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 오욕(五慾)의 조화(調和)

작성일
2016-03-26 10:0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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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오욕(五慾)의 조화(調和)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한담의 제목을 변경했습니다. 원래는 「명예로운 권력」이라고 적어놓고 멋진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해 보려고 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써놓고 보니까 제목과 어울리지 않네요. 그래서 수정했습니다.

전국이 시끌시끌하지요? 4.13 총선때문에 그런 줄을 모두 아실 것 같습니다. 산골에도 한바탕씩 탄성과 탄식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세상의 풍경이 폭풍의 계절인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저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명예로운 삶이 되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모습과 함께 그 이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집요한 권력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볼 수가 있겠더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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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문득 모두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정치인들의 말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이에 대한 일념이 일어나서 한담의 한 페이지를 꾸며볼까 싶었습니다. 물론 산골 촌부의 생각이 얼마나 허접하겠습니까. 그래서 한담꺼리 밖에 안 된다는 말씀으로 도망갈 구녕을 만들어 놓습니다. 하하~

명예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근본 욕구에 포함되어 있다고 부처가 말 했습니다. '말 했습니다.'라고 쓰고 '말씀 하셨습니다.'라고 읽습니다. 때론 글과 마음이 다를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네요. 글로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쓰고, '잔소리 했다.'라고 읽을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여하튼....

그 양반 말씀에,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DNA에 포함되어 있는 본질이 다섯 가지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는 것도 충분히 한담꺼리가 되지 않겠느냔 생각으로 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1. 식욕(食慾)


무엇이든 먹어야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아무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목구멍이라고도 하잖아요. "목구녕이 포도청이랑게~!"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벗님께서도 전혀 이견이 없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이미 선인(仙人)이 되어서 이슬만 먹고 사는 경우에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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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뭘 먹을 것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를 것으로 봅니다. 채식주의자도 있을 것이고, 소식주의자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만 공통적인 것은 뭔가는 먹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먹는 것에 따라서 청(淸)한 몸으로 만들어 지기도 하고, 탁(濁)한 몸으로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고인이 말씀하셨잖아요. "오늘 그대가 먹은 것이 내일의 그대이다"라고 했으니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귤을 반 상자나 먹었더니 다음 날 얼굴이 노랗게 되더라는 지인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오늘 뭘 먹었는지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벗님은 오늘 뭘 드셨습니까?

어디선가 주워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방랑 김삿갓이 어느 고을을 지나가는데 한 집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생겼더랍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자기 엽전을 갖고 놀다가 삼켰다는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김삿갓이 말했습니다.

"그 돈은 자기 돈이오? 그렇다면 아무 걱정 말아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남의 돈을 수만 냥을 꿀꺽 하고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다오. 내일 이면 똥으로 나올테니 아무런 걱정 안 해도 되겠소이다."라고 했다는......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가 봅니다.

무엇을 먹었던지 간에 자기가 먹은 것은 몸으로 갑니다. 물질은 물질과 통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무얼 먹었느냐에 따라서 몸으로 흡수됩니다. 그러니 맑은 것을 먹으면 몸도 맑아지고, 탁한 것을 먹으면 몸도 탁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인과의 법칙이려니 하겠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의 반응에 대해서도 무심할 수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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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에 신선한 음식을 먹으면, 아침에 뇌리가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단순히 기분탓만은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채식만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잡식성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조물주의 뜻이랍니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최상이라고 봅니다. 자연보다 위대한 것은 없으므로 「자연(自然)은 신(神)이다」로 정리를 합니다.

그런데, 식욕은 몸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영혼을 위한 식욕도 있음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몸이 뭘 먹어야 유지된다면 영혼도 뭘 먹어야 유지된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오행학자의 음양관(陰陽觀)이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세상 만물은 음양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도록 만들어 졌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니 말이지요.

만두

영혼이 먹는 음식에 따라서 마음이 청해지기도 하고, 탁해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적에는 가려서 먹으라는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을 위한 음식을 먹을 적에는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가려서 먹으면 좋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음식도 자연에 가까운 것을 먹으면 가장 좋지 않을까요?

오행(五行)의 이치로 밥을 삼고,
음양(陰陽)의 조화로 국을 삼고,
중화(中和)의 맘으로 찬을 삼아,
세상(世上)과 더불어 배를 가득.


이것을 일러서 도인의 밥상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어쩌면 철학자의 밥상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이러한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을 한다면 마음의 상태가 대체로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문득 해 봤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식욕이 뭉클뭉클 솟구치시지요? 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러한 상을 차리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상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하~

 

2. 수면욕(睡眠慾)


밥을 먹으면 잠이 살살 옵니다. 그러면 편안하게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지요. 이것이 자연의 다음 단계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식곤증(食困症)이라고도 하잖아요. 심지어는 잠을 덜 자고 공부하고 도 닦으려고 밥을 조금씩만 먹는 수행자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아예 물만 마시면서 사는 단식행도 하잖아요. 참으로 대단한 수행력입니다.

다만 그것이 꼭 잘 하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수행하는 방법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 몸을 억지로 굶겨서 뭔가를 얻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까닭이겠습니다. 서산대사가 한 말도 그것이겠지요. 「주리면 먹고, 곤하면 잔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 났습니다.

잠

배가 고프면 밥을 줘야 합니다. 그것은 몸의 주인으로써 당연히 해야 하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졸음이 살살 오면 편안하게 잠에 들게 해 줘야 하는 것도 또한 몸의 주인이 해 줘야 할 일입니다. 만약에 잠을 재우지 않고 송곳으로 다리를 찔러가면서 공부한다고 해 본들 결국은 몸에 병만 얻고 신경허약증에 걸려서 환상이 나타나기 십상이거든요. 일상을 떠나서 별다른 도를 얻겠다고 하는 것도 탐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수수께끼가 있었지요? 중국어로는 미어(謎語)라고 한다니 같은 뜻인 모양입니다. 말로 헷갈리게 한다는 소릴테니까 말입니다. 여하튼 세상에 가장 무거운 것의 답은 '눈꺼풀'입니다. 이 녀석이 내리 누르면 천하 장사라도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겠습니다. 그러면 그냥 잠을 자면 됩니다. 국경선의 경계병은 눈을 부라리고 경계를 설 것이 아니라 미리 푹 잔 다음에 똘방똘방한 눈으로 경계를 서야지요. 그래서 잠이 인간적인 두 번째의 본능이라고 한답니다.

불면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마음에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병이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어두움 밤은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 된다고 합니다. 낭월은 그래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불면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지옥의 한 구역이겠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음식도 잘 먹어야 하겠습니다만 마음도 잘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몸의 잠도 있습니다만 마음의 잠도 있습니다. 망상 속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뭡니까? "꿈 깨~!"라고 하잖아요. 실제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닌데 현실적인 감각을 잃고 망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꿈을 깨라는 말은 정신 차리라는 말이 되고, 여기에서의 꿈은 잠에서 깨어나서 각성상태가 되라는 말이기도 하겠습니다.

선정

마음이 몽롱~하면 올바른 사유가 되지를 않습니다. 어딘가에 취해 있으면 그렇게 되겠네요. 물론 저마다에게 그러한 원인이 되는 것은 십만팔천가지가 되겠습니다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며 자연의 이치를 올바로 관조(觀照)할 수가 없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몸도 편안하게 잠을 재워야 하겠습니다만 마음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몽롱하게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비모사몽으로 구천을 방황해서는 될 일이 아니겠습니다.

 

3. 색욕(色慾)


다음으로 드러나는 욕망의 본질은 색욕이라고 합니다. 고풍스러운 용어로군요. 요즘 말로 바꾼다면 성욕(性慾)이 되겠습니다. 이것도 자연스러운 것은 음양의 조화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식욕과 수면욕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영역이라고 한다면, 성욕은 상대방이 필요하게 되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그렇다고 해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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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상합(陰陽相合)은 남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적으로 결합하는 것이지요. 이것도 또한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질로 간주를 한다는 것이니 그것은 조물주의 각본에 의해서 대대손손 종족을 이어가는 근본적인 생산의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벗님의 색욕은 편안 하신지요? 이것에도 도(道)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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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이 지나치면 심신을 황폐하게 만든다고 하고, 이것이 너무 없으면 더불어 살아가는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중화에 가까운 조화를 이룬다면 또한 아름답고 윤기가 흐르는 행복한 꿀 가정이 될 테니 또한 도가 아님이 없다는 생각이 사무치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습을 잠시 들여다 보면 어떤가요? 어쩐 일인지 성욕의 환자들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가 없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서 패가하고 망신하는 모습들을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왜 이러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은 무엇보다도 성욕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음식은 몸에 좋다는 것을 마구마구 먹어대니 그 에너지는 아랫 배에 가득 차고 넘치게 되는데 이러한 욕구라면 아내를 서넛은 거느려야 할 정도인데 실제로는 일부일처(一夫一妻)의 냉엄한 현실로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지 싶습니다.

요염

더구나 방송에서는 늘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해서만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밤낮없이 먹어댄 에너지는 어디론가 방출을 해야 하는데 그 출구가 건정하지 못하면 어둠의 길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성욕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넘쳐나고, 그 음식들은 주로 동물이 되지 싶네요. 항상 몸에 좋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은 정력(精力)에 좋은 것이라는 것과 결합을 이루게 됩니다.

고래로 성현들께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이렇게 음식에 대한 과다방송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면도 당연히 발생할 것이라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음양의 이치는 한 치의 벗어남도 없기 때문입니다. 먹은 대로 행한다는 결론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색욕의 근원에는 식욕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간단한 이치에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겠네요. 식욕이나 수면욕은 자신만 망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반드시 어딘가에서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렇게 성욕으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연결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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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항상 접하게 되는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모습들은 점점 강도를 더 해 갑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남녀가 따로 없다고 봅니다. 여인들도 자신의 몸을 지혜롭게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치한을 만나서 봉변을 당할 수가 있다는 간단한 이치는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섹시함을 뽐내고 자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파리가 꼬이라고 꼬랑내를 피우는 것이라고 하겠으니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도 망치고 성욕을 풀지 못하여 허둥대는 수컷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줄 수가 있음을.....

 

4. 재물욕(財物慾)


재물에 대한 욕망도 근본적인 욕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여서 물욕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래서 재물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또 경제가 돌아가고 삶이 이어지는 순환이 일어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돈」이라고 한다지요? 돈은 도는데 도는 돈을 금고에 가둬두려고 하니까 부작용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돈

일평생을 일하여 먹고 살다가 마지막으로 받은 퇴직금을 들고 사업을 하려고 상담실을 찾아 옵니다. 이보다 더 위험한 일이 없겠습니다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나머지 삶을 편안하게 먹고 사는데 보탬이 되라고 주는 돈을 사업의 밑천으로 삼을 요량인 모양이니 말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흔히 있는 일입니다.

평생 만져보지 못한 돈을 손에 쥐었으니 일평생을 노동하면서 부러워했던 투자라는 것을 해 보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를 못할 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다고 되느냐는 말이지요. 저마다 타고난 복이 있고 재량(財量)이 있으니 이것은 수익이 없는 미래를 위해서 주는 것인데 그것으로 뻥튀기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도 자연의 이치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극구 만류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만 운이 언제 좋은지만 묻고 있습니다. 그것이 운과 상관이 있겠느냐고 아무리 알려줘도 귓등으로 흘려버립니다. 이미 귀를 막아버렸나 봅니다. 그래서 한숨만 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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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의 욕망은 이렇게도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욕에는 눈이 어두워진다고 하는가 봅니다. 분수(分數)를 말 할 적에는 바로 이 물욕에 대한 경계가 가장 으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 한 푼 벌어보겠다고 체면을 접어야 하는 현실도 있고 보면 이 나라의 경제 사정이 빨리 좋아져서 삶의 풍경에 여유로움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만, 어쩐 일인지 돌아야 하는 돈은 재벌들의 금고에 차곡차곡 쌓인다고만 하니 뭐가 문제이긴 문제인 모양입니다.

혈안(血眼)이라고 합니다. 물질적인 충족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요. 눈에 핏발이 설 정도입니다. 예전에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아침에 눈알이 벌개가지고 다니시는 것을 본 적에 있는데 알고 봤더니 밤 새워서 화투놀음을 하셨다더군요. 돈에 눈이 멀면 그렇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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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따라와야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어르신들이 말씀들을 하십니다만, 그러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람들은 돈을 쫓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만 되새겨 줄 뿐이라는 이야기로군요. 그래서 재물의 암시가 나쁜 사람에게는 기술을 배워서 재물이 따라오게 만들어 보시라고도 권합니다만, 혹자는 듣고 혹자는 안 듣습니다.

온 천지에 만연한 물욕은 인플레이션도 심합니다. 그래서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는 한 달의 월급이 2만원만 되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많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빈약해 보이고, 그래서 마음은 점점 거지가 되어가는가 싶기도 합니다. 마음이 풍요로워야 한다고 아무리 현인들이 가르침을 남겨도 소용이 없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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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의 중화를 생각해 보지만 누구에게나 강요를 할 수는 없기에 그냥 스스로 관조할 뿐입니다. 그리고 천만 다행으로 묻는 이가 있다면 한 마디 해 줄 수가 있는 것에 늘 감사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가 결코 못 가진자의 자위(自慰)에서 나온 말이 아님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5. 명예욕(名譽慾)


이제, 본론에 도달했습니다. 오늘의 한담 제목이 '명예로운 권력'이잖아요. 그러니까 명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것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왔구먼요. 아침에 시작한 한담이 오후의 해가 기울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여기까지 밖에 못 왔습니다. 오늘의 길은 멀다고 해야 할까 봅니다. 하하~

나폴레옹

4.13 총선에서는 명예를 얻고자 하는 선량(選良)들이 각축을 벌이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전장에 출전을 할 수가 있는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도 지켜 봤습니다. 그리고 씁쓸한 여운을 느끼기도 하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인 까닭이지요. 그래서 문득 한 마음이 일어난 것이기도 합니다만.....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도 생명체의 본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이미 그러한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이야기로구먼요. 적게는 골목대장에서 크게는 세계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것까지 규모에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명예욕입니다. 명예욕의 본질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남들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겠지요?

오늘 아침에 어느 영상에서 이번 선거에 사용할 투표함을 봤습니다. 천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작년까지 사용하던 플라스틱이 뭔가 불편하다고 새롭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보면서 혹시..... 투표도둑이 들면 어쩌나.... 싶은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다는 거시지요. 그럼 어쩌지요? 괜한 걱정이라고요? 물론 그래야 합니다. 암 요~~!!

권력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왜냐하면 또한 음양법이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을테니 말이지요. 이렇게 이름을 붙여 봅니다.

 

1) 명예로운 권력


권력에도 품질이 있고 청탁이 있기 마련이겠습니다. 그리고 청한 권력이라면 명예롭다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대목에서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서에 이르기를 '누가 왕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백성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꿈인 왕이 있었다지요? 어쩜 그러한 현실적으로 정말로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아득한 옛날에 써놨는지 말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그 세상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던가 봅니다.

플라톤

문득 플라톤이 떠오릅니다.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펼쳤다지요? 곰곰 생각해 보면 이 말이나 앞의 말이나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론적으로는 그럴싸 했더라도 막상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대로 자신의 말대로 실행에 옮겼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 알 수가 없는 일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다스려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제가 일치한다면 그것은 도(道)에 가까운 세상일 것이라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의 이치에 가장 근접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일테니 말이지요.

모두를 말로는, 글로는, 이렇게 합니다. 그것은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도 그렇게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완장(腕章)의 위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탐욕스런 권력 


21세기가 되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려나.... 했는데, 역시나.... 로 돌아가는 모습을 늘 살펴보게 됩니다. 더구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테러무리들도 점점 더 극한에 달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탐욕스런 권력을 읽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인민을 토탄에 빠지게 하는 지도자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한 모습에서 탐욕스러운 권력을 읽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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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아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고, 또 있어 갈 것이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또한 음양의 이치이지 말이지요. 그래서 안타까움과 함께 그러려니~~~ 하는 것으로 수용하는 것도 또한 삶의 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도 모두가 인간의 본질 속에 포함되어 있었더라는 것이지요.

완장_03

벗님이 최고 통치자의 역할을 맡는다면 어떻게 하시겠는지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또한 그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장담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지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탓한다는 것도 어쩌면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성적으로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가 있을 적에 생각이라도 해 보는 것이지요.

그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 또한 흐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연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절의 문턱에서 단단하게 솜옷을, 아니 오리털 옷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할지 아니면 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 현명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만, 늘 그러잖아요.

"또한, 곧 지나 가리라~!"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한 마음만 먹으면 명예로운 권력자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문제는 바닥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진 흐름에서 마음대로 혼자서 고치려고 해도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조차도 생각을 해 봅니다.

 

6. 욕망(慾望)의 끝에는 파멸(破滅).


다섯 가지의 근본적인 욕망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지도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미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이지요. 그래서 진시황은 병마용을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죽은 다음에까지도 생각을 하느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1대황제가 되고 대대손손 황제로 이어지를 바랬던 모양인데 바로 2대에서 끝장이 나고 말았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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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예로운 덕화로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는 통치자도 있습니다만, 명예와는 전혀 무관하게 무슨 욕을 먹더라도, 개의치 않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통치자가 있는 것은 명예욕의 양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고인들은 그러한 장면을 접하여 '말세(末世)라고도 합니다만, 사실 말세는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그 시대의 군상들일 뿐이지요. 그렇거나 말거나 삶은 또 삶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 뿐이지요.

식욕의 끝에는 비만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면욕의 끝에는 멍충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욕의 끝에는 파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물욕의 끝에는 재물의 노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예욕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렇게도 고인들께서는 이러한 것에 치우치지 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르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본능의 질주를 막을 방법은 스스로 노력하는 길 밖에 없는가 싶습니다. 오죽하면 「욕망으로 달리는 열차」라고 했겠느냔 말도 생각이 나네요. 이러한 까닭에 늘 잊지 않아야 할 두 글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용(中庸)'이고, 중화(中和)이며, 조화(調和)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권력의 마력에 정신이 빨려서 천지분간을 못했던 사람들에게 연민심을 느끼게 되는가 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는 돌고 도는 이치인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식욕과 수면욕은 개인적인 욕구이고, 성욕은 상대가 있는 욕구라고 한다면 재물욕은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것에서 자신의 소유물을 추구하는 욕구이고, 명예욕은 그러한 사회를 자신의 덕화(德化)로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으니 욕구가 점점 확장된다는 이야기로 봐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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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시는 인연으로 늘 스스로를 점검하신다면 또한 미래는 맑고 밝고 행복한 나날로 가득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낭월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모쪼록 오늘이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3월 26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