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주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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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토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포용성이 아닐까 싶다. 어느 한가지라도 버리지 않고서 보듬어 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기토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남의 심중을 가장 잘 헤아려 주는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겠다. 이것은 물질적인 관점으로 이해를 해보는 대지의 특성이라고도 하겠는데, 이 땅의 덕이 무엇이던지 포용을 해주는 성분으로 관찰을 해보기 때문이다. 사주에 기토의 특성을 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러한 성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된다. 항상 자신이 상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것인가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장점의 이면에는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기토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남생각 하느라고 자신의 밥은 다 식어버린다는 점이다. 흔히 하는 말로 ‘오지랍이 넓기도 하다.’고 하는데 이 오지랍은 여인네의 치마폭으로 남의 허물을 감싸준다는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예전의 어머니들이 입으셨던 치마는 그 폭이 하도 넓어서 모든 가족들의 허물을 하나하나 알뜰히도 감싸주셨는데, 요즘 어머니들의 치마폭은 그러한 여유가 없이 디자인 된다. 오히려 그렇게 넓으면 재료가 많이 들고 동작을 취하는데 거리적 거린다는 이유로 해서 매우 단촐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옷이 달라졌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도 달라진 것일까? 이상하게도 요즘 어머니들의 오지랍도 어지간히 줄어든 감이 없지않으니 말이다. 남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는 마음, 오로지 내 자식만을 아끼고 잘되기를 바라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팽배하다고 연일 방송에서는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모양이다.

이러한 것이 어머니들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각박해지는 사회상의 한 단면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옷모양을 보고서 그 속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참으로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과연 옷이 먼저인지, 몸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옷따라 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그렇게 각박해 짐으로써 옷도 그렇게 닮아 간다고 해야 할는지 그  선후는 가리기 어렵겠지만, 어머니의 포근한 마음씨는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것도 요즘은 단점이다. 남의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자신의 일은 소흘해진다는 현실적인 이익에 대해서는 손해라고 하는 것을 면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또 단점은 있다. 지금시대를 일러서 PR시대라는 말을 한지가 오래되었다. 자기의 광고는 자신이 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어버렸고 자기광고를 잘 하지 못하면 이 시대에서는 낙오자의 대열에 끼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마당에 기토의 특성으로 본다면 자기광고를 하는 데에 대단히 서툴다는 단점은 즉시로 계산서에 등장을 한다. 이렇게 되어서는 이 시대의 일원으로써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에는 치명적인 단점이라고밖에 말을 할 수가 없겠다. 과연 그렇다면 이러한 단점을 어떻게 카바 할것인가? 아무래도 선두경쟁을 해야만 살아남는 사업전선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겠다.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택해야 그나마 자신의 호구지책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리는 주로 교편을 잡는 쪽으로 가능하겠고, 공무원도 어느 정도 치열한 경쟁력에서는 여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거니와, 선천적으로 타고난 교사의 체질은 뭔가 일거리를 얻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갑목이나 병화와 같이 치열한 경쟁력으로 부딧치는 현장에서는 자칫 낙오자가 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스스로 남들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속 편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기토의 특성이 사주에 과다하게 많다면 어떤 일이 생길런지도 생각해보자. 우선 자신의 주장을 과다하게 밀고 나갈 암시가 높겠다. 그 영향은 독선적(獨善的)인 형태로 나타나겠는데, 그래서 자신의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자칫 속이 좁은 사람으로 비쳐진다. 이것은 너무 과다한 성분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단점이라고  하겠는데, 뭐든지 그렇겠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그에 따르는 부작용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강한 기토는 마치 사막의 메마른 흙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흙에다가는 작물을 가꿀 수도 없고, 집을 지어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관광자원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황무지가 되는 것이 가장 근사할 것이다.

또 반대로 기토의 성분이 너무 약하다면 어떻게 될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계획만 무성하고 실행을 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원래의 보호하고 감싸주는 성분도 약화되어 버리니까 이기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남을 생각해야 하는 성분이 부족하다는 말에서 그 근원을 추리한다. 그래서 남을 위해야 하는 성분이지만 그러한 곳에 힘을 쏟다가는 언제 자신이 쓰러질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생긴다. 그러면 결과적인 행동으로는 필시 이기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기토의 성분이 약한 것은 강한 것(많은 것) 보다도 더 나쁘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는데, 이러한 특성을 다양하게 보이므로 과연 사주에서는 지나치거나 적어서는 곤란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언제나 이 명리학은 중용이나 중화를 찾는다.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많아서는 곤란하고, 또 한방향으로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방향에서는 부족하게 된다는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글자는 한정된 글자(8개)인데, 그 중에 어느 종류가 지나치게 많다고 하면 반드시 다른 쪽은 약하게 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주팔자의 구조를 봐도 참 재미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 사주가 열 자라고 한다면 잘만 구성이 된다면 오행이 골고루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게 된다. ‘5×2=10’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야말로 두자씩 배당이 되는 균형을 이룰 수가 있으련만 묘하게도 사람의 사주팔자는 ‘4×2=8’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리없이 인간의 운명은 어느 쪽으론가 치우치게 구성이 되어있다는 점으로 밖에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잘 맞춰도 정확하게 ‘8÷5(行)=1과 나머지 3’ 이 되니까 깔끔하게 배당을 시킬 수가 없다. 결과가 이미 뻔하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것에 착안을 해본다면 어차피 인간의 운명은 그렇게 뭔가 채워지지 않은 형태로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점을 읽어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렇게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도 기를 쓰고 완전해 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완벽한 삶이 가능하다면 뭐하러 구태어 온갖 것을 취하려고 노력하랴... 이렇게 구하려고 하는 마음들이 있으므로 해서 이 땅을 욕계(欲界)39)라고 부르는 것이겠지만, 참으로 인간의 마음은 욕망의 덩어리로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잠시도 쉬지를 못하고 뭔가를 구하려고 날뛰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읽었던 성인의 안목은 예리한 통찰이었겠지만, 그러한 경고성 가르침도 인간의 치열한 욕망 앞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듯 하다. 하긴... 그것이 또한 운명(運命)이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