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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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지(大地)에 비유를 해본 기토는 사람에게 적용을 시킨다면 어떤 성분이 될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가장먼저 떠오르는 연관성은 ‘대지-어머니’라고 하는 관계이다. 대지는 어머니와도 같다는 말을 수없이 많은 시인들이 읊조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대지와 인간을 연결시키게 되면 당연히 어머니라고 하는 성분과 매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지의 상징인 기토를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꿔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관찰을 해보도록 하자.

모든 어머니들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포용성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덮어주고 감싸주고 베풀어 주는 것을 제일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지라고 하는 구조와 어머니의 구조는 동격이라고 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지 남들이 원하면 베풀어 주는 것이 토양의 특성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자식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와 연결을 시켜보지만,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최선의 도움을 주려고 마음먹고 또한 노력도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어머니의 심성이라고 하겠는데, 기토의 토양은 그렇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인간이 의지를 하고 살아가는 주택을 보면 굳건한 땅에다가 기초를 단단히 하고서 집을 세운다. 얼핏 태국의 수상가옥을 생각하실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을 해봤더니 역시 그 수상가옥들도 땅 위에다가 지반을 두고 있었다. 땅에다가 야자나무를 깊이 박아서 지주를 만들고, 그 위에다가 가로목을 대어서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땅위에다가 집을 짓는것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바닥과 집 사이에 물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것 뿐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토를 가정적으로 볼적에는 어머니의 역할에 견주어서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접목을 시키면 될까?




가장먼저 사회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교육기관이 기토와 닮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기토는 남에게 교육을 시키는 재능이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교육자가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예문을 곁들여가면서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을 해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볼적에 기토의 특성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원칙적으로 기토의 어머니적인 작용이 교육의 형태로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교부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기토적인 성분으로 생각을 해본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어머니는 가정의 교육자이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서 재물을 획득해서 가족이 먹고 살 식량을 공급한다고 보면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몫은 모두 어머니의 담당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이러한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교육은 학생의 입장에서 진행이 되어야 하는데, 기토의 중립적인 관점은 당연히 객관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고 보겠다. 그래서 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적성을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교육을 시켜야 받아들이는 사람이 선입관이 없이 잘 받아들이게 된다. 주관적으로 주입식의 교육을 시킨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로봇의 형태가 될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교육의 긍정적인 면 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일을 甲木이나 丙火가 수행한다고 생각해보면 도저히 상상이 되지않는다. 가령 갑목이 담당한다고 보면, 열통이 터져서 귀싸대기라고 올려부칠는지 모른다. 학생이 이해를 잘 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부연설명을 해야 하는데, 성질급하고 앞만 쳐다보고 있는 갑목으로써는 머리나쁜 제자가 곱게 보일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주먹으로 쥐어박기가 일쑤이다. 이런 특성으로써 제자교육을 한다면 아마도 모두는 도망을 가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실격이다.

그럼 丙火는 어떨까? 우선 자신이 시키는대로 잘 따르면 신명이 나서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고 또 아낄 것 같다. 그런데 일단 자신의 지시에 거부라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고 주장을 강하게 한다면 당장 호통이 떨어질 것이다. “그럼 네가 선생을 해라~!”는 말이 떨어질 가능성이 가장 많다. 갑목보다도 더욱 성급한 병화로써는 지긋~하게 기다리는 여유는 애초에 기대를 하기 어렵다. 아마도 금방 읽어주고서는 외워보라고 시킬 선생이다. 이렇게 급하면 학생들은 또 항상 긴장이 되고 그래서 거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적에 진드감치 기다려 주는 것이 능숙한 기토로써는 가장 적격인 셈이다. 교육자도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그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는 위치에는 기토라고 하는 토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