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물염적벽(勿染赤壁)

작성일
2023-10-25 05:3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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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물염적벽(勿染赤壁)  

 

(2023년 10월 21일 탐방)

 



화순에는 네 곳의 적벽이 있다는 것은 8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 두 곳은 언제든지 탐방을 할 수가 있는데 두 곳은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도 8년 전이었다. 처음에 화순 적벽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온전히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인해서다. 그가 삶의 마지막을 화순 적벽에서 보내고 세상을 하직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나서이기도 하다.

 


당시 확인했던 자료구나. 그때 찾았던 물염정의 이야기는 아래의 물염정 사진에 링크를 붙인다. 그 시절에 둘러봤던 물염적벽의 생각을 떠올릴 겸해서다. 당시에 남해안을 둘러보고서 귀가하는 길에 화순적벽을 마지막으로 보는 여정이었지. 그런데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예약을 해야만 둘러볼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한 까닭에 김삿갓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염적벽만 둘러보고는 후일을 기약하고 말았는데 그 여정의 끝을 맺기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찾으려고 했었다.

 

 



그때는 일행이 여섯이었는데 오늘은 둘이구나. 이번에는 절대로 허탕을 치지 않기 위해서 미리 예매를 했다. 현장에서 투어버스를 타는 것도 있었는데 인원이 다 차면 다음 버스를 타야 한다는 조건이어서 그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리 표를 확보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10월 21일 투어버스를 타려면 10월 7일 09시부터 예매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이것부터 기다린 셈이로구나. 그렇게 해서 가장 앞자리인 1번과 2번으로 표를 샀다. 차량은 오전과 오후로 2차례 운행하는데 오전을 피한 것은 논산에서부터 가려면 밤중에 나서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적벽은 대체로 서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햇살의 각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짙은 그늘에 잠긴 적벽을 그것도 멀리 전망대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큰 손해를 보는 셈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출발할 새벽의 하늘은 밝아오고 마음은 벌써 물염적벽인데 동행할 사람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투어시간은 오후 2시지만 낭월이 잡아 놓은 일정은 10시부터이기 때문에 시간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까닭이다.

 


첫 목적지인 물염정까지는 줄 잡아서 2시간 반이다. 마음 같아서야 전날에 화순에서 쉬고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싶지만 바깥잠은 편치 않다는 연지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대신에 일찍 출발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다행히 논산이라서 3시간 전후면 전국의 어디라도 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 싶다. 

 

여하튼, 7시 반에 출발해야 겨우 10시에 도착할 수가 있는 여정인데 물론 도중에 아무 일이 없을 경우다. 아침을 먹으러 휴게소라도 들리게 되면 또 지연이 될 뿐이므로 자칫하면 11시와 다퉈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지?

 


낭월 : 아직 멀었나? (라고 말하고 뭐하느라고 꿈지럭대노~라고 쓴다. ㅎㅎ)

연지 : 다 되었어요.

낭월 : 커피는 준비했다. 물만 챙기면 된다.

연지 : 아직 7시 반도 안 되었는데 뭘. 호호~

 


노성산 아래에 새벽 안개가 깔리는구나. 다행히 예정대로 출발했다. 날씨는 쾌청하다. 하늘이 도우면 하루의 일정을 채우는데 고마울 따름이다. 한 시간을 달리다가 휴게소가 나온다면서 아침을 해결하잔다. 그래야지.

 


이서휴게소구나. 오호라~ 이서라니 이것도 기이한 인연이란 말이지. 뭐든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된다. 그냥 지나쳐도 그만이지만 여산휴게소도 있고, 정읍휴게소도 있는데 하필이면 이서휴게소를 선택하다니 말이다.

 

오늘 가야 할 곳이 바로 화순군 이서면이다.

오늘 아침을 해결할 이곳은 완주군 이서면이다.

낭월이 태어난 곳은 청도군 이서면이다.

 

아니, 이만하면 기이하다고 해도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다른 곳에도 이서면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이서면과 얽힌 사연을 생각하면서 아침을 기다렸다.

 


우동이구나. 떠있는 것을 보니 유부우동이네. 유부는 두부로 만든 것이니 두부우동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아침은 시원한 우동국물로 해결하고서 다시 길을 재촉한다. 

 

'어서가자 밧삐가자 하루해가 다저문다.'

 


집을 떠난지 두 시간이 되니까 이정표에 화순이 등장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예정대로 10시에 물염적벽에 도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싸~

 


신호를 기다리다가 옆을 보니 고가도로 벽에 바위가 붙어있다. 보나마나 무등산지질공원을 의미하는 것이겠군. 8년 전에 하다 만 숙제를 이제 마무리하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가고 있단 말이지.

 


다 왔다. 10시 3분이구나. 이 정도는 잘 맞춘 것으로 봐도 된다. 물염적벽이다.

 


보수공사를 하느라고 물염정은 사라졌구나. 오래 되어서 고칠 곳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미리 왔을 적에 물염정을 봐두길 잘 했단 말이지. 장~ 하는 말이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 할 수가 있는 것은 오늘 하자'는 주의가 여기에서도 통용이 되는구나. 조용한 물염적벽이 기다리고 있다. 다 왔는데도 걸음은 더 바쁘다.

 

버스로 둘러볼 곳은 장항(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이다. 그러니까 오전에 탐방할 곳은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이다. 오후의 투어일정에 물염과 창랑이 포함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하게 둘러보고 나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계획이다. 이미 둘러 본 곳이지만 그때는 그때의 안목으로 봤고, 오늘은 오늘의 안목으로 볼테니 장소는 같은 곳이지만 보이는 것은 먼저와 같은 것이 아닐 것이라는.

 


안내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구나. 이것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담아 놔야 한다. 뭐라고 써 놨는지 읽어 봐야지.

 


화순 적벽(和順赤壁)

국가지정 문재 명승 제112호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항리, 창랑리 일대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데, 장항(노루목) 적벽, 창랑리에 있는 창랑 적벽, 물염정이 있는 물염 적벽 등이 가장 유명하다. 적벽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선경으로 아름답고 빼어난 자연 경관과 웅장함, 그리고 유락 공간으로서 옛부터 잘 알려진 명승지이다.

이곳은 조선 중기 건립된 물염정이 있어 이 일대의 적벽을 '물염 적벽'이라고도 불렀으며 동복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화순 적벽은 조선조 중종(1506~1544) 때 기묘사화로 동복현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38~1536)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당대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김인후(1510~1560) 등은 적벽 관련된 시를 남겼으며, 조선 중기 때 문인이었으며 임진왜란 시 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명(1533~1592)은 1574년 무등산 일대를 유람하고 기행문인 『유서석록』을 써 기록을 남기는 등 많은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적벽을 보고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또한 1777년(정조1년)에 화순 현감인 아버지인 정재원을 따라 왔던 청년의 다산 정약용 선생도 이곳 물염정에 와서 적벽 일대를 둘러보고 기행문과 시를 남기기도 했다.

 

무등산이 높다하되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

 

현재는 1985년 준공된 동복댐의 일부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접근이 어렵지만 여전히 수려한 경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 또한 이곳의 수려한 산세를 따라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 창랑정 등 30여 개 소의 누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수몰 및 퇴락하여 없어지고 물염정과 망미정, 송석정 등 만이 남아있다.

 

봐하니 내용을 잘 써 놔서 이해에 큰 도움이 되겠다. 화순적벽의 전체적인 설명일 테니까 다른 곳에도 이렇게 써 놨지 싶다.

 


옆에는 물염적벽에 대한 설명이 따로 되어 있다. 이것도 읽어 봐야지.

 


어? 옛날 안내판과 달라졌구나. 같은 안내판인가 싶었는데 사진이 다르구나. 새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내용은 같은 것으로 봐서 낡아서 바꾼 것이 이 모양인가 보다. 아마도 싼 곳에서 한 것이겠거니 싶다. ㅎㅎ 

 


적 벽

적벽은 장동응회암과 적벽응회암의 백악기 퇴적층이 층리를 이루고, 이를 조화롭게 덮고 있는 식생들로 인해 그 풍경이 중국 양자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퇴적암층은 세립사암, 실트스톤, 이암 또는 응회질사암이 시루떡처럼 얇게 교대로 쌓여 형성되었으며, 이곳에서는 정단층에 의해 지층이 어긋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층리 : 퇴적암에 있는 평행한 줄무늬

*백악기 : 중생대 마지막 시대이며 약 1억 3,600만년 전부터 6,500만 년 전의 시대

 

꼭 맘에 드는 설명이로구나. 아쉬운 점은 한자가 없다는 것이다. 한글로 써 놔야 한국적이라고 여겨서일까? 뭐 여하튼 이런 것으로 다툴 생각은 없다. 찾아서 보면 되니까. 용어 설명까지 해 놓은 점은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ㅎㅎ 

 


건너다 보이는 동복천의 물염적벽이 아직 그늘에 잠겼구나.단풍이 들면 풍경이 더 좋다고는 했지만 오늘의 목적은 풍경보다 바위절벽이니까 그리 중요하진 않다. 다만 낙엽이 지고 나면 암벽이 더 많이 드러나는 것은 기대가 되지만 풍경이 좋으면 방문자도 많을 테니까 그보다는 조용한 시간에 더 비중을 두기로 했다.

 

 

비탈길은 여전히 그대로구나. 석경(石徑)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음을 옮긴다. 자칫해서 발목이라도 삐면 오늘 농사는 완전히 패망인 까닭이다. 이런 때는 네발걸음을 걷듯이 해야 한다. 암반 위에 모래알들은 미끄럼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바빠도 이런 풍경은 그냥지나칠 수가 없다. 옛날에도 그랬나 싶어서 8년 전 자료를 다시 훑어본다. 

 


역시~ (끄덕끄덕) 당시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구나. 그래서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인가 보다. 예전에는 깨끗했는데 이끼와 낙엽이 쌓여서 세월감이 많이 느껴진다. 그때는 변산 적벽을 떠올렸는데 변산에서는 화순 적벽을 떠올리니 서로 이리저리 소통이 되는 코드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강변으로 내려서면 왼쪽의 암벽이 눈길을 끈다. 여기도 적벽이다.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다니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물염정의 아랫부분이 되겠구나.

 


 

 

 


 

 

 


 

 

 


 

 

 


 

 

 


 

 

 


 

 

 


 

 

 


 

 

 


 

 

 


 

 

 


 

 

 


 

 

 


 

 

 


 

 

 


 

 

 


 

 

 


 

 

 


과연 층리(層理)가 차곡차곡 시루떡처럼 쌓였다. 여기에서 둘러본 것으로 화순적벽은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규모만 다를 뿐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질도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봐야지.

 


당연히 그렇겠거니 한다. 제대로 딱딱 맞을 리가 없지. 맞으면 지오빅테이터 오픈플렛폼이 아니지. 아무렴. 이렇게 실제 지형과 한참 벗어나 있는 곳에 칠을 해 뒀구나. 그래도 괜찮다. 난 A.I.가 아니라 인간이니깐. 그 정도의 오차는 얼마든지 조정해서 읽을 수가 있단 말이지. 그래도 언젠가는 정확하게 실제 지형과 맞아 떨어지는 지질도를 만날 수가 있기를 바라는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다. ㅎㅎ

 

경상계 장동응회암이군. 응회암(凝灰巖)은 화산암(火山巖)이고, 화산쇄설물(火山碎屑物)이기도 하고, 또 용결응회암(熔結凝灰巖)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제 거의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 사이에 나름 공부를 많이 했군. ㅋㅋ 그런데 장동? 이것은 지역명이겠지. 이리저리 찾아보니까 무등산지질공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응회암이라고 보면 되겠다. 특히 고인돌유적지의 대표암상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대략 화순지대의 응회암을 이르는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여긴 전남 화순인데 경상계라고 나오니까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도 궁금하다.

 

경상계(慶尙系)

중생대 백악기에 이루어진 우리나라 지층의 하나이다. 대동계(大同系) 위에 퇴적되어 이루어진 지층으로 거의 육성층(陸成層)이며 경상도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이름에서 그렇지 싶기는 했다. 대동계가 있고 그 위에 쌓인 것이 경상계이고 바닷가가 아니라 육상에 있다는 말이구나. 그렇다면 대동계는 또 뭐지? 꼬꼬무의 놀이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자료를 찾다가 또 공부하기 좋은 블로그를 발견했다. 지오피아구나. 감사의 마음은 링크로 전한다. 화순지역이 전남이다 보니까 남부의 경상분지에 걸려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료도 있다.

 


딱 필요한 자료구나. 대동누층군 위에 경상누층군이 있다는 것을 이렿게 나타내주니 얼마나 고맙느냔 말이지. 대동누층군은 쥐라기의 지층이고 경상누층군은 백악기의 지층이란 것을 이렇게 보여주니 이해가 바로 되는구나. 그리고 트라이아스기의 지층은 발견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인 모양이구나. 선캄브리아시대에는 암체들이 죽솥처럼 들끓어놔서 구분이 되지 않은 까닭에 변성암(變成巖) 복합체(複合體)라고 한다는 것은 알겠다. 이러한 것을 혼성암(混成巖)이라고 하는 것은 대이작도에서 봤으니 끄덕끄덕~

 

안내문에서도 퇴적암층(堆積巖層)의 구조는 세립사암(細粒沙巖)과 실트스톤, 이암(泥巖), 응회질사암(凝灰質沙巖)이라고 했으니 대략 알겠는데 실트스톤이 등장하는구나. 이것은 또 지금 공부하라는 의미겠거니. 실트스톤이라......

 

  

 실트스톤은 실트암이구나. 그건 그렇지. 쇄설성(碎屑性) 괴상(塊狀) 이질조직(泥質組織)으로 한자를 붙이면 되지 싶다. 박편(薄片)을 만들어서 현미경으로 직교니콜로 보면 이렇게 보인다는 설명이로구나. 그래도 박편을 만들 생각은 접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다. 현미경까지 사야 하니. 아무래도 .ㅋㅋㅋ

 

근데 뭐야? 결국은 세립사암(細粒沙巖)이라는 말이잖아? 왜 이따구로 쓸데 없는 말을 끼워 넣은 거지? 없어도 되는 말이겠구만 말이지. 뭐, 그 덕분에 하나 배웠으니까 손해라고 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없어도 되는 말을 사용해서 복잡하게 필 필요까지는 없잖여?

 

  

 하긴 그 바람에 이렇게 돌의 크기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그림도 하나 얻었으니 손해라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점토에 가까우면 실트란 말이구먼. 직경 0.031mm면 중립 실트이고 0.0078mm는 세립이란 말이지? 그걸 누가 재고 있나? 이암(泥巖)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매우 가는 모래로 된 암석인 걸로 이해하면 되겠고 실은 몰라도 그만이라고 정리하면 되지 싶다. 낭월은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좋아하니깐. ㅎㅎ

 

직경 2mm부터 자갈인데 256mm까지도 자갈이라는 것은 좀 거시기하구먼. 64mm까지는 그런대로 자갈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25cm가 넘는 돌을 굳이 거력(巨礫)이라고 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그나저나 이카다가 언제 물염적벽은 둘러보나? 다 봤으면 걸음을 옮겨야지.

 


그래 본격적인 물염적벽이다. 다만 그늘 속에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동복천(同福川)의 상류다.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하구나. '복과 같다' 또는, '같은 복'이라니 이게 무슨 뜻이지? 언뜻 생각하기에 동복(東福)이거나 동복(洞福)이겠거니 싶었는데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군.

 


아니? 이건 뭐지? 화순군의 정보를 보니까 제목은 동복면(同福面)이라고 써놓고 명칭 유래에서는 동복면(東福面)이라니, 우째 이런 일이 있단 말고? 쯧쯧~ 그래서 어쩌라고? 아무래도 상관 없단 말여? 한자가 다르면 다르게 바뀐 연유를 밝혀야 되는 것이잖여? 모르면 내용에서도 동복(同福)이라고만 쓰던가 말이지.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많긴 하다만서도 지역의 소개를 하면서 이런 것도 밝혀 놓지 않는다니 성의가 없는 건지 모르는 건지 오타인 건지.....

 


 

 

 


 

 

 


 

 

 


 

 

 


 

 

 


 

 

 


 

 

 


 

 

 


 

 

 


 

 

 


 

 

 


적벽(赤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에 지대한 공을 세웠을 암석이겠거니 싶다. 그렇지만 이것은 일부분에 불과한데 굳이 적벽이라고 했어야 하나 싶기는 하다. 그냥 유명세에 얹혀서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비록 사진으로 봤지만 장강(長江)의 적벽보다 몇 배는 멋지구먼 어디다가 대느냔 말이지. 장가계라면 또 몰라도. 적벽이라고 하면 화순적벽이 섭하지 싶다. 근데 진짜 적벽은 어디에 있는 건지 확인이나 해볼까?

 


적벽은 악양(岳陽)과 무한(武漢)의 중간에 있구나. 적벽이 유명세를 타니까 아예 적벽시(赤壁市)로 이름을 붙여놨구나. 

 


구글지도에서는 황토물이 흘러갈 적에 찍었던 모양이다.

 


바이두 지도는 맑은 물로 보이는데 삼국적벽고전장(三國赤壁古戰場)이라고 표시를 했다. 장강변의 위치는 대략 짐작이 된다. 

 


이 사진은 가뭄이 심할 적에 찍었던 모양이다. 모름지기 칠년대한이 든 때를 기다려서 사진을 찍어야 한단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적벽나들이는 만수위(滿水位)의 상태인 것으로 봐서 절반의 실패인 걸로. 임실의 붕어섬에서도 느꼈지만 강변의 암석을 탐사할 적에는 모름지기 갈수기(渴水期)를 노려야 한다는 것을 또 생각하게 된다.

 


 

 

 


동복천을 사이에 두고 지질은 같은 것인지도 확인해 봐야지. 보통은 서로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혹 모르니까 확인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현실과 맞지 않으면 까이꺼 대애~충 고쳐서 쓰면 된다. 측량에 사용할 것도 아닌데 말이지. 보라색 선의 안쪽도 모두 절벽이니까 응회암으로 보면 되겠고, 그림을 봐도 같은 형상이니까 동복천의 양쪽은 모두 같은 지질로 보는 것은 틀림이 없겠다. 하긴, 생긴 것도 비슷해서 다르게 보이지도 않으니까. 노랗게 되어 있는 부분은 충적층으로 신생제4기의 지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래와 흙과 자갈로 되어 있는 곳이라는 말이고, 주로 하천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암벽이 있는 곳에 칠해 놓은 노란색은 현실과 동떨어 졌다는 것을 알고 보면 너무 남용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더란 말이지.

 


수면(水面)에 추파(秋波)가 일어난다. 물결이 없는 듯 파르르 떨리는 것을 추파라고 했지. 고인들의 미적 감각은 참 대단하다. 여기에다가 여인이 정을 주고 싶은 남자에게 보내는 눈길을 추파라고 한 것을 보면 얼마나 운치가 있느냔 말이지. 요즘은 대체로 안 좋은 의미를 담아서 유혹하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서는 그렇게 쓴다면 글자가 섭섭할 일이지 싶다. 이 멋진 표현을 말이지. ㅎㅎ

 


과연! 지층이 켜켜이 쌓인 모습이 볼만하구나. 그냥 볼만하다고 하지 말고 장관(壯觀)이라고 해야 하겠다. 옛날에는 화순도 호수였고 그래서 공룡발자국도 있는데 그 바닥에 화산이 폭발해서는 재가 쌓이고 또 쌓이면서 보낸 중생대 백악기의 풍경을 떠올려 본다. 아마도 무등산에서 폭발했을 수도 있고, 화순 분지에서 폭발해서 무등산까지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 화순의 옛 이름이 능주(綾州)였구나. 비단 능(綾)이니 비단고을이라는 멋진 이름이었는데 어쩌다가 화순(和順)이 되어서 멋이 사라진 느낌으로 바뀌었구나. 

 

능주 분지는 북서~남동 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흐르는 지석천 상류 지역의 하천 사이 지역으로 북동~남서 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흐르는 화순천과 합류하여 분지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합류한 하천은 다시 동서 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전라북도 나주시 남평면 쪽으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하천의 너비가 커지고 평야의 분지도 확대된다. 능주 분지는 주로 지석천의 개석(開析)[원래의 지형이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골짜기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바뀌는 일]에 의해서 형성된 하천과 하천 사이 땅을 말한다. 풍화에 강한 화산암 지대를 관통하는 산간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어 나주시의 화강암 지역처럼 거대 규모의 분지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화순 지역의 지질은 큰 규모의 분지를 이루는 화강암 지역과 풍화에 강해 하천의 침식으로부터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화산암과 변성암 지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자료를 보여주는 것은 고맙다만, 나주시가 어떻게 전라북도가 되누? 흡사 인공지능에게 물어본 답이 떠오르는구나. 세종대왕이 아이패드를 집어 던진 이유를 물었더니 기가 막힌 답을 했더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책으로 된 내용이야 재판을 찍기 전까지는 수정하기가 어렵다고 하겠지만 디지털로 된 것은 조금만 성의가 있으면 바로잡을 수가 있을 텐데 국록을 받으면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여하튼 화순분지는 풍화가 잘 되는 응회암 지역이라서 깎여 나가고 풍화에 잘 견디는 화강암은 버텨줘서 분지가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정리하면 되겠다.

 


 

 

 


 

 

 


 

 

 


 

 

 


 

 

 


 

 

 


 

 

 


 

 

 


멋진 물염적벽을 조용하게 둘러 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만하면 충분히 살펴봤으니 발길을 돌려도 아쉬움이 남지 않겠다. 다음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걸음을 옮겨야지.

 


나오다가 물염교에서 바라본 풍경이 가을가을해서 한 장 담았다.

 


삿갓 어른의 시비는 둘러보지 않아도 되지 싶다. 오늘은 관심 밖이라고 해야 하겠군. 그나저나 물염정이 해체되어서 아쉽다.

 


예전에 봐 뒀으니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더 많이 섭섭할 뻔했겠다. 처음으로 나들이를 한 여행객에게는 또 섭섭한 마음에 다시 찾아올 꺼리를 마련해 줄 수도 있겠거니.

 


잘 정돈해 둔 것으로 봐서 썩은 서까래를 교체하고 잘 정리해서 멋진 정자로 다시 태어나지 싶다.

 


명승 화순 적벽과 물염정(勿染亭)은 명종 무오년에 문과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시강원 보덕, 풍기군수 등을 역임한 홍주송씨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로 알려져 있다. 후에 외손자 금성나씨 창주 나무송. 구화 나무춘 형제에게 1591년에 물려주었고 그 후 수차레 중수와 보수를 하였다. 물염정이 있는 주변 경관은 빼어난 산수를 자랑하는 물염적벽이 있는 지역으로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자 안에는 영의정 등 당대의 명사들인 김재로, 이식, 권필, 김창협, 김창흡, 송병선 등 제현(제諸賢)이 물염정과 물염적벽을 노래한 시액들이 다수 걸려 있다.

 

중요부분만 추려봤다. 물염 선생의 삶이 어땠을 지는 아호(雅號)에서 능히 짐작을 하고도 남겠다. 세상의 혼탁함을 보면서 개탄하고 자기는 거기에 물들지 않고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지은 호겠거니 싶어서다. 이름은 몸의 옷이고 아호는 영혼의 옷이다. 이러한 옷을 입고 살아간 영혼이라면 고고한 절개를 스스로 지키면서 한 세상을 잘 살았겠거니 싶다. 높은 기개(氣槪)를 생각하면서 나그네는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