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적(季節的)인 의미 (立春~雨水)

작성일
2007-09-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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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로 본 寅月은 할 말이 많을 듯 하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간이기에 그럴 것이다. 뭔가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변화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평진전(子平眞詮)에서는 寅月을 上下로 나눠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상반기(上半期)에는 계절이 입춘(立春)에서 우수(雨水) 사이인데, 이때는 아직 춥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봄이라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이야기이다. 지장간으로는 戊土와 丙火의 관할 하에 있는 시기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초봄이라고 할만 한 것은 적어도 雨水가 지나고서 경칩(驚蟄)까지이다.

즉 입춘의 시기에는 땅 속으로는 봄의 기운이 시작되었지만, 그 기운이 아직 땅을 뚫고 올라오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수가 지나면 비로소 그 기운이 표면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인월을 관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변화가 많은 월이라는 의미도 포함이 된다. 이때에는 아마도 천지의 기운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도 대체로 급속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은 괜히 분주하게 진행이 된다.

입춘이라고 하면 양력으로는 2월 4~5일 무렵이다. 그리고 음력으로는 설을 전후하고 있는 달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뭔가를 기대하고 부푼 마음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학생은 학생들대로 한 살을 더 먹었다는 생각으로 괜히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대고 싶은 생각이 들고, 직장인은 또 그들대로 올 봄에는 승진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감으로 희망을 갖어보게 되는 것이다. 설날은 입춘을 기준해서 전후로 15일 이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매년 약간의 차이(15일 이내)는 있겠지만, 이 무렵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왠지 희망적인 생각으로 기대를 해보게 되는 심리가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원인이 바로 寅月의 불안정한 흐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불안정하면서도 희망적인 것은 지장간에 의한 구조에 의해서 그러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는데, 이것은 매년 반복되는 계절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인월의 지장간을 소재로 해서 하나의 상황설정을 해볼까 한다. 어느 날인가 인월에 대한 명상에 잠겼다가 문득 연결을 시켜서 생각해본 것이 있어서이다. 내용은 이렇다.




★ 상산 조자룡과 寅木중의 戊丙甲




우선 인월에서 생각나는 호랑이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라서 삼국지에서 호랑이같이 용맹스러운 장수가 누구일까를 떠올려 봤다. 수없이 많은 장수들이 모두 용맹하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장비는 아마도 가장 용맹스럽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한사람을 들라고 하면 아무래도 상산 조자룡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호랑이 장수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인목은 조자룡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지장간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낭월이의 시나리오를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한겨울의 냉혹한 추위는 전쟁판을 방불케 한다. 적진에서 포위공격을 받으면 누구나 간담이 서늘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춥다고 하는 말을 연결한다고 해서 엉뚱하다고 생각할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전쟁판에서 이미 불리하다고 판단이 되어버린 상황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온 힘을 다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참으로 맹호(猛虎)다운 모습에 손색이 없다. 여기까지가 子月과 丑月의 혹독함과 싸우고 있는 陽의 모습이다. 즉 陰을 항상 나쁜 쪽으로만 관찰을 하게 된다면 좋은 쪽은 양이다. 그래도 만물을 길러주고 먹을 것을 베푸는 쪽은 아무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일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조조에게 패해서 피신을 하는 중에 뿔뿔이 흩어진 유비 군에서 조자룡은 어린 유비의 자식을 찾아서 홀로 적진으로 파고든다.

그러다가 입춘 날에 조자룡은 유비의 부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담장 아래에서 새파랗게 질려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더욱 큰일이라는 직감적인 판단을 하게된 조자룡은 얼른 미부인과 아기를 말에 태우려고 하지만 이미 상황을 알아차린 부인은 아이만 맡기고서 자신은 우물에 빠져 죽어버린다. 자기까지 살아서는 결국 아무도 이 험난한 상황을 빠져나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어떻게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생긴 일인데 여기에서도 뭔가 얼핏 집히는 것이 있다.

이미 봄의 기운이 감돌면 음의 기운은 쇠하기 마련이라는 어거지를 써볼 참이다. 그래서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데, 이것은 차라리 냉정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조자룡은 바쁘다. 달려드는 적들을 무찔러야 하고, 또 어린 아기를 손상 없이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숨을 쉴 틈도 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寅月의 분주함이라고 생각을 해보고 싶다. 조자룡처럼 생사의 기로에서 절박하게 쫓기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틀림없이 寅月이 되면 그 마음이 분주하게 된다는 것을 연결 지어 보려고 하는 작전이다. 그리고 토정비결을 구해보려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다소 유명세를 얻고 있는 역학자의 문전은 대목을 이루는 것이기도 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원래가 세상에 우연(偶然)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전개되던 숨막히는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러한 곳에서 상황판단이 빠를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寅중의 甲木이다. 이 갑목은 그렇게 신속하다. 원래가 천간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궁리하고 재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 갑목이다. 생각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감적으로 어린아이를 품속에다가 집어넣는다. 이때의 甲木의 역할은 오로지 이 어린아이(丙火)를 주인에게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이 전부가 되는 것이다. 인월의 甲木은 그렇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가 살고 못살고는 갑목의 상태가 얼마나 양호한가에 달렸다. 그래서 갑목의 성분이 적어도 70%는 되어야 한다. 갑목이 약하면 제대로 전달도 하지 못하고서 죽을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오로지 갑목은 살아서 자신의 몫을 다함으로써 주인에게 받은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단단하게 어린애를 품안에 넣은 조자룡은  창날을 고추 세운다. 이때의 창날은 바로 戊土의 역할이라고 보자. 무토는 왜  그렇게 살벌한 甲木의 사이에서 끼어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물(적군)이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방어를 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戊土는 甲木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리고 조자룡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한 자루의 창뿐인 셈이다. 그 나머지는 자신의 맘대로 되지않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지장간에 있는 戊丙甲의 역할은 부여된 셈이다.

그러면 어째서 己戊丙甲이 아니고 그냥 戊丙甲인가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겠다. 바로 이러한 상황(숨막히는)에서 陰土(己土)는 너무 힘이 없다. 바짝 치켜든 창날에 잔뜩 공격적인 陽氣를 주입시켜야만 적들을 사정없이 무찌르게 되는데, 기토는 그냥 단지 한 자루의 무기일 뿐이다. 이렇게 힘이 추가되지 않은 상황의 무기로써는 무사히 어린아이(丙火)를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물질적인 한 자루의 무기(己土)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기운(陽의 성분)을 주입시킴으로써 비로소 번쩍이는 기운이 살아나고 그 무기는 피맛을 본 드라큘라처럼 펄펄 날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설정을 함으로써 원래는 己戊丙甲이었지만, 힘이 빠진 무기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戊丙甲으로만 표기를 하게 되었다고 정리를 해봤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상황설정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기토는 물의 장애물을 피해 가는 데에도 무력하다. 습토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무토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양토이고 조토(燥土)이다. 그래서 물이 덤벼들면 노련한 솜씨로 土剋水를 하게 된다. 감히 무토의 산을 넘어서 병화를 극하는 水剋火는 범할 장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무토가 아니고서는 그 상황을 이겨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壬水(적장)가 달려들면 극해버리고, 癸水(졸개)가 덤벼들면 호통을 쳐서 꼼짝도 못하게(무계합)해버린다. 참으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토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준비를 한 조자룡(어린아이와 자신과 창)은 그대로 寅木(갑목과 병화와 무토)의 모습을 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서는 앞으로 돌진을 한다. 원래가 갑목은 앞으로 나가는 것밖에 모른다. 그렇게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앞에 나타나는 적을 베고 또 벤다. 이것은 브레이크가 풀려버린 자동차와도 흡사하다. 갑목에게는 브레이크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에 죽어버리게 될는지도 모른다. 실로 땀을 쥐게 되는 상황이 그렇게 연출되는 것이다.

한편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조조가 있다. 조조는 물의 대왕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가 조자룡의 용전분투하는 모습을 보고서 몹시도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는 자신은 갖지 못한 용맹하고 충성스런 부하를 둔 유비가 부러워서라고 하겠는데, 그렇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서서 막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는 상당한 힘을 갖고 있지만 이미 다가오는 새로운 기운 앞에서는 의욕이 상실되는 까닭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냥 바라다보고만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로지 병화를 품에 넣고서 뛰는 것은 목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목의 희망은 그 어린 생명에게 있는 것이다. 즉 불이 없어서는 나무의 삶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길고 긴 겨울의 터널을 벗어나려는 희망은 저쪽에 있는 포근한 태양의 빛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30일을 달려서 마침내 조자룡의 왕인 유비를 만났다. 이것은 월로는 卯月에 해당 할 것이고, 이미 주변에는 위험요소가 모두 사라져버린 안전한 목의 본거지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제서야 비로소 달리는 속도를 멈추고 어린아이를 품에서 내어놓게 된다. 그래서 묘월에는 지장간에서도 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본거지에 도착을 해버린 갑목으로써는 다시 화를 보호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 없어졌다 고해서 화의 존재를 잊어서야 될 일이 아니다. 이미 이면에는 그대로 무럭무럭 화의 힘이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비의 아들도 그렇게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이 예전의 위험한 상황보다 결코 약해진 것은 아니다. 단지 안전하기 때문에 구태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임무를 완수하고서 어린아이를 유비의 손에 건네주자 유비는 아이를 집어 내동댕이치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런 쓸모 없는 어린애 때문에 충성스런 호랑이를 잃을 뻔하였구나. 이게 대체 뭐길래 목숨을 걸게 한단 말인가!”




★ 卦象의 관점으로 보는 寅月













上卦는 地가 되고


泰는 아버지의 정액과 어머니의 난자가 결함을 이뤄서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下卦는 天이 되어


합해서 地天泰이다








드디어 출산(出産)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경사스러운 것일까? 泰는 태평(泰平)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기다리던 아들을 얻은 모양이다. 위와 아래가 음양이 반반으로 되어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서서히 양의 기운이 넘쳐 오른다는 의미에서도 반가운 괘로 취급을 했다. 원래가 지천태(地天泰)는 사대길괘에 속하는 좋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음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누가 생각을 해도 즐거운 일이다. 이것이 서로 반반이 되기는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태괘에서는 기적적으로 그러한 균형이 잡힌 것이니 이를 기념 삼아서 잔치를 할만도 하겠다. 이렇게 편안한 의미를 부여한 것을 보니까 앞에서 살벌한 전쟁터와 비교한 것이 왼지 멋적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경에서는 아주 편안하고 화평스러운 상황을 갖고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장간의 의미가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지장간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예도 잘못될 것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입춘이 되면 예전에는 집집마다 입춘을 경축하는 글귀를 대문에 써 붙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져서 보기 어려운 풍습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계절감각이 점차로 무뎌져 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은 겨울에도 수박이 나뒹굴고, 여름에도 얼음 덩어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면 그 나머지 계절에 대한 감각이 둔해 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