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천간(3) - 乙木

작성일
2007-09-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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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滴天髓原文】




乙木雖柔. 刲羊解牛. 懷丁抱丙. 跨鳳乘猴.

虛溼之地. 騎馬亦憂. 藤蘿繫甲. 可春可秋.

을목수유. 규양해우. 회정포병. 과봉승후.

허습지지. 기마역우. 등라계갑. 가춘가추.




【滴天髓徵義原文】




乙木者甲之質. 而承甲之生氣也. 春如桃李. 金剋則凋. 夏如禾稼. 水滋得生. 秋如桐桂. 金旺火制. 冬如奇葩. 火暖土培. 生於春宜火者. 喜其發榮也. 生於夏宜水者. 潤地之燥也. 生於秋宜火者. 使其剋金也. 生於冬宜火者. 解天之凍也. 刲羊解牛者. 生於丑未月. 或乙未乙丑日. 未乃木庫. 得以蟠根. 丑乃濕土. 可以受氣也. 懷丁抱丙. 跨鳳乘猴者. 生於申酉月. 或乙酉日. 得丙丁透出天干. 有水不相爭剋. 制化得宜. 不畏金强. 虛溼之地.. 騎馬亦憂者. 生於子月. 四柱無丙丁. 又無戌未燥土. 卽使年支有午, 亦難發生也. 天干甲透. 地支寅藏. 此謂藤蘿松柏. 春固得助. 秋亦合扶. 故曰可春可秋. 言四季皆可也.

을목자갑지질. 이승갑지생기야. 춘여도리. 금극즉조. 하여화가. 수자득생. 추여동계. 금왕화제. 동여기파. 화난토배. 생어춘의화자. 희기발영야. 생어하의수자. 윤지지조야. 생어추의화자. 사기극금야. 생어동의화자. 해천지동야. 규양해우자. 생어축미월. 혹을미을축일. 미내목고. 득이반근. 축내습토. 가이수기야. 회정포병. 과봉승후자. 생어신유월. 혹을유일. 득병정투출천간. 유수불상쟁극. 제화득의. 불외금강. 허습지지.. 기마역우자. 생어자월. 사주무병정. 우무술미조토. 즉사년지유오, 역난발생야. 천간갑투. 지지인장. 차위등라송백. 춘고득조. 추역합부. 고왈가춘가추. 언사계개가야.




‘을목성질 보들보들 부드러운 그모습이

따스한날 소풍나간 잔디밭이 생각나네

부드러운 그속에서 엄청난힘 숨었으니

丑土거나 未土거나 마음대로 뿌리박고

丙火거나 丁火보면 겁나는게 전혀없어

酉金이든 辛金이든 마음대로 요리하네

다만습기 과다하면 뿌리썩어 고민되니

午火와서 말려줘도 근심걱정 쌓여가네

갑목등걸 만난다면 세상에서 행운이라

이리저리 얽혀들어 봄가을이 태평이네’




“乙木은 甲木의 質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갑목의 생기를 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 봄에는 복숭아나 오얏이라고 보니까 서리가 내리면 시들어 버리게 되는 것이고, 여름에는 벼나 곡식이라고 보니까 물로 촉촉하게 적셔줘야 잘 자라고, 가을에는 오동이나 계수라고 하겠으니 추워지면 불로 데워주는 것이 좋겠고, 겨울에는 기화요초(奇花妖草)라고 하겠는데, 불로 따스하게 해주고 흙으로 배양해주는 것이 좋다.

봄에 나면 불이 좋다는 것은 활발하게 자랄수 있기 때문이고, 여름에 물이 중요하다는 것은 땅의 건조함을 적셔주는 까닭이다. 가을에 생하면 불이 좋다는 것은 그 금을 극하기 위함이며 겨울에 생하면 불이 좋다는 것은 하늘의 추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규양해우라고 하는 말은 丑未월이나 乙未일 또는 乙丑일에 태어나도 통근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未土는 목의 창고에 해당하니 뿌리를 내릴 수가 있는 것이고, 丑土는 습토이므로 또한 기운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회정포병하면 과봉승후라고 한 말은 辛酉월에 나거나 乙酉일에 해당할 경우에라도 天干에 병정화가 투출되었고, 물이 극하지 않았다면 제하고 화하게 되므로 금이 강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허습지지면 기마역우라고 하는 말은 亥子月에 태어나서 사주에 병정화가 없고 戌未土도 없다면 年支에 午火가 있더라도 발생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天干에 甲木이 투출되고 地支에 寅木이 있다면 넝쿨나무가 소나무에 얽혀있는 것과 같아서 봄이든 가을이든 사계절이 모두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강의】




다음으로 등장을 하는 것은 十干의 나열 순서에 의해서 乙木이다. 그리고 애초에 십간은 이렇게 배열이 되었다. 그 배열은 오행의 이치에 부합이 되어있다. 그리고 수리학의 배열을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형성된 배열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다음의 도표를 참고삼아 살펴보시기 바란다.










五行十干



















四象이나 八卦로부터 벗어나면서 십간의 배열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봤다. 이 배열은 오행의 배열에 맞추고 십간의 일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겠다. 그러니까 十干의 개념이 실용적으로 쓰인 것은 이렇게 五行相生의 흐름이 잡히고 나서라고 보여지는데, 많은 학인 들의 의문 속에는 어째서 자연의 흐름이 이렇게 木火土金水로 일관성있게 배열되어 있느냐는 점이었다. 즉 陽木이 다음에는 陰木일이고 그 다음은 陽火...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되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하는 이면에서는 너무 인위적이 아니냐는 의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매일 매일의 흐름이나 매월의 흐름이나 매년의 흐름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오행 상생의 흐름으로 전개가 된다는 것이 다분히 기계적이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발생하는 것은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품어 봄직한 의문이다. 때로는 예외도 있을 법도 한데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진행이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낭월이로써는 감히 답변을 드릴 주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어서 언급을 회피한다. 물론 나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디엔가 설명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칙이 언제 세워졌느냐고 하는 점이 아니고, 또 어째서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는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얼버무리는 이야기는 ‘꿩잡는게 매가 아니냐?’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운명이 그 틀에 집어넣어서 부합이 되면 그만이지 그 연유를 모른다고 해서 부정하겠느냐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에 독전(毒箭)에 대한 비유가 있어 말씀드려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심오하기는 한데, 과연 이 말이 확실한 검증을 거친 말입니까? 혼자서 나무아래에서 벌벌 떨면서 꾸며낸 공상이 아닙니까? 무엇으로써 인간이 윤회를 한다는 말에 대해서 증명을 하실랍니까? 그러한 것으로 모든 것이 증명되지 않으면 저는 결단코 당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어서 증명해 보시오.”

이렇게 주장을 한 사람은 부처의 말에 대해서 반신반의를 하던 무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야만 하는 당시의 상황도 짐작이 된다. 왜냐면 언제나 스스로를 부처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기 때문에 우선 듣기에는 석가모니의 말이 그럴싸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또 입심이 좋은 놈에게 사기를 당하지나 않을까 싶어서 스스로 확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놓고서 감히 깨달은 성자 앞에서 무례하다고 말한다면 당시의 상황을 너무도 인식하지 못한 부처의 종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도사는 자신의 깨달음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요구는 참으로 현실적이면서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대해서 부처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어느 나라의 왕이 전쟁을 치는 중에 적이 쏜 독화살에 맞고 말았소. 그래서 화살을 맞은 자리는 독이 퍼져서 시퍼렇게 변해갔고, 신하들은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얼른 화살을 뽑고 독을 제거하려고 달려들었단 말이오. 그러자 왕이 절대로 안 된다고 펄펄 뛰는 것이었소. 그의 말은 이렇소.

‘놔둬라 이 화살을 쏜 녀석이 어느 놈인지 알기 전에는 절대로 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살의 독은 어느 독을 써서 만들었는지도 빨리 분석을 하라 그러기 전에는 화살을 뽑을 수가 없느니라. 화살의 촉은 어느 광산에서 나온 철인지 또 화살의 대나무는 어느 대밭에서 자른 것인지도 확인을 해라 이러한 것이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 화살을 뽑을 수가 없다. 나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이 지엄한 왕의 명인지라 달리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왕은 화살 독에 중독이 되어서 그만 죽고 말았소. 지금 여러분들이 증명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왕의 이야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겠구랴. 윤회를 증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릴 참이오? 그리고 또 자신의 악업이 지옥으로 떨어지는지 선업이 천국으로 데려가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릴 참이오? 내 말을 따르고 말고는 그대들이 알아서 할 일이오. 나는 다만 그대들에게 내가 스스로 깨달은 것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줄 뿐이오. 나는 그대들의 비위에 맞도록 일일이 증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소.

나는 이제 자유를 얻어서 영혼이든 육체든 편안하오. 그러니까 그대들이 나를 따라서 수행을 하든 말든 관심이 있을 턱이 없소. 다만 그대들은 그래도 진리를 찾아서 노력을 하던 사람들이라서 내가 하도 딱해서 이야기를 해준 것이오. 그리고 시간이 마냥 있는 것도 아니오. 나는 머지않아서 세상을 떠나서 적멸한 곳으로 갈 것이오. 내가 떠난 다음에 그대들은 후회를 해도 이미 늦을 지도 모르오. 삼계(三界)는 그대로 불바다와 같은 것인데, 그대들이 그렇게 콩인지 팥인지 구분만 하고 있다가는 어느 세월에 그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질지가 참 걱정이오. 따르고 말고는 그대들 알아서 할 일지만 내가 한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두가 이치에 맞다는 것을 헤아릴 수가 있을 것이오. 알아서 하시구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벗님들이 이 자연의 구조가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십진수로 흐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낭월이에게 물으실 적마다 이렇게 독전에 대한 비유가 떠오르게 된다. 그 이유는 낭월이도 모르므로 믿거나 말거나가 되어버리는 꼴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나 낭월이나 모두 이 흐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인과(因果)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즉 이렇게 적어도 수천 년을 일관성있게 유지되어온 체계가 자연의 이치에 어우러지지 않았다면 이미 명리학은 그 존재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낭월이도 이 원리는 자연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 이면에서 자연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버리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드리지만 이 기본적인 원리의 흐름은 믿어도 좋겠다고 말씀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원숭이처럼 흉내를 내어 본다면...




“그렇게 甲木이 처음인지 戊土가 처음인지를 생각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대의 인생도 흘러갑니다. 부지런히 자연의 흐름을 읽어서 보다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으로 봅니다. 지금부터 어느 것이 먼저인지 궁리를 해봐도 결국은 그 해답은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낭월이는 그대가 이 이치를 믿거나 말거나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낭월이는 이미 五行의 이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믿고 또 편안합니다. 다만 기왕에 길을 찾고 헤매시는 중이라면 다시 한번 낭월이의 말씀이 이치에 부합이 되는지 허황한지 생각을 해보시면 능히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이 되신다면 남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묻지 마시고 스스로 부지런히 공부를 하셔서 올바른 길을 빨리 찾아가시기 바라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乙木의 계절별 활용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 그리고 여기에서 보면 을목은 풀이라고 하는 공식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을목은 화초라고 하는 이야기는 벗어버린 것으로 봐도 되겠다. 다만 계절별로 필요한 성분을 굵직굵직하게 대입시켜놨는데, 같은 의미의 불이 필요한 것도 계절별로 의미를 달리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봄에 필요한 불과 가을에 필요한 불이 그 목적을 달리한다는 것이 자연을 올바르게 관찰한 다음에 내린 결론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유난히도 불의 협조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불이 없이는 여름 말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봐야 하겠기 때문이다. 을목은 그렇게도 불을 좋아하는가 보다.







일일이 단락별로 설명을 한다. 그래서 구태여 별도의 설명을 추가하지 않아도 되겠다.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