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계절적(季節的)인 의미 (淸明~穀雨)

작성일
2007-09-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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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다가오는 계절은 火氣가 치성한 여름철이다. 그렇다면 여름은 불의 계절이고, 불의 계절이 되면 물은 자연스럽게 그 권좌(權座)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한 연유로 해서 여름의 통치자(統治者)인 불의 대왕이 부임하기 전에 조용하게 물러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할 것이다. 만약 후임자가 와서 전임자를 보낸다면 아마도 서로는 과히 즐겁지 않은 기분이 들 가능성이 농후하겠다. 특히 후임자에게 밀려서 떠나는 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엿같은 기분’ 이 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저런 꼴을 보지 않으려고 미리 물러나서 조용하게 물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창고에서 휴식을 취하는게 좋겠다는 결론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선 이러한 이유로 해서 진월에다가 물 창고를 마련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으로 이미 木氣가 발생되어서 충분히 기운을 펼치도록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물은 자신의 몫을 다 한 후에는 이미 기운이 다 빠져서 더 이상 남은 기운이 없다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식을 낳아서 스스로 밥을 떠먹을 정도로 키워놓은 다음에는 어미의 역할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법칙이 그대로 냉엄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을 종종 TV 등을 통해서 보아오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먹거리를 구할 정도가 되면 자식의 곁을 떠나버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일 것이라고  생각해보면서 인간은 너무 자연의 법칙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은 낭월이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물은 자식들인 목이 자라를 잡아서 성장하도록 살펴주다가는 淸明이 되면 이제 다가올  화의 계절에서 목은 꽃을 피우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을 기원하면서 깨끗하게 물러가게 되는 것으로 생각해봤다. 자연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냉정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흔히 사람들은 ‘어찌 그리 무정하요?’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데, 실제로 자연은 무정하기가 한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의 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연에서 본다면 거추장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내버려둬도 잘 살아가는 것이 자연인데, 정으로 인해서 복잡하게 번뇌 속에 얽혀드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도 ‘도를 닦는데 큰 마장은 다정(多情)이니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사실 싣달타도 출가를 하기 전에는 정이라는 것으로 인해서 무척이나 갈등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나뿐인 아버지의 소원대로 왕위를 물려받아야 할 것인가? 이쁘고도 착한 아내가 자신이 떠나고 나면 얼마나 가슴아파 할 것인가? 등등 온갖 생각들이 그를 얽어매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다가는 결국 냉정하게 잘라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서는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마부에게 보냈던 것만 봐도 얼마나 끈끈한 정이 마음을 괴롭혔는지 인간적으로 짐작이 되고도 남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몇 가지 살펴볼 적에 물의 권세가 인묘월을 넘기면서 쇠약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그래서 물은 휴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소림사에서 가끔씩 고수들이 페관수련을 하는 것도 아마 이러한 소진된 내공(內功)을 다시 증진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물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대로 있다가는 잠시 후에 다가올 불을 만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으로 판단을 하고서는 100일간 폐관수련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실제로 이 물이 다시 출관을 하는 시기는 가을이 되어서이다. 申月에 가서야 비로소 生氣를 받으면서 나타나게 되는 셈이니까, 다음에 나올 때까지는 대충 따져서 100일 정도가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이유는 애써서 가꿔놓은 나무들이 한 여름의 땡볕으로 말라죽어 버리는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약간 남은 물은 공중에서는 불기운에게 증발되어버릴 것을 판단하고서는 땅 속으로 스며들어간다는 생각도 해본다. 즉 스스로 갇히면서 자신의 자식들에게 생기운을 넣어주는 것이다. 사실 땅 속이 축축하면 나무들은 땡볕을 즐기면서 무럭무럭 자라나게 된다. 그러나 바닥이 말라버려서는 말라 죽어버리는 것도 시간문제에 속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습기가 축축한 辰土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로써는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이것이 자연의 계획이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몸을 뜯어먹고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어떤 동물들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몇 가지의 상황을 설정해놓고 생각해보면 역시 계절에 연관되어서 관찰이 가능하다고 본다.




★ 卦象의 관점으로 보는 辰月













上卦는 택이 되고


澤天夬는 못의 기운이 증발하여 하늘에 떠있는 상황이므로 아래의 5양에게 결단이 나는 의미로써 예의를 잃은 것이다.


下卦는 천이 되어


합해서 澤天夬이다








이미 괘상으로 살펴볼 적에 양의 기운이 치성해서 다섯 번째까지 올라간 모습이다. 즉 五陽이다. 이렇게 되니 음의 기운이 매우 허약하게 보인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나마도 완전히 증발되어서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이 진월의 괘상에 들어있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괘에서는 맨 위의 음이 바로 계수가 아닐까 싶다. 괘의 전체를 살펴보면 오로지 음괘 하나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괘를 풀이하는데 그 중심으로 보는 것은 세 개의 막대기 중에서 한가지만 있는 것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하괘에는 모두 양만 있고, 상괘에 가서야 겨우 하나의 음괘가 그것도 맨 꼭대기로 밀려서 올라간 형상이다.

원래가 음은 속에 저장이 되어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서는 큰일이다. 그래서 아마도 명리학에서는 계수를 지장간에다가 보관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진월에서의 계수를 중히 여기는 것이나, 쾌에서의 일음이 분산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서로 통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