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9]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2. 타고난 천성(天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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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한 우창이 적어놓았던 감경보의 사주를 앞에 놓고서 잠시 살펴본 다음에 말했다.

“우선, 병화(丙火)가 기운을 방사(放射)하는 중심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좌우의 갑(甲), 기(己), 신(申)의 임(壬), 경(庚)을 살피게 됩니다.”
“아, 무슨 뜻인지 이해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풀이가 되는 것입니까?”
“중심이 병화(丙火)이니 이것은 심층에 잠재된 집단무의식(集團無意識)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밝고 빠르고 직관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 시간(時干)의 기(己)는 상관(傷官)입니다. 땅에도 관심이 많고 자신의 생각한 바를 남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봅니다. 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미 지리(地理)에 정통(精通)했다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갑(甲)은 편인(偏印)입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현상을 의심하는 마음이 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일지(日支)의 임(壬)은 두려움이고 조심성이고 기억력입니다. 경(庚)은 스스로 맞는다고 확신한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밀고 가는 추진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이 어우러지게 된 것이 약수 선생의 기본적인 제칠식(第七識)이 되는 것이지요. 주변의 작용에 반응하는 의식계(意識界)의 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창의 풀이를 들으면서 조용히 생각하던 감경보가 감탄하며 말했다.
“놀랍습니다. 자평법에서 이러한 논리를 풀어낼 수가 있다는 것은 일찍이 생각해 보지도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선(線)과는 무관하고 나선(螺旋)도 아닙니다. 이렇게 풀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방사(放射)라고 해야 할 것이니 이미 우창 선생은 방사형의 사주풀이를 하고 계셨던 것이로군요. 참으로 기이한 인연입니다. 이렇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이 얼마만 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풀이할 적에는 인신충(寅申沖)만 관심이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성정(性情)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 공부는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이뤄지는 것이 만고의 불변하는 진리인가 싶습니다. 더불어 나누면서 주고받지 않는다면 얻는 것이 극히 협소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진주(眞珠)와도 같은 영롱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감경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감경보의 팔자를 설명하던 우창도 감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이미 그렇게 하충 스승님의 심리추명을 사용하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이 방사형이었다는 것은 모르고 신기하게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우창이 약수 선생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방으로 기운을 방출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지 않으셨더라면 이렇게 사유하고 설명할 방법은 여전히 생각조차 못 했을 테니 말이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우창이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참, 방사형의 이치는 잘 알았습니다. 이것이 지상(地上)에서는 그러한 현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명료하게 알겠습니다만 지하에서도 그러한 형태로 기운이 흐른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소용돌이보다도 더욱 난해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방법으로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시험 삼아서 물어보겠습니다. 하늘과 땅이 둘입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지불이(天地不二)니까요.”
“하늘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땅에서도 일어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그것을 인지(認知)할 수가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우선 땅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이해의 길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땅은 단단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땅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은 견고한 것입니까?”
“몸이 견고하냐고 물으시는 것은 적어도 수명이 있는 동안에는 견고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은 견고합니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으나 기본적으로는 견고한 자아(自我)가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아에도 흐물거리는 사람이 있고, 강철같은 사람이 있듯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틈이 있는데 이것은 장자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장자라면 우창도 좋아하는 선생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가르침을 청합니다.”
“장자를 보면 땅은 거대한 소리로 웅웅댄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귀가 먹먹하여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기억이 납니다.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하늘의 피리 소리 사람의 피리 소리 땅의 피리 소리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귀가 밝아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하의 소식도 이와 같을 것으로 짐작하면 될 것입니다. 지기(地氣)도 천기(天氣)와 마찬가지로 때론 직선으로 또 때로는 소용돌이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또 때로는 방사형으로 뿜어나오기도 하지요. 이러한 것을 볼 줄 아는 명안(明眼)의 지사(地師)는 화맥이나 수맥에 매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수준의 지사와 달리 풍수학의 이론에도 전혀 맞지 않는 관점으로 관찰할 따름이니 말이지요. 제게 땅의 이치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께서 바로 그랬습니다. 능력이 탁월하셔서 산소를 한번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 지하에 뱀이 있는지 물이 고였는지 아니면 나무뿌리가 엉켜있는지를 지상에서 면전(面前)의 풍경을 보듯이 모두 그려냈습니다. 그것은 스승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공부할 적에 직접 확인한 것이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스승님의 아호는 어떻게 쓰셨습니까?”
“아호는 칠관(七觀)이셨지요. 제왕이 태어날 명당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거금을 들고 와서 현혹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영험이 떨어졌습니다만 제가 모시고 다닐 적에는 탁월한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왕동민(王東民) 스승과는 다른 분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왕 스승님은 진동에 대해서 통달하신 분이고 칠관 스승님은 풍수지리에 대해서 최고의 안목을 소유하고 있으셨으니까요.”
“과연 스승 복을 타고나셨습니다. 그러한 스승님을 섬긴다는 것은 아마도 전생에 복을 짓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인데 말입니다.”
우창이 부럽다는 듯이 말하자 자원이 얼른 나서서 말했다.
“스승의 복으로 말하면 싸부도 만만치 않아요. 뭘. 혜암 도인도 그렇고 하충 사조(師祖)도 예사로운 분들이 아니시잖아요?”
“아,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우창도 스승의 복이 없다고는 못하겠구나. 이렇게 약수 스승님께서도 친히 왕림하셔서 깊은 이치를 가르쳐 주고 계시니 말이지. 하하하~!”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던 진인달사(眞人達士)도 세파를 이기지 못하고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을 적에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를 그만큼 통달하고 지상과 지하를 꿰뚫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데 왜 그런 것에 중심을 잃고 휘둘리게 되는 것일까요? 도가 깊어지면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도 저절로 알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면에서 웅크리고 있는 욕망은 칠관(七觀) 도사라고 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능력은 능력이고 본성은 본성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약수 선생의 말씀에 공감됩니다. 모든 능력을 다 얻더라도 마음을 잃으면 모두 잃은 것과 같다고 했으니 결국은 전부를 다 잃더라도 마음만은 다잡아야 한다는 의미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갈만이 혼자서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싱글벙글하는 것을 보자 기현주가 물었다.
“아니, 광덕 선생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표정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밝아졌네?”
“그것은 오래전부터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오늘에야 해결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대화에 열중하시는 것을 보니 틈이 나지 않아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약수를 먹은 효과를 지금 바로 보고 있다는 자랑을 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흔들어 보였다. 그것을 본 감경보가 말했다.
“아마 앞으로 점점 몸인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 되의 물은 꾸준히 마시면 좋습니다. 아마도 체질도 점점 변화할 것입니다. 굳어있는 몸의 기관들이 점점 진동의 영향으로 유연해지면서 순환이 잘될 것으로 봅니다.”
감경보가 담담하게 말하자 만들어 놨던 진동수(振動水)를 자원이 잔에 따라서 한 잔씩 돌렸다. 모두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더욱 신기한 마음들이었다.
“자, 이제는 모두 진동수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마다 하루 동안 마실 물을 떠다가 앞에 놓으십시오.”
모두 감경보가 시키는 대로 하자 자리에 앉으라고 한 다음에 말했다.
“가능하면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하면 더욱 좋습니다. 마음은 이 물을 마시고 몸과 정신에 맑은 기운이 감돌기를 바란다는 염원하시면 됩니다. 자세는 이렇게 정좌하고서 두 손을 세 치 정도 떨어진 위에서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주문을 외우면 됩니다.”
‘아오움! 아오움! 아오움!’
모두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우창이 물었다.
“아까는 왐!왐!왐! 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아오움!이라고 하시니 그 차이는 무엇인지요?”
“아, 그것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때의 느낌에 따라서 ‘옴’이라고 해도 되고 ‘음’이라고 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리를 내면서 몸에 느껴지는 진동을 관하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해도 진동이 손에서 물로 전해질 것입니다. 우선은 이렇게 하면서 진동수를 드시다가 점차로 몸이 가벼워진 다음에는 나무나 물고기를 향해서도 하면 됩니다. 상념이 맑은 사람의 기운은 우주까지도 뻗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주변은 더욱 밝아지고 선인(善人)들이 찾아오고 악인(惡人)은 멀리 떠나거나 혹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게 될 것이니 팔자의 운명은 기구하더라도 이렇게 노력으로 개선(改善)시킬 수가 있는 것임을 믿으시면 결과도 좋게 변화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던 자원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만약에 팔자의 암시가 흉하거나 점괘가 불리하게 나왔을 경우라도 혹시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진동시킨다면 효과가 있을까요?”
자원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감경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조짐이 나왔는데 무슨 행위를 한다고 해서 조짐이 좋아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니 오히려 점괘를 뽑기 전에 그러한 노력은 좋은 점괘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다만 그것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감경보는 참으로 솔직했다. 자신이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니까 그의 말을 듣고서 신뢰감이 더욱 두터워졌다. 잠시 저마다 생각하느라고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기현주가 또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는 듯이 우창에게 말했다.
“잘 되었네. 재미있는 이야기로 머리도 식혔으니 다시 공부하는 것이 좋겠네. 이번에는 「성정(性情)」편인데 사람의 성정이 사주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겠어.”
“어차피 갑을(甲乙)의 심성이 같지 않은 줄을 안다면 당연히 성정도 그 안에 있을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보는 성정은 또 다르잖아? 하충 스승님의 성정은 적천수와 많이 다른 거지?”
“기본은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모두 십성(十星)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지요. 다만 관점이 좀 다른 것은 틀림없다고 하겠습니다.”
“십성궁(十星宮)의 이치를 여기에서는 논하지 않겠지?”
“당연하지요. 다만 어디에 있던지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설명하니까 그렇게만 이해하고 넘어가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하충 스승님의 심리(心理)에는 견줄 바가 안 된다는 의미잖아?”
“조금 전에 약수 선생이 지사(地師)의 상중하에 대해서 말씀하셨잖습니까? 그것에 빗대서 말씀드린다면 적천수의 성정론(性情論)은 하등(下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깊이 생각할 것이 없다고 보면 되겠네요. 잘 봐준다고 해도 중등의 수준에 머무른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사주를 보면서 적용하는 것이 매우 애매한 까닭입니다.”
“그건 동생의 설명을 들어봐서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알고 있지. 그래도 적천수에서 사족 선생이 언급한 것도 나름으로 연구해서 후학에게 나누려고 한 것이니 이것만큼은 높이 사야 하지 않겠어?”
“당연합니다. 가르침에는 높낮이가 있지만 그것의 귀천(貴賤)은 논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귀중한 가르침도 천하게 쓰면 천한 것이 될 따름이니 말이지요. 그래서 어떤 가르침이라도 앞에 있을 적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살펴봐야 행여라도 중요한 가르침을 헛되이 흘려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맞아! 내 말이 바로 그 의미야. 그럼 분별하는 마음을 비우고서 세상에서 처음으로 성정의 이론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피도록 할게.”
“예, 누님 기대됩니다. 하하하~!”
기현주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목청을 한 번 가다듬고는 「성정(性情)」편의 첫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모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기불려 성정중화(五氣不戾 性情中和)
탁란편고 성정괴역(濁亂偏枯 性情乖逆)
‘오행의 기운이 일그러지지 않으면 성정도 중화를 이루고
혼탁하고 편고하면 성정도 어그러지고 망가지느니라’
“또 나왔네~!”
첫대목을 읽은 기현주가 외쳤다.
“예? 뭐가 나왔다는 말씀이십니까. 누님?”
“뭐긴 뭐야, 하나 마나 한 말을 열심히도 써놓은 사족(蛇足) 선생이 다시 나왔단 말이지.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감경보가 물었다.
“사족 선생이라는 분은 또 어떤 고인이십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많아서 견문이 자꾸만 넓어지니 신기합니다.”
이 말에 기현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 사족 선생은 뱀의 다리를 그렸다는 의미로 우리가 붙여놓은 가상의 헛다리 선생이랍니다. 내용이 빤한 것을 중언부언하는 내용에 붙여놓은 것이지요. 호호호~!”
그제야 말의 뜻을 이해한 감경보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빤한 것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적천수의 어느 구절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맞아요. 「정신(精神)」편에 나오는 이야기니까요. ‘인유정신(人有精神)하니 불가이일편구야(不可以一偏求也)니라 요재손지익지득기중(要在損之益之得其中)인저’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미 정신편에 이렇게 설명해 놨는데 눈치도 없는 사족 선생이 다시 성정(性情)이라는 이름을 걸어놓고서 경도 선생이 다 설명한 자리에서 이삭을 줍고 있으니 말이잖아요. 호호~!”
“정신편의 뜻은 ‘사람에게 정신이 있으니 편중되지 않아야 하지 손익의 중간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보면 되겠는데 ‘득기중(得其中)’에 이미 설명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과연 사족 선생이 헛발질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하하~!”
감경보도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기현주가 다시 부연해서 언급했다.
“이렇게 모두 밝혀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이 지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귀여운 맛도 있기는 해요. 가장 재미있는 것은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족 선생도 지혜가 좀 낮을 뿐이지 심성이 선량(善良)하다는 것은 알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갖고 놀면서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기도 해요. 호호호~!”
“정말 재미있게 면학(勉學)하고 계시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를 한다면 더욱 빨리 심오한 이치도 깨치겠습니다.”
“모두 이해가 되었으니 다음 구절로 넘어가 보겠어요.”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음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화열이성조자(火烈而性燥者)
우금수지격(遇金水之激)
‘사주에 화기가 맹렬하여 조급한 것은
금수의 부딪침을 만난 것이니라’
“이것은 내용이 그럴싸하지 않아? 화기(火氣)가 많은 사주가 금수(金水)의 운을 만나면 성품이 메마르게 된다는 것은 일리가 있어 보이는데?”
기현주의 물음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 다만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래? 그것은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주체(主體)가 없지 않습니까? 일간(日干)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결과는 현격(懸隔)하게 다를 텐데 막연하게 써놓으면 언뜻 봐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적용해 보려고 하면 어느 장단인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동생의 말뜻을 이해하기 어렵구나. 쉽게 설명해 줘봐.”
“아마도 일간(日干)이 병정화(丙丁火)라고 생각하고 쓴 글일 수도 있습니다. 일간이 화인데 목화가 과다하면 성급(性急)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토(土)를 만나서 흐름을 타면 성정이 안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금수를 만나면 과격(過激)해진다는 의미로 볼 수는 있겠습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데 누님은 이해되십니까?”
우창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동생이 한 치 앞을 더 멀리 보는구나. 이제야 왜 허언이라고 하는지 확연히 깨달았어. 그렇다면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겠는걸.”
“그래서 가볍게 놀이하듯이 그렇게 스쳐 지나가면 됩니다. 깊이 파고들면 허망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되니까요. 하하~!”
“알았어. 다음 구절도 살펴봐야겠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라도 해 보려니까 말이야.”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음 구절을 읽었다.
수분이성유자(水奔而性柔者)
전금목지신(全金木之神)
‘물이 달리는데 성품이 유약한 것은
온전히 금목의 오행으로 인해서니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이게 무슨 뜻이지?”
“우창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말이 되도록 설명한다면, 수(水)가 목(木)의 운을 만나는 것을 수분(水奔)이라고 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약한 물이 목에 스며들듯이 성정(性情)이 유약(柔弱)해서 자신의 주도로 일을 추진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금(金)을 의지해서 생수(生水)를 하고, 목(木)을 의지해서 흐름을 유지하게 되면 좋다는 뜻이겠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듣고 보니까 결국은 득기중(得其中)이라는 말이네?”
“맞습니다. 득기중하여 중화(中和)를 이루면 성품이 유약하거나 고집스럽지 않을 것이니 이러한 말은 하나 마나 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나마 주체가 수(水)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성품을 오행으로 논하는 것은 타당할까? 왠지 억지로 오행의 논리에 꿰어 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건 누님께서 심성은 십성(十星)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 까닭입니다. 괜히 멋을 부리느라고 오행의 이치로 말을 했으나 이것은 그야말로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겠습니다.”
“오호~! 동생의 말은 항상 간명(簡明)해서 좋단 말이야.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안갯속을 헤매고 다닐 뻔했어. 호호호~!”
기현주가 즐겁게 웃는 것을 보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