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지해변 할미할아비바위

작성일
2023-10-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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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해변 할미할아비바위  

 

(2023년 10월 1일 탐방) (음력 8월 17일 8물 조수 최대)

 


 

삼봉을 둘러보고 나서는 서둘러서 다음의 목적지로 향했다. 꽃지해수욕장을 지키고 있는 바위를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할미할아비바위'로 알려진 대한민국의 명승 69호로 지정이 된 곳이다.

 


 

삼봉에서 꽃지까지는 10여 km이고 시간은 15분의 거리다. 이번 물때의 전후 3시간 동안에 들리고 싶은 곳은 세 곳이어서 한 곳에서 한 시간 이내로 탐사하면 될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삼봉에서 보낸 시간은 약 35분이 소요되었고 꽃지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대략 1시간 이내로 둘러봤다는 결과에 만족했다. 간조의 시간이 11시 18분이니까 아직은 물이 빠지고 있는 시간이어서 크게 쫓기지 않아도 되지 싶다.

 


 

꽃지해변에 도착해서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은 10시 58분이다. 11시가 다 되었구나. 그래서 또 바쁘다. 바쁘면서도 볼 것은 다 봐야 한다. 이것이 지질탐사를 해변에서 하는 경우에 필수로 따져야 하는 딜레마라고 할까? 이것도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는데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점차로 익숙해지는 경력이 쌓이는 모양이다.

 


 

늘~ 보던 풍경이다. 사진에서도 영상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할미할아비바위이니까 하나는 할미고 하나는 할아비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느 바위가 할미냐는 것을 조사해 본 결과 왼쪽의 뽀족하게 보이는 바위가 할미이고 오른쪽의 동글한 바위가 할아비라고 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바위의 대소로 정한 것인지 풍체로 정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할매는 서 계시고, 할배는 앉아계시는 것으로 봤을까? 풍체가 가냘프니 할매고 당당한 할배라고 해도 되지 싶기는 하다. 여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때는 신라시대로 올라가는구나. 장보고가 중국 일본 신라를 잇는 해상교통로를 설치하면서 서해의 중심지인 안면도의 건승포에 전략 기지를 두고 책임자는 승언(承彦) 장군이었었던 모양이다. 건승포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바위가 있는 주변의 포구는 방포항(傍浦港)인데 어쩌면 이 방포의 옛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봄직 하다. 방포의 원래 이름은 '곁개말'에서 곁 방(傍)이 붙어서 된 이름이라고 하니 이것도 원래의 건승포와는 무관해 보여서 후일의 고증을 기다릴 따름이다.

 

승언리가 승언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면 무척 오래 된 지명이구나. 그 위에 있는 정당리(正堂里)에는 기원을 드리는 사당(祠堂)이 있다고 했고, 또 안면도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맨 위에는 어려서 살았던 창기리(倉基里)가 있는데 여기는 세곡(稅穀)으로 걷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던 자리라서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불탄개라는 마을이 삼봉과 황도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데 창고가 불타고 나서 검게 재가 된 벼들이 있다고 전하는데 직접 확인을 할 방법은 없지 싶다. ㅎ

 


 

오늘은 우선 오른쪽의 할아비바위부터 돌아보자. 그리고 해안 노두의 재미는 썰물때 드러난 바닥부터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므로 부지런히 바위 끝의 모래바닥부터 찾았다.

 



지질도를 보기 위해서 「지오 빅데이터」에서 사용하는 지도를 펼쳐보고는 또 하품을 한다. 아니, 웬 나치도? 아마도 할아비바위의 이름이 나치도인가 싶은 생각이 들 위치와 이름표를 달고 있구나.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나치도라는 이름이 튀어들어온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이 알 방법이 없다. 지질도에 쓰이는 지도는 누가 만든 엉터리지도인지 참 궁금하다. 아무리 믿어주려고 해도 믿기가 어려운 것이 자꾸만 드러나니 말이다. 할미바위라고 표시해 놓은 위치는 또 뭣이며 마여는 또 뭐냔 말이지. 어쩌면 등대가 서 있는 여의 이름일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다시 참고만 해야 한다는 ※표를 붙여 놔야 나중에라도 엉뚱한 곳에 가서 헛된 알바를 피할 수 있지 싶다. 

 

 

 

 

왜 나치도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냐고 하는고 하니......

 

 


 

실제로 나치도는 여기에 있단 말이거든. 지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이렇게 알려주고 있으니 신뢰감이 뚝뚝 떨어질 밖에. 만약에 네모 테두리라도 했더라면 자리를 옮겨서 표시했다고 이해라도 할 텐데 이건 너무 심하구먼. 삼봉을 상봉이라고 하질 않나. 쯧쯧~!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을 해 보니까 직선거리로 15km구나. 제법 멀리 떨어져 있구나. 그나저나 나치도의 노두가 궁금하기는 하다. 아마도 무인도인 모양이니 여객선은 있을 턱이 없을 게고 그래서 배를 한 척 사야 하는데 그게 또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말이지. ㅎㅎ 

 

 



지질도에 나온 지질은 고생대(古生代)의 태안층(泰安層)이다. 안면도 북부의 대부분 지질이 태안층이기도 하다. 

도폭은 원산도에 속해 있는 모양이구나. 안면도가 훨씬 큰데 왜 원산도에 붙여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까지 간섭하고 싶지는 않다. 사정이 있었겠거니....

 


 

여하튼 물이 들어올 시간이 임박했다. 그래서 서둘러서 아랫부분을 먼저 찾았다.

 


 

11시 6분이다. 최대한 물이 빠졌고, 그래서 해루질을 하는 나들이객들도 더욱 신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은 안 봐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안면도 창기리에 살았던 국민학교 시절에도 사리때는 바구니 들고 한바위(남면 당암리)까지 감바닥이 나서 걸어서 건너갈 정도로 물이 빠지는데 그 순간이 해루질의 절정이다. 평소에는 물에 잠겨서 드러나지 않은 곳이어서 큼직한 소라는 말할 것도 없고 꽃게까지도 잡을 수가 있는데 그때 놓친 그 커다란 꽃게는 아직도 아쉽다. 위장술에 속아 넘어갔으니 꽃게에게 진 꼴이라고나 해야 할 모양이군. 더 속이 상한 것은 동네 아저씨가 모래속에 숨어있던 그녀석을 잡아갔다는 것이다. ㅋㅋ

 


 

최대한의 간조시간이라서 이렇게 온전한 할아비바위를 드러내고 있구나. 물이 가득하면 달랑 바위만 두개 남게 되는데 지금은 한 달에 두어 차례밖에 주어지지 않은 최대한의 갯바닥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두의 바닥끝까지 내려가서 보니까 또 하나의 여(礪)가 안전표시의 등대를 이고 있었구나. 이 여의 이름이 '나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암석은 바닷물이 채워지면 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곳이고 항해하는 선박은 조심하라는 등대가 세워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등대의 하부에 검은 층의 높이가 암석의 높이와 같이 되어 있는 것은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부위가 물 속에 잠긴다면 암초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높이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는 있겠지만 우선 봐서는 그런 의미도 떠올려 본다. 

 


 

주변풍경은 이렇게 이해를 하고 다시 본래의 목적을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고생대의 태안층 아래에 있는 기층(基層)이라면 선캄브리아 시대의 암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자유니까.

 


 

 

 


 

 

 


 

세로로 주름이 잡혀 있는 것을 보면 퇴적암으로 보이는데 세워진 것으로 봐서 어느 순간에 뒤집혔었나 싶다. 바위니까 태풍이 불어서 거센 파도가 몰아치면 뒤집힐 수도 있을 테니까.

 


 

 

 


 

바닥의 표정도 다양해서 물이 빠진 기회에 잘 둘러보는 재미를 누려야 한다. 

 


 

 

 


 

 

 


 

 

 


 

 

 


 

 

 

 

 

 

해변에 쌓인 암괴(巖塊)들을 들여다 보는 것도 재미있다. 돌 하나하나가 유엔총회에서 자신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처럼 저마다의 모습으로 무리에 참가하고 있는 것도 놓칠 수가 없는 풍경이다. 암벽도 봐야 하지만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바위들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나중에 귀가 열리면 들어 보기로 해야지. 크기가 큰 것은 모암에서 떨어져 나온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이려니 싶다. 세월이 더 흐른 다음에는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어서 흩어질 테니까.

 

 


 

모퉁이에 다가서니 저만치 방포항으로 연결된 다리가 보인다.

 


 

 

 


 

석수장이가 정으로 쪼갠듯이 갈라져 있는 부위가 아직 살아있는 모습도 보인다. 옛날에 부서졌던 돌들이 다시 뭉쳐져서 암석이 되었다가 또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이렇게 흩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암석의 순환이 떠오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대신하고 언젠가는 다시 바위가 될 것을 말할 때는 회자정리(會者定離)로 대신해도 되려나 싶기도 하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할미바위가 나타난다. 

  


 

 

 


 

오늘도 바위는 계속해서 해식(海蝕)이 진행되고 있겠지. 깨어지고 떨어지고 또 깨어지기를 모두 사라질 때가지 반복할 테니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변화한다.

 


 

 

 


 

 

 


 

 

 


 

 

 


 

 

 


 

 

 


 

속살을 보여주니 그것도 사진에 남겨야지. 언젠가는 속살이 변해서 겉살이 될 날도 오겠거니 생각하면서.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할아비바위의 풍경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크게 봐서는 태안층의 모습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래도 삼봉과 다른 것은 절리(節理)가 거의 수직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인해서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경사진 각도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이러한 형태를 보면 삼봉이 받은 충격보다 꽃지가 받은 충격이 더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겠고, 이렇게 된 이유로는 안면도의 남부에는 다른 형태의 지질이 있다는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미 배운대로 태안층은 사암(沙巖)과 이암(泥巖)이 혼재된 저탁암(底濁巖)이 변성된 고생대의 지질이다. 선상지라고도 했지....

 

 

 

자료를 찾아보니까 건조한 지역의 선상지(扇狀地)라고 한다. 그러니까 해저선상지(海底扇狀地)는 바닷속에서 이렇게 생긴 지질이라는 말이겠구나. 미뤄서 짐작하면 된다. 물 빠진 곳의 풍경이려니 하면 되겠으니까 말이지. ㅎㅎ

 

 

 


 

고남면쪽에는 완전히 경계를 긋고 있는 단층대가 있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큰 힘이 작용해서 충돌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볼 수가 있는 장면은 지질도의 공덕이다. 아무리 성의가 없이 색칠을 했더라도 이 언저리에 단층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도 고마울 따름이다.

 

 

 

단층대를 경계로 해서 위쪽과 아래쪽의 지질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연두색에 점이 찍힌 것이 태안층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아래의 붉은 빛은 훨씬 후대에 생성된 화강암일게다. 짐작보다 확인이지.

 

 

 

 

그랬구나. 태안층은 선캄브리아 시대에서 고생대까지 형성된 것이고 아래는 중생대 쥐라기의 복운모화강암이다. 이 말은 위쪽이 원래 자리잡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새로운 지층이 와서 들이 받았다는 말인 모양이다.

 

 

 

 

 

 

 

 

 

아마도 우주인의 배낭같이 생긴 이 암반도 멀지 않아서 바닥에 나뒹굴게 되지 싶다. 대략 500년? 그보다 더 나중에? 그것까지는 모르겠다만서도. ㅎㅎ

 

 

 

사진의 최대 적은 흔들림이다. 그래서 마음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몸도 가능하면 최대한 어딘가를 의지해서 버티는 것이 최선이다. 두 다리로 서기 보다는 단단한 암벽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연지님 폰에 이 사진이 있는 것으로 봐서 헤어졌다가 만났던 모양이다. ㅎㅎ 

 


 

 

 


 

 

 


 

또 한 모퉁이를 돌아선다.

 


 

 

 


 

등대가 보이는 것은 한바퀴를 다 돌았다는 말이구나.

 


 

 

 


 

 

 


 

 

 


 

여기까지 할아비바위를 둘러봤다. 생각보다 볼 것이 많았는데 할배바위에 비하면 매우 작은 할미바위라서 간단하게 둘러볼 수가 있지 싶다.

 


 

꽃지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고 모두 바닥을 보면서 오가고 있는 모습들이 홍학의 무리를 떠올린다.

 


 

자칫 눈 팔다가 이런 장면을 놓치면 두고두고 우회한다. 그러니까 발 아래를 잘 살피면서 다녀야 한단 말이지. 멋지구먼. 보글보글 끓어올랐던 그 시절의 화산의 뜨거운 수증기를 상상해도 되지 싶다.

 


 

 

 


 

 

 


 

 

 


 

 

 

 

 

열수가 뿜어져 나오던 구멍일 수도 있지. 간헐천(間歇泉)이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자기암시를 하면서 흐뭇하게 걸음을 옮긴다. 붉은 것은 산화철(酸化鐵)일 테니까 철분이 포함된 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추가메뉴도 하나 만들어 가면서. ㅎㅎ

 

 


 

어? 이건 모래가 아닌데? 황토(黃土) 지맥(地脈)이잖아? 어려서 많이 봤던 익숙한 풍경이다. 이 맥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어쩌면 이 맥으로 인해서 노부부가 갈라지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게다. 암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해도 가장 먼저 풍화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 어느 무렵에는 동굴도 있었겠구나. 아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시스택으로 변해서 할미와 할아비로 나눠졌을 것이라는 말이지.

 


 

엇! 이것도 익숙한 풍경인걸. 이것은 뻥설게의 구멍이다. 지금은 살고 있지 않고 모두 깊은 바다로 이주를 한 모양이다. 하긴 방문자들 등쌀에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더러는 잡히고 요행히 살아남은 아이들은 모두 깊은 바다의 뻘로 도망쳤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안 봐도 알겠다. 

 


 

그야말로 「뻥설게 유적지」구나. 뻥설게라고 하는 말이 표준말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쏙이라고도 했지 싶은데 실은 가재를 닮은 것인데...... 자료를 찾아봐야지..... 잡으러 가기는 어렵고.... ㅋㅋ

 

 

 

그래 오랜만에 보는 뻥설게로구나. 가제와 닮은 듯 다른 모양이 쏙이 맞다. 잡을 적에 쏙 나온다고 쏙이고 쏙 들어간다고 쏙이다. 아마도 표준이름이 있을 테지만 그건 모르겠군.

 

 

 

이렇게 생긴 아이들이 저 구멍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썰물때는 들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밀물이 되면 돌아다니면서 먹이활동을 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이름이 왜 뻥설게냐고 한다면 이 녀석들을 사냥하려면 뻥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겼느냐면.....

 

 

 

간단하다. 막대기의 끝에 천으로 돌돌말아서 묶기만 하면 끝이다. 병의 속을 닦는 도구처럼 생겼다고 보면 된다. 이것으로 뻥설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구멍에 넣었다가 확~ 빼면 뻥~! 소리가 나면서 설게가 딸려나온다. 그러니까 압력에 의해서 끌려나오는 셈이다. 이렇게 꺼내지 않으면 더 단단한 황토층을 파는 것이 여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이 최선이다. 맛이 궁금하다면 말해 줄 수가 있다. '별로~'라고, 어쩌면 대하에 길들여져서 였을 수도 있긴 하다만. 여하튼 기억 창고 속에 이런 것도 들어있을 줄은 몰랐구나. ㅋㅋ

 


 

 

 


 

 

 

 

 

저렇게 가파른 바위벼랑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소나무가 참으로 대단하다. 암석의 지질은 할아비바위와 같은 태안층이구나. 고생대는 캄브리아기 부터 페름기 가지 대략 3억년 간의 시간이니까 참으로 오래 된 지질이다. 태백의 구문소와 연대를 같이 하는구나.

 

 


 

이렇게 보니까 흡사 물 빠진 독도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넓은 암반위에 조그맣게 남은 바위라서 그렇게 보인다.

 

 

 

독도의 해저(海底)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나서 자료를 찾아봤다. 

 

 


 

 

 


 

 

 


 

그래 얼마 안 있으면 할미바위는 산산히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모양이다. 해식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어제보다도 조금 더 파였겠거니.....

 


 

다시 출발점이다. 이만하면 꽃지해변의 할미할아비바위는 충분히 살펴봤다고 생각이 되어서 또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지금 시간은 11시 40분이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났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60분 남짓이구나. 다시 바빠지는 걸음걸이다. 그래도 발목을 접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서 이동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