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간지총론 - 제1장 논천간(1)

작성일
2007-09-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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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논천간(論天干)
 
【滴天髓原文】


五陽皆陽丙爲最 五陰皆陰癸爲至
오양개양병위최 오음개음계위지


【滴天髓徵義原文】


術數之學. 皆原於易. 伏義先天之卦爲體. 乾坤爲主. 文王後先天之卦爲用. 坎離爲主. 乾坤, 天地也. 坎離,水火也. 干支體用. 故陽以丙爲最. 陰以癸爲至. 蓋丙乃純陽之火. 萬物莫物不由此而發. 得此而茂. 陽極則陰生. 故丙辛化水. 陰極卽陽生. 故戊癸化火. 陰陽相濟. 萬物有生生之妙也. 夫十干之氣. 同出一原. 甲乙,一木也. 丙丁,一火也. 戊己,一土也. 庚辛,一金也. 壬癸,一水也. 卽坎離震兌也. 名由假定. 氣本無形. 卽分別所用. 亦不過陽剛陰柔. 陽建陰順而已. 竊怪命家作爲歌賦. 比擬失倫. 如棟梁花果太陽燈燭等喩. 至位可哂. 後學拘泥執着. 而詞害意. 於是穿鑿附會. 種種謬論. 由此而生. 皆由習命理者. 少通人之故也.
술수지학. 개원어역. 복의선천지괘위체. 건곤위주. 문왕후선천지괘위용. 감리위주. 건곤, 천지야. 감리,수화야. 간지체용. 고양이병위최. 음이계위지. 개병내순양지화. 만물막물불유차이발. 득차이무. 양극즉음생. 고병신화수. 음극즉양생. 고무계화화. 음양상제. 만물유생생지묘야. 부십간지기. 동출일원. 갑을,일목야. 병정,일화야. 무기,일토야. 경신,일금야. 임계,일수야. 즉감리진태야. 명유가정. 기본무형. 즉분별소용. 역불과양강음유. 양건음순이이. 절괴명가작위가부. 비의실윤. 여동량화과태양등촉등유. 지위가신. 후학구니집착. 이사해의. 어시천착부회. 종종류론. 유차이생. 개유습명리자. 소통인지고야.


‘五陽이 모두 양이지만 그 중에서도 丙火가 가장 양이라고 하겠고, 五陰이 모두 음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癸水가 진정으로 음이라고 하겠다.’


“술수 즉 역학의 學文은 모두 그 원류를 易에다가 두고 있다. 복희씨가 선천팔괘를 만들었으니 이것은 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주인으로 삼았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文王이 후천의 팔괘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는 물과 불이 위주가 된다. 건곤(乾坤)은 하늘과 땅을 말하고 감리(坎离)는 물과 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干支에서는 用을 논하니, 그래서 간지의 음양 중에서는 丙火가 가장 陽답다고 하겠고, 癸水가 가장 陰답다고 하겠다. 丙火는 순양(純陽)의 불이므로 만물이 병화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발생(發生)을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발생을 얻은 다음에는 수렴(收斂)을 해야 하는데, 계수는 순음(純陰)의 물이 되는 까닭에 만물도 또한 계수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부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얻어야만 무성하게 된다고 말할 것이니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하는 이치로써 丙火가 辛金을 만나서 물로 화하게(化水) 되는 것이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생하는 이치에 의해서 癸水가 戊土를 만나서 불로 화하게(化火) 되는 이치가 되니, 이것이 바로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하고 이러한 이치로 인해서 만물은 생하고 또 생하는 오묘한 이치가 되는 것이다.
氣는 본래 형체가 없다. 그러니까 쓰이는 곳을 각자 분별해야 하겠다. 또한 같은 오행이면서도 陽은 강하고 陰은 부드러운 것에 불과하며 양은 건왕하고 음은 유순하다는 것으로 말을 해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명리학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의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면 괴상도 않더라. 무슨무슨 노래(歌)니 무슨무슨 비결(賦)이니 하면서 글을 지어서 남겼는데, 그 내용에는 의심스럽고 논리적인 체계도 없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부분이 상당하더라.
예를 든다면 甲木은 대들보요, 乙木은 꽃나무요, 丙火는 태양이며, 丁火는 등불이라고 하는 둥, 참으로 웃기는 말들(可哂)을 하는데, 그 양반들이야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글을 보면서 공부하는 후학은 또 거기에다가 설명을 넣고 확대해석을 해서는 참으로 황당한 것에다가 집착을 하게 되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게 되니, 이렇게 엉뚱한 곳에 구멍을 파고(穿鑿) 또 억지로 떼어다가 붙여서는(牽强附會) 이로부터 다시 발생하게 되는 온갖 종류의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謬論)이 여기에서부터 발생하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이렇게 명리공부를 하는 학자들이 도저히 사주팔자에 통달을 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은 당연할 밖에.”




【강의】


‘오양개양....운운’하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글귀여서 아마도 어떤 책이든지 명리학을 다루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한두 마디 들어있기 마련인 내용이다. 별도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철초님의 설명이나 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술수의 학문이라고 한 것은 陰陽五行을 바탕에 두고서 인간의 운명을 논하는 모든 학문에 대해서 총체적인 의미로 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天干에 대한 이치를 연구하는 단계로 접어드는가 보다. 원문에서도 丙火랑 癸水가 등장을 했다. 그리고 복희(伏羲)가 나오고 문왕(文王)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또 상식이라는 이름 하에 약간 부연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명색이 적천수를 강의하겠다고 나섰으니 사전을 뒤져서라도 의문이 남지 않도록 설명을 드려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희는 뭐고 선천은 뭔지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1) 伏羲에 대해서


태고에 복희씨라고 하는 성인이 있었다고 한다. 태고라고 하는 것은 요즘말로 하면 ‘아득히 먼 옛날하고도 그 옛날...’ 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문자도 없고 인간과 동물의 구분도 애매하던 옛날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중국을 창건했다고도 하는데, 고대로 삼황(三皇)이라고 하는 세분의 황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伏羲, 神農, 皇帝이다. 이들에 대해서 모두 살펴보기는 시간이 걸리고, 간단하게 복희에 대해서나 사전에 나와있는 정도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전을 살펴보니....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이다.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그물을 발명하여 고기 잡는 방법과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대(漢代)의 『위서』라는 책에서는 그의 어머니 화서(禾黍)씨가 뇌택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그를 낳았다고 한다. 또 열자(列子) 라는 책에서는 그의 모습이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소의 머리에 호랑이의 꼬리를 갖고 있다고 하며 중국에서는 조물주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는 정도로 나와있다.


상황으로 봐서는 봉신방(중국신화전) 시리즈에나 나올 정도라고 생각이 된다.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하면 되겠다. 여하튼 이렇게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 팔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易의 근원이 오래 라는 의미도 되겠다.


2) 河圖와 先天의 八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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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 복희때에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갖고 나온 그림이 하도(河圖)인데 그 그림을 바탕으로 하고서 도표로 만든 것이 선천수(先天數)이고, 그 그림이 선천팔괘도의 원형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 도표를 보면 하늘과 땅이 주축이 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땅의 원형이라고 이해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태초에 하늘과 땅이 있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을 선천팔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초님의 설명을 다시 살펴보면 복희씨가 만든 선천팔괘에서는 하늘과 땅이 주축이 되었다.‘니까 선천팔괘도를 보면 틀림없다고 확인하면 되겠다. 그리고 문왕의 후천팔괘에서는 감리(坎離) 즉 水火가 주축이 되었다는 설명은 이 표를 봐서 충분히 납득이 되실 것으로 본다.


3) 洛書와 後天의 八卦圖


내친김에 낙서(洛書)에 대해서도 살펴본다면 夏나라의 우임금이 홍수를 퇴치하고 나니까 낙수에서 묘하게 생긴 거북의 등에 그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낙서(洛書)라고 하게 되었으며 문왕은 그 그림을 보고서 후천팔괘도를 찾아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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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복희가 만든 선천팔괘는 음양오행을 연구하는 경우에 있어서 그 體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체라고 하는 것은 원형이라고 이해를 해도 될 것이다. 가령 사전 식으로 생각을 해보면 ‘하다’ 라고 하는 體를 놓고서 ‘하니’ ‘하시니’ ‘하여’ ‘하시고’ 등등의 用이 나타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선천팔괘도는 음양가의 體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수 천년 동안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 체에서도 중요한 것은 乾坤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심에서 보면 위에는 乾이 있고, 아래에는 坤이 있어서 건곤이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체중의 체가 건곤(乾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문왕이 만들었다는 후천의 팔괘는 다시 음양오행의 用이 되는 것으로 설명이 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文王이라고 하는 양반은 또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야 하겠는데, 실제로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뭐라고 설명을 드리기가 어렵다. 여하튼 성군(聖君)이라고 칭송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體用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을 하게 되는데, 이 것은 앞으로 두고두고 음미를 해야 할 부분이다.


4) 體用의 비중에 대해서


뭐든지 서로 대립이 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어느 놈이 이기는지를 구분하려고 드는 것이 중생심이다. 하다못해 레슬링의 왕과 권투의 왕이 있으면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기겠느냐는 말도 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 대결을 벌이기도 했던 일이 있었다. 알리와 이노끼 였던가...? 그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느냐고 해서 그렇게 한 판 붙었던 기억이 난다. 이 싸움을 하고 나서 알리가 한 말이 ‘세상에 누워서 돈을 버는 것은 창녀와 이노끼’라고 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는데 당시에 이노끼는 누워서 레슬링의 기회를 보고 있었을 것이고, 알리는 두 주먹을 쥐고 서서 복서의 폼을 잡았을 것이니 어쩌면 각자 자기 좋을 대로 응수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진리에서는 그렇게 대립이 되는 것으로 구분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매력이다.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거부해버리는 것이다. 즉 共存에 대해서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련한 인간이 누가 중요한지를 구분하는 것이고, 이것은 도덕경(道德經)에서 말하는 이름에 매이지 말라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름에 집착을 했으면 그렇게 이름에 매이지 말라는 말을 앞머리에 했겠느냐는 노자님의 심정을 헤아릴 만도 하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하면 자연의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또한 본래의 이름이 아니다.


이러한 말을 해야 하는 배경에는 사람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까닭에 하도 애가 타서 이르는 한 말씀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체와 용에 대해서도 어느 것이 중요한가를 구분하는 것은 낮과 밤에서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묻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는 몸과 마음 중에서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묻는 것과도 비할 수가 있겠다. 이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은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하면 되겠는데,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고 나선 것이 적천수라고 할 수가 있겠다. 특히 명리학에 대해서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면 ‘체에 집착을 해서도 안되고, 용에 집착을 해서도 안되고, 체와 용을 벗어나서도 안 된다’는 말씀의 메아리가 여기저기에서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까닭이다. 체가 없는 용이 존재를 할 수가 없으며 용을 무시한 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체와 용을 모두 인정하게 됨으로써 완전한 진리의 모습을 살필 수가 있다는 암시를 철초님께서 하고 싶으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저 十干의 기운은 같은 근원에서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니, 甲乙은 같은 木이고, 丙丁은 같은 불이며, 戊己는 같은 土이다. 그리고 庚辛은 같은 金이고, 壬癸도 같은 水이다. 즉 水火木金土를 다른 말로 빌렸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뻔한 이야기 누가 모르겠느냐고 하는 생각을 해서는 별로 소득이 없다. 누가 물어 봤느냐고 떼거지를 쓰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접근을 해서는 진리는 여전히 깜깜한 채로 그렇게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째서 그렇게 말을 했느냐고 하는 ‘心中 헤아리기’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묘하게도 心中과 中心은 같은 글자의 다른 배합이면서도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중심은 요즘 말로 ‘센타’라고 하는 말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무역쎈타를 무역중심(貿易中心)이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간판에 보이는 모든 中心은 센타로 이해를 하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심중은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까? 다른 말로 하면 ‘내심(內心)’이 되겠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철초님의 심중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철초님의 심중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대대손손 전달해주는 원인을 그 엉터리 선배들이 제공했다고 하는 것으로 혐의를 두게 되고, 그것이 하도 답답해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甲木과 乙木이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마 속으로는 씁쓰레했을 것이다. ‘내가 이 나이에(몇 살이셨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시시껄렁한 소리까지 힘들게 적어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싫구나... 그래도 이렇게나마 하지 않으면 어느 천년에 명리학을 의지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꼬... 그래서 귀찮기는 하지만 이렇게 적어 놓지 않을 수가 없는 걸...’
예전에는 글 한 줄 쓴다고 해도 이렇게 키보드로 ‘타다닥 타다닥’ 두드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이었다. 먹을 갈고 종이를 잘라서 펴고 붓을 적셔서 마음을 가다듬고 한자한자 힘주어 적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조차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중요한 의미의 말씀을 하셨던 명리학의 애착으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그 의미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왜냐면 이 심정을 낭월이도 느끼고 있으니까 말이다.
과부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철초님 마음을 낭월이는 약간 알 것도 같은 심정이다. 그래서 감히 해설서를 쓰겠다고 덤비기는 했지만, 참으로 여러 가지로 착찹한 심경을 헤아리면서 많은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인연으로 벗님께서나마 황당한 엇길로 헤매시지 말고 올바르게 명리도(命理道)에 입실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滴天髓原文】


五陽從氣不從勢. 五陰從勢無情義
오양종기부종세. 오음종세무정의


【滴天髓徵義原文】


五陽氣闢. 光亨之象易見. 五陰氣翕. 包含之蘊難測. 五陽之性剛健. 故不畏才煞. 五陰之性柔順. 故見氣勢旺盛. 易於順從. 大都純陰之性. 城府深沉. 純陽之性. 豪爽慷慨. 凡趨勢忘義. 處世驕諂之輩. 大抵陰氣爲戾. 然而柔能制剛. 剛不能剋柔也. 尙有陽中之陰. 陰中之陽. 又有陽外陰內. 陰外陽內之辨. 陽中之陰. 外仁義而內奸詐. 陰中之陽. 外凶暴而內仁慈. 陽外陰內者. 包藏禍心. 陰外陽內者. 兼持直道. 此關於人品之端邪. 然亦不可執着. 要當觀其氣勢順正. 四柱五行停勻.庶不偏倚. 凡持身涉世. 必先知人. 擇先而從之道. 亦不可不知也.
오양기벽. 광형지상이견. 오음기흡. 포함지온난측. 오양지성강건. 고불외재살. 오음지성유순. 고견기세왕성. 이어순종. 대도순음지성. 성부심침. 순양지성. 호상강개. 범추세망의. 처세교첨지배. 대저음기위여. 연이유능제강. 강불능극유야. 상유양중지음. 음중지양. 우유양외음내. 음외양내지변. 양중지음. 외인의이내간사. 음중지양. 외흉폭이내인자. 양외음내자. 포장화심. 음외양내자. 겸지직도. 차관어인품지단사. 연역불가집착. 요당관기기세순정. 사주오행정균. 서불편의. 범지신섭세. 필선지인. 택선이종지도. 역불가부지야.


‘甲丙戊庚壬은 기를 따르고 세력은 쫓지 않고,
乙丁己辛癸는 세력을 따르게 되면 의리가 없다.’


“五陽은 기가 열리는 성분이므로 빛나고 활발한 성분이니 관찰을 하기가 쉬운데, 五陰은 기세가 닫히는 성분이어서 속으로 포장이 되어 있으므로 그 속을 헤아리기가 무척 어렵다. 다시 말하면 五陽은 성질이 강건(剛健)하다고 할 수가 있겠고, 그래서 관살이 많이 있더라도 겁을 내지 않는 성질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오음은 성질이 유순하므로 주변의 기세가 왕성하게 힘을 발휘한 것을 보면 그대로 왕성한 세력에 따르게 되는 성분이다. 즉 순종을 잘 하는 성분인 것이다.


대체로 순음(純陰)의 성질은 도성(都城)으로 비유를 한다면 깊고 은밀한 곳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순양(純陽)의 성질은 또한 호쾌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대저 세력을 따르면서 의리를 져버리기 쉬운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면 아첨을 하게 되고, 반대로 낮은 사람을 만나면 교만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성분은 음기(陰氣)의 단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을 해본다면 부드러움이 오히려 강함을 제하는 것이 또한 자연의 법즉이다. 그리고 강제로는 도저히 이 음의 성분을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강한 가운데에도 음의 성질을 띤 것이 있고, 기본은 음의 성분이면서도 내심 양의 강인함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특성과 외강내유(外剛內柔)의 특성이 나타난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 다시 설명을 해본다면 양중의 음에 속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인의를 주장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간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 음중의 양에 속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흉폭하면서도 속으로는 인자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또 외양내음의 사람은 재앙의 심리(禍心)를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이고, 외음내양의 사람은 내심 올곧은 성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성분들로 인해서 그 사람의 성품이 단정한지, 사악한지(端邪)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 고집을 부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그 사주를 살펴서 기세가 잘 흐르고 있으며 오행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치우치지 않고 괴팍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어쨌든 이 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잘 알아서 좋은 사람을 택하고 올바른 길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또한 몰라서는 안 된다.”




【강의】


陽干은 기가 열리는 성분이고 陰干은 기가 닫히는 성분이라고 크게 볼 수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확대해석으로 변하게 되면 양간은 남자답고 음간은 여성스럽다는 것으로 전개가 되면서 자칫 오류가 발생할 소지도 포함된다는 것까지도 생각을 해야 하겠다. 특히 뒷부분의 설명을 보면 사악하고 단정한 성품을 단지 음양으로 나눠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점은 너무 설명을 위한 접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설마하니 철초님께서 陽干(丙午일주시니까)이라고 해서 양간을 좋게 평가하신 것은 아니리라고 보는데, 설명을 잘못 헤아리면 음간은 못쓰고 양간은 쓸만하다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염려를 하는 것은 또한 낭월이가 陰干(己未일주니까)이기 때문에 하는 염려는 아니다. 그래서 철초님도 다시 뒤에다가 여기에 집착하지 말고 잘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不可執着. 要當觀其氣勢順正.. 운운)을 반드시 빼지 않고 넣으신 것이 있으므로 이러한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서 사람의 성격 등이 사주팔자에 모두 나타난다는 의미가 들어있게 된다. 그렇다면 사주를 잘 아는 것이 결국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바로 알고 상대하라는 의미가 되겠다. 더구나 옛날 같으면 사람을 잘못 사귀어서 처형을 당하기도 하므로 참으로 중요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陰干은 사악하고 陽干은 호탕하다는 말이 있지만 여기에 집착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 멋지다. 그러니까 양간음간에 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행이 치우치고 몰려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표면적으로 양간이나 음간을 구분하는 것보다는 오행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음미를 해야 할 말씀이다.
이상의 한 게송(偈頌)이 ‘天干論’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까 적천수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통신송이 쓰여졌듯이 천간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양간과 음간의 특성이라고 한말씀 하신 것이다. 유백온님께서 하신 말씀이므로 철초님이 설명을 붙이면서 이름에 집착하지 말라는 정성을 기울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  보고서는 양간만 보면 사람취급을 하고 음간을 보면 의리 없는 인간으로 취급을 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을 태연하게 저지를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되었을 것이다.
말씀의 구조를 살펴보면 백온님은 긴말을 상당히 싫어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줄이고 줄여서 간단하게 적으려고 노력을 하신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귀찮았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많으시고, 글을 쓰려면 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기력이 딸려서 웬만하면 간단하게 표현을 하시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먹을 갈아서 붓글씨를 연습 해보시지 않은 벗님은 글 한 장을 쓴다는 것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시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백온님의 간결함을 좋아하는 성격과 나이가 들으셔서 힘이 드는 것과 서로 맞물려서 이렇게 요약된 내용의 적천수가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반면에 철초님께서는 오히려 이러한 것을 길게 늘어 벌려서 확실하게 그 뜻이 전달되기만 한다면 글 몇 장 더 적는 것은 기꺼이 투자를 하겠다는 의미가 많이 보인다. 그러니까 해설서가 되었겠지만, 철초님께서 이 글을 적으실 때에는 나이도 젊었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데 서체의 좋고 나쁨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셨을 것이다. 어차피 써봐야 볼품없는 글이니까 그냥 휘적휘적 자신의 생각대로 써내려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丙午 일주의 특성에서도 그러한 맛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행간(行間)에서 느껴지는 선생님들의 인품을 즐기는 것도 독서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