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 제44장. 소요원(逍遙園)/ 20.좌탈입망(坐脫立亡)

작성일
2025-03-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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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 44. 소요원(逍遙園)

 

20. 좌탈입망(坐脫立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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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오십시오~!”

, 편히 쉬고 계셔~!”

기현주가 나가자 이번에는 갈만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동했습니다.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인생의 여정을 단지 팔자만으로 논하는 것도 어려울 진대 하물며 수명의 장단을 논하는 것이야 더 말해서 뭘 하겠느냐는 말씀을 들으면서 과연 학자의 본분에 충실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학자의 본분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말하지??”

우창이 묻자 갈만이 대답했다.

학자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한데도 자신의 명성을 먼저 생각하게 되면 그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 것도 스스로 깨달았다는 듯이 말하다가 오류(誤謬)가 드러나게 되면 다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또 다른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말입니다.”

,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네. 하하~!”

그래서 제자가 감동한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봐하니 수명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디 그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수명에 대해서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들으면서 옛날의 어느 선사(禪師)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좌탈입망(坐脫立亡)입니다.”

갈만의 말에 자원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었다.

앉아서 벗어나고 서서 죽는다는 뜻인가요?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요. 자세히 설명해 줘봐요.”

, 소사(少師)께서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당연히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생사(生死)에 대해서 광덕(廣德)도 무척 관심이 많아서 관련 자료들을 좀 찾아보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생사(生死)에 자유로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 큰 충격을 받기도 했지요.”

그게 무슨 뜻이죠?”

보통의 사람들은 세상을 하직하려면 질병(疾病)이나 노환(老患)을 통하기도 하고 불의의 재난(災難)과 같이 화재(火災)나 수재(水災) 등을 겪어서 삶을 하직하게 되지 않습니까? 물론 스스로 삶을 하직하기 위해서 독약을 취하거나 목을 매는 등의 수단을 찾기도 하고 말입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또 다른 죽음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한 선사의 죽음은 죽음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간단히 육신을 헌 옷을 벗어버리듯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경악했습니다. 이러한 죽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라면 범인도 행하는 일이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세상을 비관해서가 아니라 떠나고 싶으면 가볍게 이웃 마을에 놀러 가듯이 몸을 떠나버린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못 들어봤어요. 그런 죽음이라면 얼마나 허망할까 싶기도 하네요.”

맞습니다. 옆에서 보면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떠나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제자들을 모아놓고서 말하는 것입니다.”

유언(遺言)이네요?”

그런 셈이지요. 그러고는 앉은 채로 꼼짝없이 그대로 죽음으로 변해버리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을 좌탈(坐脫)이라고 한답니다.”

, 이름은 이해되네요. 앉아서 해탈(解脫)한다는 뜻이잖아요?”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끊기 위해서 숨을 참느라고 고통스러워한다거나 다른 방법을 취하는 것도 없이 스르르~ 숨을 거두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러한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행하는 것으로 봐야겠네요. 보통 사람은 해당이 없을 테니 말이지요. 범인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루를 더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잖아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갈만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선사들은 태어나는 것도 자신의 의지로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다고는 들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가 전생의 그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전생의 기억을 말한다면 믿지 않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소사께서도 전생은 믿으시겠지요?”

아무래도 팔자를 공부하다가 보니 전생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과연 전생의 삶을 다시 태어나서 이어가는 것인지는 확신이 없어요. 호호~!”

참으로 솔직하십니다. 당연히 확신할 수가 없지요. 광덕도 그러한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정황(情況)을 살펴보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서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떤 경우인지 들어보고 싶어요.”

자원이 궁금해서 물었다. 우창도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갈만이 다시 설명했다.

제가 살았던 곳의 이웃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대략 제자가 20세 전후에 목격한 일이니까 기억에 생생합니다.”

오호~! 그렇다면 더욱 흥미가 동하는걸요. 호호~!”

그 아이의 이름은 록구(鹿口)라고 하겠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루크라고 합니다만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 아이가 엄마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다섯 살이 되었을 적에 하루는 엄마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원은 갈만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해서 귀를 바짝 기울였다.

아이가 갑자기 그러니까 엄마가 놀라서 물었지요. ‘록구야 어디가 아프니? 갑자기 왜 그래?’라고 묻자, 아이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원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서 잔뜩 집중했다. 갈만의 말이 이어졌다.

엄마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뜨겁다고 외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흡사 그 표정은 불타는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엄마는 너무나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아이는 계속해서 외쳤지요.”

갈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긴 너무 위험해~! 어서 빠져나가야 해. 불에 타서 죽을 것만 같아~! 모든것이 남김없이 불타고 있어~!”

록구야 무슨 말이야? 혹시 잠을 자다가 꿈을 꿨었니?”

평범한 아이가 갑자기 하는 행동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엄마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들어봤다.

나는 록구가 아니야. 7년 전의 내 나이는 서른이고, 피부는 검은색의 여인이야. 이름은 파밀라(波密羅)였어.”

어린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 엄마는 걱정이 컸다. 아무래도 악귀에 붙었거나 몹쓸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혹시 이야기 속에 무슨 단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내가 살았던 곳은 법국(法國:프랑스)의 높은 건물이야. 갑자기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서 모두 불태워 버렸어. 나는 너무 뜨거워서 죽지 않으려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는데 그만 떨어져서 죽고 말았어.”

이렇게 또렷한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은 엄마는 아이가 하는 말이 하도 괴이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러한 장면을 생생하게 본 듯이 말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남편에게 정황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데리고 그가 겪었다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법국은 덕국과 이웃한 나라여서 아들의 행동이 걱정스러웠던 부모가 백방으로 자료를 수집한 결과 과연 7년 전에 법국의 수도(首都)에 있던 큰 빈관(賓館:호텔)에 화재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것까지도 확인하고는 전율을 느꼈다. 그들은 전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기 때문이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부모는 실제로 그 화재에서 파밀라라는 여인이 숨진 것이 기록으로 남아있어서 더욱 기이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대학교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있는 교수에게 상담을 의뢰했는데 그 교수도 이 아이의 전생체험을 인정했고 본격적으로 실험해 보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희귀하나 전생을 제외하고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더욱 길어서 간단히 핵심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양인(洋人)들은 하나의 사건이 있으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풀이하려고 연구하고 객관적인 답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져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당연히 그렇겠거니 하는데 전생을 믿지 않는 나라에서 그러한 일이 생겼으니 그랬을 만도 해요. 호호~!”

양인들은 천주교(天主敎)를 신봉합니다. 그리고 전생(前生)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것도 천주(天主)의 가르침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알려지게 되자 어느 언론사의 기자(記者)가 교황(敎皇)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갈만의 말에 자원이 놀라며 물었다.

! 전생을 믿지 않는 종교도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교황은 최고지도자인가 싶은데 어떻게 답을 했을지 궁금해요. 호호호~!”

, 소사님. 천주교는 전생(前生)은 믿지 않으나 후생(後生)은 믿는 종교입니다. 사후(死後)에 천국(天國)에 태어나거나 지옥(地獄)에 떨어진다는 가르침을 배우니까요. 그 종교의 지도자인 교황도 이러한 실제적인 정황을 다 살펴본 다음에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예외의 경우라고 말이지요. 교황이 비록 천주의 말씀과는 다르더라도 현실적으로 밝혀진 것까지 부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융통성이 있는 교황이네요. 고집을 부렸다면 오히려 추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죠. 호호~!”

자원이 웃으며 말하자 갈만이 정리 삼아 말했다.

이렇게 증명이 된 사례에서도 알 수가 있듯이 윤회(輪回)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다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음을 보면서 광덕도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요. 당연하니까요.”

자원이 동조하자 이번에는 갈만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좌탈(坐脫)하고 입망(立亡)하는 선사들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창도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윤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다가 갈만이 묻자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이번 생에서 이룰 수가 없는 경우를 당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을 하려고 생각이 되었거나 그것을 알고 있을 적에 실행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들어보겠나?”

우창의 말에 자원과 갈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내가 예전에 들었는데 어느 화상이 수행하는데 나라에서 부역(負役)을 너무 많이 시키는 바람에 도저히 수행에 집중할 수가 없자, 아무래도 국왕을 직접 만나서 이와 같은 폐해를 말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을 했더라네.”

, 탄원서(歎願書)를 올리는 것이겠습니다.”

도성의 궐문(闕門) 가까이에서 왕의 행차가 있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흘러서 3년이 되었으나 왕을 만나서 말할 틈을 얻지 못했더라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관세음보살께 기도하면서 부디 기회를 달라고 애절하게 발원(發願)했는데 하루는 왕의 꿈에 청룡(靑龍)이 궐문 밖의 여섯 번째 집 지붕에서 승천(昇天)하는 것을 보고 꿈을 깼는데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르자, 왕은 괴이하게 생각하고는 측근의 신하를 몰래 보내서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데려오라고 했더라네.”

그럼 그 스님을 만났겠습니다.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그 화상을 왕에게 데리고 갔지. 왕이 자초지종을 물어본 다음에 즉시로 사찰에 부여된 부역을 사면하고 그 대신에 왕을 위해서 한 가지를 해 달라고 부탁하였지.”

우창의 말을 듣던 자원이 말했다.

정말 잘 되었네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소원을 이루셨으니 말이죠. 그런데 한 가지 일은 또 뭐죠?”

왕실에 후사가 없었던 것에 대한 고민이었지. 그러니까 자기와 나라를 위해서 태자(太子)를 낳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은 당연하겠지?”

그래도 피할 수도 없잖아요?”

당연하지. 그래서 신심이 지극한 도반 스님과 둘이 백 일간 기도하기로 하고 각자 기도 정진에 들어갔는데 석 달이 되자 그 스님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부득이 태자(太子)로는 그대나 내가 태어나야 하겠소이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그대가 왕의 아들이 되시오라고 써진 것이었어.”

아니, 그 말은 죽으라는 뜻이잖아요?”

맞아, 그러니 어떡하겠어? 백일기도를 완료하고는 그 선사는 몸을 벗고서 왕비의 몸으로 들어갔다는 거야. 문득 갈만이 좌탈입망을 물으니까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군.”

그렇게 원하는 사찰의 부역을 해결할 정도로 원력이 큰 스님이셨으니까 그가 왕이 된다면 불교를 외호(外護)하고 백성을 위한 일에도 열심히 하셨겠습니다.”

갈만이 감동해서 말했다.

그랬다고 하더군. 범인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수행이 많이 된 사람은 그러한 것이 흡사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듯이 쉬운 모양이네. 하하~!”

우창의 말에 자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하물며, 새로 갈아입을 옷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까지도 말이죠.”

, 그게 중요하겠구나. 하하하~!”

당연하죠. 평생을 살면서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살다가. 또 죽음을 맞이해서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나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자원도 그렇게 되고 싶기는 하지만 맘대로 안 되겠죠? 호호~!”

그런데 이야기가 어쩌다가 여기로 흘러오게 되었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대답했다.

수명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생과 후생까지 넘나들고 있었잖아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오래 살거나 일찍 죽거나 수명은 알 수가 없지만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될 테니 말이죠. 호호~!”

열심히 수행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갈만이 의견을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그런데 옛 선사들의 말로는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지 말로 순간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을 위해서 선행을 한다면 모두 조작이 될 따름이고, 무심으로 선행을 베풀면 그것이야말로 무량(無量)한 공덕(功德)이 된다고 하셨으니, 이것을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답니다.”

맞는 말씀이네요. 죽음에 이르게 된 생명을 방생(放生)하면서 생명을 살렸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집착이라고 한다는데 같은 말인 거죠?”

그렇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부귀빈천(富貴貧賤)과 길흉수요(吉兇壽夭)가 모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칠통(漆桶)같이 어두운 중생들이 온갖 두려움을 벗어나서 자유로움을 얻도록 교화하기 위해서 선현이 만들어 놓은 선교방편(善巧方便)이 아닐까요?”

갈만의 말에 우창이 말했다.

왜 아니겠나. 평정심(平靜心)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팔자는 무엇이며 인과는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만 갈팡질팡하면서 방황하는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수행하기를 유도(誘導)하는 것으로 보면 분명히 방편법이라고 봐야 하겠지. 실로 깨달음을 주제로 살펴본다면 방편 아닌 것이 또 어디 있겠나 싶기도 하다네. 하하~!”

조용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진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이미 오행의 이치조차도 방편인 줄을 안다면 자평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봐야 하겠습니까? 삼진은 오늘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면서 내심으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애써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삼진이 진지하게 묻자 우창도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맞는 말이네. 하하~!”

그렇다면 삼진은 이제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무얼 하면 되겠느냐니? 오행 공부를 해야지. 또 무얼 하겠단 말인가? 아니, 내가 여태 선교방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

삼진은 우창의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그걸 일러서 정업(定業)이라고 한다네. 모든 학업(學業)을 일순간에 내다 버리고 휴업(休業)한다면 심산유곡에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삶을 영위하는 것도 멋진 삶이라고 할 것이네. 그렇지만 중생과 더불어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면서 헛소리 우스갯말로 오행놀이를 하면서 살아간들 또 무슨 허물이 있겠느냔 말이네. 이것은 그대가 아라한(阿羅漢)이 되느냐? 아니면 보살(菩薩)이 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네. 아라한은 깨달음을 스스로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것이고, 보살은 중생과 더불어 윤회하면서 채찍질과 당근을 들고 다니면서 교화(敎化)하는데 이것조차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면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저마다 생각할 나름이지 않겠나?”

우창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갈만이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우창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자원이 말했다.

자원이 감히 단언하건대 싸부는 보살의 길로 가고자 할 것이고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 걸로 보여요. 그렇죠?”

자원의 말에 우창도 웃으며 말했다.

아무렴. 적정(寂靜)도 싫어하는 것은 아니나 뭇사람들과 더불어 환락(歡樂)하는 것이 좋으니 아직도 경험해야 할 것이 많아선가 싶기도 하네. 하하~!”

이렇게 담소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여정이 얼른 일어나서 내다 보고는 말했다.

, 장행성(張行成) 도령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여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행성이 들어와서는 우창에게 절하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제자 익현(翼弦)이 문안드립니다. 다행히 이모님의 소요원에서 잘 지내신다고 들어서 염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서호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과연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다시 이렇게 만나는구나. 객고에 어려움은 없었던가?”

제자는 이모님의 배려로 잘 놀면서 풍광을 즐기다가 연락받고는 서둘러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둘러보던 장행성이 또 물었다.

그런데 이모님이 안 보이십니다. 어디 외출하셨나 봅니다.”

그렇다네. 밖에 볼일이 있으시다고 나가셨지. 그래서 공부하다가 또 우리끼리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네.”

장행성과 안부를 나누며 오가면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하루가 저물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쯤이 되어서야 기현주가 돌아와서 장행성을 보고는 반가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 내가 잠시 다녀온 곳은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있는데 병환이 깊다는 말이 문득 생각나서 다녀온 거야. 수요(壽夭)를 공부하는데 그 사람이 떠올라서 문득 안부라도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육신이 있을 적에 문안하는 것이야말로 사후에 향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나 봐. 호호~!”

맞습니다. 육근(六根)이 살아 있을 적에 말과 뜻을 전하는 것이 더 기쁨을 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잘 다녀오셨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는 한가롭게 담소하면서 잘 쉬었습니다. 누님이 안 계시니까 공부할 맛이 나야 말이지요. 하하~!”

어머, 그랬어? 다행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중요한 공부를 하면 또 억울해서 어쩌나 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 남아있었는데 말이야.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가 안 계셔도 공부는 계속되어야만 했죠. 그래서 윤회의 증거(證據)와 잘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싸부의 가르침을 받았어요. 호호~!”

그래?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자원에게서 들으면 되겠구나. 윤회의 증거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자원이 기현주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양념까지 섞어서 열심히 해 주자 장행성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이에 우창과 삼진은 가현주가 돌아오면서 갖고 온 교자(餃子)와 월병(月餠)을 먹으며 다시 이야기를 음미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기현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자원의 말을 들으니까 생생하게 그 현장에서 지켜본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자신의 육신을 마치 헌 옷을 벗어버리듯이 상사에 자유로운 도인들의 모습이 참 멋지네. 그리고 어디로 태어날 것인지를 스스로 정한다는 말을 들으니 문득 서장(西藏:티베트)에서 전해진다는 라마승(喇麻僧)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걸. 그들은 그분을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라고 한다지.”

그래요? 그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언니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그야 어렵지 않아. 그들은 최고지도자인 라마를 달뢰라마(達賴喇嘛:달라이라마)라고 한다더구나. 그가 육신을 떠나게 되면 임시로 맡아서 다스리는 대표가 있는데 도력이 높은 라마들을 모아서 명상하면 선대(先代)의 달뢰라마가 어디에서 환생했는지를 알아낸다고 했어. 그러면 대표가 그 집에 가서 라마께서 환생하실 것이니까 열 달 후에 태어나면 다시 오겠노라고 몸가짐을 잘하라고 일러주고 그 말을 들은 부부도 그렇게 알고 받아들인대. 물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당연하겠어요. 그렇지만 그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과연 선대의 라마인지 어떻게 알아보죠?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자원의 물음에 기현주가 다시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봐.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 4~5세가 되면 생전에 거주하던 포탈라궁으로 데려와서는 여러 물품을 보여주는데 그곳에서 전생에 그가 사용하던 물건과 함께 다른 고승들이 사용하던 것과 섞어서 보여준다는 거야. 그러면 전생에 자기가 사용하던 것을 용하게도 알아본다는 거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집으면 모두가 인정하는데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학문에 대해서도 물어보는데 누가 봐도 전생의 라마임을 인정하게 되면 비로소 거처를 옮겨서 다시 다음 대의 달뢰라마가 된다는데 그렇게 해서 또 일생을 서장(西藏) 사람의 지도자가 되어서 다스리게 된다는데 오늘 자원이 들려준 이야기와 같이 생각해 봐도 조금의 차이도 못 느끼겠네. 이로 미뤄서 윤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네. 정말 오늘을 지혜롭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이 남는구나.”

맞아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자원도 열심히 잘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죠. 호호호~!”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밤이 깊어지자 각자 헤어져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