어디 쉽게 구글에서 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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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해가..... 어렵구나..... 아무래도 풀이를 좀 해 봐야 하겠다. 그래도 맘 먹고 찾아왔는데 제대로 적어놓기라도 해야 또 나중에 다시 보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簡介】간단한 소개


臺南孔子廟建於明永曆19年(西元1665年),翌年完工;是臺灣創建最早的太學,故又稱「全臺首學」。


대남의 공자묘는 명나라 영력19년(서기1665)에 건축공사를 시작해서 다음 해에 완공했는데 이것이 대만에 세운 최초의 태학(太學)이었고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대만 전체에서 가장 먼저 세운 학교」라고도 한다.

入清帝國版圖後,改稱先師廟,並經多次整修,規模逐漸擴大。

청나라 제국이 들어와서는 이름을 선사묘(先師廟)로 바꾸면서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至乾隆42年(西元1777年)知府蔣元樞重修時,在西側添建泮宮坊,於是格局大備。臺灣建省後,臺灣府學改稱臺南府學。

건륭42년(서기1917)에는 지부였던 장원추가 중수를 하면서 서쪽의 반궁방(泮宮坊)을 추가했는데 (※반궁은 문묘와 학교를 통칭해서 부르던 말로 무예도 겸하는 의미가 있다.) 이로써 격국을 크게 완비했으며 대만성이 세워진 후로는 대만의 부학을 바꿔서 대남부학이라고 했다.

日大正6年(西元1917年)解體重修,規模僅存大成門、大成殿、崇聖祠、明倫堂、東西兩廡、東西大成坊、禮門、義路、文昌閣、泮池及泮宮坊等。

일제사대 대정 6년(서기1917)에 해체하여 중수하고 대성문, 대성전  숭성사, 명륜당과 동서에 두 채의 집을 짓고 동서대성방, 예문, 의로, 문창각, 반지와 반궁방 등을 갖췄다.

臺南孔子廟是全臺惟一有泮宮坊的文廟,坊與廟已被南門路劃開,改由大成坊出入。

대남의 공자묘는 대만을 통털어서 유일한 반궁방과 문묘가 있으며 방(坊)과 묘(廟)를 남문로까지 전개해서 대성방으로 출입하게 되었다.

採三殿兩廊的回字形配置,第一殿為柱廊式的大成門,或稱戟門,門的兩側立名宦祠以及鄉賢祠。

3전과 2랑을 회(回)자 형태로 배치하였으니 제1전은 주랑식의 대성문인데 혹 극문(戟門)이라고도 하며 문의 양쪽 옆에는 이름난 관리와 대남의 학자들 사당을 배치했다.

第二殿為歇山重簷頂帶露臺的大成殿,殿內主祀至聖先師孔子神位。

제2전은 ???의 대성전이니 전의 내부에는 주사에 지성선사공자산위(至聖先師孔子神位)를 모셨다.

第三殿為崇聖祠,左右與禮、樂器庫連接。

제3전은 숭성사이니 좌우에는 예기와 악기의 창고가 연달아 있다.

文廟左側有入德之門,門後是帶軒亭的明倫堂;堂的左後有樓閣式的奎閣,平面由方形轉為圓形,再轉為八角形,造型特殊。

문묘의 좌측에는 입덕지문인데 문의 뒤에는 마루로 된 명룬당이 있고 당의 왼쪽 뒤로는 누각식의 규각이 있고 평면과 방형과 원형이 있는데 이것을 다시 8각형으로 만들어서 조형이 특수하다.

文廟為臺南市保存最為完整之傳統建築群,這種禮制格局時可作為體驗清領時期傳統建築空間之最佳選擇。

문묘는 대남시에서 가장 오래 된 전통적인 건축물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구조는 청나라에서 지배하던 시기에 전통적인 체험을 할 수가 있는 가장 아름다은 선택이다.

헥헥~! 짧은 공부로 대충 발바닥 풀이를 했지만 결국은 잘 지어서 잘 보존하는 공자묘라는 이야기로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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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 들어가려니까 하마비(下馬碑)가 기다린다.

문무관원군민인등지차하마(文武官員軍民人等至此下馬)

누구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로군. 왕은 제외하는 모양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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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의 오른쪽에는 한자가 확실한데 왼쪽에 있는 것은 뭐냐? 생긴 것을 봐하니 만주문자로구나. 그렇다면 청대에 세운 것이라는 이야기로군. 청대의 건물에는 이렇게 한문과 만문이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북경의 자금성에서도 봤던 장면이다. 그리고 서울의 삼전도비(三田渡碑)에서도 봤었지. 그건 항복문서였다는 것이 다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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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배치가 회(回)자 형태라고 했으니 안쪽 구(口)이고 그 중간에 대성전(大成殿)이 있다는 말이로구나. 공자의 사당이다. 정면으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나무로 차단막을 만들어 뒀구나. 근데 야들은 뭐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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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입장권에 기념스탬프를 찍는 모양이구나. 그래 기념품도 중요하니까. 그렇거나 말거나 낭월은 그것에는관심이 없다. 어서 공자님을 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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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문성(文聖)이시다. 공자상이 아니라 공자의 위패가 황금으로 도금되어서 안치되었구나. 형상보다 문자가 더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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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는 후천팔괘와 태극이 그려져 있구나. 보통은 선천팔괘를 그리는데 공자는 후천팔괘인 주역을 연구한 학자인지라 문왕팔괘를 그렸지 싶다. 그리고 이것은 이치에도 맞는 것으로 봐야 하겠다. 복희씨의 사당이라면 선천팔괘를 그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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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는 있으나 향이 없으니 마음으로 분향하고 화인이 앞에 서기에 기념샷 하나 남겼다. 다소곳 한 모습이 예쁘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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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디에서나 같은 구조인 모양이다. 복성안자신위(復聖顔子神位)와 술성자사자신위(述聖子思子神位)를 한쪽에 모셨고, 맞은 편에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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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성맹자신위(亞聖孟子神位)와 종성증자신위(宗聖曾子神位)를 모셨다.

이 네 사람이 공자의 가르침을 가장 성실하게 이어받은 사대 성인인 모양이다. 안자는 안회이고 공자가 안연이 죽고 난 후로 평생을 안타까워했던 가장 총명한 제자였는데 주윤발이 공자로 연기한 영화 「공자」에서 책다발을 짊어지고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면서도 죽간을 챙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의 위력이다.

인자와 더불어서 자사, 맹자, 증자를 맨 가까이에 모셨구나. 아성(亞聖)이란 거의 동급인 성인이라는 뜻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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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사표()', '사문재자()', '성신천종()라고 쓴 세 개의 현판은 공자의 사당에는 기본적으로 배치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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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주자희, 전손자사, 언자언, 염자구, 재자여, 염자경의 패가 있는데 주자와 염구는 알겠는데 그 외에는 생소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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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필요할 지도 몰라서 이름은 낯설어도 자료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 모두 담았다. 적어도 위패의 모양으로 봐서 공자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아서 널리 펼쳤던 인물인 것은 틀림이 없지 싶다. 이게 다가 아니다. 양쪽으로 회랑이 있는데 여기에도 위패가 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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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모습은 이렇게 생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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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름도 있다. 소옹(邵雍)은 소강절이고, 주돈이, 동중서(董仲舒), 한유(韓愈) 정도는 대략 알만 한 이름이지만 그 외에는 초면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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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괜찮다. 공부가 짧아서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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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학문으로 살았을 선생들의 노력을 존경하는 의미로 이 정도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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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여기에 이름이 오를 만큼 열정적으로 학문을 연마한 것은 틀림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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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인은 안면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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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훑어보면서 눈도장이라도 찍어놨다가 나중에 책에서 이름이 나오면 들여다 보는 재미도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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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후학을 위해서 귀중한 책을 남겼으리라고 짐작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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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에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는 이유로 사후에 이름은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존경을 받는 구나. 이름이 참 중요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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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에는 알만한 이름이 나오네. 사마광, 왕통, 제갈량, 정현이구나. 정현은 태현경을 알게 되어서 기억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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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까지 찍어 올릴 거냐고 할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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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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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과 선유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놨구나.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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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만의 역대 대통령(총통)들이 남긴 글들이구나. 장중정은 장개석이다. 중국에서 국공내전으로 모택동에게 패하고는 대만으로 들어와서 초대부터 5대까지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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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국은 장개석의 아들로 6대부터 7대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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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리등휘가 8,9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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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이 천수편으로 10, 11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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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영구는 12, 13대를 했는데 14, 15대인 채영문이 현재(2022)까지 총통을 하고 있는데 지금쯤 공자묘에 가보면 편액이 하나 걸려 있을 수도 있지 싶다. 여하튼 다들 공자묘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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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와 악기에 대한 전시관도 둘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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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봐도 음악에 대해서는 맹탕들인지라 둘러 본 것에 의를 두는 것으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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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악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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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악기도 있군. 이건 뭔지 알겠군. 누가 봐도 북이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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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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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종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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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도 붙여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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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을 두드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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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성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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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숙량흘공? 이건 공자 아부지잖아? 그러니까 조상들의 위패를 모셔놨다는 말이로구나. 그러니까 공자의 할부지는 방숙공이고, 증조부는 목금부공, 고조부는 사부공, 고고조부는 백하공이라는 말이로구나. 그 옆에는 또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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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가 있구나. 이건 공자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아랫대로 가면서도 이름을 남겨놨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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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소중한 자료겠거니 하고 모두 챙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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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를 모신 연유를 써 놓은 모양이다. 풀이는 생략하는 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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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을 모아놓은 창고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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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물건을 모아놓은 창고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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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었던 전대수학도 여기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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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인즉 낙관이 없어서 누가 썼는지는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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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도 잘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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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까지 새겨 넣었구나. 무슨 비석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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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중수한 내력을 써 놓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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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샷 하나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7월 17일 11시 26분에 낭월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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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은 아니고, 화장실에 들렸더니 여기에도 공자의 이야기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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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방이로구나. 이 정도면 잘 둘러 본 것으로 해도 되지 싶다. 재미도 없는 글자만 잔뜩 나열했지만 또 이러한 자료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할 수도 있을지 아느냔 말이지. 그래서 꼼꼼하게 자료를 담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빠진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와보고 싶었던 공자묘를 잘 둘러봐서 뭔가 숙제를 하나 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저 깊은 속으로부터 나름대로 뿌듯한 보람과 같은 것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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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상이 성역의 문 입구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낭월처럼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참배를 왔던 모양이다.

"잘 둘러보고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