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중국④] 공자의 고향

작성일
2019-12-24 10:0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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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말씀입니다. 본 여행은 2004년에 가족들끼리 배낭여행을 떠났던 중국의 북부여행입니다. 낭월한담의 목록을 만들다가 번호가 빠진 여행기가 있어서 사진기행으로 옮기면서 당시의 컴퓨터 환경을 생각해서 작은 사진으로 올렸던 것을 필름을 스캔한 이미지로 바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나 느껴보는 용도로 참고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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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중국④] 공자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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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서 곡부(曲阜)까지 가는 거리는 비교적 가깝다. 그래서 일정표에  포함시킨 것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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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서 내려와서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도착을 하자마자 두 사람의 남녀가 달려든다. 내심 ‘또 호객이구만...’ 싶었다. 벌써 여행자의 눈이 트인 셈인가? 당연히 그 둘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곡부 가는데요.”
“버스는 없어요.”
“아직 시간이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원래 차가 빨리 떨어져요. 택시로 가세요.”
“택시는 얼만데요?”
“두 대가 가야 하므로 400원이 되겠네요. 빨리 갑니다.”
“필요 없어요”

터미널의 입구쪽에서는 곡부로 가는 커다란 팻말이 있었고 표를 파는 매표원이 있었다. 이 호객자들은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화인이 매표원에게 가서 물었다.

“곡부가는 차는 몇시예요?”
"조금 있으면 출발합니다.”
“저 사람들이 없다고 해서요.”
“조금 있으면 갑니다.”

그 정도면 그들은 미안해서 그냥 가버려야 한국의 상식이다. 그런데 절대로 그런 것은 없다. 이번에는 택시 한 대에 100원씩 해서 200원에 가자고 나선다. 그래도 표를 파는 사람도 아랑 곳 없다. 넌너 난나이다. 그냥 빙그레 웃을 뿐이다. 2시간에 100원이면 한국에서는 15000원정도이므로 해볼만 하기도 했지만 여행자는 늘 돈이 생명이라는 집착이 생긴다.


사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버스로 가기로 했다. 매표원의 한 남자가 차에 타서는 화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란다. 그래서 자신도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면서 몇 마디 했는데 영 어설프다. 그래도 마음 고운 화인이 댓구를 해줬다.


차 안에서는 비디오가 나온다. 어디에서나 달려있다. 하긴, 워낙 장거리를 다니게 되니 지루함을 달래는 것으로 톡톡히 한 몫을 할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금휘가 보더니 깔깔 웃는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만 영화가 한국 것이란다.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그 녀석은 멋있었다’라던가.... 중국말로 나오는 더빙인데, 정식판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상영한지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버스에서 나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여하튼 고물차를 타고 곡부에 도착하니 12시 정도가 되었다. 아침도 부실했는데, 점심을 먹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다. 입구를 보니까 한 30명은 되어 봄직한 남자들이 눈에 빛을 뿜어대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구경거리가 있나보다 싶었다. 일단 그 앞에 다가가자 다들 기다린 것은 우리 일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사진 한 장 찍어 두는 건데 멋진 장면을 놓쳤다는 안타까움이 심장을 때렸다.

그들은 여행객들을 곡부로 실어다 주는 인력거(리어카에 자전거를 달았다고 보시면 됨) 기사들이다. 그래도 번호판이 붙어있는 정식 등록차이다. 곡부까지 간다고 하기에 우선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아주 잘 하는 식당이 있다고 데려다 준단다. 한 대당 2원 달라는 것을 1원에 깎아서 3대에 나눠타고 곡부 거리를 달렸다. 어찌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하다. 노인들이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 분들이 앉고 내가 자전거를 밟아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행지이다. 그래서 즐거웠다.
gok20191224-36[곡부에 도착해서 거리 풍경을 감상 하고 있는 일행]

식당에 들어가니 대단하다. 촌이라고 했더니만 취푸는 태안보다도 크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식당에서 메뉴판을 주는데 그야말로 글자는 대략 안다지만 내용물이야 알 재간이 없다. 팔보채가 있느냐고 했더니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고 묻는다. 방법만 알려주면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방법을 설명할 낭월의 중국어 실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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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꼬리를 내리고 그냥 돈으로 때렸다. 모두해서 400원짜리가 있고, 300원자리가 있는데, 식구가 많으니 400원짜리가 적당하겠다고 안내하는 정말 예쁜 중국꾸냥의 웃음에 그대로 하오하오(好好)로 결정을 해 버렸다. 출발 전에 약속이 있었으니 ‘잘 먹고 많이 먹고, 골고루 먹고 보이는 것은 다 먹자’였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잠시 후 등장하는 먹거리를 보고 우리 일행은 질려버렸다. 오리한마리 탕하고, 잉어 한 마리는 찜하고, 가짓수도 모를 많은 음식들이 날라지는데 아마도 20여가지는 됨직 했다. 그제서야 너무 많은 메뉴를 시켰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이미 늦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양껏 먹고 또 먹었다. 예전에 중국사람들은 먹는 시간이 오래라고 했는데, 어느 사이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고 있는 우리 일행을 보면서 닮아간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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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는 공자님 댁을 방문했다. 어디를 가나 입장료를 내야하고, 그 입장료에는 보험료가 붙어있었다. 하도 그래서 외국인이 아닌 척하고 표를 사봤다는 화인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그들은 도사라서 외국인으로 보이면 무조건 보험을 넘기는 모양이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보통 2원 정도가 추가되는 모양이다. 참, 환율에 대해서 참고를 한다면, 대략 140원 정도 되는 것으로 보시면 무난할 것이다.

공자님 댁의 특징은 오래된 고택의 맛은 났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웠다. 그리고 담장은 왜 그리도 높은지, 학자가 머무는 곳이라기보다는 제왕이 은거하던 곳이라고 하는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 집에서 공자님이 살았다고 한다면 넓은 세상을 다니다가 피곤하고 지치고, 다시 많은 위험을 느낀 노년에 아무 것도 보지 않으려고 지은 집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마당의 뜨락마다 태호석太湖石(구멍이 숭숭 뚫린 정원석)이 가득했는데, 그것도 학자가 머무는 공간에는 맑은 기운은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봤다.

gok20191224-47[높은 담장과 칙칙한 검은 벽돌로 둘러 쌓여서 악기를 켜고 살으셨을까....]


 

특히 그 저택에는 물이 귀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답답하고 메마른 느낌을 받았는데, 이러한 글을 봐서 짐작을 하셨겠지만 좀 실망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군데군데에는 판매원들이 자리를 잡고 장사하고 있었다. 낙관을 파는 사람이 있길래 하나 파려고 했더니 도향선생님도 하나 파시면서 낭월의 몫까지도 내어 주시겠다고 해서 좋은 선물 하나 받았다. 그렇게 둘러보고 나와서 바로 왼쪽에 있는 공묘(孔廟)인 공자님 묘에도 가보려고 하니 다들 흥미가 없어 한다. 그렇다면 구태여 무덤에 가서 뭘 하겠느냐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고 호텔로 가서 쉬었다가 저녁에 야시장에 가보자고 하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봤다.

gok20191224-57[금휘와 경덕이도 구경하느라고 바쁘다.]
gok20191224-53[금휘야 집이 너무 커서 돌아다니기도 힘들구나, 진짜 엄마 너무 힘들어.]

다들 지친 몸으로 호텔에 돌아와서 휴식에 빠져들었다.

gok20191224-61[다들 체면은 잊은지 오래이다. 틈만 나면 앉고, 자리만 비면 눕는다. 그 과정에서 정이 드는 것이 여정(旅情)이리라]


모두 간단하게 차려 입고 야시장에 가봤는데, 규모가 매우 적었다. 아지매가 열심히 쉬었다가 가라고 하기에 간단하게 시켜봤는데, 모두 표정이 별로여서 가재볶음과 새우, 그리고 하미과를 사서 조금만 먹고 돌아왔다.

gok20191224-66[가짓수는 많은데 신통해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대만에서는 참으로 푸짐했는데, 북경가서 제대로 구경해야지..... 그러나 마침내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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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우니까 시원한 맥주가 최고이다.

gok20191224-69[든든하게 먹고서는 내일을 위해서 푹 쉬어야 한다.]

호텔의 마트에서 생맥주 병에 담긴 것으로 10병 사서 방으로 올라가 함께 느긋한 여유로움으로 곡부의 밤을 즐겼다. 오늘은 모처럼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여행을 했다. 식사를 하면서 백주(白酒)를 먹었는데, 참으로 중국 술은 좋다고 해야 하겠다. 애주가이신 도향선생님도 좋은 요리와 술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으신다. 술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략 가격으로 봐서 100원이 넘어가면 고급이고, 그 이하면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마오타이지유는 800원 정도 한다니까 최고급이라고 한다지만, 실로 비싼 것은 또 모두가 가짜라는 말이 정설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100원 전후에서 사먹으니 맛도 좋고 뒷맛도 개운해서 술로 인해서 아침에 무겁다는 등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해야 하겠다. 중국인들이 술을 많이 먹으면서도 잘 견디는 것을 이해하고 남을 법도 했다. 이렇게 하루를 푹 쉬면서 옛날의 노나라였을 공자님의 고향에서 하룻밤을 마감했다.


[8월 10일 화요일]


아침 일찍 잠이 깨었다. 어제 낮에는 400원짜리 성찬을 즐겼지만 아침 식사는 일인당 10원짜리와 15원짜리가 있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15원짜리로 여섯이 먹으니 몽땅 해서 90원이다.

 

gok20191224-01[이만하면 근사하지요.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천차만별의 식사메뉴이다. 든든하게 죽을 섞어서 아침을 먹고는 베이징(北京)으로 가기 위해서 호텔 문을 나섰다. 인력거가 다가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3대를 불렀다. 3원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나눠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재무담당인 화인이 일원짜리 지폐를 3장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 인력거 꾼은 깜짝 놀란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1대에 3원이라는 게다. 그야말로 ‘우째 이른 일이~!’이다. 우리의 화인, 그냥 돈을 빼앗길 리가 없다. 다부지게 달려들었다. 어제 가면서 3원에 3대로 갔는데, 오늘은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씀을 하시느냐고 따지는데 중국말이 그 정도면 양호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게 야무진 항의를 들었으니 그들도 그냥 받고 말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gok20191224-10[3원? 예 3원에 갑니다. 그렇게 시작은 되었던 것이다.]
gok20191224-17[어허데야 절시구 좋구나 좋아~~!!]

gok20191224-16[도향선생님은 좀 미안하다고 하셨다. 군자의 마음이 아닐까....]


그런데 예상 밖으로 반발이 심했다. 약 5분 정도 실갱이를 해 봤는데, 그들이 그냥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주변에는 인력거꾼들이 수십명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이나저나 할 일이 없으니 구경이나 하자도 모여든 것이다. 아무래도 화인에게 더 맡겨 두면 울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낭월이 나서게 되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뭐가?”
“똑 같이 그 자리에서 내리고 다시 타고 출발점으로 왔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어제는 한 대에 1원이었는데, 오늘은 3원이 되는 이유가 뭐냐?”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보쇼 아저씨.”
“그래요 아저씨.”
“어제는 손님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잖아.”
“그렇지 식당으로 갔지.”
“오늘은 호텔에서 왔잖아.”
“근데 그 식당이 그 호텔이란 말이야.”
“식당으로 데려다 주면 식당에서 2원을 준단 말이야. 알겠어?”
“...... 하하~~! 알았어 그래서 차이가 나는 것이구만.”
“알았으면 얼른 9원 내.”
“알긴 조금 알았는데(밍빠이씨 요디얼 밍빠이), 억울해.”
“억울해도 할 수가 없어.”
“2원씩만 받아.”
“안 되는데.....”
“화인아 2원씩 해서 6원 드리고 가자.”
gok20191224-19[얼른 돈을 주고 마무리를 하는 장면을 잡았다.]

그들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했는지 달리 말을 하지 않고 수긍을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3원 벌었다. 아니 3원 손재 본건가? 참 헷갈리는 중국의 계산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가 즐거운 작별이 된 셈이기도 하다.


gok20191224-22[휴식은 참 좋~은 것이여. 어제는 그렇게 고단했는데, 자고 나니 쌩쌩~]


gok20191224-21[화인은 왕휘앤에게 전화연락 하느라 각기 분주한 시간이다.]

지난까지는 다시 4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비가 억수로 내리기도 하더니만 지난에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정체가 되었는지 주차장이고 차도고 인도고 모두가 물천지이다. 아마도 황하가 가까워서 지대가 낮은 까닭이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터미널에 도착해서 차표 파는 곳으로 화인과 갔다.
gok20191224-23[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심한 곳은 차량도 둥둥 떠 있었다.]

“승덕(承德)에 가는 차 몇시에 있어요?"
“있어요."
“몇 시간 걸리나요?"
“네시간 반."

이상하다...... 대략 잡아도 7시간은 걸려야 하는데 그렇게 빨리 가는 차가 있다면 얼른 타야지 하면서도 의심스러워서 노트에 승덕(承德)을 써 보이면서 다시 물었다.


“북경 북쪽의 승덕 맞나요?"
“......잘못 들었네요. 승덕 가는 버스는 없어요."


그럼 그렇지. 매표원은 칭따오를 말하고 우린 쳥더어를 말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이상했다. 자칫했으면 여행을 하다가 말고 다시 청도로 돌아갈 뻔 했다. 북경가는 차는 바로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점심을 먹기로 하고 터미널 식당으로 갔다. 별로 깨끗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것도 여행이려니 하고 시간도 절약할 겸해서 그냥 몇 가지 사먹고 맥주를 겾들여서 짐심을 마쳤다. 그리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무래도 주머니가 허전하다. 순간 퍼뜩 스치는 예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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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에 채팅으로 왕휘앤(王慧硏)이 말했다. ‘소매치기 조심하세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주머니에 몇 년간 고이고이 따라다니던 가오리가죽(그것도 동천선생이 선물로 사주신) 지갑이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혼잡한 틈에 손이 하나 왔다 간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아침에 챙겨 넣은 900원과 신용카드가 떠올랐다.

지갑을 찾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고, 얼른 신용카드를 막아야 했다. 바로 여기에서 로밍해서 들고 온 휴대폰이 빛을 발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며 공중전화는 국제전화가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전화 사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집을 지키는 청원이에게 전화를 해서 국민은행으로 연락하여 카드 막으라고 해 놓고 5분을 기다리니까 휴대폰으로 카드사에서 메시지가 들어왔다. ‘카드는 사용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북경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차 안에서 연지님이 한 말씀 하신다.

“지난이 재난이구만.”
“무슨 말고?”
“칭따오에서 태산 가면서도 지난에서 카메라 랜즈 덥개를 잃어버렸는데 오늘은 지갑을 또 잃어버렸으니까 말이야.”
“그거 말 되네 하하~”
“앞으로 다들 주의하시라는 경고라고 생각합시다.”

이렇게 사연을 만들면서 여행은 진미(무슨 얼어 죽을 진미랴만)를 더한다. 벗님들 중국 가실 적에는 여권 정말정말 조심하세요. 여권을 노리는 손들이 너무 많답니다. 돈이야 덜 쓰면 되지만, 여권은 정말 큰일이거든요. 주의바랍니다.(지나 잘 챙기지 남 걱정은.... 실로 이 후로 아무도 낭월에게 마음 놓고 물건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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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에서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차는 북경을 향해서 출발했다. 도중에 비도 내리고 햇볕도 나면서 그렇게 여행의 길은 진행 되었다. 듣자니 한국은 무지무지하게 덥다는 말도 들린다. 이렇게 시원한 여행을 하면서 한국이 덦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꼬소~한 맛이 들기도 한다.

 

4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