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산책길
작성일
2019-07-14 10:21
조회
579
새벽산책길
어제, 그렇게도 신명나게 퍼붓던 비는 또 다른 곳에 물주러 갔다. 며칠 감기로 두툼한 이불신세를 졌더니 약먹으면 일주일 간다던 감기가 더 버티지 못하고 빗줄기 따라서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갔나 보다. 열이 내리고 나니까 다시 카메라에 손길이 간다. (미쳤어 정말~!ㅋㅋ)
유일하게 비포장으로 남겨둔 숲속의 흙과 자갈길에도 어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구나.
다만, 새벽 산책길에는 보이지 않는 강적이 있다. 촘촘하게 널어벌린 거미줄들이 마구마구 얼굴로 달려들어서 계속해서 양팔허우적보법을 써야 한다.
물까치들도 떼를 지어서 아침먹거리를 찾아서 날아오른다. 그래서 산책길이 좋다. 갑자기 열린 골목시장처럼 시끌시끌한 장꾼들의 시끌벅적한 풍경들은 이불 속에서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며칠 내다보지 않은 사이에 잡초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누가 봐도 눈가림용 들깨가 연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최적의 작물은 들깨이다. 벌레도 안 꼬이지, 가뭄에도 웬만하면 안 죽고 버티는 까닭이다. 원래는 방치된 채로 있었던 것을 작년에 대대적으로 다듬었나 싶은데 다시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무슨 까닭이 있겠거니... 했다.
동네의 지인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끄덕....
이곳을 구입한 외지인의 원래 계획은 태양광발전소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더란다. 그런데 거리가 장애가 되었다. 논산지역에서는 주민의 주거지로부터 300m이내에는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다는 조례에 걸린다. 그런데 그 땅을 팔려는 마음에서인지 땅을 사면 태양광시설이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모양인데, 그게 또 맘과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또 소송이 생기고.... 나름 작은 소용돌이가 있었더란다.
어쨌든, 이분들은 그렇게 해서 태양광도 세우지 못하면서 땅만 구입해 놓고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 과태료가 따라붙으니 도리없이 들깨모종을 싣고 와서 억지농부가 된 것을 보면 그것도 운명인가 싶긴 하다. 사전에 제대로 조사를 잘 했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내돈 들이고 맘에도 없는 농사를 짓는 맛이라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는 것도 산책길의 여유로움이다.
다시 걸음을 돌이켜서 되돌아 가는 길.
원하진 않지만 낫을 들어야 할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길위로 고개를 내민 칡순이 알려주고 있다.
자라게 냅둔 자식과, 못자라게 떨어뜨린 자식들... 그 사이에서도 감나무 엄마의 선택에 대한 고뇌가 있었을까....? 식물은 독하니까 그런 생각조차도 자연의 일부에 포함시키고 고뇌하는 일은 없었지 싶기는 하다.
선택받은 감과, 선택포기한 감의 차이는 그냥.... 전혀 없다.
이침식사가 필요한 녀석이 또 있었구나. 비가 와서 굶었을 녀석이 또 길목을 지키고 있다.
줄기에 붙어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인내심의 대가이다. 애써서 먹이를 쫒아다니는 치타와 비교해서 누가 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 사이에 뒷산의 안개가 조금 옅어졌구나.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조화이다. 꽃가루와 꿀, 그리고 벌의 궁합. 꿀벌이잖은가. 조물주가 이렇게 평화적인 조화도 만들었으면서 또 한쪽에는 거미줄처럼 잔혹한 생존관계도 설계해 둿을까....
어제는 비로 인해서 꿀농사를 망치고, 도리없이 모아놓은 벌통의 꿀만 축냈을 친구들이 오늘은 활갯짓을 하면서 화분을 훑고 꿀향을 따라서 분주하다.
소소한 아침풍경이다. 얼룩이는 오히려 당당하게 밥을 먹는데 아직도 깜순이는 수줍기만 하다. 안 그래도 되는데도 맘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깜순이의 소리 길이에 따라서 배가 고픈 정도를 가늠한다. 오늘은 길이가 길군, 어제 못얻어먹은 것까지 달라는 뜻이겠거니...
산고양이는 산고양인게다.
이렇게 아침의 풍경을 살펴보고 나니 상쾌한 하루가 열린다. 그 짧은 시간에도 산골에선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