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3] '학폭'이라니 떠오르는 그 시절의 단상들.....

작성일
2021-02-1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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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학폭(學暴)'이라니 떠오르는 그 시절의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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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아직도 날은 추운데 복수초꽃이 찾아왔습니다. 산골살이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황량한 화단에 어느 순간 샛노란 꽃송이가 솟아올라오는 것을 보는 맛이지요. 어제 쏟아진 폭설에 이내 덮여버리고 말았습니다만 눈이 녹으면 다시 모습을 보여 주지 싶습니다.

난데없이 학폭(學暴)이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는 바람에 낭월도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생각들이 몇 조각 떠오르네요.

"넌, 왜 맞기만 하노, 같이 달려들어서 때려줘야지~!"

어쩌면 어머니의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시절에 어머니의 말씀을 다 들어드렸지만 이 말씀은 못 들어드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려들었다가는 더 코피터지게 맞기만 할 것이 불을 보듯 빤했기 때문이었던 모양입니다. 하하~!

세월이 흘러서 50년도 더 된 옛날의 일이 되었습니다. 창원군 동면에 가면 신방국민학교가 있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무들은 모두가 착했습니다. 그래봐야 7세의 아기들입니다만, 안면도의 창기국민학교까지 흘러가서 살아가는 나날은 유배생활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요.

"엄마, 창원으로 가면 안 되겠나?"

아홉살이나 되었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얻어맞고 집에 돌아와서 겨우 한다는 말이 이랬습니다. 기차타고, 버스타고 배도 타고, 또 걷고 걸어서 찾아온 안면도 창기리였습니다. 부모님의 사정이야 알 바가 없었으니 그야말로 '산설고 물설은' 곳이 끝없이 싫었을 따름일 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맘은 아마도 찢어졌으려니 싶습니다.


1. 째려본다고 맞고...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전혀 째려볼 마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얻어맞는 이유가 항상 같았습니다.

"얼레~! 이 자식 째려보는 것 봐~!"

물론 째려본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들을 놈들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실은 한쪽 눈이 안 보여서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한눈은 크고 한 눈은 작으니까 그랬을 법도 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이해했으니까요. 째려봐서 기분나빴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또 '퍽퍽~!' 맞았습니다. 내편은 없었습니다. '더 때려라~!'라고 하는 말만 들렸으니까요. 뭐 그랬습니다. 그 시절의 우충충한 기억들입니다. 하하~!

아마도 갑진(甲辰8세)년, 을사(乙巳9세)년 무렵이었겠습니다. 이어지는 병오(丙午10세)와 정미(丁未11)까지도 그랬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운도 참 더럽게 흘러갔네요. 그러니까 운이 나쁜 탓이었단 말입니까? 우째 그런 일이 있단 말인지.... 흐흐흐~!

놀림깜으로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 봅니다. 타관객지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어려서 이사를 다니면서 부모의 학교에 대한 무관심이거나 혹은 관심을 가져 줄 겨를이 없거나 여하튼 절해고도에 내팽개쳐 진 듯한 느낌의 시절이었던가 싶습니다. 벗님은 공감을 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에망총', '눈찌그댕이', '엽총'까지 다양했습니다. '꿩 많이 잡았냐?'도 매일 들어야 하는 덕담이었지요. 그렇잖아도 소심한데다가 사교성도 없으니 스스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그러니 학교라고 해봐야 무슨 애정이 있었겠습니까?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야 학교를 빼먹을 수가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 일과였으니까요.

보름사리와 그믐사리는 참으로 학교를 가서 못된 놈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의 날이었습니다. 물이 가득한 시간이 아침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자연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이 빠지게 되면 핑계를 댈 수가 없으니까요. 정대길(가명), 문제철(가명) 이 두놈은 특히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폭력이라고 해봐야 뺨을 얻어맞거나 걷어차이는 정도였겠지만 아직도 그 영광의 이름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운동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초등학교의 어린 시절도 아니고 중학교를 거쳐서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면 그 고통은 아무리 할인해서 생각하더라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으로 공감하는 것도 어쩌면 이렇게나마 체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백천 번이나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너는 스타가 되었지만 나는 그 시절의 그 고통을 잊을 수가 없다'는 상처에서 배어나오는 비명에 대해서 맞아 본 사람이라면 능히 헤아릴 것입니다. 루팡과 홈즈를 읽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도 생각해 봤으니까요. 물론 소심쟁이가 뭘 할 수가 있었겠어요. 그냥 그랬다고요. ㅎㅎㅎ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

이러한 말을 하기까지는 어디 쉬웠겠나 싶습니다. 그래서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들이 폭발하는 것은 그들의 위선을 봤을 적에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착하고 선행만 하는 어린 시절로 미화가 되어서 방송을 탔을 적에 그 현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맞았던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자지만 맞은 놈은 뻗고 잔단다."

맞고 들어가면 어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때린 쾌감으로 신나게 단꿈을 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싶습니다. ㅎㅎㅎ

어머니께서 얼마나 속이 상하셨으면 맞은 다음 날에 같이 학교에 그것도 처음으로 전학할 적에 동행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잘 타이르겠다고 하셨지만 어머니께서는 직접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옆에 앉아서 듣고 계셨지요. 그 기분이 어땠을지는 당시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선생이 오죽 못났으면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찾아와서 선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고 직접 말을 하게 만드냐는 생각을 했다면 말이지요. 그런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었지요. 아마도 낭월의 기억에서 어머니가 가장 멋졌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헤아릴 방법이 없었지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고 귀가하신 후에 선생님께서 뭐라고하셨는지 짐작해 보실랍니까? 아마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가서 말하면 되나 안 되나?"

그래서 졸지에 비겁한 밀고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그 선생님들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쪼록 학생은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합니다. 아무렴요. 하하하~!


2. 말이 이상하다고 터지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던 모양입니다. 느려터진 서산의 말만 듣고 컸던 아이들에게 빠르고도 이상한 억양은 외계어로 들렸을 수도 있지 싶습니다.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으니 맘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또 '퍽퍽~!' 뭐 달리 변명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으면 다시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말을 하면 달려들어서 주먹질을 해대니....

낭월이 말수가 적어진 것은 그러한 환경이 큰 부조를 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말을 하면 두들겨 맞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빨리 안면도 말을 익혀야 하고, 가급적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72명의 학급생들 중에서 내 편은 서너명? 그렇다고 해서 맞고 있는데 나서서 막아줄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도 일종의 패잔병과 같은 입장이었고, 그래서 약자동정심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해도 되지 싶습니다.

안면도 구석쟁이에서 나고 자란 촌놈들이 경상도 말을 들어 봤겠느냔 말이지요. 그러니 아마도 자기가 못알아 듣는 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노를 유발하는 도화선이 되었겠지요. 이렇게 맞으면서 공부하러 다니는 재미가 어땠을지는 미뤄서 짐작하고 말 것도 없지 싶습니다. 말이란 것이 이렇게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꽤 일찍 깨달았던 셈인가요? 어린 시절에 이런 경험을 해 보셨을랑강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래서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때부터였지 싶습니다. 선생은 선생일 뿐이지 학교생활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자기의 몫이 단지 책의 내용을 전하는 것이 전부라는 듯이 말이지요. 한번은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전병욱(가명)이 체육선생에게 코피가 나도록 얻어맞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더욱 이러한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잠시 졸았거나 딴 짓을 했던 모양입니다. 여하튼 사소한, 흔히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쎼끼~ 이리 안 나와~!!"

이렇게 시작된 그날의 악몽을 그 친구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선생님은 체육담당이셨습니다. 요즘 체육계에 불어닥치는 바람을 보면서 문득 떠올렸던 얼굴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처음 봤습니다. 기억은 참 오묘합니다. 그게 뭐라고 아직도 기억을 하다니.... ㅎㅎㅎ

그 선생과는 조회를 할 때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앞사람 뒤통수를 똑바로 보고 서라는 구령에 따라서 정확하게 앞의 친구 뒤통수의 중간을 봤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도 설마 내게 하는 것이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확 잡아 채는데 그것은 불행하게도 나였습니다. 그 소름이란. ㅎㅎㅎ

"이 짜씩아~! 똑바로 못서나~~!!"

그때는 정말로 억울했습니다.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야단을 맞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때만은 분하고 억울해서 선생을 똑바로 봤습니다. '왜 선생조차도 나만을 미워할까....'라는 생각도 함께 했었지 싶습니다. 그 순간 선생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역력하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한쪽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안광을 분명히 봤을테니까요. 그 통쾌함이란 잠시나마 짜릿했습니다. 비로소 외눈이라는 것을 눈치채셨던 것이지요. 아마도 그 눈빛을 그 선생도 한동안 잊지 못하셨지 싶습니다. 하하하~!

도대체 그 선생이 내게 왜 그렇게도 분노하셨는지를 한 동안 몰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그리고는 마침내 그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비로소 그 선생님을 열받게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똑바로 서라고 하면 앞의 친구 오른쪽 귀를 보면 되었으니까요. 나름대로 적응하고 살아갈 방법은 터득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아이에게 유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조사를 많이 했었습니다. 선천성 백내장은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았지요. 그러한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학폭에 대한 조각들에 섞여서 이런 것도 묻어나오는구먼요. ㅎㅎㅎ


3. 말이라도 거들어 준 여학생도 있었고....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러다가 자신도 찍히게 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것을 크게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과감하게 나서서 호통을 치던 말이 귓가에 울리기도 했었지요.

"숫제자 숫제~! 왜 때리는데~!!"

그 의미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안면도 방언이었던 모양입니다. 숫제? 숫재?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고 활발하게 발표도 하던 노래 잘하는 김승희(가명)가 이렇게 대갈일성을 하자, 그놈도 쪽팔렸던지 더 때릴 흥이 사라졌던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또 또렷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고 하나 봅니다. 그 예뻤던 승희도 이제는 어디가에서 나처럼 늙어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또 떠오르는 '낭만에 대하여'입니다. 하하하~!

외톨이의 삶에 대해서 이미 10세 이전에 절절히 깨달았던 것은 어쩌면 철학자의 길로 가는 채찍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임도 알았고, 내가 힘들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것도 사무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었고, 그림을 그렸지요. 책이래야 교실 뒤에 비치되어있는 보물섬? 어린이자유? 어깨동무와 같은 뭔가 오래되어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대략 그런 류의 책들이었습니다. 도서관이나 변변히 있었겠남요? 그냥 그랬습니다.

말하자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훈련이 어려서부터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셈이지요. 어려서나 나이 들어서나 남을 때리면 맞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네요. 불과 26세에 국가대표의 탄탄대로에 올라선 그야말로 장미빛깔의 성공의 길에 떡하니 막아서는 학폭이라니 말이지요.  후회하면 늦습니다. 아무리 진심으로 사과를 하더라도 마음에 박힌 상처는 겉에 생긴 생채기가 사라지고 잊혀져도 점점 또렷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처벌'

국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자랑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항상 봅니다. 자기를 처벌하는 것은 스스로의 양심일 수도 있지만 천지자연의 이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과(因果)는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면 불행한 일이 찾아올 수도 있지 싶습니다.

10여 세의 어린 나이에 겪었던 일도 이 정도라면 그 나머지는 말해서 뭣하겠나 싶습니다. 죽여버릴 방법을 101가지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소심한 복수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이것이 깊어지면 실제로 행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4. 기둥에 남은 못 자국


학폭문제는 계속해서 이어가지 싶습니다. 또 다른 선수가 나타나고 또 이어지기를 한동안 할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지금 뿌린 씨앗은 한참 절정기를 맞이했을 적에 자신을 쏘게 되는 비수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교사는 알려야지요. 가르친다는 것은 오늘도 가르치지만 내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집안 조카딸이 해 준 말이 떠오릅니다. 체대를 다니는데 툭하면 폭행을 일삼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그만 두려면 맞고 나가라'고 하더라나요. 이런 것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 계통에서 폭력을 거론한다면 걸리지 않는 사람부터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초등학교에서 이러한 교육을 시킨다면 10년 후에는 효과가 있으려나요?

그것조차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전통은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이어지니까요. 잠시 흐름을 돌려놓는다고 할지라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관성의 법칙까지 바꾸려면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은 원래 비관적이라서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벗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체육의 엘리트들이 폭력을 서슴치 않는 것에는 경쟁자를 꺾으려는 생존법칙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 잘하는 놈이 있으면 금메달을 따는데 장애가 되니까 미리 그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것은 이론을 떠나서 본능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아마도 어디나 그렇지 싶습니다.  비단 학교 뿐이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에서 1등만 인정을 받는 환경이라면 이러한 일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입니다. 법으로 아무리 강화시킨다고 한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체험한 낭월에게는 먼 나라의 염불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따름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삶의 맛을 느끼게 해 준 효과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공감을 하는데 이보다 더 생생한 체험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오늘은 또 누가 과거의 폭력으로 인해서 망가지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이미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 물밑으로 맘에 걸리는 사람들을 찾아서 협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비록 시간은 아주 많이 걸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시작을 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을테니 말입니다.

"허허허~!"

이렇게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만, 그 가슴 속에서도 어딘가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숨을 죽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외연에 의해서 그 시절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옛날에 어느 못된 짓을 하는 아들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나무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았다던 어느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지요. '저건 뭡니까?' 아버지가 말하기를 '네가 못된 짓을 할 때마다 하나씩 박힌 못이니라.' 후에 아들이 반성을 하고 선한 일을 하나씩 할때마다 못도 하나씩 뽑았더라지요? 그렇게 해서 못을 다 뽑아놓은 다음에 아들이 후회를 했더랍니다.

'못은 뽑았지만 못자국까지는 없앨 수가 없구나....'

못을 박기 전에 생각했어야 할 일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오늘을 열심히 살면 됩니다. 그러나 더러는 오늘만 열심히 살 수가 없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50년도 더 지난 일들조차도 떠오른다면 말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봐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혹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얼른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오늘도 사과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골은 점점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남편에게도 혹은 자녀에게도 말입니다. 그래서 타산지석이겠지요.

타산에 있는 돌이라야()
옥을 갈아서 다듬네()


타산(他山)은 남의 산이 아니라 그냥 산 이름이랍니다. 타산에 있는 돌에다가 옥돌을 갈아야 잘 갈려서 옥빛의 보석을 얻을 수가 있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쓸모없어 보이는 돌도 옥을 만드는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로 서로 협력하고 돕는 것이 옳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에는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나와 무관한 일처럼 보이지만, 또 곰곰 생각해 보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스스로를 반성하는 자는 진화하고 있는 중이려니 합니다. 공자님은 하루에 세 번이나 반성하셨다니 어찌 성인이 아니라고하겠느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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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이 흩날리네요. 새하얀 눈으로 세상의 험상궂은 것을 덮는다고는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회하고 수행하는 것이려니 합니다.

오늘 아침. 새봄을 맞는 문턱에서 잠시 옛시절의 한 조각이 떠올라서 이렇게 적어 봤습니다. 우울한 경험도 나의 삶이고, 상쾌한 경험도 나의 삶이니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을 새람스럽게 느끼면서 오늘의 행복을 자축하게 되네요. 벗님의 오늘도 이와 같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2월 17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