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86) 용눈이오름

작성일
2021-07-01 20:43
조회
75

제주반달(86) [23일(추가7일)째 : 5월 31일(월)/ 2화]


추억이 가득한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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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에서 온평포구는 동쪽을 향해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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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꽤 있어서 38분이 걸린단다. 뭐 그래도 괜찮다. 점심을 먹고는 만장굴을 둘러볼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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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이미 둘러 봤던 적이 있었던 온평포구 옆이었구나. 아마도 그 무렵에 지나치면서 봐 뒀던 베트남 식당이었을 수도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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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똣똣이구나. 시간은 이르지만 출출했던 것은 아침으로 우동을 먹고 나와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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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조용해서 좋았다. 장소도 한적해서 사람들이 몰려들 곳은 아니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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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서 밖을 보니까 온평포구에서 세 공주를 맞이하던 제주도의 세 남자 이야기가 깔려있는 곳이로군. 발길이 머물렀던 곳은 확실히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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똣똣은 베트남 어로 '좋다'라는 뜻이로구나. 그럼 좋지. 좋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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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도 단촐하다. 메뉴는 적을수록 맘에 드는 식당이다. 메뉴가 많으면 뭘 먹어야 할지를 선택하기도 복잡한데 단순하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면 더 좋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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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은 호연네 부부가 알아서들 하니까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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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칠리 볶음 쌀국수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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똣똣볶음면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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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흑돼지 데리야끼도 시켜서 밥도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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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도 네 등분으로 나누니까 하나씩 먹기 딱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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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못 먹었다고는 못할 정도로 푸짐한 점심이 되었지 싶다. 모두 만족하고서야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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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사부님, 가는 길에 용눈이오름이나 보고 가요.
낭월 : 그렇긴 한데... 문을 닫아놔서....
화인 : 올라갈 수가 없다고요?
낭월 : 올 2월부터 2년간 용눈이도 쉰다더라 그래도 지나가면서 볼까?
화인 : 예~! 용눈이가 보고 싶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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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가볍게 산책을 했다. 그리고 더 큰 목적은 삼성혈의 이야기 중에서 연혼지의 사진이 빠졌다는 아쉬움을 채울 수가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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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해장성도 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혼포 표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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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벽랑국인지 완도의 작은 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세 여인이 찾아온 것과 그 여인들이 양씨, 고씨, 부씨를 남편으로 맞아서 음양의 도를 이뤘다는 것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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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혼포(延婚浦)가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봉처포(逢妻浦)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해 본다. 멀리 일출봉과 섭지코지가 보이니 구석구석에 묻어나는 여정의 기억들이 즉시로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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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그런데 해안의 구조로 봐서 포구의 자리는 아닌데 좀 이상하기는 하구먼시나 그런가보다 할 일이다. 그냥 온평포구를 연혼포라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약간의 의문만 한자락 남겨 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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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에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분쇄해 온 커피가루를 탈탈 털어붓고서 만들어 놓은 마지막 커피에 물을 타서 마시면서 다음 길을 떠난다. 여정의 재미는 이런 곳에 있다.

화인 : 그럼 다음은 용눈이오름으로 가볼께요.
낭월 : 나도 오랜만에 궁금하구나.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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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저나 만장굴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니까 시간적으로도 크게 손해가 날 일은 아니다. 더구나 과거의 추억까지 소환하는 일이니 더 말해서 뭤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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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안 와본 사이에 용눈이오름에는 넓직하게 주차장이 마련되었구나. 10년 세월은 이렇게 주변의 환경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기도 한 셈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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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없었던 안내문도 큼직하게 세워놓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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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도 산뜻하게 걸려있다. 용눈이는 쉬는 중이니 출입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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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화인아, 용눈이에 못 올라가서 안타까운 표정~!
화인 : 이렇게요?
낭월 : 배우 하지 않기를 잘 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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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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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럽게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는 용눈이오름을 보니 또 반갑다. 옛날에는 어지간히 누비고 다녔었는데. 푹 쉬겠구나. 2023년 1월 31일까지 2년 동안은 발길이 닿지 않을테니까 그야말로 '용와(龍臥)'의 시절을 누리지 싶다. 용이 누워있다고 용눈이라니까 한자로는 이렇게 표기하게 되는 모양이다. 뭐, 그럴싸 하네. ㅋㅋ

화인 : 사부님,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세요?
낭월 : 찾아봐야지. 십년은 넘었으려나....

용눈이오름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옛날에 남긴 흔적을 찾아서 대신 하는 것도 좋지 싶다. 뒤적뒤적~ 빛바랜 아니, 해 묵은 사진첩....


◆◆◆◆◆용눈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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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일의 용눈이오름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촬영일 기준 5월 31일이니까)이 13년 전에 용눈이오름에 왔던 날이 되는 셈인가 보다. 분위기도 딱 그시절 만큼이로구나. 용눈이오름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김영갑 선생의 사진집을 통해서였다. 당시에 한창 사진공부를 한답시고 분주하게 뛰어 다니고 사진책을 사 나르던 시절이었다. 물론 김영갑갤러리 '두모악'도 당연히 둘러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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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의 유려한 곡선을 접하고서야 김영갑 선생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지.  아침 7시 6분이면 꽤 일찍 서둘러서 나왔다는 말이로군. 소니 A700카메라였구나. 어지간히 끼고 돌아 다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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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700도 이미 몇 번의 바꿈질을 한 다음에 만난 카메라였지. 디지털은 소니알파100으로 시작했지 싶다. 그 전에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했을 테니까. 마침 오름을 좋아하는 조카의 부자도 동행을 했었던 모양이다. 당시의 풍경에 추억이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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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도 오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법을 제주도의 오름에서 배웠다는 말도 했던 것을 보면 오름의 곡선이 보여주는 매력은 쉽사리 벗어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오름만 보이면 올라가서 오름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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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에서 보이는 오름들도 많지만 특히 용눈이에서 건너다 보는 다랑쉬의 매력은 최고의 자태를 보여준다. 분화구를 살짝 보여주면서 매력이 뿜뿜이다. 그 앞의 아끈다랑쉬가 학자의 책상처럼 나즈막하게 있는 것도 귀엽지만 막상 올라가보지는 않았다. 다랑쉬에 취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오늘 용눈이에 올라간다고 해도 이와 같은 풍경은 담지 못하겠구나. 그 사이에도 주변은 많은 변화가 있었을테니 말이지. 그래서 사진은 옛 사진이 좋은 모양이다. 사람도 그렇다던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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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자가 제주반달 여행기를 보고서 말했다.

제자 : 사부님, 오름은 역시 동부쪽인 것 같아요.
낭월 : 왜? 서부쪽도 예쁜 오름이 얼마나 많은데?
제자 : 그렇긴 한데 동쪽의 오름들은 정감이 가거든요.
낭월 : 아하~! 용눈이를 보셨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서 바로 이해 했다. 제주도 전 지역을 보지는 않았지만 둘러 본 중에서는  용눈이를 닮은 오름은 만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 제자도 용눈이오름에 올랐다가 푹 빠졌더라는 말을 들려 준다. 참 묘한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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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한라산까지 보이는 날이었구나. 하늘이 도왔었군.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용눈이였는지도 모르겠네. 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매달리듯이 눈길이 닿는 곳마다 피어오른 소화산들의 자태에 빠져들만 한 풍경은 제주도 말고는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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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뒤적이다가 시커먼 풍경을 접하고는 열어 본다. 해는 바뀌어서 2010년 1월 9일이었구나. 시간은 7시 16분. 6월과 1월의 차이이다. 아직도 사방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데 그 시간에도 용눈이를 찾았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오름에 올라가서 성산쪽에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겠다고 나섰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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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기억난다. 당시에 타고 다녔던 차는 산타페였지 그때는 벽돌을 밟고 울타리를 넘어서 용눈이 오름으로 가야 했었는데 다시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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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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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

손지봉과 이웃해 있는 오름으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바로 올라갈 수 있어 정상까지 이르는 시간이 10~15분이면 넉넉하고, 정상의 분화구를 도는 시간도 10분 정도면 돌 수 있다. 높지는 않으나 산체는 넓어서 듬직한 감이 있는 오름이다. 산정부는 북동쪽의 정상을 중심으로세 봉우리를 이루고, 그 안에 동서쪽으로 다소 트여있는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산체는 얕은 분화구가 세 군데로 무너진 형태로 보인다. 서사면 기슭에는 정상부가 주발모양으로 오목하게 패어 있는 아담한 기상화산과 원추형 기생화산인 알오름 2개가 달려 있다. 표고는 약 80m, 오름 기슭자락에는 따라비나 둔지봉, 서금은오름의 주변과 같이 암설스코리아가 이동, 퇴적된 것으로 알오름이나 언덕 같은 형태를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의 전 사면은 목초인 겨이삭과 개민들레, 잔디, 제비꽃, 할미꽃 등 키가 크지 않은 초본류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초원처럼 보이며, (?)와 함께 풀밭을 이루는 아름답고 전형적인 제주오름의 모습이며, 지피식물로서 미나리아재비, 할미꽃 등이 자생하고 있다.
최근까지 방목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화입을 하지 않게 되면서 차차 오름의 동사면과 아랫부분부터 찔레며 국수나무 등 초원을 장식하는 관목류들이 들어서고 있으며, 북사면 근처에는 억새와 띠 등도분포하고 있다.
예전에는 꽃향유가 오름 사면을다 덮어 보라색으로 물드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던 오름이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개민들레 등의 외래종들이 독점하여 자생하고 있고, 본래의 자생식물들이 거의 자취를감추고 있어 안타까움이 들게 하는 오름이다.

설명문을 보다가 보라빛으로 뒤덮인 용눈이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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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오름을 둘러보고는 다랑쉬로 향했었구나. 이곳은 다랑쉬로 올라가는 길인 것을 보니 대략 짐작이 된다. 그러니까 다랑쉬오름에서 멀리 아침의 풍경을 보려는 계획을 세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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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하늘이다. 하늘이 도와주면 찬란한 태양을 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선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을 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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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가득한 성산 일출봉의 풍경하며 성산포구에 불빛들이 보인다. 그때는 일정이래야 불과 2~3일이었을테니 이번의 여행길같이 '오늘이 아니면 내일 또 가면 되지'를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그 안타까움은 열 배나 되었지 싶다. 어승생악이나, 가파도와 마라도나, 차귀도까지도 다시 찾아갈 수가 있었던 것은 여정이 길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것조차도 주어진 만큼만 보고 말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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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12mm렌즈였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최애의 광각이었구나. 당시의 12mm라면 탐론이었나? 소니는 없었을텐데.... 여하튼. 25분의 1초의 노출을 했으니 삼각대도 챙겼다는 말이겠고.... 당시의 카메라는 손떨방도 없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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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뭔 상관여. 앞에는 드러누운 용의 요염한 자태가 저렇게나 멋지게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지. 그때도 풍력발전기는 돌아가고 있었음을 이렇게 사진을 통해서 알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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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봤으면 에베레스트라도 오른 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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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화인은 135mm 렌즈를 사용했었나? 역시 망원은 70-400이지. 당시에 이 렌즈가 나온다는 말에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무거운 것이 좋다는 카메라점 아지매의 말만 믿고 거금을 지불했던 짓조삼각대가 무거운 줄도 모르고 짊어지고 다녔었구나. 그 삼각대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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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은 떠나도 권력은 영원하다.'고 했다는 검사가 있었다는데, 그 말이 문득 떠오른다. 카메라는 그 사이에 몇 대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삼각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말이 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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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댓바람에 높디 높은 다랑쉬 오름에 올라서 눈덮인 풍경에 자유시간인지 양갱인지를 먹고 있는 화인이 와이래 짠~해 보이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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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에 오르면 헉헉~ 소리가 나야 했는데 오르고 나면 그 멋진 장관으로 인해서 힘든 것은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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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사진가 처럼 보이구로 한 장 찍어봐라."

아마도 이런 주문을 했지 싶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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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선생의 모습을 떠올렸지 싶다. 용눈이오름에 남긴 선생의 발자국들.... 제주도 중산간을 바람과 안개와 더불어 벗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전문가의 향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꼈던 시절이었구나. 그렇게 애지중지 하면서 쌓아놨던 보물인 필름들이 폭우로 인해서 물에 잠겼을 적에 허탈해하는 글을 보면서 마음이 쓰라렸던 생각도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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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의 정취를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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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빨갛구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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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다랑쉬를 언제 또 올라 보겠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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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랑쉬는 분석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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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없는 산거렁뱅이로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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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화인은 다랑쉬를 배경으로 잘 찍어줬잖여. 바탕이 예쁘니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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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은 사진만이 아니라 추억도. 이렇게 과거를 떠올릴 수가 있는 것이 좋군. 그 후로도 몇 차례는 더 용눈이오름에서 서성였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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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화인아, 한 손을 요래 들고 있어봐라.
화인 : 또 뭘 하시게요?
낭월 : 옛날 용눈이에 갔던 사진을 보다가.
화인 : 이렇게요?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 화인에게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다. 11년이 지난 화인의 모습이 비교가 되려나 싶은 생각도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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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2년 후에 다시 오면 둘러보는 것으로 하지... 아쉬운 마음은 이렇게 기약없는 미래와 약속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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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앞에는 길을 공사하느라고 분주하구나. 뭔가를 짓기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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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돌은 옛날 그대로인데 아래가 바뀌었구나. 다랑쉬 설명이 들어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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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月郞峰]

다랑쉬오름은 구좌읍 세화리 산6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부지역의 오름들 중에서 비고가 가장 높은 오름이다. 오름 밑지름이 1,013m에 이르고 전체둘레가 3,391m나 되며 오름 위에는 깔때기 모양의 넓고 깊게 파인 굼부리가 있는데, 바깥 둘레가 1,500여 m이고 깊이가 백록담과 비슷한 115m에 달한다. 오름의 외형은 둥글면서 봄시 가파른 비탈을 이루고 있고 삼나무, 편백나무, 해동 등이 조림되어 있으며 정상부에는 억새, 절굿대, 가시쑥부쟁이 등이 자라고 있다. 오름으 남쪽에는 4.3사건으로 사라진 '다랑쉬마을(月郞洞)'과 4.3희상재인 유골 11구가 발견된 '다랑쉬 굴'이 있다.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미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다랑쉬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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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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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사부님,  정상에 올라가실 겁니까? 그건 아니시죠?
낭월 : 왜? 올라가고 싶나?
호연 : 아, 아닙니다. 이미 많이 다녔습니다. 
낭월 : 그렇지 싶어서 안 올라 갈란다.
호연 : 그럼 사진이나 찍어놨다가 나중에 갔다고 뻥을 치죠.
낭월 : 그럴래? 그것도 좋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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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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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다랑쉬를 올라가는 사람은 있구나.

화인 : 시간이 되면 올라가보고 싶기는 해요.
낭월 : 그건 다음에 하는 걸로. 
화인 : 마음이 그렇단 말이죠. 호호~!
낭월 : 모진 바람을 맞으면서 올랐던 시절?
화인 : 맞아요.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낭월 : 그럼 올 겨울에 또 오는 걸로.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