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地支의 六沖

작성일
2007-09-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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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지의 육충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이것은 그야말로 충이 되는 배합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일대일로 붙어서는 누가 이길 것인지의 해답이 나타난다. 다만 주변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해서 최종적으로 누가 이긴다고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좀 복잡할 뿐이다.






子午沖   丑未沖

寅申沖   卯酉沖

辰戌沖   巳亥沖








1) 子午沖의 의미




자오충은 대왕끼리의 충돌이다. 일단은 子水가 午火를 이기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좀 복잡한 것은 午중에 들어있는 己土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토가 적어도 10 정도의 영역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자수는 마음대로 오화에게 덤벼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화는 이것을 믿게 되고, 또 성질이 급한 불이기 때문에 한판 붙어볼 마음이 잔뜩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충돌이 되는 것인데, 자수로써도 싸움이 만만하다고 볼수 없기 때문에 매우 주의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적어도 이렇게 되어야 충이라고 하는 것이다. 丁火와 癸水의 사이에서는 己土의 응원이 없기 때문에 싸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주에 이러한 충돌이 들어있는 경우에는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암시는 적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시달리는 암시가 있다고 보겠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이런 충이 사주 안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2) 卯酉沖의 의미




이 경우에는 일단 酉金이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卯木 속에는 유금을 이길 수 있는 丁火가 없기 때문에 일단 유금의 일방적인 승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묘목도 만만치는 않아서 만약에 월령이 卯月이라고 한다면 목의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10분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한바탕 붙어 볼만 하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또 주변에 午火라도 붙어서 지원을 해준다면 묘목은 전혀 꿀리지 않고 싸움을 받아줄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서 변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寅申沖의 의미




충 중에서 가장 복잡한 충이 바로 이 인신충이다. 寅木은 戊土를 극하고 壬水는 丙火를 극하고, 丙火는 庚金을 죽이려고 하고, 경금은 또 甲木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그래서 인신충을 가장 극심하게 보는데, 웬만하면 내가 좋아하는 쪽이 인목이 아니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인목은 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월령을 목이 장악하고 있다던지 어디에선가 불이 도와주고 있다면 申金도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흔히 애들 싸움이 어른싸움 된다는 말을 하는데, 인신충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두집 싸움이 급기야는 동네간의 패싸움으로 확장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주에 인신충이 있는 경우에는 신체적으로도 어딘가에 충을 맞은 곳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본다. 즉 金木은 물질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신충은 지지에 있으므로 신체의 아랫쪽에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또한 인목은 신경계가 되므로 신경적으로 문제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여하튼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것만 같은 인신충의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주로 신체적인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4) 巳亥沖의 의미




水火가 서로 싸우고 있는 형상이지만 역시 만만하지 않다. 일단 임수가 병화를 극하겠지만, 무토가 임수를 다시 반격하게 된다. 그러면 해중의 갑목이 나서서 무토를 극하게 되는데, 다시 사중의 경금이 나서서 갑목을 쳐버리게 된다. 이렇게 온통 치고 받기 때문에 사해충이 발생하면 그 결과는 쉽사리 예측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해충도 인신충과 마찬가지로 그 작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인신충이 신체적인 문제나 결함을 생각하게 한다면 사해충은 주로 정신적인 문제로 충돌이 일어난다고 생각을 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심란(心亂)하다’ 는 이야기가 해당한다. 이 말은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형태가 되기 때문에 안정이 되지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로 여성들에게 많은 일종의 망상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신체적인 문제도 큰 일이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더욱 큰일이다. 그래서 사해충도 사주 내에서는 없기를 원한다.




5) 辰戌沖의 의미




토끼리 충하면 朋沖이라고 부른다. 붕충이라는 말은 바로 친구끼리의 충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피해도 가장 적은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는데, 진술의 지장간에 들었있는 성분들은 모두 손상을 당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토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충을 하면 오히려 활동성이 발생하게 되는데, 반대로 지장간 속에 들어있는 것을 사용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충돌이 발생함으로써 속에 들어있는 것을 전혀 못쓰게 되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서 관찰해야 한다.




6) 丑未沖의 의미




진술충과 마찬가지의 의미가 된다. 다만 진술충은 양대양이고 여기에서는 음대음이라는 점만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그 작용도 역시 같은 것으로 보면 되겠다. 토충은 항상 그 내부에 장되어 있는 물질이 내 사주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주의를 모아야 한다. 가령 丑土 속에 들어있는 辛金이 용신이라고 한다면 未土를 만나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면 미토 속에 있는 丁火에게 깨어지게 되는 비극이 발생한다. 물론 다른 곳에서 신금이 존재하고 있다면 축토 속에 들어있는 신금이야 깨어지더라도 별 상관이 없겠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는 없고, 오로지 지장간에만 들어있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용신파괴(用神破壞)’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극은 발생하지 말기를 원하지만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서 원국에서는 없다고 하더라도 운에서 미토가 들어와서 축토를 충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항상 안심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상생의 법칙으로만 논한다면 토가 하나 더 들어왔기 때문에 금이 용신인 상황이라고 하면 오히려 용신이 生助를 받기 때문에 좋은 운이라고 할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천만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미신(迷信)이 있어서 소개한다.




7) 庫支는 충해야 열린다는 설




沖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명리학자분들이 辰戌沖과 丑未沖의 상황을 말씀하시는 것 중에는 낭월이가 약간 다른 견해가 있어서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일단 바로잡아 보고 싶은 욕심으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부근의 이야기는 앞의 천간지지편에서 이미 언급을 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바로 이 자리에 들어가야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인데, 그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庫支를 충하게 되면 그 속에 들어있는 성분이 밖으로 노출되어서 써먹을 수가 있다고 하는 말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庫支, 즉 진술축미는 충을 해야 열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미 자평진전에서도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평진전에서 이러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도 이러한 오류가 바로잡아지지 않고 있어서 많은 초학자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丑未沖을 예로 든다면 未土는 목고(木庫)가 된다. 그래서 이것을 열기 위해서는 丑土가 와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축토는 금고(金庫)이기 때문에 충을 해야 목고가 열린다고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얼마나 후학을 속이는 이야기인지를 금방 감 잡을 수 있다. 충을 하면 부서지게 된다. 즉 丑未沖은 土끼리의 충이기 때문에 토는 어떻게 되지않는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있는 성분들이 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꺼내어 쓴다는 의미가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해야 할 참이다.

즉 모조리 깨어지고 난 상태에서 무엇을 꺼내어 쓸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원래가 꺼내어 쓴다는 말은 보관을 해둔 그대로를 다시 사용하는 것을 말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충으로 부셔버리고서 꺼낸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도둑놈이나 강도가 취할 행동이라고밖에 생각을 못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어떻게 자신이 넣어놓은 것을 꺼내쓰는데, 문을 부셔버리고 꺼낼 생각을 하겠느냐는 이야기이다.

나무의 창고에 나무를 넣어 둔 자는 바로 나무 자신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미 미신(迷信)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미토의 주인은 바로 卯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묘목이 없을 적에는 창고문이 닫혀있는 상태이고, 묘목이 옆에 있거나, 乙木이 위에 있으면 창고문은 그대로 열려있는 상황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다. 자신이 넣어둔 것을 자신이 꺼내쓰는데, 어째서 인연도 없는 金庫를 불러와야 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말도 되지않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 정도로 말씀을 드려도 이미 무슨 상황인지를 감 잡으셨을 것으로 생각하고 줄이겠거니와, 이제부터는 창고는 충해야 열린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것을 빨리 제거할수록 우리의 명리학은 발전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것에 매달려 있으면 항상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8) 土가 뿌리역할을 한다면 沖은 금물




가령 甲木이 다른 地支에 마땅한 뿌리가 없는 상태에서 辰土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면 약하기는 하지만 뿌리가 상당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戌土가 옆에서 충을 한다면 토가 서로 충하는 상황이므로 토가 동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토의 성분은 그대로 있고, 그 속에 들어있는 성분들은 모두 부서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될 경우에 辰土 중의 乙木과 癸水도 부서진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결국 갑목이 의지를 하고 있던 약한 뿌리들도 모조리 뽑혀버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어서는 갑목도 위태롭게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이런 경우에 봉착을 하게 된다면 충돌은 더구나 금물이다.




8) 沖과 合이 서로 엉켜있을 경우




사주의 명식에는 地支에 해당하는 글자는 불과 네자 뿐이지만 사주에 따라서 전개되는 온갖 상황들은 참으로 천차만별이다. 그러한 상황들 중에서는 반드시 충되는 상황과 합되는 상황이  서로 엉켜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도 처음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혼란스러운 상황 중에 한가지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보통 원국에서 合沖이 서로 엉켜 있는 경우에는 年柱부터 時柱로 가면서 순서별로 적용을 시키면 된다. 그러니까 년과 월이 충되어 있고 또 월과 일이 합되어 있다면 처음에는 충이 생겼다가 합으로 인해서 충이 해소된 것으로 보자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단계별로 해석을 하는 것도 좋기는 한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결국은 각자 자신의 몫만큼의 역할을 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충은 충 만큼의 작용을 할 것이고, 합은 함 만큼의 작용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나타난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충을 자극하는 운을 만나면 충이 강화되고, 합을 유도하는 운을 만나면 합 쪽으로 힘이 발생되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 영향력은 日干을 중심으로 해서 가까운 쪽에서부터 많이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9) 합을 해소하는 충




合을 원하는 경우에 沖을 하면 나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고, 합을 싫어하는 경우에 충을 하면 오히려 원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 작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입장에 있느냐가 중요다하고 보겠다. 만약에 사주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가 합이 되어서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한다고 할 경우에 그 합해오는 글자를 충하는 지지가 있다면 병이 들어 있는 상황에서 약을 만난 것과도 같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의 충은 매우 반가운 것이다. 그래서 合沖에 관해서는 멋진 성구(聖句)가 한마디 전해지는 것이 있다. 이 말의 의미만 바로 깨닫는다면 이미 합충에 대해서는 졸업을 한것이나 다름없다.




“合도 합나름이요 沖도 충나름이니라~!”




10) 충을 해소하는 합




이제 또 반대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충을 원할 적에 그 녀석과 합을 하는 글자를 만나면 충되는 글자가 딴 짓을 하게되어서 충작용을 하지않을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것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충을 꺼리게 되는 상황에서 합되는 글자가 그 충하는 것과 합해서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다면 역시 반가울 뿐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사람은 억수로 재수가 좋은 사람일거고, 앞의 상황이 발생하는 사람은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사주를 연구하다 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11) 합은 사랑이고, 충은 한(恨)이다.




여기에서 합과 충의 개념을 정리 해본다면 합은 사랑이라고 할만 하다. 뭔가 끌리고 맘에 들어서 그 결과의 좋고 나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몰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에는 냉정한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판단력은 마비가 된 상태에서 그저 시키는대로 움직이게 되어버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형태가 발생하는 합은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하겠다. 또 너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안정감을 줄 수도 있겠다. 이것이 합의 양면성이며 사랑의 양면성이 되기도 한다.




沖은 恨이다. 한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것인데, 충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흐름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그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게 되는데, 실제로 충이 되어있는 사주에서는 뭔가 한이 맺혀있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충은 합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같은 값이라면 합이 충보다 나은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분명히 아니므로 그 상황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령 마약과 합이 되어있는 상황이라면 결과는 뻔하게 되는데, 이 합되어 있는 마약을 충해주는 것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러면 마약을 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겠지만, 실행은 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합보다 충이 우선 필요한 상황이다. 사주 속에서는 충을 원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이 눈에 띈다. 다만 스스로 원하는 것은 작은 부인이거나, 삼천궁녀를 거느리는 것이 될런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것에 합이 되어있다가는 신세를 망치기가 딱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삶에 도움이 되지않는 합은 충돌을 과감하게 해버리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 이것이 合沖의 소식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