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0. 군신(君臣)과 모자(母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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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모두 둘러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싸부, 산책을 다녀오셨어요? 이리 와서 또 약수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봐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산여해(如山如海)에요. 호호호~!”
자원도 감경보의 이야기에 빠져든 표정으로 말했다. 우창은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감경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팔자의 간지(干支)도 진동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마다 자신의 진동하는 파장(波長)의 횟수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병(丙)이 가장 빠르게 진동하고, 계(癸)는 가장 느리게 진동하는데 일정하게 자기의 주파수(周波數)를 갖는 까닭입니다.”
감경보의 말에 갈만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주파수는 물리학(物理學)에서 쓰는 용어인데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놀랍습니다.”
“그 정도야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영혼의 주파수까지도 생각하는데 물질의 주파수에 대한 것은 대단하다고 할 것도 없지 싶습니다.”
“영혼에도 주파수가 있단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중생의 영혼은 주파수가 굼벵이처럼 느리고, 불보살의 주파수는 전광석화(電光石火)만큼이나 빠를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도인은 눈빛만 봐도 알고 뒷모습만 봐도 영혼의 청탁(淸濁)을 능히 헤아린다고 했나 싶습니다. 같은 중생이라도 단계는 구만층(九萬層)이라서 이러한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마음의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인지 간파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하하~!”
감경보는 기분이 좋은지 약간 달뜬 목소리에 힘을 주어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자원이 물었다.
“약수 선생님께서는 사주를 어떻게 풀이하시는지 궁금해요. 제 명식(命式)을 놓고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 이미 많은 시간을 연구한 사주를 내가 풀이한다고 해서 새로울 것이 뭐가 또 있겠습니까? 그보다는 오히려 약수의 사주를 풀어보고 고견을 청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어떻습니까?”
감경보의 말에 기현주가 반갑게 말했다.
“아, 그것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떤 팔자를 갖고 있으시기에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호호호~!”
감경보는 자신의 사주를 종이에 휘적휘적 적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어디 귀중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한 감경보는 좌중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기현주가 의견을 말했다.
“약수 선생의 명식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진동(振動)의 도가니네요. 정말 신기해요. 어쩌면 이럴 수가 있죠? 그래서 팔자 도둑질은 못 한다는 말이 나왔나 봐요. 호호호~!”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팔자에 진동이 보인다니 참으로 놀라운 통찰력이십니다. 감탄했습니다. 하하~!”
감경보는 기현주의 말에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기현주가 인신충(寅申沖)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 봐요. 이렇게 사주의 내부에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마침 약수 선생의 재능이 진동하는 것이라니 이보다 더 신기한 일이 또 있겠나 싶어요.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봐요. 호호~!”
기현주가 웃자 이번에는 자원이 말했다.
“자원도 그게 보였지 뭐예요. 약수 선생의 명식에는 인신사해(寅申巳亥)가 모두 깔려 있어요. 이러한 것도 어떤 특징이 될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싸부가 설명해 주세요.”
“아, 자원의 말은 역마봉충(驛馬逢沖)을 말하는가 보다. 조금 전에 일어나서 가시려고 한 것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우창과는 동년배로군요. 아무래도 친구가 되어야 하지 싶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우창 선생도 계사년에 태어나셨군요. 반갑습니다. 팔자가 지지리도 못 생겨서 어디에 가도 내어놓지 않는데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풀이를 듣고 싶어서 적어 봤습니다.”
“탁월(卓越)한 영감(靈感)을 갖고 계시니 멀리 내다보는 예언의 능력도 상당하실 것으로 보입니다. 월주(月柱)의 갑인(甲寅)은 천하무적(天下無敵)입니다. 일지(日支)의 신금(申金)도 꼼짝못하는 형세를 하고 있으니 이렇게 용신이 강한 사주는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세상을 살아갈 형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용신의 힘이 막강(莫强)하니 말입니다.”
“괜히 좋게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란만장하게 살아오면서 생사(生死)의 경계도 몇 번이나 넘어왔으니 그야말로 기구한 팔자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감경보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것을 본 삼진이 조용히 있다가 한마디 했다.
“약수 선생의 명식을 보니 천하가 좁다고 여기면서 주름을 잡고 다니면서 중생을 구제할 보살의 명으로 보입니다. 결코 한 곳에서 안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갑목(甲木)의 힘으로 타고 능력을 베풀면서 만인의 안락을 위해서 혼신(渾身)의 노력으로 힘을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삼진의 말에 감경보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존함이?”
“예, 삼진(三塵)입니다.”
“아, 삼진 선생이셨군요. 망한 사주라는 말은 들었으나 불보살의 원력을 실현하는 사주라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내심으로 그러한 원력을 품고 있었는데 그것을 단박에 간파하신 선생의 혜안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까?”
“아까 약수 선생의 진동에 대한 시연으로 인해서 삼진의 뇌수(腦髓)가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능력에도 없는 것이 갑자기 보였던 것인가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드립니다.”
“원 그럴 리가 있습니까?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간지를 연마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놀랍습니다.”
“약간의 얻은 공부가 있다면 그것은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티끌 하나라도 아낌없이 전해 주시려는 노력에 비한다면 너무 우둔한 것이 늘 죄송스러울 따름이니 말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제 팔자가 그렇다니 위로가 크게 됩니다. 여태까지는 참으로 볼품없는 팔자를 갖고서 그나마 주제넘게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이제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사주는 움직이는 우주입니다. 내부에서 일어난 인신(寅申)의 소용돌이가 우주의 끝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고, 선념(善念)을 담아서 쏟아내고 있으니 분명히 세상의 아름다움에 일조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할 것입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 있던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동생이 보기에 용신은 어디에 있지? 어떻게 보면 갑(甲)에 있는 것도 같다가 다시 보면 기(己)에 있는 것도 같아서 판단이 서지를 않네?”
“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약의 균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불약(不弱)으로 판단해야 할 구조인 까닭이지요. 그래서 용신은 기토(己土)와 신금(申金)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형식은 상관격(傷官格)을 취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감경보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창 선생의 날카로운 눈매는 속일 수가 없겠습니다. 많은 선생을 만나서 의견을 구해 봤으나 대부분이 약하다고 판단했는데 단박에 불약이라고 하시니 감탄했습니다. 과연 말씀하신 그대로인가 싶습니다.”
“약하다고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인신충이라고 하게 되면 그럴 만도 하겠지요. 하하~!”
“그런데 우창 선생은 인신충을 안 보신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렇게 판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창도 처음 봤을 적에는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인월(寅月)의 강력한 인성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일지(日支)의 신금(申金)은 시지(時支)의 해수(亥水)를 생하느라고 월지(月支)에 대해서 심하게 공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말했다.
“역시! 동생의 판단력은 알아줘야 해. 그렇게 설명하는 말을 들으면서 살펴보니까 정말 약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참 신기해. 호호~!”
“그렇기도 하거니와, 약수 선생이 스승의 가르침도 받았으나 만물에서 일어나는 진동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은 충으로 파괴가 되었더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참작했습니다. 공부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면 사주의 바깥에 있는 이치도 슬쩍 보면서 판단한단 말이지요. 하하하~!”
“그야 눈치도 내공이니까 당연하잖아? 호호호~!”
“정말 놀랍습니다. 인신충이 완화되지 않았더라면 진동의 깨침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설명은 처음 듣는데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하하하~!”
감경보의 감탄하는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우창은 아무리 노력해도 진동의 묘리(妙理)는 터득할 인연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또한 팔자의 인연이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하하~!”
이렇게 말한 우창이 사주를 적어서 감경보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서로 자기의 소개를 하는 것처럼 거래하는 명가(命家)의 상식이기도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사주가 무척이나 청하군요. 역시 제자를 거느리고 천하를 유람할 멋진 운명을 타고나셨습니다. 사월무진(巳月戊辰)이 경신(庚申)시를 얻었으니 글이 밥이고 글이 제자이고 글이 놀이가 되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문학자(文學者)를 앞에 두고서 합(合)을 풀이한다고 요령을 흔들었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었겠습니다. 하하하~!”
“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배운다고 해도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이제 겨우 약간의 문리(文理)가 열렸나 싶으면 다시 깜깜해지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그만하면 서로 통사주(通四柱)는 했으니 하던 공부를 계속하셔도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공부하는 분위기에 젖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진동의 이야기는 내일 또 나눠도 될 것이니 말입니다.”
기현주는 감경보가 잠시 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는 옆방의 침소로 안내해서 쉬게 하고는 다시 거실로 나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것을 본 삼진이 말했다.
“원래 기감(氣感)을 사용하는 선생의 경우에는 기의 소모(消耗)가 좀 있어서 쉬고 싶을 적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시만 쉬어도 바로 기운이 충만해질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알았네. 그럼 다시 책을 살펴볼까? 누님이 읽으실 거지요?”
“그야 당연하지. 다음에 볼 대목은 「군상(君象)」편이야.”
이렇게 말하자 모두 책을 들여다보고 기현주의 소리를 따라서 눈으로 읽었다.
군불가항야(君不可抗也)
귀호손상이익하(貴乎損上以益下)
‘임금과 겨루는 것은 불가하니
위를 덜어서 아래를 이롭게 함이 귀하니라’
“뭐야? 또 사족 선생이 나대는 모습이잖아? 사주에 임금이 왜 나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괜찮습니다. 이제 그렇겠거니 하면 되지요. 하하하~!”
“여기에서 군(君)은 누굴 말하는 거지?”
“그야 일간(日干)이 될 수도 있고 관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일간이 군일 경우에는 일간이 태왕(太旺)하고 신(臣)인 재성(財星)이 허약한 경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주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식상(食傷)이 있어서 일간의 기운을 설해서 재성을 돕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였어? 그야말로 지극히 쉬운 것을 가장 어렵게 설명했구나. 참 대단한 사족 선생이네. 호호호~!”
“그래도 재미있지 않으십니까? 늘 십성만 거론하는 것도 지겨울 만할 때는 이렇게 엉뚱해 보이지만 군신론(君臣論)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속 편하지. 그러니까 임금이 관살일 경우에는 일간이 허약(虛弱)한 상황이 된단 말이지? 그런 경우에는 무조건 인성(印星)을 용신으로 써서 살중용인격(殺重用印格)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단 말인 거지?”
“맞습니다. 누님. 잘 이해하셨습니다. 하하~!”
“알았어. 군상(君象)이 있으니까, 이어서 신상(臣象)도 있는 것이로구나. 또 읽어 봐야지. 처음에는 풀이하는 것을 몰라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하나씩 해결하고 보니까 의외로 쉬워서 재미는 있어. 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는 다음 대목인 「신상(臣象)」편을 읽었다.
신불가과야(臣不可過也)
귀호손하이익상(貴乎損下而益上)
‘신하가 지나치게 왕성하면 불가하니
아래를 들어서 위를 이익되게 함이 귀하니라’
“이 대목도 알 것 같아. 일간이 신하가 된다면 일간이 지나치게 왕성한데 임금인 관살이 허약하다는 말이잖아? 그런 상황에서는 허약한 관살을 재성이 생조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식상을 낀 재성이 들어와서 일간의 기운을 설하면서 재를 생해서 관살을 왕성하게 한다면 좋다는 말이겠지?”
“누님, 참 공부도 재미있게 하십니다. 어쩜 그리도 귀여우십니까? 하하~!”
“그래? 내가 귀엽단 말이지? 고마워. 이제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니 스승으로부터 그런 칭찬을 다 듣는구나. 호호호~!”
기현주는 우창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그래서 입이 귀에 걸려서는 웃으며 좋아했다. 그것을 본 자원이 옆에서 거들었다.
“자원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풀이해도 그런 말을 못 들었는데 아무래도 싸부가 언니에게 푹 빠진 것 같아요.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에구~ 자원도 참 내! 그걸로 또 질투하는 거야? 나도 알아, 그냥 늙은이가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것이 기특해서 말 부조를 했을 뿐인데 뭘. 그래도 듣기가 좋은 것을 보면 효과는 충분했다고 봐. 호호호~!”
“정말 언니의 입담도 못 말리겠어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웃어보인 기현주가 다시 다음 대목인 「모상(母象)」을 읽었다.
지자모휼고지도(知慈母恤孤之道)
시유과질무강지경(始有瓜瓞無疆之慶)
‘자애로운 어머니가 외로운 자식을 근심하는 줄 알면
비로소 오이 덩굴이 끝없이 이어지는 경사가 있느니라’
“어머니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이잖아? 그런데 내용이 좀 어렵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동생이 좀 거들어 줘봐.”
기현주가 풀이하면서도 썩 와닿는 느낌이 부족하다는 듯이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실 만도 하겠습니다. 가령 일간(日干)이 목(木)인데 과다한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식상(食傷)인 화(火)가 한두 개가 있으면 이것을 ‘모왕자쇠(母旺子衰)’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자식이 허약해서 어머니가 걱정한다는 말입니다.”
“뭐야? 그게 말이 돼? 인성이 강한데 왜 자식이 허약하지? 목생화(木生火)가 무진장으로 이뤄질 텐데?”
“누님도 참, 뭘 그렇게 정색하십니까? 사족 선생의 견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을 말이지요. 하하하~!”
우창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것을 보자 기현주도 우창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다시 말했다.
“응, 참, 그렇지? 잠시 잊었지뭐야. 호호호~!”
“다음의 구절은 식상(食傷)의 화운(火運)이 들어오게 되면 오이의 덩굴 마디마디에 꽃이 피고 오이가 주렁주렁 달리듯이 번창한다는 뜻입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기현주가 퍽 웃었다.
“정말 갈수록 태산이로구나. 읽기도 어렵고 쓰기는 더 어려운 글자들을 찾아다가 애써 만들어 놓은 문장이 겨우 그런 뜻이었단 말이야? 일간이 왕하고 식상이 있으면 당연히 식상이 용신이고, 식상의 운이 들어오면 용신의 운이 온 것인데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을 이렇게 너절하게 써놓으면 좀 있어 보이나? 참 내.”
“너절한 줄을 아시는 누님은 이 대목을 읽지 않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사족 선생의 잘못이 아니라 누님의 잘못이지요. 하하하~!”
“어? 그런 거였어? 그게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기는요. 이미 누님의 안목이 사족 선생을 능가(凌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어? 아, 난 또 무슨 말이라고. 듣고 보니 나쁘지는 않네. 호호~!”
“당연히 정신(精神)의 수준은 속일 수가 없으니까요. 정말 열심히 궁리하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시고 넘어가면 될 겁니다.”
우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기현주가 다음 대목인 「자상(子象)」편을 읽고 풀이했다.
지효자봉친지방(知孝子奉親之方)
시극해성대순지풍(始克諧成大順之風)
‘효자가 어머니를 섬기는 것을 알면
순풍에 돛을 달고 화목한 나날을 보내리라’
“여기에서 효자는 일간이 맞는 거지?”
“그렇습니다. 일간이 목(木)이라면 사주에 목이 태왕(太旺)한데 한두 글자의 수(水)가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는 ‘모쇠자왕(母衰子旺)’이라고도 합니다. 이건 그래도 앞의 모상(母象)보다는 조금 낫다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인성이 허약한 것은 일간이 태왕하기 때문인 것은 맞으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왜 허약한 인성을 생각해야 하지? 그냥 식상으로 쓰면 되잖아?”
“당연합니다만 식상이 없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부득이 관살(官殺)인 금(金)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어머니의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아닙니까? 하하하~!”
“가화만사성? 참으로 가정적인 분위기는 철철 넘치는구나. 호호~!”
“누님이 생각하시기에는 허접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구절로 보이시나 싶습니다.”
“맞아! 그게 딱 지금의 내 마음이야. 여기에서 언급한 몇 대목은 모두가 맘에 안 들어. 그야말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우리 자평법(子平法)에도 있다’고 천명(闡明)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지만 그 모두가 가식적(假飾的)이잖아?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여러 사람이 생각을 모으다가 보면 이런 글도 들어가고 저런 글도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경도 선생이야 분노하시거나 말거나 첨족(添足) 선생도 사족(蛇足) 선생도 심지어는 인족(蚓足) 선생도 여기에 붙어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겠거니 하면 되겠습니다.”
“아니, 동생은 왜 그렇게도 아량(雅量)이 넓어? 그렇게 말하면 이렇게 부르르~하는 나는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잖아.”
“원 그럴리가 있습니까? 그래야 재미있지 만약에 누님도 우창처럼 ‘그것도 맞고 이것도 이해하겠고 저것도 그렇군’이라고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누님의 역할을 잘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자원도 거들었다.
“정말 언니의 요소요소에서 꺼내주는 비평에 정신이 번쩍번쩍 든다니까요. 싸부가 말할 적에는 ‘그런가보다.....’했는데 언니가 하는 말을 들으면 ‘오호라~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었구나!’하는 거죠. 호호호~!”
“자원까지 그렇게 말하니까 내심으로 공부하는데 큰 부조한 듯이 흐뭇해지네. 정말 말들은 청산유수야.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사이에 다 쉬었는지 감경보가 거실로 나와서 앉는 것을 본 기현주가 감경보를 바라봤다. 혹시 할 말이 있으면 듣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본 감경보가 말했다.
“공부를 놀이처럼 즐기시는 대화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도 심각하게 공부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군상(君象)이나 신상(臣象)을 공부하면서 나라를 걱정하고 신하의 본분까지 생각하면서 온갖 생각을 다 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을 보고 나니까 참 어렵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하는 것조차 팔자 생긴 대로 하는가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감경보의 말에 자원이 물었다.
“혹시, 스승님이신 왕동민 선생의 가르침이 그렇게 엄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무래도 제자는 스승의 가르치는 방법에 따라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에요.”
“맞습니다. 너무나 엄격해서 전날 공부한 것을 모두 배송(背誦)하지 못하면 그날 공부는 진행하지 않으셨지요. 연해자평(淵海子平)은 물론이고 풍수지리(風水地理)의 서책인 금낭경(錦囊經), 팔택명경(八宅明鏡)까지도 모두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와~! 정말 고생도 하셨으나 많은 공부를 쌓으셨네요. 그래서 특별한 능력도 얻게 되신 것 같아요. 역시 공부는 놀이처럼 할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처럼 해야 하나 봐요.”
“가끔은 스승님을 원망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라도 했으니까 우둔한 천성에 지리(地理)에 대해서도 약간의 안목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하~!”
“어머! 지리를 통달하셨군요. 정말 부러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지리에 대해서도 한 수 배우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현주가 책에 빠져있음을 생각한 우창이 한쪽 눈을 찡긋하고 말했다.
“다음 기회에 풍수에 대한 설법도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그러지요. 풍수도 재미가 있기는 합니다.”
우창은 문득 지광이 생각났다. 역시 지리에 대해서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는데 싶어서 웬만한 지사(地師)는 안중에 없었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약수의 능력은 특이해서 관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