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 제39장. 춘풍(春風)/ 8.척 보면 딱 알아야지!

작성일
2023-10-30 06:04
조회
2791

[480] 39. 춘풍(春風)

 

8. 척 보면 딱 알아야지!

========================

 

청명이 지나고 입하(立夏)가 되자 산천초목(山川草木)도 완연히 여름의 풍경을 연출(演出)했다. 그렇게 곱던 꽃들도 사라지고 녹음(綠陰)이 우거진 풍경이 싱그러웠고, 오행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항상 열정으로 가득했다. 아침을 먹고 서재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진명이 찾아와서 불렀다.

스승님 손님이 오셨네요. 접객실로 가시죠.”

우창이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자 나이가 6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낙이었다. 우창을 보자 대뜸 물었다.

선생이 젊으시네?”

말투로 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임을 대략 짐작했다.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 그렇습니다. 무엇이 궁금해서 찾아주셨는지요?”

아니, 그것도 말을 해 줘야 아나? 그냥 척 보면 바로 어디에서 무슨 일로 왜 찾아왔는지 족집게처럼 맞춰야 하는 거 아녀? 소문을 듣고 왔는데 어째 영 시원치 않네~!”

진명은 이렇게 무례한 방문자는 처음 접해서 기가 막혔다. 내보내 버려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우창의 표정을 살폈다. 우창이 가만있으라는 눈짓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가까스로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아하~! 도사를 찾으신 거로군요? 그렇습니까?”

뭐여? 소문에 한산사 옆에 가면 도사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잘못 듣고 온 거 아녀?”

그러신 것 같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쩝니까? 하하하~!”

봐하니 조카뻘쯤 되겠으니 말은 놓아도 되겠지?”

그럼요. 편하신 대로 하셔도 됩니다. 하하~!”

우창이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자 진명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진명에게 우창이 말했다.

진명, 아주머니께 차 한 잔 따라 드리지. 나도 주고.”

, 스승님 여기 있어요.”

진명이 차를 우려서 갖다줬다. 여인이 진명을 쓱~ 훑어보고는 차를 후루룩거리며 마시다가 물었다.

도사님 색시셔?”

아니에요. 스승님 제자예요.”

제자면 색시지 뭘. 딱 보니 그렇고 그런 사이네. , 다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니 내숭을 떨지 않아도 된다니까.”

여인은 진명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참고 있어야만 하느냐는 듯이 우창을 바라봤으나 우창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하하하~! 재미있으십니다.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이 누추한 곳에 무엇을 듣고 싶어서 오셨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하하하~!”

? 이제 보니까 젊은 도사 양반 뱃속에는 능구렁이가 아흔아홉 마리는 들어있었네? 어쩌면 그렇게 능글거린단 말이야? 흐흐흐~!”

그렇습니까? 이미 아주머니의 수준이 우창을 능가함은 물론이고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계십니다. 그러니 달리 나눌 말씀이 없으시면.....”

우창도 슬슬 인내심을 더 발휘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판을 걷으려고 말했다. 그러자 여인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도사 양반의 도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시험해 본 것 이닝게 너무 정색하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지. 봐하니 그만하면 보통의 수준은 넘는 것으로 봐도 되겠네. 실은 이 나이가 되도록 남편복이 없어서 언제나 명줄이 긴 놈을 만나게 되려나 좀 알고 싶어서 팔자 좀 본다는 양반들 꽤나 찾아댕기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잘 좀 점쳐보쇼~!”

우창은 약간 의아했다. 명줄이 긴 남자를 찾는 것은 혼인한 남편이 빨리 죽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데, 그것은 팔자에 나올 것인지를 가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사주로 볼 일이 아니라 육갑패에 그 답을 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었으나 과연 어떤 답이 나올 것인지도 궁금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진명도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우창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우창이 보자기를 펴고는 육갑패를 펼쳤다.

, 손이 가는 대로 세 장을 뽑아보시겠습니까? 영험하신 점신(占神)이 해결책을 알려 주리라고 생각됩니다. 어디~!”

이렇게 말하면서 두 손바닥을 펼쳐서 뽑아보라고 시늉하면서 여인을 바라봤다. 우창의 말에 여인이 움찔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 도사가 알려줘야지 뭘 뽑으라는 거지? 내가 잘못 뽑으면 말짱 도루묵이잖아? 도사가 뽑아서 풀이해 주면 안 될까?”

이것은 오행원의 방식입니다. 정성을 기울여서 뽑으시거나 그게 싫으시면 그냥 가시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창도 약간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우창의 표정을 본 여인도 약간 긴장이 되는 듯이 육갑패를 바라보다가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뽑아서 늘어놓았다. 진명은 왜 다섯 장이 아니고 세 장을 뽑으라고 한 것인지가 의아했지만 그것은 다음에 물어보기로 하고 우선은 우창이 하는 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여인이 뽑은 육갑패를 본 우창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더니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창이 육갑패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자 여인은 또 안달이 난다는 듯이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 이건 또 뭐여? 사주도 아니고 가타부타 설명해 줘야 알게 아녀? 그렇게 들여다보고만 있으면 내 속이 터져버리지~!”

이 모습을 본 진명이 속으로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 영락없는 세 장의 육갑패는 이 여인의 초상화(肖像畵)였다. 어쩌면 이렇게 뽑을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육갑패에 그대로 드러난 듯이 보여서였다. 우창이 선뜻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괜히 거들었다가 또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몰라서 계속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우창이 입을 열었다.

아하~! 남편은 음허증(陰虛證)으로 단명(短命)하셨군요. 쯧쯧쯧~!”

우창이 진중하게 말하자 여인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지 다시 물었다.

, 뭐라고? 그게 뭔데? 단명한 것은 용하게 맞추셨네. 그런데 왜 단명했다는 거지?”

처음엔 건강했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셨잖습니까?”

이야~ 용하긴 용하네. 맞아. 틀림없이 그랬어. 내가 구할 수가 있는 것은 인삼(人蔘)이나 녹용(鹿茸)은 물론이고, 백사(白蛇)와 장어까지도 구해다 먹였는데도 오래 못 살더라고, 셋이나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도대체 왜 그런 사내만 만나게 되었는지 내가 기가 막혀서 용하다는 도사님을 찾아왔잖은가 말이지. 아무래도 오늘 오기는 잘 온 것 같구먼. 다른 곳에서는 그런 것도 나오지 않고 굿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둥, 선조의 묫자리가 잘 못 되었다는 둥, 오만소리를 다 들었는데 이런 말은 처음 듣는구먼. 그래서 어떻게 하면 명이 긴 사내를 만나게 된다는 건지를 알려 주셔야지.”

여인의 말을 듣고서야 진명은 여인의 전생이 해묵은 구렁이라는 것을 비로소 눈치챘다. 음욕(淫慾)이 치성(熾盛)해서 한 남자와 밤을 보내면 남자는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으나 현실적인 문제는 매일 밤마다 새로운 남자와 동침할 수가 없으므로 불행히도 남편을 잡아먹은 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혼자서 밤을 보내시자니 그 고통이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으시겠습니다. 밤이 길기도 하지요?”

오호라~!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그렇다니까. 원인을 알고 있으니 처방도 있겠구랴. 어찌하면 될지 가르쳐 주시게나.”

우창도 이런 여인의 경우에 화류계(花柳界)로 간다면 또한 그 욕구를 해소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해 봤지만 이미 나이가 많아서 그것도 불가능한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화류계로 가셨더라면 팔자를 고쳤겠는데 참으로 아쉬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아마도 가문은 양반이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에구 말도 마셔, 복이 많은 년은 하필이면 앉아도 솥뚜껑 위라고 하더니만 주변의 여편네들은 하하호호하면서 남편이랑 잘도 살아가는데 왜 나는 맨날 좀 살만하면 송장을 치러야 하는지 참으로 화도 나고 기구하기도 하더란 말이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해결책을 알려드려야지요. 잘 들으시고 반드시 원하는 인연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오매~! 방법이 있을 줄 알았어~! 그렇지, 당연히 잘 듣고말고. 그럼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어서 그 비법을 알려줘요.”

이제야 여인의 말투가 조금은 공손해졌다. 진명도 흥미가 동했다. 과연 이런 사람에게 해결책이 있을 것인지 의아했지만 우창의 말이 재미있어서 결과가 궁금했다. 우창이 진명을 한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주머니는 태어나면서 황음주(荒淫珠)라고 하는 구슬을 가슴에 품고 태어나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 남자나 만나면 안 되고 같은 구슬을 품고 태어난 남자를 찾아야 합니다. 보통 남자는 부인의 잠자리를 감당할 수가 없는 까닭이지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진명이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느라고 종아리를 꼬집어야만 했다.

뭐라고? 가슴에 구슬을 품고 태어난 남자라니? 그런 사내가 어디 있단 말이오? 괜히 답이 없으니까 얼렁뚱땅 핑계를 대고 말려는 속셈은 아니오?”

여인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다시 다그쳐 물었다. 말투가 경칭(敬稱)으로 바뀐 것으로 봐서 어지간히 애가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창은 전혀 바쁠 일도 없다는 듯이 느긋하게 다시 설명했다.

물론 그 구슬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천리만리를 누비고 찾아다녀도 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것이니 당연하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지? 뭘 어쩌라는 건지 될 방도를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니오?”

우창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당연히 알려드려야지요. 이렇게 오행원에 앉아있는 것도 아주머니와 같은 인연을 만나서 답을 전해주라는 천지신명의 계시가 있기 때문인걸요.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안도하면서 말했다.

정말 도사님이 맞으시네요. 여적지 동분서주하면서 이년의 팔자를 물어보러 다녔지만 이렇게 영검하게 말을 해 주는 도사님은 뵙지를 못했걸랑요. 정말 오늘 운수대통이구먼요. 헤헤헤~!”

기분이 좋아서 말투도 달라진 것을 보던 진명은 이맛살이 찌푸려졌지만 우창은 여전히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도사는 아니지만 아주머니의 고민은 해결해 드려야지요. 잘 들어시고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암만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진명은 도대체 우창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 저렇게 말을 하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우창의 하는 언행이 평소에 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서 의아했지만 그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창의 말이 이어졌다.

아주머니는 이 길로 나가서 30리 밖의 작은 마을을 만나거든 꼭 물어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황음주(荒淫珠)를 품고 태어난 남자를 만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알았네요. 어떻게 물어보면 되나요? 설마하니 가슴에 구슬을 품고 태어난 남자를 찾아요라고 하라는 건 아니시지요?”

당연히 아니지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이 찾아지겠습니까? 하하하~!”

그니까 말이지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서 알려 줘봐요. 이거 애가 타는구먼요.”

여인이 바짝 달아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우창이 방법을 설명했다.

마을에 가면 사람이 모이는 곳이 있을 겁니다. 주막(酒幕)이라던가 말이지요.”

그야 당연히 알지요. 저잣거리에 가서요?”

조용히 물어보세요. 상처(喪妻)한 홀아비가 있는지를 말이지요.”

에그머니~! 그건 왜요? 홀아비랑 살라는 말은 아니시지요?”

그야 맘대로 하셔야지요. 황음주를 품고 있는 남자를 찾으려면 그 수밖에 없을 텐데 설마하니 총각을 만나고 싶으셨다면 뭐... 방법이 없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한 살이라도 젊은 사내를 만나야지그래 늙어빠진 홀아비를 만나면 또 송장이나 칠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한 말이지요. 안 그래요?”

어허~! 급하기도 하십니다. 천천히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시고 물어봐도 늦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도 의혹이 가득한 눈초리로 입을 다물었다. 일단 이야기는 듣고 보자는 심산이었던 모양인지라 우창도 말을 이었다.

상처한 홀아비가 있다고 하거든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처를 몇이나 상처했는지를 말이지요.”

? 아니, 그렇게 재수 없는 영감에게 시집을 갔다가 나도 죽어 나가란 말인가요? 정말 듣다 보니까 별 해괴(駭怪)한 말도 다 듣겠네요.”

여인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자 우창도 약간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천기누설(天機漏泄)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봅니다. 아주머니의 정황이 하도 딱해서 비법을 알려드리려고 했더니만 자꾸 막으시는 것으로 봐서 오히려 다행입니다. 그럼 알아서 하시고 면담은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인연이 닿으면 뵙지요.”

? 그게 아닌데?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요. 말씀하시는 대로 가만히 듣겠으니 어서 말씀해 주세요.”

그럼 부득이 누설을 조금만 하겠습니다. 만약에 상처를 세 번 이상이라고 하거든 최상품(最上品)인 줄을 알고, 두 번이면 중품(中品), 그리고 한 번이라고 하면 그것은 하품이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머니가 최상품이기 때문에 여기에 걸맞은 품격이 아니면 또 슬픈 역사가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지요. 상품이 중품과 살아도 어려운데 하물며 하품과 살았기 때문에 가슴에 상처만 떠안게 되었던 것인데 또 그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서두르지 말고 최상품이 나타날 때까지 열심히 찾으셔야 한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인은 우창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야 무슨 뜻인지를 가늠했다. 그제야 자신이 힘들었던 나날들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그렇게 우울했던 나날은 말끔히 씻어버리고 다시 환희에 찬 미래를 꿈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만면(滿面)에 웃음기를 띠면서 말했다.

역시~! 왜 도사님이라고 하는지 알겠네요. 속이 다 시원하게 해결이 되었어요. 오늘의 말씀을 평생 잊지 않고 가슴에 황음주와 같이 새겨놓겠어요. 그리고 오늘 당장 최상품을 찾으러 나가야 하겠어요.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만수무강하셔서 많은 사람에게 그 기묘한 비법을 펼쳐주세요.”

여인이 그렇게 총총히 떠나가고 나서야 진명은 큰 소리로 웃을 수가 있었다.

오호호호~! 세상에나, 이렇게 기막힌 처방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스승님도 참 어지간히 짓궂으시네요. 호호호호호~!”

진명이 배꼽이 빠지라고 웃는 것을 본 우창도 재미있어서 같이 웃으며 말했다.

진명이 재미있었다니 나도 좋군. 여하튼 무슨 답이든 얻고 갔으니 그만하면 된 거지? 하하하~!”

그렇게 웃던 진명이 겨우 진정하고서는 진즉부터 궁금한 것을 물었다.

스승님, 그런데 여인이 뽑은 점괘를 보시고 남편을 떠나보낸 조짐을 파악하셨던 건 뭘 보셨기 때문이에요?”

아니 그 정도는 안 가르쳐 줘도 알 텐데 뭘 묻나? 갑진(甲辰)을 보면 알 일이지 않은가? 계수(癸水)의 남편은 진중무토(辰中戊土)인데 계수(癸水)의 생목(生木)을 감당할 방법이 없지 않으냔 말이지. 그래서 명이 길면 도망가고 명이 짧으면 죽어서 조용히 귀토(歸土) 하는 것이라네. 하하하~!

그러니까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육갑패가 다섯이든 셋이든 관계없이 가운데는 일간(日干)으로 놓고 해석하신다는 말씀이네요? 처음에는 왜 그러실까 했는데 오히려 세 장이어서 풀이는 간명(簡明)해 보이기도 해요.”

궁즉통(窮卽通)이지 않겠어? 이제 그 내용이 이해되었다면 갑술(甲戌)도 아니고 갑진이기에 겪었어야 할 남편의 고통에 대해서도 파악이 되었겠지?”

잘 알겠어요. 그런데 좀 전에 나눈 대화 중에 여인이 말한 솥뚜껑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왜 난데없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지?”

짐작으로는 아마도 솥뚜껑에 앉는다고 하니까 밥이 항상 넉넉하다는 것으로 이해는 했는데 생각해봐도 앞뒤가 영 맞지를 않아 보여서 말이에요.”

진명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솥뚜껑에는 그 뒷이야기도 있는데 들어보면 이해가 되려나 모르겠군. 하하하~!”

? 뒷이야기도 있어요. 그렇다면 들어보죠. 이야기는 전부 다 들어야 이해가 되니까요. 뭔데요?”

그다음의 이야기는 이렇다더군. ‘복 없는 과부는 솥뚜껑에 앉아도 손잡이가 없다고 하는 말이라네. 이제 이해가 되었을까?”

진명이 눈을 깜빡이면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밥 이야기는 아닌 것이 확실하네요. 뒷이야기를 들어봐도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요.”

, 진명이 그러한 솥뚜껑을 못 봤을 수도 있겠구나. 무쇠로 된 솥뚜껑인데 뜨거우니까 손잡이가 있을 거 아닌가?”

그렇겠지요.”

손잡이가 흡사 성기와 닮았다는 말을 한 거라네. 하하~!”

네에? , 그래서..... 에구~! 망측해라. 호호호~!”

이제 이해가 되었지? 주로 아낙들이 우물가에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떨면서 하는 농담인데 그 아주머니도 무심결에 그렇게 말을 한 것으로 보이는군. 하하~!”

진명은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잘 알았어요. 그건 되었고요. 점괘에서 식상이 과다한 것은 설기(洩氣)를 원하는 요구가 거세다고 본 거죠? 그것을 스승님께서는 음란(淫亂)을 넘어서 황음(荒淫)이라고 표현하기 위해서 황음주(荒淫珠)라고 하신 거고요. 맞나요?”

맞아. 하하하~!”

정말 그 여인의 문제를 해결하신 방법은 과연 절묘(絶妙)했어요.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시다니요. 설마 그러한 것을 질문받으면 답을 하려고 미리 준비하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나. 질문을 받으면 최선(最善)은 무엇일지를 즉시로 생각할 따름이라네. 다행히 여인에게는 그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엉터리 처방이 제대로 먹혔으니 잘 되었을 따름이지. 하하하~!”

그러니까요. 참으로 기발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렇게도 색()을 밝히는 남녀는 그들끼리 만나게 된다면 그야말로 천생연분(天生緣分)이 되겠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러한 것을 뭐라고 하죠?”

성욕(性慾)의 수준? 그야 성()의 격차(格差)이니 한마디로 한다면 (性格)의 차이지 뭐겠어? 그리고 성능(性能)도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성능이 좋으면 희희낙락하면서 백년해로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맞지 않으면 하룻밤도 편히 지내기 어렵다고 할 테니. 하하~!”

아니, 성격은 그렇게도 쓰이나요? 서로 갈등이 생기면 마음이 안 맞아서 그렇다고 하잖아요? 성능은 또 도구의 활용성이 좋을 적에 사용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과는 뜻이 다른데요?”

뜻이 달라도 이치가 통하면 되는 것이잖은가? 부부가 만나서 일생을 살아가는데 한쪽은 잠시라도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집착하는데, 또 한쪽은 손만 닿아도 진저리를 치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의 미래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을까? 성품(性品)이 서로 맞지 않아서 성격차이(性格差異)도 되겠지만 부부생활(夫婦生活)의 차이도 성격의 차이니 남들에게 말을 할 적에는 성격차이라는 의미로 말하겠지만 그 속사정이야 아무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진명이 우창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니까 과연 일리가 있었다. 사람마다 욕구(欲求)의 정도가 다른 까닭에 그것을 비슷하게 맞춰서 살아간다면 갈등이 적겠지만 현격(懸隔)한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함께 하기는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오늘 부인의 첫 대면은 무례하고 막무가내여서 무척이나 못마땅했거든요. 그런데 스승님께서 그러한 방문자를 만났을 적에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잘 배웠죠. 더구나 해결책까지 멋지게 줘서 보내니까 실로 깨달음이 많았어요. 만약에 진명이었더라면 기분이 확 나빠져서 상담이고 뭐고 내쫓아 버렸을 거예요.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 만난 벼라별 사람과 상담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호호호~!”

그렇다면 다행이지. 그리고 이렇게 한 가지의 경험이 쌓이고 또 쌓여서 멋진 스승으로 태어날 것이니 너무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지. 하하~!”

잘 알았어요. 벌써 점심을 먹을 때네요. 공부를 많이 했더니 배도 고파요. 이제 밥을 먹으러 가야겠어요. 스승님, 가시죠.”

그럴까? 원래 공부를 많이 하면 배도 쉽게 꺼지는 법인가 봐. 하하하~!”

 

 

어느덧 초여름이라서인지 한낮에는 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