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3] 제44장. 소요원(逍遙園)/ 26.종화(從化)

작성일
2025-04-0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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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44. 소요원(逍遙園)

 

26. 종화(從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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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인데도 기현주는 화원에 물을 뿌리다가 우창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말했다.

, 벌써 일어나서 산책 중이구나. 동생도 참 부지런하네. 잘 주무셨어?”

, 누님께서 그렇게 열성적으로 화원을 가꾸시니 화초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백화를 피우는가 봅니다. 그대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우창은 기현주의 목소리를 듣자 그렇지 않아도 상쾌한 아침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들고 오는 자원이 우창을 보고는 반갑게 말했다.

싸부! 잘 오셨어요. 이것 좀 언니에게 갖다줘요. 몇 통을 날랐더니 팔이 아프네요. 호호호~!”

자원이 길어 온 물을 화초밭에 뿌리던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사람도 아침이면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하듯이 이 아이들도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면 고마워하는 표정들이 보이거든. , 이만하면 되었으니 들어가서 차를 마실까?”

, 좋습니다. 하하~!”

찻잔을 앞에 놓은 세 사람이 바깥 풍경에 대해서 담소하는 사이에 삼진이 씻고 나와서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모두 부지런하신데 삼진만 게으른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맘대로 안 됩니다. 하하~!”

삼진의 말에 기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이 마음에 쓰인다면 이미 내 집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거네? 그러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편히 머물러주면 더 고마울 텐데 말이야. 그렇게 살고 싶어서 소요원(逍遙園)이잖아? 호호~!”

맞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조금 전까지 남아있었던 미안한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고맙습니다.”

기현주가 둘러보고는 말했다.

갈만은 아직 쉬고 있나 보다. 어때? 우리끼리라도 한 대목 음미하는 것이? 갈만은 아직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나중에 내가 가르쳐주면 될 테니까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자 흔쾌히 말했다.

이미 누님께서 학문(學問)의 문이 활짝 열리셨는데 무슨 말인들 사양하겠습니까? 그럼 펼쳐보도록 하시겠습니까?”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펴놓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아니, 이 대목은 이름이 종상(從象)이네? 이것은 일행득기격(一行得氣格)을 말하는 것인가?”

종상만이 아니라 화상(化象)도 있으니 같이 살펴보도록 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구나. 화상도 있었네. 종화(從化)는 무슨 의미로 이해하면 될까?”

간단합니다. ()은 종세(從勢)한다는 것이고, ()는 변화(變化)한다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세력을 쫓는 것은 알지. 종살격(從殺格)이나 종재격(從財格)을 말하잖아?”

맞습니다. 종아격(從兒格)도 같은 의미로 보면 되겠고, 넓게 보면 종강격(從强格)이나 종왕격(從旺格)도 모두 세력을 따르고 있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니까 같은 것으로 보겠습니다.”

, 맞아. 그런 것이 있었지. 벌써 공부를 모두 한 것이나 마찬가지네. 어서 읽어봐야지.”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고는 종상(從象)을 읽고 풀이했다.

 

종득진자지론종(從得眞者只論從)

종신우유길화흉(從神又有吉和兇)

 

종을 얻어 진실한 것은 다만 종으로 논하는데

종을 했더라도 또한 길흉이 있느니라

 

? 이게 뭐야? 내용이 좀 이상하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아니, 그렇잖아. 종을 얻어 진정한 자는 종으로 보면 된다니 이런 맥 빠지는 말이 어디 있느냔 말이야.”

아마도 진종(眞從)과 가종(假從)을 나누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오행(五行)의 상리(常理)에서 십만팔천리나 벗어나 있으니 고려할 필요가 없어서 우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습니다만. 하하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종격을 논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오행의 이치는 강자의억(强者宜抑)하고 약자의부(弱者宜扶)하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재론(再論)할 필요도 없는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적천수에서 언급이 되어 있으니 내용에 대해서는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렇구나. 나도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기야 하지. 그래도 누군가 종에 대해서 거론하게 되면 왜 의미가 없다는 것인지는 알아야 가르쳐 줄 수도 있을 테니까 우선 동생이 설명해 줘.”

기현주도 우창의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의미만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대중을 둘러본 다음에 설명하려는데 마침 갈만도 안으로 들어와서 합석했다.

스승님과 도반을 뵙습니다. 제가 가장 게으르네요. 하하~!”

아냐, 우리가 너무 극성스러운 거지. 호호호~!”

기현주도 반갑게 말하고는 우창을 바라보자 모두 우창에게 눈을 모았다.

일간(日干)이 다른 곳에, 그러니까 일곱의 간지에 인겁(印劫)이 전혀 없을 경우에는 종법(從法)으로 논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식상(食傷)이면 종아(從兒)가 되고 재성(財星)이면 종재(從財)가 되며 관살(官殺)이면 종살(從殺)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특별히 강한 식재관이 없이 고르게 있다고 할 때는 종세(從勢)가 되어서 그중에서 비교적 강한 오행을 따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종살(從殺)이 되는 것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지. 그래서?”

기현주는 다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지 또 이야기해 달라는 듯이 말했다.

글에 쓴 대로 종득진자지론종(從得眞者只論從)’의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종(眞從)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맞아. 실은 내가 궁금한 것은 다음 구절의 뜻이야. 뭐가 길흉이 있다는 것인지 의미를 잘 모르겠어.”

, 무슨 깊은 뜻이 있겠습니까? 종격(從格)에서 길한 것은 종신(從神)의 운을 만나는 것이니까 종살격이라면 재살(財殺)의 운을 만나야 하고, 종재격이라면 식재(食財)의 운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일반적인 이치로 봐서는 흉운(凶運)이라고 하겠지만 종격이 된 이상은 오히려 그 흉운이 길운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런 뜻이었구나. 그러니까 흉하다는 것은 보나 마나 종한 사주에서 인겁(印劫)의 운을 만나는 것이란 말이지?”

바로 이해하셨습니다. 하하~!”

그야 간단한 것인데 괜히 어렵게 써놨잖아? 이것은 분명히 사족 선생의 글이겠어. 적어도 경도 선생이라면 이렇게 써놓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괜히 어렵게 빙빙 돌려놓은 것은 오행의 이치에 밝지 못한 것이 분명하잖아.”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남들 보기에 있어 보이게 장식한 것은 확철대오(確徹大悟)한 스승이라면 생각하지도 않을 일인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동생의 말은 결국 약자는 도와야 할 뿐이고 기명종살(棄命從煞)이라는 말은 이치에 벗어나니 논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되는 거지?”

원래 진리는 쉽고 간단하며 명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정말이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겠어. 그렇다면 여기에서 더 우려낼 양분(養分)은 없어 보이니 다음 구절을 봐야겠네.”

이렇게 말하고는 다음 구절인 화상(化象)편을 읽고 풀이 했다.

 

화득진자지론화(化得眞者只論化)

화신환유기반화(化神還有幾般話)

 

화기격(化氣格)을 얻어 참되면 화()로 논하면 되지만

화신(化神)에도 도리어 몇 가지 이야기는 있느니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맞는 것이겠지?”

, 잘 풀이하셨습니다. 누님.”

글귀로 봐서 앞의 내용을 지은 사람이 이 대목도 썼다는 것은 알겠어. 그러니까 사족 선생의 글이라는 이야기인 거지?”

맞습니다. 내용에 어려운 점은 있으십니까?”

앞의 구절은 어렵지 않은데 화격(化格)의 의미는 동생이 설명해 주면 정리에 도움이 되겠어.”

이미 누님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만, 굳이 설명해달라고 하시니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화기격(化氣格)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갑기화토격(甲己化土格), 을경화금격(乙庚化金格), 병신화수격(丙辛化水格), 정임화목격(丁壬化木格),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계화화격(戊癸火化格)이 그것이지요. 이것은 알고 계시지요?”

알겠어. 그러니까 일간(日干)이 갑기합이고 나머지 여섯 글자는 무기(戊己)와 진술축미(辰戌丑未)로 되어 있을 때 화토격(化土格)이라고 한다는 말이잖아?”

맞습니다. 이러한 형태가 되면 일간(日干)이 갑목(甲木)이라고 하더라도 화토격이 되어서 토로 작용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갑목이 토로 변한다는 것은 배웠어. 그런데 동생은 그러한 논리는 이치에 어긋난다는 말이잖아?”

당연하지요. 태어날 적에 갑()으로 태어났으면 일평생이 갑인데 기()를 만났다고 해서 기명종재(棄命從財)를 한다는 것이 언뜻 듣기에는 신비로워 보이기조차 합니다만, 이치로 본다면 황언(荒言)일 따름입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예전에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 말이야.”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갑기합(甲己合)에서 갑()은 토로 변한다고 하잔 말이야. 그런데 기()는 토로 변한다고 하면 도대체 어떤 토로 변한다는 말이야? 난 그것이 항상 이해되지 않았거든. 여기에 대해서 동생은 어떻게 생각하지?”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웃었다.

누님도 참 재미있으십니다. 하하하하~!”

뭐가? 왜 웃지? 내 질문이 기가 막힌 건가? 호호호~!”

누님, 오행은 몇 가지입니까?”

그야 물어서 뭘 해 다섯 가지라서 오행이잖아.”

그렇다면 육행(六行)이 되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주장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 육행? 그런 생각은 못 했는데? 육행도 있어?”

없으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만 정상이라고 한다면 또 몰라도 다섯 손가락이 정상인데 여섯 손가락이 정상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듣고 보니까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잖아? 다시 말해서 기토(己土)와 무토(戊土) 외에 또 다른 토는 없는데 갑기화토(甲己化土)가 되었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육지(六指)의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겠어. 정말 어려운 것도 쉽게 말해 주는 재능은 인정해 줘야 한다니까. 호호호~!”

이미 화기격에 대해서도 재론(再論)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글자를 풀이한다는 의미로 살펴본다면 여기에도 몇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게 또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 있다는 것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렇게 애매모호(曖昧模糊)한 글로 진의(眞意)를 숨기려고 든다면 오행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야 신비롭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이야기를 듣는 즉시로 코웃음을 칠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몇 가지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결국 화신(化神)의 오행 운을 만나면 일이 잘 풀리고 부귀공명을 할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화기를 극하는 운이라도 만나게 되면 하는 일들이 모두 꼬여서 고통스럽게 된다는 등등의 말이란 거지?”

역시! 앞에서 설명해 드린 보람이 여기에서 바로 드러납니다. 하하~!”

그런데 왜 자평법에 이러한 이야기가 끼어들었던 것일까? 이제는 그것이 도리어 궁금하네? 설명해 줄 수 있어?”

기현주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묻자 우창도 잠시 생각한 다음에 설명을 이어갔다.

누님이 그러한 것까지 궁금해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 말도 안 되는 것을 물었어?”

아닙니다. 그 반대지요. 우선 종격(從格)의 논리에 대해서부터 설명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니,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었단 말이구나? 정말 동생의 궁리는 어디까지인지 깊이를 모르겠어. 어서 말해줘 봐. 궁금하다.”

우선, 종법(從法)의 개념(槪念)은 역사적인 왕조(王朝)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춘추전국(春秋戰國)의 열강(列强)들이 치고받는 처절한 전쟁에서 강자(强者)는 패자(覇者)가 되어서 망국(亡國)의 백성을 잔혹하게 살상했습니다. 그러한 와중(渦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국에 대한 향수(鄕愁)를 버리고 새로운 제왕(帝王)에게 복속(服屬)하는 것이 최선임을 깨달았습니다.”

맞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했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기현주가 이해된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누님이 이해하셨으니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명리학자로 소문이 난 선생이 제왕(帝王)의 부탁으로 왕자의 사주를 봤을 적에 너무나 무력해서 종격(從格)으로나 설명해야 할 난처한 상황을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하! 그러니까 감히 폭군의 왕이 바라보고 있는 면전에서 잔뜩 기대하고 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 태자의 사주를 평하는 마당에 폐하, 송구하오나 이 사주는 너무 허약해서 제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가해 보이니 출가하기를 권하고자 합니다.’라고 할 배짱을 갖기도 쉽지 않겠지. 충분히 이해되네. 그래서 종격에 화기격까지 들고나와서 생명을 부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구나.”

그냥 상상해 본 것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행의 이치를 깨달은 학자가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이치를 말했을 까닭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하하~!”

정말 멋진 해석이네. 그래서 말이 되든 말든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니까 정말 통쾌한 가르침이잖아. 호호호~!”

다른 사람은 우창도 알 바가 없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생각에 맡겨야 할 일일 뿐이지요. 다만 누님은 이해하셨다니 우창도 기쁩니다. 하하~!”

그렇다면 화상(化象)에 대한 이치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지 설명을 부탁해.”

화격(化格)의 의미는 좀 복잡합니다. 우선 고대의 의서(醫書)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여기에 언급되기로는 오운(五運)은 천운(天運)을 말하고 육기(六氣)는 지운(地運)을 말하는데, 간합(干合)도 오운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 말은 들어봤어. 갑년(甲年)에는 토태과(土太過)하고 기년(己年)에는 토불급(土不及)이라는 주장을 말하는 것이지?”

역시, 누님도 박학(博學)이십니다. 하하하~!”

그냥 어쩌다 주워들었을 뿐이야. 넓기는 할지 몰라도 깊이가 없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호호~!”

아닙니다. 그렇게 흩어진 조각들이 세월을 머금고 점차로 하나로 묶어지게 되면 거대한 지식의 창고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는 해. 그러니까 의서에 있는 오운론이 명학에 유입(流入)된 것이란 말이지?”

물론 짐작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므로 유추(類推)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하튼 자평법에서는 오행의 생극(生剋)만을 위주로 삼으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동생이 더 깊은 이야기를 해 줘도 내가 부족해서 수용(受容)의 한계가 오겠어. 그것만으로 출처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었다고 해도 충분하지 싶네. 더 알고 싶지 않은데 혹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으려나?”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알고 계십니다. 더 보태는 것이야말로 군더더기에 불과할 테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론을 적용해서 풀이하는 학자는 또 그렇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해서 맞느니 맞지 않느니 하면서 세월을 허비할 테니 그것은 내버려 두기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어허!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이미 그러한 것을 이야기해 봤으나 결국은 별무소득이었다는 것이잖아? 그렇게 겪어가면서 내면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겠거니 하면 되지 뭐. 다만 나는 충분히 이해했어. 그걸로 충분하지? 호호~!”

다행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 것이려니 싶기도 합니다. 만약에 누님이 거부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진즉에 끝났고, 우창도 다시 가던 길을 나섰을 테니 말입니다. 하하~!”

알겠어. 종화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부 이해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의혹이 남지 않네. 그렇다면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되겠어. 또 읽어 봐야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공부니까 말이야. 호호~!”

기현주는 유쾌하다는 듯이 웃으며 책을 들여다보고는 가종(假從)편을 읽고서 풀이했다.

 

진종지상유기인(眞從之象有幾人)

가종역가발기신(假從亦可發其身)

 

참으로 종하는 사주가 몇 이나 되랴

거짓된 종이라도 또한 출세할 수가 있느니라

 

이건 뭐지? 진종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위로라도 하겠다는 뜻이야?”

그렇게 보이십니까? 하하하~!”

아니, ()도 논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이번에는 가종을 하더라도 출세를 할 수가 있다고 하니까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짐짓 믿어야 할지를 고심할 수도 있지 않겠어?”

맞습니다. 진종(眞從)은 그만두고 가종(假從)조차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그래서 오랜 세월이 흘러갔어도 다시 이러한 흔적들이 고개를 들고 자기의 존재감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알았어, 더 논의할 것도 없으니 다음 구절을 살펴보도록 할게.”

기현주는 다시 다음 구절인 가화(假化)편을 읽었다.

 

가화지인역다귀(假化之人亦多貴)

고아이성능출류(孤兒異姓能出類)

 

거짓으로 화한 사람도 귀한 경우가 많으니

고아가 입양해서 출세하는 것과 같으니라

 

역시 내용도 가종과 대동소이하구나. 다분히 위로하려는 마음도 보이고 말이야.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잖아. 그렇지?”

그게 무슨 소용이랍니까? 올바른 관점으로 살펴서 판단하는 것만이 소중할 따름이라고 여깁니다.”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가화(假化)라는 말을 들으면 정작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마음에 상처받을 수도 있겠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어디 인정(人情)으로 다툴 것이겠습니까? 하하~!”

맞아! 동생의 그 꿋꿋한 논리가 맘에 들어서 내가 놔주질 못하잖아. 정말로 만나기 어려운 스승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하니까 말이야.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열심히 듣고 있던 갈만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두 분의 열띤 가르침으로 큰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우선 이것을 먼저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도 말씀을 듣던 중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스승님께 고견을 청하고자 합니다.”

조용하던 갈만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가 더 반갑게 말했다.

어머! 궁금한 것이 뭐야? 이대로 넘어가는 것이 약간 아쉬웠는데 광덕이 이야기해 준다니 기대가 되네. 어서 말해봐.”

기현주의 말에 갈만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