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1] 의심(疑心)은 철학자의 연료이다.

작성일
2018-12-27 08:05
조회
3492

[741] 의심(疑心)은 철학자의 연료이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무술년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네요. 동지도 지나고 크리스마스도 지나갔으니 이제 송년회를 해야 할 일만 남았나요? 하하~!

한 해가 저물어 가면서 낭월은 무슨 일로 한 해를 보냈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사진찍는 재미로 살았던 것이 가장 큰 것이었나 싶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의 근저(根底) 에는 항상 의심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해 볼까 싶은 마음을 일으킵니다. 당연히 별 의미가 없는 수다입니다. 가볍게 읽으면서 동행하시면 됩니다. ㅎㅎ


1. 종교인(宗敎人)의 믿음


예전에는 세상에서 최상의 공부는 종교라고 믿었습니다. 통도사로, 범어사로, 유람을 하면서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글자만 봐도 최상[宗]의 가장 높은 가르침 [敎]이잖아요. 그래서 철학자는 미혹의 터널을 방황하는 가련한 사람들로 간주하고, 종교인은 참된 진리를 찾은, 그야말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그렇게 생각했지요.

"니들이 뭘 알어~~!!!"

그러면서도 왜 철학에 관심은 갖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천성이 우둔해서거나 태생이 의심덩어리여서라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요. 금세기 최고의 심리철학자라는 말에 혹해서 읽어봤지만, 그 글은 온전치 못한 인간이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궁리한 것을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지요.

아, 그때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또 생각이 다르니까요. 열기만 가득해서 이번 생에 부처가 되고 말겠다는 열정으로 젊음을 불태우던 그 시절에는 그런 생각도 했었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는 궁극의 가르침을 모르고 방황하는 지식인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면 그냥 믿어! 믿으라구~~!!'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낭월이 그냥 불교 서적을 몇 권 읽어 본 것이 아니고, 그래도 나름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10여년의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는 석가모니이고, 그 나머지는 그냥 그렇고 그런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 싶습니다.


신(信)


亻-사람, 言-말

문득 글자를 뜯어봅니다. 이것은 낭월의 글놀이 입니다. 信은 사람[人]의 말[言]이네요. 믿음은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라는 뜻이었네요. 벗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말은 믿을만 합니까?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이 믿을만 합니까?

'도리도리~~'

특히 요즘같이 가짜뉴스가 판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말은 믿지 말라고 해야 할 지경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옛날엔들 안 그랬겠느냐는 거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시대만 다를 뿐, 목적은 다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생긴 일이라면 오래 전에도 그래왔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네요. 그러므로 이런 문제로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가짜 뉴스 말입니다. 하하~!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종교에서 가르치는 최선(最善)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면 믿으면 됩니다. 스스로 아무리 궁리해봐야 하중지하(下中之下)의 정신일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원효나 의상과 같은 고승대덕의 말을 믿는 것이 오히려 수지맞는 선택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공감이 되시는지요?

최상의 가르침인 종교는 그렇게 해서 믿음을 연료로 활활 타오릅니다. 그리고 그 종교를 신념(信念)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일러서 종교인이라고 합니다. 최상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세상 못 믿을 것이 사람의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어야 하는 종교라고 한다면.... 이거 뭔가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심이 안개처럼 피어오를 즈음에 종교에 대한 신념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중생 : 스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대사 : 그래 뭐가 궁금한고?
중생 : 불경은 부처님의 말씀입니까?
대사 : 그렇느니라.
중생 :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가 있습니까?
대사 : 그야 믿음으로 확신하느니라.
중생 : 그렇다면 불경에 나온 이야기는 모두가 부처의 말씀입니까?
대사 : 그렇다니까 자꾸 그카네 구찮쿠로~!
중생 : 제가 알기에는 부처의 말이 아니라 아난의 말이라고.....
대사 : 엇? 그런 것도 알어? 그야 아난이 부처님을 40년간 모셨으니깐.
중생 : 그러니까 실은 실제로 부처의 입에서 나온 건 아니네요...?
대사 : 뭐..... 따진다면.... 그렇긴 하지....


얼마나 의심을 많이 했으면 독전유(毒箭喩)까지 등장을 했겠느냐는 생각도 해 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독화살의 비유」입니다.




왕이 싸움터에서 전쟁을 지휘하다가 적의 독화살을 맞았다.
신하가 놀라서 먼저 독화살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그 왕은 완고한 고집통이었다.
'독화살을 빼면 안된다.
빼기 전에 독화살을 쏜 자가 누구며,
또 활은 어떤 활을 썼는지 그리고 어떤 독을 발랐는지
그런 것들을 모두 알지 않으면 독화살을 빼내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





의심많은 제자가 죽은 다음에 영혼도 사라지는지, 영혼만 따로 부유하는지에 대해서 자꾸만 물어서 부처가 이렇게 답을 했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부처님의 입장에서도 답을 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겁니다.

공자님도 사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한 것을 보면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그 소식을 말로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그것을 말로 설득시킨다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나 봅니다. 하하~!

종교는 그렇게 믿음의 연료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무너지면 종교는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벗님은 종교가 있으십니까? 눈꼽만큼의 의심도 없으십니까? 낭월은 그렇지를 못해서 이렇게 의심덩어리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말이지요. 신념이 굳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독전유를 읽으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 그래 우둔한 범부가 뭘 안다고 부처가 하는 말을 의심하고 토를 달다가 세월만 보내는 꼴이네...

그리고, 다시 그만큼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는 자꾸만 '믿는다'는 말에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병상에 누운 노인에게 아들이 말합니다. '곧 일어나실 수 있답니다.'라고요.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본인만 모릅니다. 이제 생명이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지요. 모두는 입을 모아서 말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있다가 임종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뭐 안다고 해도 별다른 수가 없으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의 이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한가롭게 말만 믿어도 되겠느냐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요. 돌아가실 부모의 일이 아니고 나 자신의 일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의심이 시작되면 그는 종교와 이별입니다. 더 이상 종교적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종교는 온통 모순투성이로 굴러가는 불가사리와 같거든요. 그래서 점차로 팔만대장경도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으로 들어가는 문(門) 앞입니다.


2. 철학자(哲學者)는 의심


종교와 철학 중에서 누가 더 높으냐고 묻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의 이야기입니다. 오행 공부를 하다가 말고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나눕니다. 물으면 답해야지요.

낭월 : 유치한 놀이를 하잔 말씀이구먼.
제자 : 아니, 철학자라고 하시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어요. 호호~!
낭월 : 김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제자 : 저는 당연히 종교가 최상의 위치라고 생각하거든요.
낭월 : 그래서 종교에 열심이신겨?
제자 : 언젠가는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낭월 : 참 대단하시네. 그럼 철학은 왜 하려고 왔지?
제자 : 그야 인생이 궁금하니까요. 궁금하잖아요.
낭월 : 부처가 그건 안 가르쳐 주시던감?
제자 : 그니깐요. '하라'만 있고, '이렇다'가 없잖아요.
낭월 : 그런가? 그렇다면 그 말만 믿으면 되잖여?
제자 : 가끔은 의심이 들기도 한단 말이예요. 믿음이 약해서 그렇겠죠?
낭월 : 아니면, 지혜가 종교 위에 있거나. 하하하~!
제자 : 그럴리가요. 호호~!
낭월 : 그럼 이미 답이 나온 것을 내게 물은 거네?
제자 :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해졌어요.
낭월 : 나야 인간의 이성의 정점에는 철학이 있다고 생각하지.
제자 : 예? 종교보다 철학이 더 위에 있다고요?
낭월 : 굳이 위이래를 말한다면 그렇단 거지 뭘. 놀라긴. 하하~!
제자 : 왜요? 설명을 해 주셔야죠~~!!
낭월 : 가령, 왕이 있다고 하면, 왕이 스스로 '내가 제일 높다'고 할까?
제자 : 뭐하러 그래요? 이미 최고로 높은 자리에 있는데요.
낭월 : 그렇다면, 내가 제일 높다고 하는 것은 아직 높지 않은 건가?
제자 : 예? ...... 그렇겠는데요. 그게 왜요?
낭월 : 종교는 자기가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하지 아마....
제자 : 그렇담 철학은요?
낭월 : 철학의 철(哲)은 '밝다'는 뜻이니까 그냥 밝다고만 하잖아.
제자 : 밝다는 것은 최상이 아니잖아요?
낭월 : 그니깐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셔?
제자 : 음.... 왜 갑자기 스승님의 말씀에 공감이 되죠?
낭월 : 이제부터 김선생도 철학자구먼. 하하하~!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생각이 나네요. 철학과 종교는 늘 비교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불교가 철학이냐 종교냐로 실갱이도 하곤 했죠. 그래서 또 종교철학이라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네요. 뭐 복잡한 이야기는 모릅니다. 양파 껍질 같아서요. ㅎㅎㅎ


의(疑)


匕-비수(작은칼), 矢-화살, マ-모르겠고, 疋-짝(배필)

의심할 의(疑)를 풀어보니 이렇게 분해가 되네요. 가까이 있는 것은 비수[匕]로 찔러보라는 말이겠고, 멀리 있는 것은 화살[矢]로 쏘아보라는 뜻일까요? 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알 방법이 없는데, 짝꿍[疋]은 비교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은 유사한 방법으로 대입을 해 보라는 의미로 그게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으면 비슷한 사례를 찾아서 유추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철학은 의(疑)로 시작해서 각(覺)으로 끝나는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의심이 없이는 시작이 될 수가 없는 것이 철학이고, 또 그 의심의 끝에는 깨달음이 있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석가는 깨달았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철학자라고 해도 될랑강 싶기는 하네요.

아, 의심(疑心)과 의혹(疑惑)은 좀 다릅니다. 의심하다가 깨달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하면 떨어지는 곳이 혹(惑)이니까요. 그래서 혹(惑)하지 말고 각(覺)해야 합니다. 그래서 혹(惑)은 미혹(迷惑)이라고도 합니다.


3. 철학자의 에너지는 의심(疑心)


옛날에는 그렇게 멋있어 보였던 독화살의 비유도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사유의 길을 막어버리는 입막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끄러~~!!'

어린 아이가 자꾸만 물으면 답하기 귀찮아서 하는 말이기도 하네요. 오늘도 의심하십니까? 철학자이십니다. 오늘도 믿으십니까? 종교인이십니다. 믿으면서도 의심하신다고요? 종교인과 철학자의 중간에 계십니다. 하하~!

의심은 나쁜 것이라고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의심하지 말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현실은 자꾸만 의심을 해야만 그나마 타고난 수명을 다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나날이 깨달아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몸에 좋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던 매트에서 방사능이 나온다고 또 수거를 하느라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보면 참 생각할 것이 많기도 합니다.

'이뭣꼬....'

의심의 핵심입니다. 선가(禪家)의 화두입니다. 모든 존재를 의심하는 '이 뭣고'입니다. 이 한 몸을 끌고 다니는 이것이 뭔고? 해도 됩니다.

우주의 이치가 뭣꼬?   
운명의 이치가 뭣꼬?
오행의 이치가 뭣꼬?

어제까지 알았던 이치가 오늘은 달리 보일지도 모르잖아요. 궁리(窮理)하고 궁리하는 것은 결국은 의심하고 의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네요. '궁리한다'고 하면 소중해 보이고, '의심한다'고 하면 하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본질은 같은 뜻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마치 '큐피터의 화살'과 '남근'이 같은 말이라는 의미와 같겠네요. 하하~!

그저께는 어디를 지나치다가 드론교육을 한다는 간판을 봤습니다. 문득 마음이 동했지요. 그래서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드론자격증은 200만원, 촬영법은 50만원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자격증이 있어야 드론을 만질 수가 있나보다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의심이 생겼습니다.

'드론의 자격증이 뭐지...??'

열심히 검색을 해 본 결과 알게 되었습니다. 드론의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드론의 중량이 25kg가 넘는 것이라네요. 그러니까 24.9kg까지는 자격증이 필요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촬영을 위한 드론은 자격증이 전혀 필요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1kg전후니까요.

그래서 알게 되었지요. 의심하지 않았으면 또 거금을 날릴뻔 했다는 것을요. 아마도 수강생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하나라도 불러들여서 수입을 올려서 월급을 받아가도 덜 미안하겠지 싶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드론은 샀냐고요? 드론을 사려고 또 검색을 했습니다. 알아보니까 「매빅2줌」이라는 기기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략 170만원 정도의 가격이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좀더 알아보고 사자는 마음으로 자료를 찾다가 보니까 비행금지구역과, 비행제한구역도 알게 되었고, 공원에서도 촬영하면 안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론에 대한 생각이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드론을 잘 활용하면 풍수를 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명묘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명당을 누비면서 항공촬영을 할 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에 해 봤었거든요. 현공풍수를 공부하다가 해 본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헬기를 빌리면 되겠다는 생각도... ㅋㅋㅋ

어쨌든, 드론은 당분간 살 마음이 없어졌습니다만, 의심은 오늘도 계속 해야 할 모양입니다. 벗님의 학문이 진보했다면 그것은 100% 의심의 연료를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의심의 연료를 태워서 지혜로워지시기 바랍니다. 낭월도 그렇게 하루를 보낼랍니다. 그리고 내일도, 또 내일도요. 하하~!

무술년도 다 저물이 가는 달력을 보면서 잠시 믿음과 의심에 대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것은 문득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도마복음서에 대해서 도올 선생과 신학자들의 대화를 보면서 한마음이 일어난 것이기도 합니다. 의심탕을 많이 드시고 새해에도 큰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고요~~!!


2018년 12월 27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