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중국③] 태산 등반

작성일
2019-12-24 09:4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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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말씀입니다. 본 여행은 2004년에 가족들끼리 배낭여행을 떠났던 중국의 북부여행입니다. 낭월한담의 목록을 만들다가 번호가 빠진 여행기가 있어서 사진기행으로 옮기면서 당시의 컴퓨터 환경을 생각해서 작은 사진으로 올렸던 것을 필름을 스캔한 이미지로 바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나 느껴보는 용도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도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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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중국③] 태산(泰山)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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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한창 칼싸움을 하고 있는데, 거친 남자의 호통이 들린다. 그러면서 연지님이 흔들어 깨운다. 12시 40분이란다. 그 친구는 호텔의 깨우기 전문인 모양이다. 태산 아래에 오니 태산파가 꿈속에서 등장을 한 모양이다. 두시간도 잠자지 못한 채로 일어나야만 했다. 정말 아쉬운 단잠이었는데 어쩌는 수가 없었다. 앞에서도 말씀드리지 않았는가 여행은 발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이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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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 없이 시간표에 이끌려서 밖에 나오니 벌써 십여대의 버스와 많은 타이쌴(泰山)등반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태산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지금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산일출은 도향선생님의 소망이기도 했으며 화인도 그에 못지않은 욕심을 내었을 것이 분명하다. 낭월도 같은 값이면 한번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여하튼 다시 하루가 시작된 것은 틀림이 없었다.


줄줄이 차를 타자 입장권을 미리 차비와 함께 엇저녁에 호텔에서 예약하면서 지불한 도장 찍힌 종이를 걷고는 냅다 달린다. 그리고 태산 입구라고 하는 곳에서 입장권을 사서는 하나씩 나눠주고 태산의 중턱으로 차는 줄줄이 달렸다. 라이트에 비치는 것은 깎아지른 절벽뿐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달린 다음에서야 차는 좀 넓은 광장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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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많은 등반객들이 모여서 손전등을 켜고 각기 삼삼오오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모습도 보였고, 삶은 계란과 컴라면을 파는 장사도 몇군데 있었다. 일단 한번 걸어보기로 하고 20여 계단을 올랐다. 원래 태산의 계단은 6600계단이다. 그런데 연지님과 아이들의 표정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워서 도향선생님과 화인만 올라고도록 하고 우리는 케블카로 가기로 하며 다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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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은 그런 기분 아실랑가 모르겠다. 다들 올라가는데 네 사람의 남녀만 내려가는 그림.... 흡사 패잔병과도 같은 기분이 순간적으로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형편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하산을 했다. 말만 하산이지 20여계단 내려왔으니 별 것은 아니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는 말씀이다.


손님들이 다 올라간 곳은 다시 정적이 감돈다. 장사하는 아저씨한테 케블카는 몇 시에 움직이느냐고 물었다.

“쑤워따오 지디엔츄파마?(케블카(索道)는 몇시에 출발하나요?)”
"류디엔빤(여섯시 반)”
“씨예씨예(고맙습니다.)”
“뿌커치(뭘요)”

여하튼 여섯시까지 버티려면 4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에 잠이나 자 두라고 했더니 다들 두 마디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배낭을 하나씩 메고는 잠에 빠져든다. 그래도 남편이고 아버지라고들 이렇게 태산만댕이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또한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래서 괜히 오락가락하면서 오늘의 일정표를 생각하기도 하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낭월. 비스감치 누워서 모든 일을 놔버리고 자유롭게 길떠난 나그네의 행복함에 취했다. 그 사이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행히 지붕이 있는 곳이라서 비는 피했지만, 꼭두새벽에 비내리는 타관객지의 일가족 네 사람의 풍경을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간간히 버스가 들이 닥친다. 그러면 누워있던 장사하는 아지매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는 라면, 계란, 지팡이 등등 있다고 3분에서 5분 정도 소란을 피우다가는 다 올라가고 나면 다시 드러누워서 잠잠해진다. 몇 차례나 그렇게 새벽이 될 때까지 반복하는 그들을 보면서 삶의 사이클이지만 참 고단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아침 그렇게 밤을 밝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잠자던 금휘가 벌떡 일어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아빠, 한국말이 들렸어요.”
“으응, 한국 여행자들이 올라온 모양이다.”
“너무 반가워서 잠이 깨었어요.”
“그참 신기하지? 한국 떠난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그러네요. 아함~ 졸려.... 더 잘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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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댓던가? 여하튼 어둠이 가시면서 안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명 사이로 태산의 풍경이 어렴풋하게 비쳐든다. 어디선가 태산의 도사가 나타날 분위기이기도 하다. 겨우 6시까지 기다려서 케블카 타는 준비를 했다. 케블카는 6인승으로 한국에서 보는 것처럼 두 대가 교차하는 것이 아니고, 줄줄이 달려서 올라가는 구조였다. 그래서 삭도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다른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여섯명이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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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아랫도리가 허전해짐을 느꼈다. 공중에 매달려서 곤돌라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을 버팅겼는데, 나만 그런가 하고 괜히 두리번거렸다. 줄을 믿으면서도 현실이 불안한 마음으로 한 쪽에서 뭉클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길 낭떠러지라고요? 아니다. 저건 분명 만 길은 될것 같다. 거기에 안개가 완전효과를 발휘하니 분위기는 그럴싸 했다. 이렇게 높은 케블카는 타보지 못했는데, 참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둠을 헤치고 걸어서 올라간 도향선생님과 화인의 고단함을 떠올렸다. 그래도 미안하지는 않았다. 워낙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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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의 노부부께서 말을 걸었다.

“태산은 처음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잘 오셨네요. 우리도 처음입니다.”
“그렇습니까. 우린 한국에서 여행 왔습니다.”
“아, 그래요. 발음이 참 좋아요.”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멀었습니다.”
“아니예요. 발음이 매우 정확해서 중국인인가 했어요.”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일년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까 앞에 타라고 했더니 단지 ‘쓰거런(네명)’이라고만 했구만...”
“예, 말을 잘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아니오. 그렇게 말해도 충분히 알아들어요. 하하”
“아이들 방학이라서 공부도 시킬 겸 동행 했습니다.”
“아, 참 좋은 아버지네요. 아이들이 복이 많습니다.”
“뭘요. 참 카메라 주세요. 사진 찍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실래요. 그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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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어르신께서 거두절미하고 네 명이라고만 해서 뭐 저런 넘이 있나 싶으셨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랬던 것으로 짐작을 했다. ‘우리는 일행이 네 명이라서 다음에 타겠습니다.’를 했어야 했는데, 상황이 급하면 문법이고 뭐고 하얗게 되어버리고 그냥 본론의 용신만 보이게 마련인 모양이다.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에서 현장경험으로 실력을 쌓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어설프게 대강대강 배웠던 부분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다시 공부 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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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품격으로 봐서 교육자 부부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여행 중에 느낀 것이지만 공부를 한 사람은 어설픈 낭월의 중국어를 잘 알아듣고, 좀 꽤죄죄(절대로 못 알아들었다고 무시해서는 아니예요~흐)한 사람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보통화(중국 표준말)를 몰라서라고 스스로 계산을 하고 넘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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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블카에서 내려서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어가는데 앞에서 아는 사람이 둘이 앉아있다. 밤에 오른 도향선생님과 화인이었다. 엄청난 계단 때문에 길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다시 함께 올라가서 중턱의 태산 첫 관문에서 우선 아침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도삭면(칼로 베어서 끓인 국수)로 하기로 하고 그런대로 먹을 만 한 국수 한 그릇씩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는 말은 만고의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는 먼저 등산을 한 두 사람은 짐을 지키기로 하고, 가벼운 몸으로 태산에 올랐다. 크게 가파른 길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노력이 필요한 길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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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에 문인들의 싯귀들이 돌에 박혀 있기도 하고, 도관이 멋지게 자리를 잡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햇살이 없어서 더욱 시원한 태산은 여름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선경인 듯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여행객들 틈에서 간간히 한국인들도 섞여있다. 그런데 겉으로 행색만 봐서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으면 찍어 내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단체여행객도 많지만, 우리처럼 배낭여행을 나선 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여행의 수준이 이 정도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초보-깃발부대: 떼거리로 무리를 지어 다닌다.
중급-소그룹: 우리처럼 마음이 편한 사람끼리 여행한다.
고수-한 두 명이서 일정 지역을 싹쓸이로 뒤진다.


tae20191224-21[하늘의 거리라고 할만도 하다. 평지 같지요?]


tae20191224-19[아, 이눔마가 여기에서 산의 풍경에 빠져 있었구만.... 그래 기특햐~]


그러고 보니 중급 여행은 되는 셈이다. 여행자별 수준을 어디에선가 평가한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서양인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tae20191224-100[읽어 볼 여유가 없어 아쉽다. 그냥 기념사진이 최고다.]


정상에는 옥황상제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오악독존(五嶽獨尊)이라는 표식이 의젓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사뭇 위협적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오악은 어디를 말하는가.


동쪽의 태산[泰山:山東省]
서쪽의 화산[華山:陝西省]
남쪽의 조산[粗山:安徽省]
북쪽의 항산[恒山:河北省]
중부의 숭산[嵩山:河南省]


tae20191224-28[설명이 필요 없겠다. 오악중에 최고라는디....]

tae20191224-27[오악독존이 기울어서 공사하고 있는 인부들이다. 오악의 창피~~! 흐~]


tae20191224-62[옥황상제궁, 옥황묘(玉皇廟)이다.]


tae20191224-61[안에는 옥제께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 한번 올렸다.]

일반적으로는 오악을 이렇게 나누는데, 또 누구는 남악을 형산이라고도 한단다. 여하튼 그 중에서도 중악을 그대로 두고 동악이 홀로 가장 존귀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자료를 찾아보니, 오악 중에서 천자가 절을 하는 곳은 태산뿐이라는 것이다. 천자가 절하는 것이 가장 높지 않느냐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 된다. 건륭황제인가는 6회나 태산에 올랐다고 한다니 참으로 부지런한 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오악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별명을 얻고 있는 태산이라서 한결 더 뿌듯한 감이 들기도 한다.
tae20191224-103[어머~ 한글도 있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이름새겨 잠그고 나면 열쇠가 없어서 열수가 없다는 그 유명한 잠을통인연.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믿을 수가 없으면 이러한 상품이 팔릴까....... 인연인 것을.....]

tae20191224-106[이야~~!!!]


tae20191224-68[과연~~!! 이라고만 한 강희황제의 마음을 경덕이는 알거야.....]
tae20191224-59[경덕아 뭐라고 썼나 읽어봐. 아빠, 글이 없는데요.]
tae20191224-60[그래서 무자비(無字碑)란다. 아항... 그렇구나.]

옥황상제님께 남북통일과 국민안녕과 세계평화를(진짜로?) 기원하고는 해가 돋는다는 일관봉(日觀峰)으로 둘러서 멋진 풍경들을 보고 다시 내려오다가 도관(도사들이 기거하는 도교의 사찰)에서 강시영화에서 본듯한 복장의 도사들을 봤는데 차마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태산파의 도사들이었다.
tae20191224-81[하산 길에 만난 태산파 고수이다. 복장이 옛날 그대로이다.]
tae20191224-112[볼만하셨지요? 예, 대단하네요. 여행이 보람있습니다.]

tae20191224-82짐을 지키고 있던 일행과 만나서 다시 케블카로 하산을 하니 태산 여행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취푸(曲府)로 가야 할 계획을 세우기가 바쁘다. 기차로는 가는 길이 없다기에 일단 점심을 먹고 25인승을 이용하기로 하고, 시장기를 때우고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마음으로 버스표를 사서 취푸행 차에 올랐다. 차는 에어콘도 없고, 꼬질꼬질하다. 다만 데려다 준다는 것만 확실한 것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다들 얼굴을 묻고 잠에 빠진다. 이런 경우에는 늘 낭월만 보호를 한다는 핑계로 잠도 못자고 일행의 짐을 감시해야 한다. 아마 그래도 일행은 믿지 않을 것이겠지만. 나중에 아시게 된다.

tae20191224-117[태산 등반의 인증. 잘 찍어 주세요.]


3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