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이 토를 극함이 무력하다

작성일
2007-09-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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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부모님을 도와드린다고 감자밭을 나가서 감자알이 굵어지라고 흙을 긁어서 감자포기로 덮어주는 일을 하게 되었던 기억이난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감자에게 북을 줘야 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알이 굵어지라고 흙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작업은 목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목극토였던가 보다. 토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라는 것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한가지를 배운 나는 마당가에 있는 감나무에다가 감을 많이 먹으려고 동생이랑 열심히 흙을 퍼다가 감나무를 묻었더니 그날저녁에는 야단을 맞았다. 감나무가 죽어버리라고 그렇게 흙을 퍼다 부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어른의 꾸지람을 듣고서 황당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이 바로 오행의 이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로써는 매우 못마땅했는데, 나무에게 흙을 덮어씌우면 나무가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토다목절(土多木折)’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기억이 있어선지 토다목절에 대한 항목을 생각하면 항시 떠오른다.




그리고 또 다른 관점에서 토다목절을 바라다 보자. 이번에는 인생으로 비춰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목은 어린 성장기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그리고 토는 중년을 끝에다 두고 있는 장년(壯年)의 시기라고 본다. 그리고 중용의 이치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 처한 연령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성장기에 있는 어린사람이든 청소년이든 간에 중년의 어른들이 너무나 간섭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를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어린이는 자신의 의도대로 자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른의 틀에 박힌 잔소리는 자유로운 순발력을 발휘하는 소년들에게는 참으로 독약과 같은 것일런지도 모른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아침저녁으로 되고 싶은 것이 달라지는 시기에, 노숙하게 중용을 이야기한다면 그러한 말이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어려서 만화책을 읽느라고 호롱불의 심지를 돋구다가 기름 많이 든다고 아버님께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난다. 얼른 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에 공감을 할 턱이 없어서, 이불로 문을 가려서 빛이 나가지 않게 한 후에 날이 샐때까지 만화를 읽었던 것이다. 이렇게 왕성한 호기심은 밤이 되어도 잠들 줄을 모른다. 이러한 성분은 어른(토)의 말에 별로 큰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목극토의 본성이 나타난다고 생각해본다. 실제로 어른의 말을 듣고 있는 것도 공감을 해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른의 말이니까 옳을 것이라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다분히 습관적으로 따르는 의미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토에 속하는 중년의 어른들은 그러한 것들이 모두 실속없는 헛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속이 없다는 것 만으로 중단시키려고 한다면 이 어린 나무는 차차로 시달려서 노인화(?)가 되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애는 어린애 다워야 하는데, 어린애가 어른처럼 생각한다면 이것도 문제이다. 역시 자연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토다목절에다가 연결을 시켜보는 것이다. 어린애의 창작성을 꺽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특히 요즘 아이가 적은 시대에서는 반드시 한번 쯤은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하는 오행의 ‘역리(逆理)현상’일 것이다. 애어른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어쩌면 토다목절의 현상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애들이 애들답지 않다고 한다.

항상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씀이 난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것으로 흐른다. 어른들이 공부를 하지 못했던 보복을 어린애에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도 공부를 못하는 사주팔자를 타고난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기대심리를 충족하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서 인생을 하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것도 토다목절인 것이다. 그 학생들은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오로지 어른들의 공부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그 짐을 덜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토다목절(土多木折)의 상황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만약에 어른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싶다면, “원래가 토다목절은 오행의 일상적인 이치가 아니라 간혹 있는 이치랍니다.”하는 답변을 드리겠다. 참고로 아버지를 오행으로 토가 대신한다는 것을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