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2] 새해에도 공덕(功德)을 많이 쌓으세요~!

작성일
2021-01-01 06:44
조회
5061

[762] 새해에도 공덕(功德)을 많이 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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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가 들어갑니다~!
꼭꼭 붙잡아서 즐거운 한 해 되소서~!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혹독했던 경자년이 지났다고 달력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가까이서 인연있는 제자들이 새해라고 덕담을 보내주시네요. 실은 덕담(德談)을 보내주셔야 하는데 마카다 복담(福談)일색입니다. 하하~!

이름은 덕담이라고 하고, 말은 복담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원래 낭월은 일할머리가 없습니다. 날은 춥고 문자와 메일은 복 받으시라는 내용들이 날아오는 것을 보니 또 한 생각이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신축년 원단(元旦)에 이러한 생각으로 잠시 여유를 부려 봅니다. 말하자면 '복덕타령'인 셈입니다. ㅋㅋㅋ

 

1. 복(福)의 의미


복을 말하면서 붙여서 복덕이라고도 합니다. 행복(幸福)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새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복은 참 좋은 것이라는 인상이 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도 기분이 좋은 것이니 그대도 기분이 좋은 말로 선물한다는 의미려니 싶기도 합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예, 좋습니다. 좋고 말고요. 그런데 받으라고만 하고 주지는 않습니까? 말로만? 아니, 받으라고 할 적에는 뭔가를 주면서 받으라고 해야 맞는 말이 아닙니까? 입으로만 받으라고 하고 주지 않으면 그것을 일러서 '망언(妄言)'이라고 합니다. 쉽게요? 쉽게 말씀드리면,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요. 하하~!

새해 첫 날이니 이러한 것으로 잠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네요. 글자 뜯어먹기부터 해 볼까요? 福부터 어디 깨부셔 보겠습니다. 이 글자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혹 생각해 보신 적이 없다면 지금부터 같이 생각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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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자는 보일 시(示)이고, 뒤의 글자는 가득할 복(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연결시켜보면, '가득해 보인다'는 뜻으로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엉? 가득해 보인다니요? 그러니까 보기에만 가득해 보인다는 뜻입니까? 그건 아니겠지요? 뭔가 부족함이 없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봐야 하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가득할 복(畐)을 뜯어봐야 하겠습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나올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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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할 복을 뜯어보니까, 한 일(一)과 입 구(口)와 밭 전(田)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또 연결시켜 보면, '혼자서 밭에서 나온 것을 다 먹는다'는 의미가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밭은 입이 넷이지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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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요? 입이 넷인 것을 간단히 표시하면 밭 전이 됩니다. 그러니까 네 사람이 일을 해서 혼자 다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원래 밭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안 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직원 100명이 일해서 사장님 입을 불려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장님은 부자가 되고, 그래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하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복(福)이란 
네 사람이 먹을 것을
혼자서 독차지 하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

그렇지요? '복이 많아 보인다'고 하잖아요? 복은 보이는 겁니까? 당연하겠네요. 보이니까 보겠지요. 복(福)을 생각하니까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던 여인이 생각나네요. 부자가 되라고 하려거든 뭘 주고서 부자가 되라고 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또한 거짓말입니다. 하하~!

어? 부자? 부자(富者)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그런데 앞에서 복(畐)을 보고 났더니 부(富)도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학습의 효과이고, 한자 공부의 맛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최만리 선생이 목숨을 걸고 '한글을 쓰면 안 된다'고 했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훈민정음으로 인해서 결국은 전 국민을 한자맹으로 만들어 놨고, 또한 그로 인해서 인문학에서의 단절을 가져온 원인도 아니라고는 못하겠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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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요? 어디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복(福)은 부(富)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의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그냥 낭월의 생각일 따름입니다만, 이렇게 분석을 해 보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이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탐욕(貪慾)입니다. 집에 잔뜩 쌓아놓는 것이지요. 집에 쌓인 것이 많습니까? 그럼 부자이십니다. 예? 쌓아 놓으려고 해도 있어야 쌓아놓지 않느냐고요? 그럼 빈자(貧者)이십니다. 우짜노..... ㅎㅎ

어? 탐(貪)과 빈(貧)이 왜 이렇게도 많이 닮았을까요? 아무리 가는 길이 바쁘더라도 이것은 반드시 들바다 보고 가야 하겠습니다. 글자보다는 뜻으로 풀이하겠습니다. 시간절약상의 작전이기도 합니다.

 

'탐자빈야(貪者貧也)'


낭월이 보기에는 이렇게 보입니다. '탐내는 자가 곧 가난한 자이다.' 그러니까 탐을 내는 것은 갖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미 갖고 있는데 왜 탐을 내겠습니까? 그러니까 갖지 못한 자가 가진 자의 것을 탐내는 것이 틀림없지 싶습니다. 99섬을 거둔 사람이 1섬 거둔 사람에게 그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 가난[貧]입니다. 그런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표를 하나만 달라고요? 그럼 표 거지가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유해 보이는데도 가난한 걸뱅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집을 열 채 갖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담보로 해서 집을 산다지요? 이것은 집 거지입니다. 억지라고요? 하하하~!

가진 것이 없는 사람[貧]이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탐내서[貪]
집안에 가득 쌓아놓기[富]를 
꿈꾸는 것[福]입니다.

어떻습니까? 정리 끝났지요? 그렇다면 복은 무엇이냐? 집안에 먹을 것이 가득하기[富]를 비는 것(乞)입니다. 비는 사람은 뭐라고 합니까? 걸인(乞人)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딱딱 맞아 떨어질 적에 우리는 말합니다. '말 되네~!'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 복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욕을 하는 것입니다. 예? 설마 욕이라고요? 맞습니다. 이미 앞에서 설명드렸잖습니까? 자, 복받으라는 말을 다시 의미분석으로 들여다 보겠습니다.

당신은 가진 것이 없군요
그러니까 많이 모으셔야지요
새해에는 탐욕을 더 많이 발휘하시고
남의 것을 더 많이 약탈하세요.
내가 드릴 것은 없으니 남의 것으로요.

그래서 집안에 가득 쌓아 놓기를
이렇게 말로나마 빌어드립니다.

이게 욕이 아니면 무엇이 욕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가진 것이 많다면 어쩔 건데요? 가진 것이 많은데도 더 쌓으라고요? 그것이야말로 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좀 이상하지요?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남의 것을 강제로 약탈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자원은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은행권을 말합니다. 남의 것을 약탈하지 않는다면 쌓아놓을 수가 없습니다. 월급? 구멍가게? 철학원? 이딴 걸로 건물주가 된다고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가요? 더구나 철학자에게 복을 받으라니요? 이렇게 생각없이 말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래도 궤변인가요? ㅎㅎ

듣자니까, 어느 경전에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쓴 내용이 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물론 가진 재산을 모두 종교기관에 기부하고 천국행 티켓을 사서 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낭월이 이해하기로는 천국이란 죽은 다음에 이르는 곳인지는 몰라도 오늘 하루가 즐겁다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려니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부자는 하루도 마음 편히 살 방법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지요.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있지 싶습니다. 낭월이 잘못 이해한 것일까요? ㅎㅎ

예, 압니다. 기가 막혀 하시는 몇몇 제자님들의 마음이야 알지요.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생각해야 조금 더 깊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생각도 깊어질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러고 있는 것이니 너무 맘 상해 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2. 덕(德)의 의미


이만하면 복(福)이 얼마나 탐욕적이며, 모욕적인지를 이해하셨지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 덕(德)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德도 뜯어먹어 봐야 공평하겠네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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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큰 덕(德)입니다. 앞의 조금 걸을 척(彳)은 천천히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허구한날 쓰는 오행(五行)에서 보는 글자이면서도 이것이 무슨 글자인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냥 行은 다닐 행인데 뭘 더 찾아볼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앞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은 학문에 대마(大魔)입니다. 이 마귀가 엄습하면 사전을 뒤적이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대~충~ 까이꺼~ 하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쌓이는 것은 무지(無知)의 먼지겠네요. 먼지를 털어야 하는 것은 창문이 아니라 사전입니다. 사전에 먼지가 쌓이면 그 사전의 주인 머리에는 녹이 슬고 있다는.... 뜨끔하시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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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독자들이 묻습니다. '공부를 얼마나 하면 낭월스님 만큼 될까요?'라고요. 예, 그것이 궁금하십니까? 낭월이래야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만서도 정 그러시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무엇이든 궁금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낭월을 추월하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낭월 선생 책은 다 읽었거든요~!"

라고 하신다면..... 뭐, 답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세요. 낭월을 추월할 가능성은 그야말로 1도 없으니까요. 다만, 의심하고 찾아보고 또 뒤져보는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낭월을 추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자신의 세계를 얻을 수가 있을테니까요. 이미 얻고 난 다음에서야 왜 낭월처럼 되고자 하겠습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해가 되시지요? 하하~!

두인변이라고도 합니다. 두 사람이라는 뜻이겠네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으면 빨리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느릿하게 걷게 됩니다. 그야말로 산보하는 느낌이네요. 걷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일게고 그렇다면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도 미뤄서 짐작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복(福)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나요? 없죠? 쌓아놓는 것일 뿐이니까요. 앞으로 나아갑니다. 느릿하게지만 분명히 나아가는 모습이 바로 척(彳)입니다. 그리고 가다기 힘들면 쉬어야지요? 쉬는 것은 쉴 촉(亍)입니다. 그러고 보면 행(行)은 가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것인가 봅니다.

가을이 되어서 금(金)이 갈 때는 목(木)은 쉽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 이번에는 수(水)가 갑니다. 그러면 또 화(火)는 쉽니다. 이렇게 가고 쉬고를 반복하면서 춘하추동이 이어지고, 오늘 내일이 연결되네요. 참으로 오묘한 자연이고 음양이고 오행입니다. 그래서 항상 감탄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벗님도 그러시지요? 암만요~!

덕의 앞에는 실행한다는 의미가 있음에 방점을 찍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실행(實行)도 행이니까요. 이렇게 소소한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공부하는 맛이려니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뒤에 있는 글자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로는 큰 덕(㥁)이 있습니다. 뭔가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덕(德)과 덕(悳)을 비교해 보면 대략 같은 형태라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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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하면 이렇게 나오네요. 뭐, 하나라도 빼거나 보탠 것이 없지요? 예, 있는 그대로입니다. 열 십(十), 그릇 명(皿), 하나 일(一), 마음 심(心)이네요. 이게 뭡니까? 아, 명(皿)과 사(四)는 다른 글자입니다. 비슷하다고 해서 뜻도 같다고 보면 안 되겠습니다. 만약에 皿을 四로 본다면, '10,4,1마음'이 되는데 이건...... 뭔 말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물론 말이 된다면 그렇게 말해도 안 될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만.... 낭월의 짧은 능력으로는 말을 못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그릇으로 볼 요량입니다. 그럼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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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十)은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것은 도(道)가 됩니다. 음[一], 양[丨]이 서로 만나면 완전[十]하니까요. 그렇다면 일(一)은요? 한 마음이지요. 여일(如一)이고, 한결같음이라고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심(心)이야 지금 현재 움직이고 있는 이 마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아니? 일심(一心)은 음으로 치우친 마음이라고요? 하하~ 글쎄요~!

또 분석에 들어갑니다. 도의 그릇[道器]은 뭘 의미할까요? 십명(十皿)은 도의 그릇이라고 해석해도 된다는 것은 이미 이해하셨을테니까 이렇게 파고 들어가도 되지 싶습니다. 도대체 도의 그릇이 무엇일까요? 다음 문단을 읽으시기 전에 잠시 멈추시고 도의 그릇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밥그릇도 아니고, 도의 그릇이라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셨으면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하신 것과 얼마나 부합이 되는지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하리라고 여깁니다.

 

"도의 그릇 = 도를 이루는 그릇"


낭월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벗님의 생각과 비슷한가요? 도대체 도를 이루는 그릇이 뭐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렇게 자꾸만 물으셔야 합니다.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도를 이루는 그릇입니다. 그것을 물리학에서는 육체라고 합니다. 무슨 물리학씩이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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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로 여행을 가 보셨다면 이른 아침에 이와 같은 장면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가이드가 서두르는 것을 맞추느라고 밥먹고 버스에 오르기가 바빴다고요? 그렇다면 여행은 절반만 하신 것으로 봐도 됩니다. 승려가 탁발(托鉢)을 하는 장면입니다. 왜 탁발을 합니까? 몸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몸이 마르는 것을 왜 방지합니까? 도를 이루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오호~! 이렇게 해서 답을 얻게 되네요. 참고로 발우공양을 할 적에 외우는 경문도 있습니다. 풀이하면 이렇게 됩니다.

計功多少量彼來處 (계공다소량피래처)
村己德行全缺應供 (촌기덕행전결응공)
防心離過貪等爲宗 (방심이과탐등위종)
正思良藥爲療形枯 (정사양약위료형고)
爲成道業膺受此食 (위성도업응수차식)

이 음식이 누구의 공덕으로 여기에 왔으나
내 수행으로는 받기조차 부끄럽지만
탐욕을 떠나 깨달음을 이루는데
몸이 마르고 병드는 것을 막아서
도업을 완성하고자 받아 먹습니다.

몸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받는 그릇이 도의 그릇입니다. 그러니까 살이 쪄서 굶느라고 고생하는 것은 도의 그릇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복(福)과 덕(德)의 차이점이 보이네요. 복은 탐심으로 쌓아놓는 것이고, 덕은 도를 이루기 위해서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가난한 사람일수록 복이 많다고 했다던가요? 천국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요. 낭월이 귓구멍이 작아서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도 같아서 문득 생각이 나네요. 가난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남에게 줘버리는 것인가요? 아마도 그 비슷한 것이지 싶습니다.

그 아래의 일심(一心)은 어떻게 보이십니까? 낭월의 보기에 이 두 글자는 '항상 같은 마음'의 의미려니 싶습니다. 왜 항상 같은 마음이 德에 들어있을까요? 마음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갈때 마음 다르고, 올때 마음 다르다고 했으니 이 언저리에서 답을 찾으면 되지 싶습니다. 가득 쌓아놓고 도둑도 걱정하고, 더 쌓으려고 창고를 크게 지을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벗님은 안 그러시지요? 당연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낭월학당을 기웃거릴 턱이 없는 까닭입니다. 하하~!

'항상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것'은 도중에 탐욕이 생기는 것을 경계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탐욕덩어리랍니다. 오욕(五慾)이 인생의 근본이니까요. 아, 오욕이 뭔지 찾아보기 싫으신 벗님을 위해서 간단히 말씀드리는 것도 서공덕(書功德)이 될랑강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ㅎㅎ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을 말합니다. 다섯 가지는 피할 수가 없는데 그 중에서도 식욕과 수면욕은 생존 자체와 직결된 문제이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나머지는 적당히 조절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생각해 보면 과연 오욕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 여하튼 오욕이 충만된 것은 부(富)에 가깝겠지요? 그렇다면 오욕이 부족한 것은 덕(德)이 될 가능성이 많겠습니다. 이것도 음양의 이치려니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기본 중에 왕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식욕(食慾)을 덕(德)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린 배를 채울 만큼의 밥이면 되느니라'


탁발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굶주려서 도를 닦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막을 만큼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나머지는요? 그냥 되돌려 주면 됩니다. '반사~!" ㅎㅎ

 

3. 복을 빌지 말고 덕을 쌓자.


이제 정리를 해도 되지 싶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을 첩첩이 쌓아놓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덕을 겹겹이 쌓아놓고 싶으십니까? 예전에 어느 스님에게 존경하는 불자가 비싼 약재를 선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건강하셔야 항상 귀한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은 잘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자가 돌아가고 나자 시자를 시켜서 대중공양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시자가 물었습니다.

시자 : 아니, 큰스님 드시라고 가져온 건데요?
스님 : 그게 뭔 상관이냐?
시자 : 준 사람의 성의가 있지 않습니까?
스님 : 그 사람이야 자기 마음 편하려고 갖고 온 거다.
시자 : 에구, 너무 무심한 말씀이십니다. 정성인데.
스님 : 문제는 그로 인해서 내 복이 줄어든다는 거다.
시자 : 예? 큰스님도 복관리를 하십니까?
스님 : 당연하지 이놈아. 나도 먹어야 살거 아니냐~!
시자 : 이미 먹을 것은 차고 넘치는데 뭘요.
스님 : 모르는 소리 말거라. 복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
시자 :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스님 : 큰방 스님들께 이것을 갖다 드려라.
시자 :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스님 : 나는 줄어들 복을 복구한 셈이 되느니라.
시자 : 그럼 큰방 스님들은요?
스님 : 이것 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빚갚으라 카지 뭐. 허허허~!

다시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참으로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나날이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오묘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기도 했습니다만, 이렇게 육십령(六十嶺)의 중턱에서 돌아다 보면서 반추할 아름다운 추억이 있음에 행복한 낭월입니다. 하하~!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복덕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싶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적어 드려야 기억하기 좋으실텐데..... 그 재주가 부족해서 늘 문제입니다. ㅎㅎ

예? 덕은 쌓아서 뭘 하느냐고요?
그것도 탐욕인 줄을 왜 모르느냐고요?
에구 죄송합니다. 여긴 왜 오셨습니까? ㅎㅎ

 

쌓으면 쌓을수록 높아지는 것은 덕(德)
누리면 누릴수록 낮아지는 것은 복(福)


낭월명리학당을 찾아주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새로 시작되는 신축년(辛丑年)입니다.
부디 공덕 많이 쌓으셔서 자유로운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2021년 1월 1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