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壬은 정신적인 승화(昇華)가 될것이다.

작성일
2007-09-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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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말이 ‘육체에 대한 욕망을 끊으면 정신적인 자유로움이 전개된다.’ 고 한다. 부처님도 아마 이러한 형태의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육체의 속박은 아무래도 영혼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온(五蘊)12)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해탈을 얻을 수가 없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다고 본다. 실제로 이 육체의 유혹이라는 것은 매우 끈질기고도 매력적이다. 과연 얼마나 오온의 위력이 대단한 것인지 한번 생각을 해보자.




★ 안식(眼識)의 위력(威力)




눈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도록 되어있는 성분이다. 그리고 그 정보는 색깔(色)이라고 하는 형식을 빌어서 뇌속으로 전달을 한다. 그러니까 눈으로는 달다 쓰다, 또는 부드럽다 껄껄하다 하는 등등의 것을 느낄 수 없고, 단지 칼라로써만 감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눈도 모든 생명체가 다 같은 것으 아니라고 한다. 사람이 보는 것을 벌이 보면 또 다르게 보인다는 설명을 어디선가 보고서 과연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사람의 눈도 또한 각자 그 속에 들어있는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또 달라지는 것이니 사람의 눈을 말하면서 따라 다니는 속담은 ‘제눈에 안경’ 이라고 하는 말이 대표격이라고 하겠다.

이 눈에 비치는 것으로는 아름다움과 추한 것을 구별한다. 눈을 위해서 등장한 유혹물로는 텔레비젼이 있다. 컴퓨터의 모니터도 같은 이치로 받아들인다. 극장의 영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종류들은 모두 눈의 반응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만들어간다. 영상(映像)은 그렇게도 대단한 매력을 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도 시각을 최우선으로 한다. 눈에 들어온 정보가 100% 정확한 것도 아닌데,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뢰를 하는 면이 강하다고 본다. 특히 마술사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비둘기를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혼동에 빠지는 것도 왕왕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언젠가 ‘세기의 마술’ 이라고 하는 프로에서던가 데이비드 카포필드인가 하는 젊은이가 전개하는 마술은 참으로 볼만했다. 만리장성을 그대로 통과하고, 비행기를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없애버리는 등 그의 손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지녔던 사람으로 착각되게 하는 속임수의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도 모두 눈의 기능을 통한 경험이라고 하겠다.

이것도 선악(善惡)으로 나눌 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모두 같다. 어차피 오온으로 쌓여간다는 점이다. 포르노 비디오를 보는 눈이건, 김밥을 팔아서 교단에 희사한 뉴스의 화면을 보던 간에 이러한 것들이 쌓인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만을 보도록 하는 것도 큰 의미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실은 보지않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면 장님이 가장 탁월한가 하는 질문을 하실런지도 모르겠으나, 실은 스스로 눈이 있으면서도 보는 것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 참된 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눈을 통해서 보는 것으로 부터는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본다.

이정도를 가지고서 무슨 위력씩이나 거론하느냐고 하실 벗님이 계실런지도 모르겠는데, 실은 대단히 중요한 점이 있다. 무엇인가 하면 자신이 보지않은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하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사소한 것에 적용을 시킨다면 별것도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으나, 이것을 우주적으로 방향전환을 해본다면 참으로 대단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가령 지구위에서 벌어지는 것만이 있는 구체적인 세상이고 그 나머지 지구 외에서 일어나는 것은 실제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부처님의 우주관은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게 될것이 뻔하다. 현재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2천여년 전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실제로는 어떤가? 현재의 우주과학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에 의한 관찰력을 매우 존중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우주는 삼천대천세계13)의 규모로 짜여져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육안(肉眼)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서 그대로 무시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우물안을 면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과연 보이지 않은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겠느냐는 점에 이해를 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실은 이렇게 거창한 것은 그만두더라도 적어도 이 땅에 영혼이라고 하는 성분이 존재한다는 것도 보이지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해버린다는 것도 어쩌면 결함 투성이인 눈을 너무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점에 대해서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한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란다.




적어도 이정도만 생각을 해봐도 눈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마음이야말로 스스로를 틀 속으로 가둬버리는 결과가 될런지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한발자욱 벗어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흐름을 읽어보려고 연구하고 있다고 볼적에 적어도 오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은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상 싶다. ,

단지 눈에 관해서만 생각해 봤는데, 그 나머지 귀나 코에 대한 또는 혀에 대한 것에 대해서도 미뤄서 생각을 해볼 수가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촉감에 의한 것도 그 위력이 대단한데, 이것은 아마도 성욕(性慾)에 관한 분야에서 대단히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것으로 본다. 육체적 괘락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촉감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간을 번성하게 해주는 종족번식의 작용을 노리고서 신이 선물한 성욕의 촉감은 이렇게 대단한 성(性)의 상업화로 가는 중요한 역할까지도 하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물론 촉감을 도와주기 위해서 신경조직만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으로도 자극을 시키고, 후각(嗅覺)적으로도 자극하는 냄새를 발생한다. 그리고 소리로도 뭔가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촉각이다. 이러한 촉각의 즐거움을 위해서 온갖 죄악(즉 성범죄)을 만들어서는 일생을 어두운 감옥 속에서 소일하고 있는 사람도 없지않으니까 과연 이 촉감에 의해서 쌓이는 부작용도 적지않다고 봐야 하겠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작용들이 자유로워지는데에는 걸림돌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이러한 육욕(肉慾)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고 볼적에 그 촉감이 좋던 나쁘든 간에 그것은 자신을 얽어매는 기능임에는 분명하다고 봐야 올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이 경전에 전해지고 있다. 비록 불교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잠시 이에 대한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지않을까 싶다.




이러한 몇가지의 예를 통해서 생각해 봤지만, 육체에 대한 관심이 살아있는한은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이제 나이 70을 바라다 보면서 육체에 대한 유혹을 상당히 뿌리친 상태라고 본다면 서서히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만약 사업을 벌렸다면 어찌 자신의 영혼을 돌아다 볼 기회가 주어지랴... 싶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올바른 흐름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 영혼은 육체를 떠나더라도 아마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미뤄 짐작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 壬水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어서는 영혼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을 할 줄 아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는데, 임수는 원래가 그 취상(取象)을 할적에, ‘강 물’이라고 본다. 강물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롭게 유연하게 흐름에 따라서 진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관성있다는 것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빗물은 일관성이 없다는 비유로써 생각해볼적에 연관되는 생각이다.

실제로 늙으막에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성품은 아름답다. 늙어서도 육체에 집착을 하고서 정력을 돋구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면 오히려 추해 보이는 것도 자연법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꾸지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때의 할 일은 뭐니뭐니 해도 자신의 삶을 조용히 관조하면서 정리하는 시기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럴 즈음에는 운동을 해도 산책을 하는 정도가 좋을 것이다. 무리하게 죠깅이라도 한다면 아마 심장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신적인 정리의 시기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