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 제39장. 춘풍(春風)
9. 증오심(憎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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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우창도 나른했다. 잠시 바람을 쐬면 정신이 맑아질 것같아서 강변으로 나가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쐬니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대로 앉아있었다. 조용히 햇살이 쏟아지는 수면(水面)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이 있는데 옆에 문득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보니 아내 서옥(瑞玉)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산책 나왔는데 여기 계셨네요.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세요? 호호~!”
“아, 서옥이었구나. 이리 와서 앉아.”
우창이 옆자리를 권하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서 조용히 앉았다. 혼인까지 해서 부부가 되었으나 아직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를 잘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내가 서옥에게 잘 대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네? 언제든지 본의 아니게 서운한 점이나 고칠 점이 있으면 말을 해 주시구려. 알려주기만 하면 고치도록 애써 보리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몰라서 말이오.”
우창이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서옥이 우창의 손을 잡으면서 웃었다. 그렇게 순수해 보이는 우창의 모습이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 전혀 마음 쓰지 마세요. 그대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만 하시면 되니까요. 다른 제자들에게 하듯이 하면 되는데 무슨 걱정을 하세요. 춘매나 자원에게 하듯이 해 주세요. 아, 진명도요. 진명은 참 총명해서 접객실을 잘 관리하고 있어서 든든하더군요. 호호~!”
“그런가? 그래도 서옥은 그들과는 다른 사람인데 뭔가 특별한 것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말이오. 혹시라도 소홀하게 대해서 서운한 생각이 들지는 않을지 그것을 몰라서 내심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지 않겠소.”
“에구! 스승님께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고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좀 더 가까운 제자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면 충분해요. 더 이상 바라지도 않고 특별하게 대하시는 것도 편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제자야’ 하시면 충분해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서옥이거든요. 잘 아셨나요?”
“그렇게까지 말을 해 줘야 알아듣는 내가 참 바보 같기도 하구려. 하하~!”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만 하고 계시는 것으로도 고마워요. 다른 제자들이 행복해하는 것만큼도 좋을 텐데 여기에 은근한 감정이 추가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로군. 하하하~!”
“참, 그런데 아무래도 태몽(胎夢)을 꾼 것 같아요. 꿈에 서옥의 손에 커다란 수정구슬이 놓여 있는데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와서는 환하게 비춰주자 그 광채가 영롱하게 방안을 가득 채우는 꿈인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예사롭지 않아서 스승님께 여쭙고 싶었어요. 태몽이라면 무슨 뜻일까요?”
우창은 또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남의 태몽이라고 해도 신기할 텐데 자기의 아내가 태몽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생소하고 남의 이야기만 같이 들려서 참으로 어색했다.
“태몽이라고 느꼈으면 태몽이겠지. 봐하니 어리석은 바보가 태어나지는 않을 모양이구려. 하하하~!”
“그것보다도 구슬이라면 딸이 아닐까요?”
“뭔 상관이겠나. 온전하게 태어나 준다면 또한 감사할 따름이지. 안 그런가? 그나저나 이제 열 달 후가 되면 아비가 된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군. 하하~!”
“서옥도 엄마가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아기를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아마도 본능이겠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진명이 멀리에서 우창을 불렀다.
“스승님~!”
“오, 여기 있네~!”
우창이 일어나서 진명을 보며 답하자 가까이 와서 보고는 말했다.
“이런~! 진명이 눈치가 없어서 스승님 부부가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방해하고 말았네요. 죄송해요. 호호호~!”
“방해는 무슨. 서옥이 태몽을 꾼 것 같다고 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네. 그래 무슨 일인가?”
“엄머~! 태몽이라면 축하드려야죠. 호호~!”
이렇게 말하고는 서옥에게 다시 말했다.
“축하부터 하고, 호호~! 이제부터 몸 관리를 특별히 잘해야 해. 처음에 아기가 들어설 적에는 아침이슬과도 같아서 자칫하면 사라지기도 한다고 들었거든. 어련히 잘하겠지만 그래도 더욱 조심해.”
이렇게 주의하라고 말하자 서옥도 웃으며 말했다.
“지혜로운 진명 언니가 옆에서 챙겨 줄 거니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요. 그보다도 아직 확실하지도 않으니까 더 두고 봐야 하겠어요. 호호~!”
이렇게 두 여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미소 짓고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손님이라도 왔나?”
“아 참, 맞아요. 좀 험상궂은 남자가 찾아와서 스승님을 뵙겠다고 하네요. 마음 같아서는 그냥 가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어서 천상 접객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멀리 가셨다고 둘러댈까요?”
도대체 어떤 손님이 왔기에 진명이 이렇게 말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피할 일은 아니라고 봐서 만나기로 하고 진명과 함께 접객실로 갔다. 아침에는 애욕에 사로잡힌 여인이 찾아와서 묻더니 오후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갖고 왔을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먼 길에 고생하셨습니다. 오행원의 우창입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일단 이렇게 인사를 하면서 면상(面相)을 살펴보니까 오전에 왔던 여인과 별반 달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반겨 맞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고서 판단하는 것이 순서라고 여겨서이다.
“어디 용한 곳이 없는지를 탐문하다 오행원을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젊은 양반이시구먼. 올해 몇 살이시우?”
대뜸 나이를 물어보는 것으로 봐서 방문자의 수준(水準)을 가늠하게 되는 우창이었다. 대략 중하급(中下級)으로 가늠하면서 말했다.
“인연이 되셔서 고맙습니다. 우창은 올해 겨우 마흔입니다. 아마도 생각보다 어려서 의아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하~!”
이런 방문자는 일단 정신적으로 피곤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에 맞춰서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까닭이었고, 질문의 내용도 9할은 물질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느낄 만족감(滿足感)도 별반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덤으로 알아둬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를 물어야 괜한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도 줄인다.
“오행원을 찾으신 것으로 봐서 궁금한 것이 있으셨나 봅니다만.....?”
“오호~! 참 용하십니다. 당연히 궁금한 것이 있으니 왔겠지요.”
말의 느낌으로 봐서 비꼬는 투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일진이 사나운 날에는 이렇게 괜한 일로 심기(心氣)를 긁고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이제는 이골이 난 우창이었다. 아직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시다면 궁금한 것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난 미곡상(米穀商)이오.”
“그러시군요. 싸전의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긴 한데 실은 그렇지를 못해서 말이오.”
“무슨 사연인지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한 자리에서 30여 년을 쌀장수로 살아왔더란 말이오.”
“잘하셨습니다. 누구라도 곡물(穀物)은 먹어야 하니까요. 그야말로 망하려고 해도 망할 수가 없는 사업이겠습니다.”
“어찌 그리 세상 물정을 모르시오? 젊은 사람은 그래서 마음이 안 놓인단 말이오. 거참~!”
“아, 세상의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그렇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우창은 좀 지루했으나 인내심으로 기다렸다.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은 뭔가 속내에 거리끼는 부분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하면서 도대체 무슨 문제인지를 가늠하려고 해도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었다. 그래서 말을 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수밖에 없었다.
“낭자, 물 좀 주시오~!”
앞에 오룡차를 놔줬는데도 물을 찾는다는 것은 차를 마실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가늠케 했다. 차를 두고 물을 찾는 것도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진명이 얼른 물을 따라서 앞에 놔 주자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실은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말이오.”
쌀장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살기(殺氣)조차 살짝 비쳤다. 원한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셨습니까? 무슨 일이신지 들어보겠습니다.”
“오래도록 장사를 잘해 왔는데 지난가을에 내 점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싸전이 생기지 않았겠소.”
“경쟁자가 생기면 아무래도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지요.”
“처음에는 제까짓 놈이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잖겠소.”
“맞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터줏대감의 위력이 있으니까요.”
우창도 맞장구를 쳐 줬다. 하소연하러 온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더란 말이오.”
“아무래도 그 가게가 점점 번창하고 있었나 보군요?”
“말해서 뭘 하겠소. 몇 달 사이에 수익이 반토막으로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내리막길을 달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곰곰 궁리하다가 그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소이다. 흠흠~!”
아무래도 이런 말을 웃으면서 하거나 들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우창도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려고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어떻게 하면 포졸에게 들키지 않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가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용한 도사가 한산사 옆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소이다. 그래서 해답을 얻고자 하니 말씀해 주시오.”
우창이 판단하기로는 경영의 방법에 문제가 있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원인부터 알아보고 이야기를 이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잘 알겠습니다. 방법이야 찾아보면 되겠습니다만, 우선 원인을 분석해 봐야 하지 싶습니다. 고객들이 그쪽으로 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남자가 버럭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것도 모른단 말이오? 당연히 교활한 그놈이 가격을 헐값으로 내려서 팔고 있는 것이지 않겠소?”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의 이야기에 우창은 미소를 짓고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우창이 짐작하기에 그동안에는 비교적 고가(高價)로 매매했었는데 경쟁자가 들어와서 헐값에 가까운 염가(廉價)에 팔아치우다 보니까 자연적으로 고객의 발걸음이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맞소~! 내가 5할의 이윤을 남기고서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는데 그놈은 3할의 이윤만 남기면서 싸게 팔고 있으니 감당이 되지 않는단 말이오.”
우창은 남자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명료하게 알 수가 있었다. 가격을 그 싸전과 같이 맞추면 되겠지만 아마도 그동안 이용해 왔던 고객들은 신뢰감이 떨어진 이 남자의 가게를 외면하게 될 것이니 낮추려면 더 낮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도저히 내키지 않자 결국은 경쟁자의 가게를 없애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기가 막혔으나 사람의 생각이 좁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궁리를 하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이 남자도 비록 욕심은 많아도 바탕이 흉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만약에 참으로 흉폭(凶暴)한 사람이었다면 우창을 찾아서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돈만 주면 해결해 줄 검객을 수소문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우창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점신의 조짐을 보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점신의 뜻을 보고서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시면 좋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그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육갑패를 앞에 펼쳐놓고서 말했다.
“자, 세 장의 패를 뽑으시면 됩니다.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에 따라서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잠시 긴장이 되는지 부채처럼 펼쳐진 육갑패를 보면서 생각하는 듯하더니만 손이 가는 대로 세 장을 뽑아서 놓고는 우창을 바라다봤다. 진명은 이렇게 흉한 상담도 늠름하게 처리하는 우창을 보면서 또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덩달아서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더욱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겪고 보니 손님을 맞아서 상담하는 일도 내공(內功)이 쌓여야만 가능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창이 남자가 뽑은 패를 뒤집었다. 진명은 오전에 여인이 뽑았던 패를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또 무엇이 나오게 될 것인지가 궁금했다.
남자가 우창이 뒤집어 놓은 패를 보면서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지를 기다리느라고 목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진명에게도 들렸다. 우창도 패를 보자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패를 바로 설명해 주기보다는 비유를 통해서 이해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남자가 기다리다가 먼저 물었다.
“아니, 도사 양반, 팔자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었소? 이것은 처음 보는 것이오만 어떻게 하라고 나왔소? 어서 말을 해 주시오.”
“우선, 서두르지 마시고 우창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아, 무슨 이야기든지 하시구려.”
남자도 우창이 이야기해 준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예전에 한 마을에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바다 건너서 물건을 사러 가게 되어서 배를 타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마주 앉고 싶었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그 사람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그 미곡상이 바로 떠올랐든지 분노를 드러냈다.
“어떻게 그러고 싶겠소? 물에 밀어서라도 죽이고 싶을 거요.”
“맞습니다. 비록 속마음이야 그와 같았겠으나 남들의 이목이 있어서 내색은 하지 못하고 뱃머리 쪽으로 가서 앉았더랍니다. 그러자 상대방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배의 뒤쪽으로 가서 앉아서 가게 되었지요. 배가 바다의 한가운데를 가다가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답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옆의 선원에게 물었습니다. ‘배가 가라앉으면 뒤부터 물에 잠깁니까?’라고 말이지요. 그러자 선원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의 무게가 뒤쪽에 있어서 뒤부터 가라앉게 됩니다.’라고 말하자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니, 죽게 생겼는데 미소를 짓다니요?”
남자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뒤쪽에 앉았던 사람도 노를 젓고 있는 선원에게 물었답니다. ‘배가 가라앉게 되면 앞쪽부터 물에 잠기게 됩니까?’라고 말이지요. 그러자 노를 급하게 젓던 선원이 말했지요. ‘배의 속도가 있어서 앞부터 잠기게 됩니다만, 지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서 헤엄이라도 칠 준비나 하시오.’라고 말하자 또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는 차를 마시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사람은 죽었겠지요?”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지금 점괘를 보니 선생이 바로 물이 들어오는 배를 타고 있는 형국이니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아니, 그건 또 재수 없이 무슨 말이오? 내가 죽는단 말이오?”
우창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육갑패를 뽑은 사람은 선생입니다. 우창은 단지 해석만 할 따름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가운데의 병신(丙申)을 가리켰다. 그도 간지는 알아보는지라 우창의 손길을 따라서 가운데 패를 보면서 말했다.
“그것은 병신(丙申)이 아니오? 그게 어쨌단 말이오?”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배를 탔는데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신(申)에는 물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선생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미워하시는 상대방도 배를 탔는데 바닥이 뽀송뽀송합니다. 그는 금은보화를 싣지 않아서 배가 가라앉을 일도 없다고 해석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정미(丁未)를 가리켰다. 그러자 남자가 우창을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점괘로 봐서는 죽을 사람은 그놈이 아니라 나란 말이오?”
“문제는 이 마지막에 뽑은 한 장의 패입니다.”
“그것은 임자(壬子)가 아니오? 그것이 또 무슨 조짐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게요?”
“이 임자(壬子)는 위도 물이요 아래도 물입니다.”
“뭐요? 그렇다면 배가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남자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우창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바로 좋든 나쁘든 이것은 자기의 손으로 뽑은 패였기 때문에 속으로 두려움이 일어나서 걱정스럽게 우창을 바라보면서 말하자 우창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운(運)이라는 것은 흡사 하늘의 달과 같습니다. 보름이 되면 만월(滿月)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히 줄어들게 되는 것이 아니오? 지금 내 운이 그렇다는 말이오? 내가 힘든 것은 내 운이 기울고 있어서이고 그 죽여버리고 싶은 놈과는 관계가 없소?”
“물론 관계가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울어가는 달을 해결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만약에 상대방을 해코지한다고 해서 기울어가는 달이 다시 둥글게 되겠습니까? 아니면 또 때를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
한동안 말이 없던 남자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문을 닫아야 한단 말이오? 어떻게 달이 차오를 때를 기다린단 말이오? 답답해 죽겠소이다. 어서 해결책을 알려 줘야 할 것이 아니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말씀을 드려도 동의하지 않으실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남자는 급하게 말했다.
“그 방법이란 것이 뭐요? 어서 말해 보시오.”
“운이 기울면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요?”
“그럴 때는 과감하게 내 주머니를 덜어내는 것이지요. 이것은 보물을 가득 실은 배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물과 같이 빠져 죽겠습니까? 아니면 아깝기는 하지만 보물을 모두 물속에 버리고 일단 살아난 다음에 후일을 도모하겠습니까?”
“뭐요? 그게 무슨 뜻이오?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해 주시오.”
“이런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경쟁자와 같이 이윤(利潤)을 3할만 남기시는 겁니다.”
“어허~! 답답한 양반이네. 그래봐야 이미 고객들이 발을 그쪽으로 돌린다고 했잖소. 상대와 같은 값이면 내게로 돌아올 까닭이 없단 말이오.”
“참 급하십니다.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셔야지요. 이윤은 3할로 하되 곡물의 1할을 덤으로 더 주는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의외라는 듯이 남자가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쌀을 열 가마니 사는 사람에게 한 가마니를 더 얹어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떠났던 손님이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오. 식당에서는 쌀을 많이 소비하게 되는데 1할이 덤으로 생긴다면 기존의 고객들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고객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일리는 있소만, 상대도 그렇게 하면 또 어쩌겠소?”
“그러면 2할을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죽이고 선생도 형장에서 망나니의 칼을 목에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을 펴서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깜짝 놀랐는지 자기의 목을 움츠리면서 말했다.
“에그~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요.”
“제가 선생에게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이 있겠습니까? 점괘가 하도 흉하기로 살아날 방법을 알려드릴 따름입니다. 그대로 하고 말고는 스스로 선택해야 할 따름이지요. 다만 점괘로 봐서는.....”
“어떻단 말이오?”
“포승줄로 꽁꽁 묶인 채로 가라앉는 배에 앉아있는 형국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따르고 말고는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만, 앞으로는 그렇게 물욕을 탐하지 말고 이윤을 조금만 남기시기를 권합니다. 그래야 달이 기울어도 손님들은 등을 돌리지 않는 이치입니다.”
우창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는 비로소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도사님이 맞소이다. 그 말에 따르겠소.”
“다행입니다. 우창도 보람이 있습니다. 하하하~!”
우창은 그제야 웃었다. 그러자 남자가 우창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오늘 도사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면 참으로 사람을 죽이고 내 목이 잘릴 뻔했소이다.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달이 기운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말끔하게 사라져버렸소이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한산사의 관음보살께서 보우(保佑)하심이지요. 하하하~!”
우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오행원에 백미(白米) 열 가마니를 헌납(獻納)하겠소이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윤이 줄어드실 참인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지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알겠소. 오늘 조언이 참 고마웠소이다. 다음에 다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찾아뵙도록 하겠소. 이만~!”
남자가 일어나서 나가는 것을 진명이 배웅하고는 돌아와서 우창에게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니, 스승님 어쩌면 그렇게 짜 맞춘 듯이 패가 나왔을까요?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스승님의 따사로운 햇살로 거친 태풍을 잠재우는 실력을 보면서 무척 놀랐잖아요. 호호호~!”
“그랬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만 찾으면 오히려 쉽게 풀리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좋게 마무리가 되었지? 하하~!”
“에구, 스승님도 참 다행이 뭐예요. 육갑패가 두 사람을 살렸잖아요. 나무육갑패보살마하살~! 호호호~!”
“점괘가 참 용하긴 하지?”
“아니, 어떻게 병신(丙申)이 나오느냔 말이에요. 연달아서 임자(壬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해석이 될 것인지가 참 궁금했거든요. 배가 침몰한다는 스승님의 비유가 어쩌면 그렇게도 절묘하던지요.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마차 소리가 난다면서 진명이 나가보고 와서는 우창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백미 열 가마를 실려 보냈다고 내려놓고 갔어요. 보기보다 경우를 아는 사람이었네요. 스승님의 조언에 감동했나 봐요. 호호~!”
“그래? 그렇다면 멀지 않아서 다시 달이 차오르겠군.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