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제43장. 여로(旅路)/ 1.초여름의 풍광(風光)

작성일
2024-07-0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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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 43. 여로(旅路)

 

1. 초여름의 풍광(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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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아호는 있나?”

아호는 아직 없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글도 별로 읽지 못한 처지에 아호는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래서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지요.”

그래? 그렇다면 이것도 인연이니 내가 호를 하나 지어줘도 될까?”

고맙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창은 문득 점괘를 떠올렸다. 이번 점괘로 인해서 만난 인연인 데다가 고월이 말하기를 득동복정(得童僕貞)’이라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동복(童僕)같은 젊은이를 얻었고 여정이 편안할 것이라는 해석도 일치하는 듯해서 다른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다. 동복이란 사내종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마부의 일을 맡았으니 크게 벗어났다고 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였다.

그대 호를 여정(旅鼎)이라고 하면 어떻겠나?”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노제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묻는 품이 글을 가르치면 잘 따라서 배울 것으로 보였다. 비록 마차를 몰고 있지만 말투에는 품격이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어쩌면 몰락한 양반가문의 자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행하는 동안에라도 글을 좀 가르쳐도 되지 싶었다.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즐거운 까닭이기도 하다.

()는 여행(旅行)을 의미하고 정()은 솥을 의미한다네.”

? 그것은 무슨.....?”

서로 전혀 맞지 않는 두 글자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노제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자 자원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솥이라니? 자원이 더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싸부, 뜬금없이 그게 무슨 호죠? 여행을 떠난다고 가볍게 여()를 붙여줄 수는 없잖아요? 호호~!”

자원은 우창이 장난삼아서 호를 지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타박하면서 물었다. 어느 사이에 말투는 옛날 노산에서 지내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사부님으로 깎듯이 부르다가 갑자기 싸부라고 하니 우창도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이내 무슨 뜻인지 알고는 말했다.

자원이 그렇게 부르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새삼스럽구나. 하하~!”

엊그제 서옥이 싸부와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을 적에 내심 무척 반가웠죠. 원한 것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환영하고 싶었거든요. 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삼진이 곰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혹 아호에는 주역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름자가 각자 주역의 괘상을 의미하고 있기도 해서 여쭤봅니다.”

오호~! 삼진의 판단력이 빠르구나. 맞아. 여지정(旅之鼎)에서 따온 것이라네. 기왕이면 설명도 가능한가?”

예전에 역경을 잠시 읽어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화산려(火山旅)에서 화풍정(火風鼎)이 되려면 이효(二爻)가 동했을 것으로 짐작해 봤습니다.”

삼진의 견식(見識)에 내심 감탄하면서 다시 물었다.

맞아, 그렇다면 뜻도 풀이할 수 있겠구나.”

실로 삼진도 그 점이 놀라워서 내심 탄복(歎服)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승님이 지어주신 호의 의미가 이보다 더 적절(適切)할 수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삼진이 말하는 것으로 봐서 이미 득동복정의 뜻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도 자원과 여정을 위해서 설명을 부탁했다.

? 무슨 뜻이 있기에 그렇게 말하는지 궁금하군.”

, 해석하자면, ‘길을 나섰다가 동자를 만났는데 하도 착하고 민첩해서 여행길이 즐겁다.’고 풀이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침 노제경을 만났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지를 알겠습니다. 더구나 제경의 총명함을 봐하니 함께 가는 길이 더욱 재미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것을 모두 담고 있는 여정(旅鼎)이야말로 어찌 멋진 호가 아니겠습니까?”

설명을 들어보니 삼진은 모두를 헤아리고 있었다. 우창이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자원이 물었다.

사제(師弟)의 공부가 그 정도라면 이제 사형(師兄)이라고 불러야 하겠어요. 자원은 생각조차 못 한 것에 대해서도 훤하게 알고 있는 것을 듣고서 감탄했어요. 왜 싸부가 이번 나들이에 많은 제자를 다 제쳐두고 유독 사형만을 대동(帶同)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어요. 역시~!”

이렇게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우창 앞에 흔들었다. 매우 만족스럽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노제경이 마차를 길가에 세우고는 내려서 우창을 향해 절을 했다. 우창이 그 뜻을 알고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상전(上典)을 모시면서 주인님이라고만 하다가 이제부터 소생에게도 스승님이라고 부를 어른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쁩니다. 미력(微力)이나마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는 여정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앞으로 궁금한 것에 대해서 무엇이든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오늘은 노제경, 아니 여정에게는 다시 태어난 것과 같아서 생일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서야 일어나서 다시 합장배례하고는 무릎에 묻은 흙을 털고 마부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았다. 이렇게 기뻐하니 우창도 즐겁고 자원도 흐뭇했다. 마부가 둔하면 여행이 답답하고 총명하면 여행이 순탄한데 이보다 더 명민(明敏)할 수가 없는 마부를 얻은 것이 고마웠다. 잠시 감동의 시간을 저마다 생각으로 채운 다음에 자원이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마두(馬頭)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죠?”

우창도 여러 생각들을 하느라고 조용히 밖을 보면서 있다가 자원의 말을 듣고서야 문득 생각해 봤다. 목적지를 어디로 잡고 갈 것이냐는 말이었다. 그런데 큰 방향은 북쪽이었지만 서둘러서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도리어 자원에게 물었다.

혹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해봐. 이제 또 자유를 얻었는데 어디로 향하든 일정에 구애받을 일도 없잖은가? 하하하~!”

우창은 자기도 모르게 연신 미소가 흘러나왔고 웃음도 저절로 피어올랐다. 그만큼 자유로움에 목이 말랐던가 싶기도 했다. 자원에게 말하자 자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싸부, 기왕 나섰으니 항주(杭州)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름답다는 서호(西湖)를 보고 싶었거든요.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여정도 돌아보면서 말했다.

서호는 2~3일이면 당도할 수가 있습니다. 서호의 이슬을 머금고 자란 용정차(龍井茶)는 천하의 명품이라고 합니다.”

오호~! 나도 마셔봤지. 서호의 용정중에서도 사봉용정(獅峰龍井)이 으뜸으로 알려져 있잖은가.”

우창도 여정의 말에 한마디 거들었다.

여정이 거기까지는 식견이 부족해서 모르겠습니다. 그럼 말머리를 서호로 돌리겠습니다.”

두 마리의 말은 검은색이 많은 갈색의 말과 백색의 말이었다. 기운차게 마차를 끌어서인지 평평한 수면(水面)을 지나가는 듯이 크게 요동도 없이 앞으로 나갔다. 마치가 갈림길을 만나자 동으로 향하던 길이 남으로 바뀌었다. 울창한 숲이 전개되고 바람에 잎들이 한들거리는 풍경은 나그네의 마음을 한가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창이 말을 보며 한마디 했다.

아니, 자사께서 무슨 생각으로 말의 색이 같은 것으로 해주지 않으시고 이렇게 서로 다른 것으로 하셨을까?”

실은 자사 나리께서 예전에는 털의 색이 비교적 같은 말로 찍하도록 하셨는데 오행원을 출입하시면서부터 서로 색이 다른 말을 타셨습니다. 언젠가 왜 그러셨는지 여쭸는데 그것이 음양이라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단 말인가? 의외로구나. 하하하~!”

여정의 설명을 듣고서야 우창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그렇다면 말에게도 이름을 붙여줬나?”

, 백마는 양아(陽兒)라고 하셨고, 흑마는 음아(陰兒)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경이도, 아니 여정도 그렇게 불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침이면 음아가 깨어나야 양아도 깨어납니다. 자사 나리께서는 원래가 음선양후(陰先陽後)라서 그렇다고 하셔서 자연의 이치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물(微物)인 말조차도 그렇겠느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세상의 만물은 음양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의 생각으로는 음아가 한 살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은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오호~! 그건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로구나.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하~!”

우창의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자원과 삼진도 같이 웃었다. 모두 홀가분하게 집을 나온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진을 달리자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입구에 있는 한 식당이 눈에 띄어서 살펴보니 동태호객잔(東太湖客棧)이라는 상호가 화려하게 붙어있었다. 그것을 보자 자원이 말했다.

싸부, 배가 고파서 더 못 앉아있겠어요. 말이 흔드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니까 아침에 한술 먹은 밥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잖아요.”

그래, 나도 그렇구나. 여기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쉬도록 하자.”

객잔은 넓었는데 아직 오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어서인지 손님은 많지 않아서 조용했다. 창가 쪽으로 다가가자 넓은 호수가 보였다.

상호로 봐서 여기는 태호(太湖)겠구나.”

우창이 대략 짐작으로 말하자 여정이 빠르게 대답했다. 염재는 신중해서 답을 하는데도 약간의 시간이 걸렸는데 여정은 지체하지 않고 답해서 우창을 답답하지 않게 해서 좋았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나리께서 순행하실 때도 이 객잔을 즐겨 이용하셨습니다. 음식이 정갈하고 풍치(風致)도 좋다고 하셨지요.”

여정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의식해서 직함을 빼고 나리라고만 하는 것이 용의주도(用意周到)했다. 괜히 관직을 거론했다가 복잡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우창은 그러한 재치(才致)가 매우 맘에 들었다. 과연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여정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맛있는 요리로 좀 주문하게. 과연 태호의 풍경이 좋구나.”

호반을 바라보자 문득 동평호(東平湖)에서 잠시 머물렀던 것이 떠올랐다. 여행의 맛이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나는 재미에 있기도 했다.

차림표를 보니 오늘 추천하는 요리는 불도장(佛跳墻)’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불도장이라? 그것으로 하지. 여기에서 유명한 명주(名酒)도 한 근 시키게.”

우창의 말에 여정이 주인에게 가서 몇 가지 요리와 함께 술을 주문하고는 돌아와서 말했다.

술은 소주(蘇州)의 명주(名酒)로 소주교(蘇州橋)를 주문했습니다. 미주(米酒)와 백주(白酒)가 있는데 요리가 불도장이라서 백주가 좋아 보입니다. 태호를 바라보면서 드시기에는 그만한 술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혹 자원 여사님께서는 괜찮겠습니까?”

알아서 시켜놓고 자원이 여인이라서 혹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얼른 말했다.

아니, 여사님이 뭐야. 누님이라고 해야지. 자원도 필요 없잖아?”

자원이 이렇게 말해주자 그제야 여정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감히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지요. 이제부터는 누님으로 부르겠습니다. 누님도 백주를 드시지요?”

그야 당연하지. 잘했어. 호호호~!”

, 괜찮다마다. 기대 되는구나. 그나저나 오시도 안 되었는데 술타령을 해도 되려나 모르겠네. 하하하하~!”

우창은 이미 오행원은 잊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항상 제자들을 지도하느라고 긴장하고 있었던 마음이 탁 풀리면서 마음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서옥이 자원을 동행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싸부, 집을 떠나니 그렇게 좋아요? 너무 티가 나시잖아요. 호호~!”

실은 자원도 모처럼 홀가분해서 옛날의 자유로움을 되찾은 듯한 표정이었으나 말은 그렇게 했다. 삼진의 표정에서도 그러한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세 사람에게는 모두가 방랑자(放浪者)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여정이 자리에 앉지 않고서 옆의 탁자로 가서 다소곳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자원이 물었다.

아니 왜?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아닙니다. 여정은 이쪽 자리에서 밥을 먹겠습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이런, 내가 이렇게나 눈치가 없구나. 진작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구나. 그런 말은 다시 말고 이리 와서 옆에 앉아. 음식에는 위아래가 없고 더구나 길을 나서면 모두가 도반(道伴)인데 자리를 구분하면 되겠어?”

우창이 정색하고 말하자 여정도 마음이 편해져서 한쪽 자리에 앉았다. 다만 입구 쪽의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자기의 본분(本分)은 알고 있음을 표현했다. 우창도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더 이상 자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손님들~! 식사가 나왔습니다~!”

주인의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의 손에 의해서 요리가 나왔다. 불도장은 도자기로 된 네 개의 항아리에 가득 담겨서 김을 내뿜고 있었고, 그 외에도 새우요리며 여러 채소로 만든 음식들이 순식간에 식탁을 가득 채웠다.

소주교를 본 삼진이 술잔을 돌리며 뚜껑을 따면서 말했다.

여정도 한잔 마실 텐가?”

이렇게 묻자, 여정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닙니다. 술은 아직 마시지 않습니다. 여정이 따라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술병을 건네받으려고 하자 삼진이 말했다.

아닐세.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든든하게 들게. 스승님의 술 시중은 내가 책임지도록 하겠네. 하하~!”

삼진의 모습에 우창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삼진도 술을 즐기는구나. 원래 목이 마른 사람이 술병을 잡게 되어 있거든. 하하하~!”

스승님,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소주교의 향에 벌써 입에 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어서 잔 받으시지요.”

큼직한 잔에 맑은 소주교가 가득 채워졌다. 모두 잔을 들었고, 여정은 물잔을 들고서 건배를 외친 다음에 단숨에 들이마셨다. 우창은 독한 술이 목을 타고 흘러 들어가니 정신이 아찔했다.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식도와 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를 소주교가 다 알려주는구나. 하하하~!”

우창의 말에 삼진도 쭉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으면서 기침하고는 말했다.

컥컥~! 아니, 오랜만에 마셔서인지 짜르르합니다. 하하~!”

모두 한 잔의 술로 마음을 통일하고서 불도장을 먹었다. 자원이 눈치를 보고는 술이 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주교를 한 병 더 불러서 서너 잔씩 마시고 나니 먹고 마시는 순간의 행복함에 젖어 들었다. 해방감에서 마음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얼큰한 기분이 되어서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의자에 앉아서 모두 잠이 들었는데 여정이 마차를 세우는 기척을 느끼고서야 우창은 정신이 들었다.

이런! 깜빡 잠이 들었구나. 얼마나 잔 거지?”

, 스승님 대략 두 시진(時辰) 푹 주무셨습니다.”

그래? 모처럼 길을 떠나서 고단했었던 모양이구나. 갈증이 나는데 어디 가서 차를 마실까?”

우창의 말에 다른 일행도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이 고개를 들고는 밖을 살폈다. 어느 사이에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향해서 기울고 있었다.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그것을 본 자원이 말했다.

참으로 한가로운 풍경이네요. 여기에서 쉬었다가 가는 것도 좋겠어요.”

그럴까?”

우창이 동의하자 여정은 마차를 한적한 길로 돌려서 어느 객잔 앞에 멈췄다. 차관(茶館)을 겸하는 객잔이었다. 우선 일행이 마차에 내려서 차관으로 들어 가자 중년의 여인이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우창 일행도 눈으로 답례하고는 창가에 자리를 권하는 대로 앉아서 차를 주문했다. 물이 항상 끓고 있었는지 바로 뜨거운 차호와 찻잔이 나왔다. 찻잔을 뜨거운 물에 헹궈서 각자의 앞에 놓아주는 여정에게 주인은 차가 가득 담긴 항아리를 넘겨줬다.

태호의 오룡차(烏龍茶)에요. 햇차라서 향긋하네요.”

이렇게 말하고서는 일행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우창의 복장은 도사처럼 꾸미고 길을 나섰기 때문에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모양이다.

도사님 일행이 찾아주셔서 우리 객잔이 재수가 있겠어요.”

조용하게 말하는 여인의 말이었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어감이 느껴졌다. 그러자 자원이 첫 잔을 마시고는 말했다.

, 차가 향기로워요. 우리가 하루 머물고 가도록 자리도 좀 부탁해요. 방은 네 개를 마련해 주세요.”

~! 그렇게 할게요. 우선 차를 들고 계시면 저녁 식사도 준비하겠어요.”

그런데 저 강은 이름이 뭐죠?”

자원은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강변이었다는 것을 알고서 물었다. 태호는 지났을 텐데 아직도 호수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주는 수향(水鄕)이잖아요. 어디를 가도 물이죠. 여기는 오강(吳江)인데 경항운하(京杭運河)와 강남운하(江南運河)가 만나는 곳이기도 해요. 저 앞의 호수는 앵두호(鸎脰湖)라고 불러요. 이곳이 초행이라면 며칠 묵으면서 유람하셔도 좋아요. 경치가 참 좋다고 소문이 난 곳이거든요.”

앵두호라는 말에 우창이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그냥 앵호(鶯湖)라고 했으면 꾀꼬리처럼 생겼나보다 하겠는데 왜 두()가 들어있습니까? 목덜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역시 도사님은 무엇이든 예사로 흘려버리지 않고 확인하시는군요. 원래는 앵투호(鶯鬪湖)였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싸움하는 이름이 불길하다고 해서 소리만 비슷하고 특별히 나쁜 뜻이 없는 두()로 바꿨다고 해요. 또 줄여서 그냥 앵호(鶯湖)라고도 하죠. 전하는 말로는 옛날에 이 호수에서 꾀꼬리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가 호수에 빠져 죽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좀 쉬셨으면 궁금한 것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주인은 이때다 싶었는지 우창에게 설명하면서 물어볼 것이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우창도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오전에 모친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네 아버지가 계속 산에 가서 장작을 구해다가 추녀 끝에 쌓아놓는구나. 예전에는 술이나 마시고 노름도 하면서 세상 태평하게 살더니 갑자기 철이 들었는지 신기하구나.’라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궁금하던 차에 손님 일행이 들어오셨는데 마침 도사님이셔서 기회가 되면 여쭤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창이 그 말을 듣자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노인이 땔감을 쌓아놓으면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 온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막상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부친의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언뜻 봐서 우창과 비슷한 또래이거나 조금 더 나이가 든 것으로 보였는데 우창이 관심을 보이자 얼른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혹 더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후로 드시는 음식은 무료이거든요. 호호~!”

우창이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미안한 마음에 손님에게 해줄 수가 있는 것은 음식의 제공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 틈에 여정이 얼른 대답했다.

혹 가능하시다면 달콤한 탕수육을 먹고 싶습니다.”

그야 얼마든지 가능하죠~!”

이렇게 말하고는 주방에다가 탕수육을 주문하고는 다시 우창을 향해서 앉았다. 우창도 여인을 바라봤다. 표정이 밝아서인지 용모도 수수했다.

부친은 올해로 78세가 되셨어요. 그래도 기운이 좋으셔서 활발하시답니다. 예전부터 늘 엄마 속을 썩이곤 하셨는데 어쩐 일인지 올해 들어와서는 열심히 땔나무를 해다가 추녀까지 가득 채워놓으셨는데 그래도 계속해서 나무를 해 나른답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나무를 팔아서 양식을 장만할 수도 있고 말이지요. 그것이 무슨 걱정거리가 된다고 그러시는지요?”

우창은 무엇보다도 걱정하는 연유가 궁금해서 이렇게 짐짓 물었다. 그러자 여인도 진지하게 말했다.

실은 부친은 별로 하신 것은 없어도 조상들이 남기신 전답이 무척 많아요. 만약에 저렇게 무리하시다가 건강이라도 나빠지게 되면 후손들이 달려들어서 빼앗으려고 아귀다툼할 텐데 자꾸만 그것이 걱정스럽네요. 이것도 쓸데없는 노파심일까요?”

 

 

우창은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