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계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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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세계지도를 펴놓고서 기토의 성분이 가장 많은 곳을 찾아본다. 그렇게 생각해 볼적에 아무래도 중화의 성분이 가장 강한 중립적인 지리적 위치는 인도(印度)가 아닐까 싶다. 인도는 그렇게 동서양을 결합하는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도에서는 그러한 의미를 읽어 볼 수 있는 형상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우선 인도인의 정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바탕에는 힌두교라는 거대한 종교가 있다. 이 종교는 세계의 모든 사상을 총 막라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히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히 힌두사상은 불교나 기독교의 사상 조차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모든 정신을 포함하고 있는 힌두교는 종교의 어머니라고 할만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에서 역시 기토다운 맛이 나온다고 하겠다. 인도인의 정신에 대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타고르와 요가난다. 그리고 붇다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가꿔온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 중에서도 요가난다는 근래의 성자로써 여러 가지 면에서 인도사상을 대표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보고 싶다면 ‘나는 히말리야의 요기였다-정신세계사’라고 하는 두권의 책을 살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중립(中立)’이라고 하는 정신일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치우쳐 있지 않고서 중립적인 위치를 지켜가려고 애쓰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곳에서 기토의 특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기토를 이해할 적에 토양이라고 하는 점을 강조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토양이라고 하는 것을 지도책을 펴놓고 살펴보면 대충 짐작이 된다. 인도의 광활한 초원에서 조용하게 나무아래 앉아서 명상에 잠겨드는 모습의 이미지는 비옥한 초원을 상징한다고 보겠다. 그리고 그러한 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에서도 역시 인도는 기토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토양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비옥하고 먹을 것이 많은 천혜의 땅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인도가 가장 적절하다고 봐야 하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길가에서 앉아서 명상을 하는 사람도 살고, 열심히 사업을 하는 사람도 살고 있다. 그리고 강가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있는 곳이 인도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적에 과연 기토다운 나라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느 여행자가 인도를 다녀와서 하는 말은 ‘인도는 가난에 찌든 나라였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나중에 인도를 다녀와서는 한 말은 엉뚱하게도, ‘인도는 알 수 없는 나라다.’ 라고 하는 말이다. 과연 인도는 무엇이길래 처음에는 가난으로 찌들은 나라로 보였다가 다음에는 또 그 기준을 흔들어 버리는 것일까? 과연 인도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생긴다면 인도를 바로 이해한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인도에 대한 정답은 ‘알수 없는 나라’ 로 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己土의 항목에 가장 어울리는 의미가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참으로 기토는 알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고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간다. 다시 인도에 대해서 좀더 생각을 해보자.




인도를 생각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은 소가 아닐까 싶다. 어디를 가든지 느릿느릿 걸어다니면서 아무곳에서나 일을 보고 아무데서나 누어 잠자는 인도의 소는 참으로 행복한 소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느낌에서 오는 것은 여유가 만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차량이 진행을 하다가도 소를 만나면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모습을 떠올리면서 인도의 속도는 느릿한 것으로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갑목이나 병화의 특성과도 비교가 된다고 하겠다. 가령 한국(甲木)을 살펴볼적에 그렇게 소가 길가운데를 걸어 가다가는 대번에 트럭에 치어서 죽어버릴 것이다. ‘빨리빨리’ 진행을 해야 하는 마당에 쓸데없는 소가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은 대번에 국회의 법에라도 상정을 해서 모조리 제주도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게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생각해 보면서 기토의 흐름도 그렇게 느릿하게 진행이 될것으로 생각해본다. 오죽하면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만들었겠는가를 생각해보자. 강산이 10년세월을 맞이하면 변하게 된다는 말인데, 이말은 또 강산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물론 속담은 항상 그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 마치 이 지구를 움직이는 것은 소리없는 미생물이라고 하듯이 이 속담의 이면에는 토도 변한다는 것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토의 흐름이 느리기는 해도 변하기는 한다는 의미겠는데, 이것과 갑목을 비교해 본다면 너무나도 그 차이가 크다는 것을 단번에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뚜렷한 것부터 비교를 해가면서 점차로 미세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일본(乙木)에서 같으면 이 소를 어떻게 이용하면 돈벌이가 될것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그냥 배회하다가 죽어버린 소를 기름붓고 태워서는 아무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돈이 되는 방향으로 연구가 되어저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날 것으로 상상을 해본다. 그 결과 떠돌이 소는 죽여도 무죄라고 하는 법망을 설치해 놓고서 잡아먹을 연구를 할 것이다. 즉 ‘도랑치고 가제잡는’ 절묘한 작전을 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토와 목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틀림없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점이 바로 기토를 움직이는 에너지이고, 또한 인도를 이끌어 가는 사상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교도의 입장에서도 인도는 성스러운  곳이다. 그야말로 성지(聖地)가 인도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가모니께서 깨달았다고 하는 중도(中道)34)의 사상도 인도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확대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즉 이렇게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이 되는 中道 사상도 나라를 달리하면 또 다르게 변형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던 이러한 모든 것들에게서 기토를 읽어보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인도라는 지역에서 특히 많이 찾아 볼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인도여행도 한번 해보기는 해야 할 참이다. 그러면서 과연 인도의 땅에서 기토의 의미가 보이는지 직접 피부로 느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이렇게 추상적으로 생각을 해본 것들이 구체적으로 느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인도는 세계 사상계를 주름잡는 정신의 어머니라고 하는 점이 매력이라고 하겠다. 물질적인 면과 지리적인 면에서도 그렇겠지만, 모든 세계의 사상이 인도를 바탕으로 퍼져나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어진다. 정신적인 수행에 대해서는 라자요가35)의 형태로 설명이 가능하고, 또 육체적인 봉사에 대해서는 박티요가36)가 기다리고 있다. 또 주문과 독경을 위주로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만트라요가37)도 있다. 그리고 요가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는 방법으로 몸 속의 이상을 바로잡아서 세포의 하나하나를 되살려서 다시 유연한 어린아이의 몸으로 돌아가서 순수한 육체를 갖게 되면 정신도 그렇게 순수하게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하타요가38)도 등장을 하게 된다. 수백가지의 수행법이 모두 망라되어 있는 요가의 근원에는 바로 인도라고 하는 지역적인 특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도는 모든 지구촌의 스승으로써 그 역할이 주어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