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동지팥죽

작성일
2019-12-2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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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동지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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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의 자매들이 모였다. 송년회를 빙자한 동짓날의 봉사를 하기 위해서일게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한 자리에 둘러 앉았다. 동지팥죽에 들어갈 새알심을 비벼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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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은 이렇게 봉지봉지로 불자님들이 보내 온 찹쌀과 팥으로 준비하면 된다. 가져오라고 하지 않아도 그냥 알아서 동참한다. 이것은 옛날 절에서 '동지건대'를 하던 습관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건대란 한자로 어떻게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료부대로 만든 봉지에 미리 다음 해의 달력을 넣어서 준다. 그러면 동지 전에 그 봉지에 저마다  성의껏 찹쌀이나 팥을 담아서 갖고 오는 것인데, 그나마도 없는 가정에서는 안 가져와도 된다. 그리고 형편이 넉넉하고 불심도 넉넉한 가정에서는 큰 자루에 담아갖고 오기도 한다. 낭월은 누구에게 뭘 갖고 오라는 말을 하기 싫어서 말도 꺼내지 않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있는 불자들은 동지가 다가오면 알아서 챙겨 보내거나 직접 갖다 놓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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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열심이다. 마음이 뭉치니 몸도 따른다. 열심히 애쓰는 모습은 아름다울 따름이다. 기꺼운 마음으로 협심하니 많은 일도 순식간에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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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손이다. 창조하는 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창조주도 두 손은 분명히 있었을게다. 입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까닭이다. 오직 손이 있어 역사와 문명이 전해지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것이 뭐냐고 물으면 인간의 몸에 붙어 있는 두 개의 손이라고 해야 할게다. 「총,균,쇠」를 읽으면서 항상 떠오르는 것은 굳은 살이 박힌 두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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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그 손으로 바위에 줄을 긋고,
누구는 그 손으로 돌을 떼어내어 돌도끼를 만들고,
누구는 그 손으로 쇠를 불려서 칼과 괭이를 만들고,
누구는 그 손으로 IC회로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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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손 들어봐~~!!"

이렇게 열심히 하면 일은 자꾸만 줄어든다.



기왕 앉아서 일을 하는 김에 낭월의 버릇이 튀어 나온다. 이른바 '동지타령'이다. 일은 손이 하고 귀는 열어 놓으면 또 주워 담을 것이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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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아침. 낭월은 죽 솥을 젓지 않아도 된다. 손이 많아서이다. 그래서 노는 손에 커피를 내려다 돌린다. 뭔가는 해야지 놀면 뭐하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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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도 몸을 아끼지 않으신다. 절에 와서 하는 일은 뭐든 즐거우시단다. 그것도 팔자인 모양이다. 그래서 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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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죽이 잘 끓고 있네~!
사제 : 형부가 커피 타다 주셔서 잘 끓였어요. 호호~!
낭월 : 이제 간 할라고?
삼제 : 소금만 넣으면 되겠네요.
낭월 : 그럼 최현석이 맹크로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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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제 : 이렇게요? 호호~!
낭월 : 그래, 잘 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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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어? 쌀을 넣는 게 아니고 밥을 넣는겨?
삼제 : 쌀을 넣으면 오래 걸리잖아요.
낭월 : 그러니까, 팥죽을 끓이는데도 진화를 한단 말이지?
삼제 : 잔꾀지요 뭐. 호호~!



동지팥죽이 서서이 마무리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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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떠돌이 시절에 객방(客房)에서 긴 여행으로 지쳐서 쉬고 있을 적에 공양 시간을 기다리기 지루해진 화상들의 수다가 이어지고 있었다.

객승1 : 이 절에서는 동지팥죽을 얼마나 쑤는지 모르겠소이다만....
객승2 : 작년 동지는 해인사에서 지냈는데, 장화를 신고 죽을 저었습니다.
객승3 : 소승은 송광사에 있었는데, 배를 타고 죽을 젓더만요.

그들의 수다는 이 정도였다. 참선을 하느라고 두 손은 배꼽 아래에 고정시키고 살아서인지 입만 살았더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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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먹음직스러운 죽이 완성되었다. 잠시 식기를 기다려서는 다음에 해야 할 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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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회에 참석하실 불자님들이 집으로 가면서 하나씩 들고 갈 봉송이다. 이렇게 따로 그릇으로 담아서 준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준 것을 쏟아가느라고 비닐봉지를 찾는 소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산골의 불자님들은 이렇게 순수하다. 체면보다는 집에서 죽을 기다리고 있을 영감님을 생각하는 까닭이다. 사랑이 넘쳐서 그런 것을 탓하지 말고 두 배로 끓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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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주는 것을 좋아하시는 고모님은 신명이 난다. 그렇게 해서 충분히 가져 갈 만큼의 죽을 담아서 준비해 놓고서야 동지불공의 준비가 마무리 된다. 주름잡힌 예쁜 손이다. 얼마나 세월을 열심히 살아왔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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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 올해 동지죽 그릇은 더 큰것 같잖냐?
오제 : 그러게? 큰언니가 많이 담아드리고 싶었내비지 뭐.
고모 : 그릇대로 다 담냐? 적당히 담으면 되는 거지.
오제  :맞아요~! 호호~!

경쾌발랄한 다섯 째 처제는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서 강변과 바닷가를 누비고 다녀서 수시로 먹거리를 싣고 오기도 한다. 어떤 때는 숭어를, 또 어떤 때는 낙지를 가져 오기도 한다. 기술도 참 좋다. 그것도 손이 하는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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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행사를 잘 마치고, 설겆이까지 끝낸 다음에서야 저마다 자기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함께 마음을 모은 것이 고맙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함께 하기를 조용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