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 제44장. 소요원(逍遙園)
19. 장수(長壽)와 요절(夭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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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내용을 본 기현주가 반갑게 외쳤다.
“와~! 이번에는 수명의 장단(長短)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잖아? 나도 이게 참 궁금했는데 여기에서 배우게 되는구나. 읽어볼게.”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소리를 내서 읽었다.
하지기인수(何知其人壽)
성정원기후(性定元氣厚)
하지기인요(何知其人夭)
기탁신기료(氣濁神枯了)
‘그 사람이 장수할 것을 어찌 아는가
심성(心性)이 안정되고 원기가 두터워서고
그 사람이 요절(夭折)할 것을 어찌 아는가
기운이 탁하여 정신이 메마른 까닭이니라’
다 읽고 나서 우창에게 물었다.
“동생, 장수하는 사람은 심성이 안정되고 원신(元神)이 두텁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원신은 무슨 의미이지?”
“관살이 되기도 하고 인성이 되기도 합니다. 인성이 있으면 관살이 원신이고 인성이 없으면 관살은 원신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관인(官印)이 잘 짜여 있으면 마음이 너그럽고 조바심을 내지 않으니 오래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당연하잖아?”
“왜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창이 드리는 말씀이지요. 이 대목은 군더더기에 가깝다고 보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하~!”
“정말이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쓸데없는 구절이 붙어있어서 무늬만 그럴싸하네.”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기현주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이 일찍 죽거나 오래 사는 것이 모두 팔자소관(八字所關)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지? 보통 그렇게들 말하잖아?”
“그렇기는 합니다. 그로 인해서 명학자(命學者)는 곤혹(困惑)스러울 따름이지요.”
“참으로 수명과 팔자는 무관(無關)하단 말이야?”
“누님은 팔자대로 수명을 누리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믿고 계셨던 것입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수명을 타고 난다면 팔자도 타고나니까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
우창은 기현주의 말을 들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님께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하겠습니다.”
“맞아! 나도 기대가 되거든. 어서 설명해 줘봐.”
“우선 명(命)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 그건 무슨 말이지? 명(命)은 목숨 명이니까 태어나면서 생명을 얻어서 평생을 살다가 명이 다하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잖아?”
기현주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선 숙명(宿命)이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주팔자라고도 하지요. 숙세(宿世)의 업이 금세(今世)에 팔자로 주어진 것으로 짐작합니다. 여기에는 전생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우창의 생각에는 타고 난 저마다의 명식(命式)이 바로 이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 맞아! 숙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으로 이미 결정(決定)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숙명에는 수명에 대한 의미가 없는 거야?”
“또 있습니다. 운명(運命)이 있지요?”
“아니, 그건 서로 같은 것이 아니었나?”
“다릅니다. 숙명이 체(體)라고 하면 운명(運命)은 용(用)이 되고, 숙명이 정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운명은 정해질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숙명은 팔자(八字)라고 한다면 운명은 운세(運勢)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년마다 들어오는 태세(太歲)를 팔자의 길흉(吉兇)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으니 이것은 음양(陰陽)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은 계획했던 일이 꼬이면 운명이라고 하잖아?”
“그건 약간 비겁한 핑계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기현주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것은 의미가 다르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맞습니다. 엄연히 서로는 다릅니다. 숙명과 연결되는 것은 태세의 운명으로 보는 것으로는 제격입니다. 그 외에 말하는 운명은 일종의 체념에 대한 도피처로 사용되는 것이니 이것은 사뭇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아무것이나 가져다 붙일 수가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하~!”
“그렇다면 수명(壽命)도 하나의 명(命)인 거야? 따로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말이야.”
“맞습니다. 따로 놓고 생각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왜 그렇지?”
“수명(壽命)은 신체에 대한 것이고, 숙명(宿命)은 정신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언뜻 생각하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설명해 줘봐.”
“다시 여쭙겠습니다. 자평법은 정신을 보는 것입니까? 신체를 보는 것입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기현주도 바로 대답했다.
“동생을 만나기 전에는 신체나 물질을 보는 것으로 여겼으나 이제는 정신을 논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어.”
“그렇다면 다시 여쭙습니다. 수명은 신체적인 상황을 보는 것이니 정신적인 것을 보는 잣대로 가늠하는 것이 이치에 타당하겠습니까?”
“듣고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잖아? 여태까지 몰랐어.”
“과거에 몰랐던 것은 괜찮습니다. 지금 이해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말이지요. 그렇다면 다시 수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응, 어서 말해봐. 이것도 참 중요하단 말이야. 호호~!”
기현주가 흥미를 보이며 말하자 우창도 설명을 시작했다.
“자, 똑같은 한날한시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팔자는 같겠습니까?”
“당연하잖아.”
“그렇다면 한 사람은 갑(甲)이라 칭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을(乙)이라고 칭하겠습니다. 갑은 조상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이고, 을은 대대로 단명하는 집안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수명은 어떨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와~! 어렵다. 우선 생각하기에는 수명이 다를 것으로 여겨지는데 문득 동생의 현란한 말재간에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또 뭘까?”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또 생각해 보십시다. 가령 한날한시에 병(丙)은 기후(氣候)가 온화(溫和)한 곳에서 의식에 부족함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정(丁)은 궁벽한 산촌에서 겨우 풀뿌리와 나물을 뜯어 먹으면서 살고 있다면 두 사람의 수명은 같겠습니까?”
“아니, 그것은 팔자보다도 환경이 달라서 차이가 나는 거잖아?”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창이 말했다.
“맞습니다. 팔자도 중요하나 환경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환경은 정신과 연관이 있을까요? 아니면 신체와 영향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신체와 영향이 있지 않겠어? 정신에는 남북이 없으나 신체는 한서(寒暑)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야.”
“그렇다면 수명(壽命)은 팔자의 영향을 많이 받겠습니까? 아니면 환경의 영향을 더 받겠습니까?”
“듣고 보니까 팔자의 영향보다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아.”
“누님께서 환경의 영향에 대해서 동의하신다면 이야기는 더 수월해지겠습니다. 가뭄에 곡식이 말라 죽어서 먹을 것이 없으면 아사(餓死)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팔자가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습니까?”
기현주는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차차로 또렷하게 이해되었다.
“알았어! 수명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에 대해서 확연히 깨달았어. 그러고 보니까 장수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나 혹은 단명하는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도 환경이라고 해야지?”
“그렇습니다. 그것을 출생환경(出生環境)이라고 하게 됩니다.”
“오호! 출생환경, 그것참 적절한 말이구나. 알았어. 동생이 말하고자 하는 이치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어. 그렇다면 팔자와 수명은 전혀 연관(聯關)이 없다는 말이지?”
“그건 아닙니다. 팔자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니 무관(無關)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하하~!”
“뭐야? 이랬다저랬다 하면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기현주가 겨우 이해했다가 우창의 말에 다시 혼란스러워서 물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팔자의 영향에서 수명을 길게 하는 것에는 ‘성정원기후(性定元氣厚)’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족(蛇足) 선생도 이 정도는 알고 있으셨나 봅니다. 하하하~!”
“어? 그 말의 뜻은......?”
“그렇습니다. 심성(心性)이 안정(安定)되고 원기(元氣)가 후덕(厚德)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신체를 말합니까? 아니면 정신을 말합니까?”
“그야 물으나 마나 정신을 말하는 것이잖아. 성(性)이 나왔으니 더 말해서 뭘 하겠어? 호호호~!”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기현주에게 우창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요절(夭折)하여 단명하는 사람은 또 어떻게 해석하셨지요?”
“기탁신고료(氣濁神枯了)라고 했으니까, 기운(氣運)이 혼탁(混濁)하고 정신(精神)이 메마르다는 말이잖아? 어? 이것도 정신의 이야기잖아?”
“이제 확실하게 이해하셨습니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만,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팔자라고 한다면 이렇게 볼 수가 있다는 의미로는 훌륭합니다. 하하~!”
“정말이네? 이렇게 설명을 듣고서 다시 살펴보니까 팔자에 따라서 수명이 정해진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 원인을 정신에 두고 보니 일부의 영향은 있다고 이해하란 말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아?”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건 틀림이 없는 것이니까요.”
“알았어. 그러니까 어떻게 팔자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를 알면 된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누님께서 말씀해 보시지요. 어떤 경우에 신체적인 수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팔자가 혼탁(混濁)하면 정신도 두서가 없이 뒤엉켜서 심란(心亂)할 것이잖아? 이렇게 되면 번민(煩悶)이 많을 것이고 이러한 것은 장수에 장애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걸.”
“맞습니다. 또 어떤 것이 생각나십니까?”
“또? 음..... 아, 생각났다. 팔자의 오행이 유정(有情)하게 흐름을 타고 생생(生生)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마음이 여유로울 테니 수명에도 영향을 미쳐서 장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겠어.”
“적확한 말씀이십니다. 틀림없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것 봐! 결국 팔자에 따라서 수명이 정해진다는 말도 되잖아?”
기현주는 팔자에 수명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까지는 마음에서 비우지 못하고 여전히 여운이 남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을 보며 우창은 다시 방향을 바꿔서 이해시키려고 물었다.
“그렇다면 노력(努力)도 수명에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노력? 당연하지. 몸에 좋은 것을 챙겨서 먹고 몸에 해로운 것은 피한다면 그 사람은 노력에 의해서 수명도 연장이 될 테니 말이야.”
“만약에 팔자는 기구(崎嶇)해서 용신(用神)은 충파(衝破)되고 희신은 숨어서 용신을 돕지도 못하는 사람이 항상 하는 일마다 꼬이고 힘들어서 지치게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인데, 혹 이러한 사람이 불문(佛門)에 귀의해서 세상의 물욕을 끊고 수행에 전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쉽진 않겠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마음의 번뇌를 내려놓는다면 당연히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네.”
“누님. 바로 이것입니다. 수명에는 팔자도 영향을 미치고, 환경도 영향을 미치고, 노력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팔자만 보고서 수명을 판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현주는 갑자기 머리를 무엇인가로 한 대 맞은 듯이 띵~! 한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우창이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를 확연하게 깨달은 것이다.
“아하~! 바로 그것이었구나. 전부(全部)와 일부(一部)의 차이를 내가 몰라서 동생을 괴롭혔던 것이었어. 호호호~!”
우창이 기현주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기현주가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또 물어봐야겠어. 장수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러니까 장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묻는 거야.”
“우선 팔자를 잘 타고나면 장수하기에 좋습니다. 연주상생(聯珠相生)이면 다 말을 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품(性稟)이 온후(溫厚)해서 조바심이 없을 것이고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알고 넓은 마음으로 대할 테니 말이지요.”
“일리가 있어. 그다음에는?”
“그다음이 아니라 팔자가 혼탁하고 충극이 많고 용신도 손상받은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지 않겠습니까? 장수하는 팔자를 이해하셨다면 단명하는 팔자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에 맞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하하~!”
“아, 그것도 좋지.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관점과 응용하는 관점의 차이구나. 내가 너무 조급했어. 호호호~!”
“단명하기 쉬운 팔자는 기탁신고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힘든 일이 끊이지 않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으며 항상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게 될 테니까 아무래도 장수를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조바심이 없이 오늘 주어진 것에 대해서 만족하고 누린다면 또한 장수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하~! 알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하하~!”
“맞아, 어떤 사람은 하는 일이 잘 못 되었더라도 자기를 탓하고 남을 원망하지 않으며 다시 고쳐서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사사건건(事事件件)으로 남의 탓으로 원망만 하고 불평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일을 당해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면 또한 수명을 깎아 먹을 일이 없다는 말이잖아? 그렇지?”
“당연하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아가노라면, 잘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을 텐데 그러한 경우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는 것은 노력으로도 개선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현(聖賢)도 항상 가르치고 계십니다. 탐욕(貪慾)을 내려놓고 빈 배처럼 허허(虛虛)롭게 살다 가라고 말이지요.”
“옳지! 그래서 동생도 장자(莊子)를 좋아하는구나.”
“맞습니다. 조바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잠을 자더라도 깊은 숙면(熟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 깨어나도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非夢似夢)이 되기 마련이지요.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든 올바른 판단으로 처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하잖아. 화(火)는 영혼조차도 불태우고 말 테니 연약한 육신이야 말해서 뭘 하겠어. 매사에 화를 내는 사람과 평정심을 갖는 사람의 하루는 전혀 다르다고 해야지. 그리고 그러한 것은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는 것이잖아?”
“성내지 않으면 평온해지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정이 되고 원망하지 않으면 만족하게 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수행이 또 어디 있겠나 싶습니다.”
“정말이네. 그렇다면 불보살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것도 장수하는데 도움이 되겠구나. 그렇지?”
“맞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타인에게 해주라는 것이 보시행(布施行)이지 않습니까?”
“그건 나도 알지. 보타암의 혜정 화상이 들려줬던 말씀에도 그랬어.”
“뭐라고 하셨습니까?”
“응,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수행하면 세상만사가 평화로워진다고 하셨지.”
“무슨 수행법입니까? 처음 듣습니다.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여섯 가지의 수행법이야.”
“여섯 가지라면 그 안에 모두 다 들어있지 싶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제일바라밀(第一波羅蜜)은 보시(布施)라더구나. 남에게 베풀어 주면 내 마음이 기쁘니 이것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첫걸음이라고 하셨어.”
“이해됩니다. 물질적인 것을 나눠주고 정신적인 충만감을 얻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도움이 되겠습니다.”
우창이 잘 알아듣는 것을 본 기현주가 신이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동생이 잘 이해하는구나.”
“어렴풋이 듣기는 한 것도 같은데 정확한 뜻을 몰랐습니다. 이번 기회에 누님의 가르침으로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제이바라밀은 지계(持戒)라고 하셨지. 스스로 경계하는 거야. 이렇게 함으로 해서 탐욕을 절제(節制)하게 되고 살생(殺生)이든 도둑질이든 모두가 탐욕이므로 분에 넘치는 것을 절제하면 된다는 거야.”
“참으로 멋진 가르침입니다. 재계(齋戒)하는 마음이 있으면 방종(放縱)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 분명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제삼은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라고 하셨어. 누가 나를 욕하거나 헐뜯더라도 맞서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버리게 되면 마음에 분노의 먹구름이 끼는 것을 바람결에 흩어버릴 수가 있다는 거야. 그 순간만 참으면 되는데 그것을 못 하고서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잘못되면 죽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고서 일평생을 후회하게 된다면 이미 늦었단 말이야. 그 전에 인욕을 수행하게 되면 항상 평온한 마음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위기의 순간을 잘 넘길 수가 있다고 하셨어.”
기현주의 말을 들으면서 곰곰 생각하던 우창이 말했다.
“누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여섯 가지를 다 행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실행하더라도 이미 수명이 십 년은 길어질 듯합니다. 하하~!”
“그렇지? 그럼 나머지는 생략하지 뭐. 호호~!”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는 해 놔야 다음에 사유할 적에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의 바라밀은 무엇입니까? 참 바라밀의 뜻도 있지 않겠습니까?”
“응, 바라밀은 수행자의 길이고 도(道)가 되는 거야. 우창도 도를 좋아하잖아? 호호~!”
“아하! 그렇습니까? 과연 도라고 할 만합니다. 네 번째를 알려주시지요.”
“제사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야. 수행을 하는 사람은 목표를 향해서 꾸준하게 노력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 이리저리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서 갈팡질팡하지 말라는 뜻이야.”
“맞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 적당한 말이 있었구나. 호호~!”
“다섯 번째는 무엇입니까? 갈수록 흥미가 진진합니다. 하하~!”
“재미가 있다니 다행이네. 제오는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이야. 쉽지 않겠지만 공부하고 깨달은 것은 사유(思惟)를 통해서 더욱 정미(精微)롭게 다듬어서 깊이를 더하라는 뜻이지. 무사(武士)가 좋은 칼을 얻었으면 계속 연마(硏磨)해서 날카롭게 해야 하고, 학자(學者)가 좋은 책을 만났으면 계속 의미를 사유하고 분석해서 깊게 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정말입니다. 불타의 가르침은 항상 심오(深奧)하네요. 모든 공부에 두루 통하는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잊지 않아야 할 덕목(德目)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응, 제육은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이라고 하네. 배운 것은 지식(知識)인데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그중에서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서 명검(名劍)을 만들면 그것이 바로 혜검(慧劍)이라고 하는 거야. 지혜는 날카로우니까.”
“어쩐지, 보타암 화상은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지혜바라밀을 연마하고 계셨겠습니다.”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동생도 날카로움이 만만치 않은데?”
“성품은 온화하고 지혜는 날카롭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우창의 희망사항(希望事項)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천성이 우둔해서 아직도 그 꿈을 이루기에는 요원(遙遠)한 것만 같습니다. 하하하~!”
“아니, 동생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어쩌누?”
기현주가 눈을 곱게 흘기면서 자원에게 물었다.
“참, 자원은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지? 혹 검술(劍術)을 연마했었나?”
갑자기 자원에게 말하자 자원이 움찔하고는 말했다.
“언니, 난데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냐, 앉아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면 마치 한 자루의 검을 세워놓은 것처럼 단아(端雅)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런 자세가 나오려면 검술(劍術)이 아니고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호호~!”
기현주의 말에 우창은 옛날 노산에서 불한당을 제압하던 자원이 떠올랐다. 그런데 기현주가 그것을 알아본 것이 내심 놀라워서 말했다.
“누님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실로 자원의 검술은 꽤 쓸만한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행여 어려운 상황을 맞닥트리면 도움도 받습니다. 하하~!”
자원이 대답 대신에 미소만 지었다. 기현주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우창에게 말했다.
“정말 멋진 길동무구나. 타고난 능력에 검술을 익히고 여기에 음양과 오행으로 나날이 연마하게 되니 웬만한 난관은 무난히 타개하겠어.”
“그래서 자원과 동행하면 항상 든든합니다. 하하하~!”
“맞아! 그럴 거야. 그런데 하지장(何知章)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벌써 끝났네? 그리고 오늘의 공부는 아쉽지만 여기까지 해야겠다. 내가 바깥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이제 좀 쉬어. 너무 괴롭혔지? 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는 바삐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