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금산사

작성일
2022-03-03 16:24
조회
673

모악산(母岳山) 금산사(金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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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수시로 둘러 본 사찰이다. 그런데도 사진기행에 금산사 이야기가 없었나 싶은 생각에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 참 희한하네......'

여기 저기 틈틈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겹치는 곳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인데 혹시 둘러본 이야기가 있는가 싶었으나 제목에 걸리지 않으니 아무래도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나보다 싶어서 마음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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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으로 용설란꽃을 보러 간 김에 들렸다. 시간에 맞춰서 옥정호를 둘러봤는데 그것은 별로 할 이야깃꺼리가 없어서 생략했다. 그리고 산너머에 있는 금산사를 떠올렸던 것은 일행 중에 아직 금산사를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있는 까닭이었다. 시간의 계산을 해 보니까 그렇게 둘러보고 가다가 저녁을 먹으면 딱 맞겠다는 예산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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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못 봤을 듯한 송월주스님 전시관이 있었다. 여기까지 둘러볼 시간은 예산에 없었는데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았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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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용명당(龍溟堂) 각민대사(覺敏大師) 가람수호기】

용명당 각민대사(1846~1902)는 19세기 후반 금산사와 호남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승이다. 전주 출신으로 1865년 20세에 강릉 정토사에서 출가하였다. 1879년에 완허(玩虛) 스님에게 인가를 받고 용명(龍溟)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스님은 수 십년을 금산사에 머물며 많은 불사를 진행하였다. 장육불상에 새로 금칠을 하고 전각과 탑을 보수하였다. 수백 그루의 나무와 꽃을 심어 가람을 가꾸기도 하였다. 스님은 과거에 사라졌던 도승통제도를 부활하여 ‘호남도승통(湖南都僧統)’으로서 금산사는 물론 호남불교를 이끌어 갔다. 1891년 귀암사 중창을 시작으로 소심선실, 운문암, 용흥사 중창 등의 불사를 계속 하였다.


스님은 호탕한 성품을 지녔고 기질은 산하를 압도할 정도였으며 기강은 엄격하였다. 그러나 1902년 모악산 금광의 광부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모악산은 오래전부터 금이 출토되는 유명한 지역이었다. 1900년 절의 남쪽에 대규모의 금광이 개설되면서 채굴공사의 여파가 절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이에 스님은 가람의 수호에 명운을 걸고 공사를 저지하여 마침내 관아로부터 채광 금지령을 받아냈다. 그러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1902년 새해 첫날 채광꾼들은 다시 금산사를 침범하였다. 스님은 미륵전 앞 잣나무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온몸으로 막았으나 그들이 던진 돌과 쇠망치에 끝내 입적하고 말았다. 죽음으로 가람을 지키고 불교를 수호한 위대한 순교자이다.


절마다 사연은 한보따리씩이다. 금산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가람을 수호하겠다고 재물에 눈이 먼 중생들에게 귀한 목숨을 내던지셨다니 그저 가슴이 아릿할 뿐이다. 목숨을 바쳐서 지켜낸 절에서 결국은 그들에게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서 이야기의 들머리에 자리를 잡아 본다.

 

dksemrakdmf[인터넷자료]


혹시나 하고 금광을 찾아보니 모악산 남쪽에 안덕마을에 폐금광이 있다는 정보가 나온다. 금이 있어서 사람이 죽는다. 미국이나 금산이나 다 마찬가지로구나. 노다지를 보고서 그냥 물러날 수가 없지. 각민대사의 존재는 부자가 되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었을 따름이었겠지. 그 금으로 자손만대에 부귀영화를 누렸을지, 도박과 방탕으로 자신들의 삶도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을지는 알 방법이 없다.

원래 황금이 나와서 금산이진 않았겠지. 처음에는 모악인데 금이 나와서 금산이 되었겠거니. 모악산은 '엄뫼'라는 이름을 한자로 바꾼 것인데, 산정상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을 닮은 암석이 있다고 전한다. 가볼 마음도 없지만 막상 가본다고 해도 군사시설이 있어서 접근불가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ㅎㅎ

비록 그렇더라도 절 이름까지 금산(金山)일 필요는 없었지 않아? 차라리 그냥 산의 이름대로 모악사라고 하지 그랬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금강사라고 했다면 또 모르겠다만 이름이 흉하다 흉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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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여긴 뭐하는 곳 같으노?
호연 : 예, 절을 지키는 사천왕이 계시는 곳입니다.
낭월 : 반은 맞고 반은 틀렸구나.
호연 : 예? 아닙니까? 글씨가......
낭월 : 금강문(金剛門)이네.
호연 : 틀린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낭월 : 말하자면 사천왕은 경호원이고 금강은 문지기랄까?
호연 : 아하! 그런 말씀은 처음 듣습니다. 보통은 사천왕인데.
낭월 : 금산사에는 금강문이 있다고 기억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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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금강은 金이고, 다이아몬드로구나. 다이아몬드를 우리는 금강석(金剛石)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찬석(鑽石)이라고 한다. 우리는 '강한 쇠돌'인데, 중국은 '뚫는 돌'이다. 의미는 비슷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금강석은 왠지 귀하게 대접해야 할 것만 같고 찬석은 그냥 단단한 돌과 같은 느낌이랄까? 금산사에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있어야 제격이로군. 황금이 나오는 산이었으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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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걸음의 낮은 햇살을 받아서 빛도 금빛이로구나. 제대로 뭔가 맞아 떨어진다. 촘촘한 그물망은 산새들이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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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을 지나면 천왕문(天王門)이다. 절에 따라서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이라고 쓰기도 한다. 금산사는 천왕문이로군. 여기는 동서남북을 지킨다는 사천왕의 등상이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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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천왕이 불법(佛法)을 수호한다는 전설이 있다. 원래는 악귀들이었는데 교화가 되어서 수호신이 되었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있는데 진위는 알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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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복전함을 그냥 지나치기에 찝찝하게 하는 효과도 있을랑강? 괜히 뒷목이 땡겨서 지갑을 열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여기에 길을 막고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절간의 현실이려니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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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위풍당당하게 악기를 들고 있는 호법신이라니. 조각가는 음악에 대해서 조예가 깊었던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악한 무리들로부터 절을 지켜야 하는 신장의 손에 비파를 들려주다니 말이다. 유머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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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에도 등급이 있는데 가장 높은 호위대장은 북방천왕이다. 원래 북쪽에는 왕이 자리하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왕의 뒤를 수호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사천왕은 이렇게 한곳에 모아놓을 것이 아니라 절의 동서남북 사방에 각기 자리를 마련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 회의중이시라고? 그럼 그렇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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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부를 할 적에 선배들이 갈차줬다. 하늘이 휑하면 앞에 있는 무엇인가를 걸치고 찍으라고. 그래서 천왕문의 추녀를 걸쳤다. 품이 넓은 금산사의 도량이 전면에 펼쳐졌구나. 이 시간에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귀가를 하기 때문에 한가롭게 둘러볼 수가 있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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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나 당간을 세웠을런지는 모를 일이다. 당간은 없고 지주만 있는 것으로 봐서 당간은 사라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간이 있는 것은 계룡산 갑사의 숲속에 있는 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절에는 당간지주만 있고 당간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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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의 철당간이다. 이렇게 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단 말이지. 양(陽)에 속하는 당간은 사라지고 음(陰)에 속하는 지주만 있으니 위풍이 서지않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믈스믈 배어나온다. 지붕에 기와를 올린다고 돈을 받아서 이런 것이라도 하나 복원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만 귀양을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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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은 없고 지주만 있으니 속을 모르는 관광객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다. 엉? 지주(支主)라고 썼냐? 일부러 그랬나? 빈 자리로 봐서 柱였을 법도 한데 무슨 일로 또 이렇게 되어 있는지는 알 바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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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으로 오르기 전에 있는 누각은 보통 만세루(萬歲樓)라고도 하는데, 금산사는 보제루(普濟樓)구나. 만세루는 절간이 만년토록 잘 보전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니 절을 위한 것이고, 보제루는 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이니 밖을 향해서 있는 뜻이다. 의미는 보제루가 불타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가 있겠지만, 이름이야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냥 절간으로 들아가는 세 번째의 입구일 따름이다. 금강문, 천왕문 그 다음에 보제루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산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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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를 지나가면 전각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누각의 통로가 무척 낮아서 성인이 서서 걸어갈 정도의 높이에 불과하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우울한 고사가 있다.

조선시대에 알량한 선비들은 산수가 좋은 자연을 벗삼아서 풍류를 즐겼다. 그리고 당연히 그 언저리에는 멋진 고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놀러 간 김에 절구경도 한다는 코스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간들의 태도이다. 조선시대에는 승려는 천시해서 도성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사찰에 대한 것이야 두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거들먹거리면서 군수니 태수니 하면서 스님들을 얼마나 귀찮게 했을지.....

하심(下心)을 미덕으로 삼는 불가의 수행처에서 갓을 높이 쓰고 꼿꼿하게 법당으로 향하는, 더구나 말까지 타고서 드나드는 꼬락서니를 바라보는 심사가 마낭 편했기만 했을 리는 없다. 그래서 입구에는 하마비(下馬碑)을 만들어 놨다.

「대소인을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라 이놈들아.」

불법을 수호하면서 울분에 차 있는 젊은 수행승들의 울분이 보이는 하마비다. 선암사에서 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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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선암사 하마비다. 이렇게 써 놓으면 그냥 말을 타고 절로 들어가더라도 마음 한켠에는 찝찝한 느낌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을 바라는 여린 마음도 있었지 싶다. 말로 못하는 것은 글로라도 해야지. 그래 글도 모르냐?

'갓이 찌그러지지 않으려면 허리를 굽혀라'

법당으로 오르기 전에 강제로라도 허리를 굽히는 꼴을 보고 싶었을까? 아니면 아니꼬운 양반의 꼬락서니를 그렇게라도 강제해서 웃음을 자아내고자 하는 해학의 풍경이었을까? 다만, 이러한 정황을 모르는 관람객들은 그냥 지나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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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의 핵심은 미륵전이다. 겉으로 3층의 구조를 하고 있는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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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제대로 미륵전을 비춰주고 있는 시간이구나. 아침에 방문하면 역광으로 검은 건물만 볼 텐데 절호의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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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 앞에는 특이한 모양을 한 탑도 있다. 검은 돌로 조각을 해놔서 더 눈길을 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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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많구나. 낙산사 원통전 앞의 석탑이 떠오른다. 전쟁의 흔적인지 아니면 금을 캐러 왔던 광부들의 행패였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주변에 뒹구는 동전들을 보니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세월을 뛰어넘는 모양이다.

'그대가 던진 동전에 탑은 멍이 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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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을 읽어보고 싶은 벗님은 사진을 클릭하면 읽을 정도의 크기로 담았다. 다층이라는 말은 층수가 명확하지 않단 말인가? 그냥 대충 11층 육각 석탑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름도 참 애매~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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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의 오후 5시 32분의 햇살이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해 보이는 풍경이 멋들어진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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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은「국보 제 62호」구나. 연못을 메우고 지었다니. 이것은 통도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나. 각층마다 편액이 붙어있다.

맨 위는 미륵전(彌勒殿)이다. 미륵불이 계시는 곳이라는 뜻이겠구나. 미륵은 미래불(未來佛)이다. '아직 부처가 아닌 부처'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고? 부처가 아닌 부처라니 말이 되나? 과거불은 그렇다고 하고 현세불은 석가모니불인데 미륵은 석가모니가 인가를 한 미래세의 부처라고 기록은 되어 있지만 이게 무슨 말인지 낭월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중간의 이름은 용화지회(龍華之會)이다. 석가모니의 세상은 사바세계(娑婆世界)이다. 세계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미륵불이 출현한다는 다음 세계는 용화세계라고 전한다. 그래서 미륵사나 용화사라고 이름한 곳은 모두 미륵불을 주불로 모셔놓은 절이라는 것도 겸해서 알 수가 있다.

아래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이다. 대자대비의 줄임말이기도 하겠지만 미륵불의 성이 자씨(慈氏)라서 대자전일 가능성이 더 많을 게다. 그래서 일명 미륵보살을 자씨보살이라고도 한다. 미륵보살이 나중에 부처가 되면 이름을 미륵불이라고 하고 그 세계는 용화세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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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 내부에는 삼존불이 서있다. 가운데 주불은 당연히 미륵불이겠거니... 높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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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설명을 보면 되지. 석고(石膏)상이었구나. 석가모니불이 세상을 떠나고서 56억 7천만년 후가 되면 나타날 부처다. 화재로 파손되었다는 것으로 봐서 원래의 불상은 목불이었던가 싶기도 하다. 목불은 불길 위를 건너지 못하고, 토불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했던가? 석고를 재료로 삼았다는 것은 1936년에 12m의 높이로 조성했기 때문이란다.

법주사의 경내에 있는 미륵불도 원래는 박정희 시대에 시멘트불이었는데 나중에 동불로 교체가 되었다. 세월따라서 재료는 바뀌기 마련이다. 시멘트나 석고나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 싶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살이고, 태양계의 나이는 46억살이고, 지구의 나이도 당연히 46억살인데, 56억년 후에 부처가 나온다면 그 시대는 또 어떨까? 상상도 되지 않는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륵불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말이잖여? 왜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먼 미래를 말하는 것일까?

그래서 조바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대폭적으로 당겨서 불멸후 3천년에 미륵불이 온다고 왜곡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그래야만 통치자들도 활용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나이가 좀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궁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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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

여하튼 미륵불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3천년 조차도 길기만 한 세월이었을 게다. 그래서인지 짝퉁 미륵불이 도처에서 출현했다. 미래불이라면 지금은 부처가 아니다. 그런데도 미륵불을 의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오묘한 모습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이미 보통의 사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해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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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에는 불상과 불단의 사이에 통행하는 길이 있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를 보기 위해서인데 특히 증산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순례가 되기도 한단다. 강증산 선생이 후생에 미륵불로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미륵불의 존재는 부처가 되기 전부터 이렇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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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전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을 오르면 이렇게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에서 사용하는 명칭이다. 보통은 국내에서는 오대적멸보궁이라고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도처에 적멸보궁이 존재하고 있다. 적멸보궁이라고 하면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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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에는 사리탑이 있다. 선산 도리사, 고성 건봉사에도 사리탑이 있다. 그러니까 그러려니 한다. 중생의 복밭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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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는 것은 진불(眞佛)인 사리가 봉안된 탑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들자면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부처의 진신사리를 받아왔다고 하는데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냥 믿음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직접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화장을 하고서 나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가져왔다면 그래도 보다 현실적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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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방편일 따름이다. 중생의 수행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수행의 신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고승들의 혜안으로 마련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좁은 소견으로 판단을 한다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문득 현실적인 진실과 신앙적인 믿음의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될 것인지가 궁금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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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금산사를 주마간산으로 한 바퀴 둘러봤다. 열쇠꾸러미를 들고 한바퀴 도는 처사는 해가 지는 시간에 문을 단속하는 일을 맡았나 보다. 우리도 그만 귀가길을 서둘러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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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다가 문득 누각에 있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개산천사백주년기념관」이란다.

보통은 한자로 써있는 현판을 만나기 마련인데 한글로 써있는 것이 이채로워서 자세히 들여다 보니 글을 쓴 사람이 '쇠귀'란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을텐데 문득 필명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연이 닿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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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나서 읽은 책이 『담론(談論)』인데 이 책의 저자가 신영복이고, 그의 필명이 쇠귀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인연이다. 한자로는 우이(牛耳)였다. 한자를 한글로 풀이하여 쇠귀가 되었나 보다. 책을 샀더니 따라온 사은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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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성유휘(夜深星逾輝)」

밤이 깊으니 별빛이 더욱 빛나는구나.

어디에 나온 말인지가 궁금해서 뒤적뒤적.....

 

(천명지위성)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하고
(솔성지위도) 천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수도지위교)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이니
(야심성유휘) 밤이 깊으니 별은 더욱 빛난다.


『중용(中庸』에 있는 구절이었구나. 이러한 인연으로 쇠귀 선생을 만난 셈이었다. 아직 채 읽지 못한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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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기에 악연이 있어서 20여 년을 감옥에서 사색으로 보낸 세월에 안타까움과 경이로움을 갖게 되는 글이어서 천천히 읽고 있는데 금산사에서 우연처럼 그 글씨를 만나게 되니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선생은 떠나고 글은 남았구나. 힘찬 필력에서 다 풀지 못한 열정이 느껴지는 듯 하다.

개산천사에는 어떤 것이 전시되어 있는지는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시간이 늦어서 문이 닫혔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러한 쇠귀 선생의 글이 현판으로 있는 것으로 봐서 뭔가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지 싶기는 한데 백년 기념인 것으로 봐서 백년 전에 있었던 것을 전시한 것인가 싶은 짐작만 해 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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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전이 미륵전의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다.

마침 석양이 석등에 걸렸으니 태양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