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용신이 틀렸을 경우

작성일
2007-09-11 21:1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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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리 신중히 한다고 해도..


용신을 올바로 찾는 것이 실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평명리학도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항상 용신을 찾는 연구를 열심히 하게 되고, 또 연구를 깊이 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고 학자이다. 아무래도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견해가 끼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왕왕 판단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학자로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상담을 의뢰한 본인으로써는 참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질문한 내용에 따라서는 사활(死活)이 걸린 내용을 포함할 수도 있기 때문에 “팔자용신이 틀리는 것은 명리지상사(命理之常事)라고 속편하게 생각만 할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아무리 왕왕 틀릴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본인의 입장에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중히 연구하고 또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 보다는 보다 객관적인 결론을 유도해 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의 정답만을 내기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100%의 정답만을 제공하는 선생님이 계신다면 아마도 도를 통한 도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오늘은 연구를 하면서 또 내일은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서 답변을 들려주고 하면서 살아가는 보통의 학자라고 한다면 누구던지 정확하게 100%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장담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여하튼 이렇게 올바로 찾아낸 사주를 적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신을 잘못 찾아서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명리학을 연구하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항상 책임의식을 가지고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틀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어떤 말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더라도 이미 그 사람으로써는 손실을 보고 난 다음이라고 하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다. 그래서 여하튼 최대한의 방지책을 강구해야 하겠는데, 이미 말이 혀를 타고서 상대방의 귀를 통해서 들어가버리면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니까 미연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않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때로는 용감하게 자신이 결정을 내린 용신에 대해서 어떻게던지 고집스럽게 밀어 부치고 싶은 때가 더러 있다. 오행의 이치로 봐서는 도저히 다른 방법으로써 해석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學者의 똥고집’이 발동을 하는데, 이것을 꺽기가 또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 해보셨는지 모르겠다. 이로 인해서 자신의 이론이 정확하게 통하는 것을 발견하면 상대적으로 즐거움이 늘어나지만, 또 반대로 결과적인 오류를 가지고 왔을 적에는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여하튼 용신을 잘 잡아서 결론을 내려야 하겠다는 생각은 백번 천번 다짐을 해도 넘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2) 용신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


용신을 잘못 잡음으로 인해서 방문자에게 고생을 시키는 일은 여하튼 없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낭월이는 이런 궁여지책을 사용하고 있다. 항상 내가 잡은 용신이 잘못 잡은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봐도 명확한 사주의 경우에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만, 보기에 따라서 용신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사주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고집을 꺽고 물어본다. 가령 낭월이의 생각에는 목이 용신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또 어떻게 생각을 해보면 금이 용신의 역할을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질문을 해야 마음이 놓인다.


“이 사주를 제가 볼 적에는 목의 운이 들어온 어느 해에는 좋은 일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실제로 그랬는지 궁금하네요. 어떻셨나요?”


이렇게 물어본다. 그냥 막연하게 몇 년도에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 것은 학자의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확인하는 식으로 물어본다. 그러면 대개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대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중에서도 왕초보사주학 등의 낭월이 책을 읽어보고 스타일(?)을 알고서 찾아온 경우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을 해준다. 그렇게 확인을 하면 대개는 처음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안심을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도 마음이 편한데, 이렇게 확인을 하지 않게 되면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고객도 여럿이 찾아오다 보면 그 성질도 각양각색이다. 개중에는 낭월이가 물으면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표정에서는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기색이 역력한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운명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 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이 소문과는 달리 자신에게 물어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을 까닭이 없다.

시작이 이렇게 되면 낭월이도 기분을 잡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면 다시 내 스타일을 이야기하고 아무래도 소문을 듣고 온 것은 잘못 하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언을 들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내 질문에 대해서 의견을 주시라고 하면 대개는 이야기를 해주지만 간혹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갈등이 생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조언을 올바르게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엉터리로 생각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개운치 않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낭월이의 방식에 대해서 강제로 권하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벗님이 스스로 생각을 해보고 알아서 방법을 강구 해보시기 바란다. 다만 낭월이는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확인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어쨌든 상담을 하기는 하되 용신의 오류를 어떻게던지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