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적벽강 파식대

작성일
2023-10-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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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적벽강 파식대(波蝕帶) 

 

【한국의 지질노두226 적벽강 백악기 호성층(湖成層)】

 

(2023년 9월 30일 탐방)

 


이 곳의 이름으로 삼은 적벽(赤壁)은 여러 곳이다. 최고의 유명세를 떨치는 적벽은 중국에 있는 적벽대전의 그 적벽일게다. 인터넷으로 찾은 사진으로 풍경을 살펴본다.

 

 

아무래도 적벽의 이름이 생기게 된 발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려니 싶다.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다는 장강(長江)의 적벽이다.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도 유명하겠구나.

 

 

 

이름만 빌어 온 우리나라의 적벽도 최소한 세 곳이다. 화순의 적벽도 있고, 금산군의 금강에도 적벽이 있다. 그리고 여기 전북 부안의 적벽강(赤壁江)이다. 화순의 적벽은 방문은 했었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서 둘러보지는 못했고, 금산의 적벽은 규모가 좀 아쉬웠는데 부안의 적벽은 예전에도 즐겁게 돌아다녔는데 다시 채석강과 함께 다시 둘러보고 싶어서 물때를 맞추서 집을 나섰다.

 

 

해변의 노두와 놀려면 물때를 살펴야 한다. 음력 8월 16일(양력9월30일)은 7물이고 조류도 최대인데 간조 시간은 09시 50분이다. 논산에서 적벽강까지 가려면 대략 2시간이 소요되니까.....

 


1시간 55분이구나. 그러니까 가능하면 간조가 되기 이전의 1시간 반 전에 도착하면 만족스러운데, 그러기 위해서는 08시 20분까지는 도착해야 하고 그러려면 6시 20분에는 집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혼자의 맘대로만 되는 것은 없으니 동행의 일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 그것은 지금이 바로 알밤 철이란 말이지. ㅋㅋ

 


날이 밝기도 전에 마을에서 부지런한 아저씨가 밤나무를 누비고 다니는 바람에 그것을 빤히 알면서 그냥 집을 나설 수가 없다는 연지님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같이 돌아다니면서 새벽의 일과를 마치고서야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저녁에는 또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것도 일과가 되었다. 그냥 두면 벌레들이 생겨서 남겨두지를 않기 때문에 껍질을 벗겨서 냉장고에 저장을 해야 겨우내 먹을 수가 있으니 이것이 최선이다. 여하튼 밤이 익는 가을철에 집을 나서려면 물때의 시간과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7시에 출발을 했다는 이야기다. 좀 늦었지만 뭐 어쩔 수가 없으면 주어진 만큼만 즐기는 것이 최선인 걸로. ㅠㅠ

 


호남고속도로는 연휴의 영향으로 도로가 복잡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부여로 가서 서천도로를 거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탈 요량으로 방향은 부여IC로 잡았다. 

 


부여에는 아침마다 열기구 관광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떠있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이 시간에 여기를 지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는데 처음으로 부여에서 공중에 떠 있는 열기구를 봤다. 생각해 보면 대만에서 열기구를 타보겠다고 기다리다가 바람이 일어나는 바람에 취소되어서 아쉬웠는데..... 그래서 열기구 인연은 닿지 않은 셈이다.

 


예전에 열기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한 번 타볼까 싶은 생각도 해 봤지만 요금이 생각보다 높아서 아무래도 쉽게 타보기는 어렵지 싶다. 빤한 코스(별로 볼 것이 없을 것이라는)에 1시간을 하늘에서 바라본다는 값으로 18만원을 쓰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여기가 무슨 터키의 카파도키아 열기구도 아니고 말이지.

 



혹시나 하고 정보를 찾아보니 가격이 많이 내려갔구나. 요즘은 15만원으로 정해 놓고서 12만원을 받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나마 주말에는 21만원이었는데 아무래도 요금의 부담으로 인해서 이용자가 없었던가 싶기도 하다. 실은 12만원도 그리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10만원이라고 하면 그래도 한 번 맘을 내어 볼 수도 있을 것도 같기는 하다만..... 중요한 것은 기구가 떠가는 동안에 별로 볼 것이 없어서... ㅎㅎ

 


적벽강을 조금 남겨놓고 화장실을 들렸는데 잊고 있었던 잼버리 개최지를 자랑하는 조형물들을 보니 또 한 번 짜증이 났다. 세월이 흘러가면 엉망진창의 운영은 잊혀지고 조형물만 남아서 외롭게 방문자를 맞이하겠거니 싶기도 하다. 화장실을 다녀서 나오는데 모자(母子)의 대화가 들린다.

 

아들 : 엄마! 빨리요~ 물이 들어온단 말이야~

엄마 : 아들아, 뻥튀기 하나 사가지고 가면 좋겠는데....

아들 : 나중에 많이 사드릴테니 어서 와요~~~ 시간이 없다니까!!!

엄마 : .....................

아들 : 물때가 얼마 안 남아서 그래 새벽부터 왔는데 여기서 꿈지럭대면 안 된다니까!

 

대략 봐도 80세는 되어 보이는 엄니와 그 아들의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너나 나나 같은 마음이구나.'싶었지만 그래도 낭월은 생각만 할 뿐 연지님께 말은 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얼마나 시간을 단축하겠느냔 말이지. 그러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 그게 더 큰일이니까 조용히 움직일 뿐이다. 지금 시간은 8시 30분. 간조(干潮) 시간은 9시 50분. 내 맘이 그 맘이다. 간조의 시간까지는 딱 90분 전이니 지금 시간에는 해변에 있어야 할 몸이란 말이지. ㅎㅎ

 

 


8시 50분에 드디어 적벽강에 도착했다. 그래도 1시간의 여유는 얻었구나. 실로 오늘 둘러볼 일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더 일찍 와도 문제는 문제다. 아직 물이 빠지기 전에 와서 기다린다는 것도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앞으로 물이 더 빠질테니까 적벽강에서 한 시간을 놀고, 다시 채석강에서 한 시간을 놀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일정은 채울 수가 있겠다는 계산은 했다. 물론 혹시라도 시간이 남는다면 솔섬과 모항까지 둘러볼 일정은 여유롭게 짜 놨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까 계획은 세워놓는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여기에 도착했다. 다시 봐도 아름다운 적벽강이다.

 


어느 사이에 세월이 8년이나 지났구나. '다녀 온지가 한참 되었겠거니...'하면 보통 10년이다. 「사진기행」 어딘가 여행기가 있을 텐데....

 



2015년 6월 20일이었구나. 그때는 넷이 나들이를 했었는데 오늘은 둘은 떨어져 나가고 둘만 남았구나.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벽강에 도착해서 느끼는 그 느낌의 감정은 여전히 그때와 같지 싶다. 혹 궁금하신 벗님도 계시려나 싶어서 링크를 첨부했으니까 당시의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된다.

 


먼저는 풍경을 보러 왔었고, 지금은 지질을 보러 왔으니 장소는 같아도 목적은 다른 셈이구나. 당시에도 바닥의 검은 암석을 보면서 물 속의 사정이 어떨지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좀 아쉬웠었는데 그때는 물이 얼마나 있었는가 볼까?

 


당시에는 오후 4시 26분에 방문했었고 바다는 이미 물이 한가득이었구나. 그때만해도 물때에 대한 생각이 없이 들렸기 때문에 물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아쉽지 않았는데 상부의 드러난 부분에서 바닥에 깔린 검은 색의 퇴적암을 보면서 바다 속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했었는데, 궁금했던 바닥을 8년이 지난 이제는 완연하게 살펴볼 수가 있는 시간에 찾아왔으니 그것도 작은 소원의 성취라고 할 수도 있겠군.

 

 
그래~ 이렇게 와서 다시 보니 전에 봤던 그 풍경임을 알겠다. 적벽강의 파식대(波蝕帶)를 다시 찾아왔구나. 8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바위도 들락이는 조수의 파랑(波浪)에 의해서 몇mm는 닳았겠지? 그렇거나 말거나 두 발로 이자리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돌과 하나가 된 듯이 가뿐하다. 아침의 상쾌한 햇살과 함께 그림자를 앞에 놓고서 기념샷부터 하나 남긴다. 영상(影像)이나 실상(實像)이나 뭐가 달러. ㅋㅋㅋ

 


이것도 퇴적이기는 하겠는데 특히 이암(泥巖)의 퇴적이 압축된 것은 셰일이라고 하던가? 셰일의 어원은 '조개껍데기'를 뜻하는 독일어라고 했지 싶다. 그러고 보니까 조개표 석유가 있던가?

 


맞아! 조개표주유소였구나. 주유소는 쉘이라고 표기하던데 독일에서는 셰일이라고 하나 보군. 그런데 여전히 어려운 것은 천매암(千枚巖)이다. 사진만으로 봐서는 천매암은 퇴적층이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러한 형태는 천매암이 아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일단 셰일층이라고 정리하기로 한다. 혼펠스에 대해서 아직 이해가 다 되지 않아서다. 셰일은 한자로 혈암(頁巖)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한자를 잘못 읽어서 나온 오류라는 설이 있는데 끄덕끄덕~! 왜냐하면 이 돌이 어디를 봐도 머리를 닮았다고 보긴 어렵게 생겨서다. 그런데 혈(頁)은 책의 한 장을 의미하는 글자로도 쓰인다는 것을 친절한 설명을 보고서 알았다. 그래서 또 먼지가 쌓인 사전을 펼쳐본다.

 

 

사전은 이런 때에 찾아보라고 있는 것이다. 頁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혈도 되고 엽도 되는구나. 책이 쌓인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두번째의 뜻인 '쪽 엽'이 맞다. 채석강은 1만 권의 책이 쌓인 것이라고도 하지 않느냔 말이지. 그러니까 이 셰일층의 이름은 엽암층(頁巖層)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겠구나. 뭐 그런 것이 어디 한둘인가 그렇게 알고 저렇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뭘. 영화제목으로도 유명한 『엽문(葉文)』이 떠오른다. 이것도 사람의 성으로 쓰일 적에는 섭문으로 읽어야 하지만 그냥 그렇게 나뭇잎 엽(葉)이니까 엽문이라고 했으니 엽문이라고 읽으면서 섭문으로 알면 그만인 것과 같은 셈이다. 

 


혈암이든 엽암이든 영어로는 셰일이니까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영어식 표기가 더 편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이 암석이 셰일이 맞는지는 확신이 없구나. 아마도 현재까지의 공부한 수준으로는 셰일층인 걸로. ㅎㅎ

 


또 걸음을 옮기다가 보니 보글보글 끓었던 흔적도 있구나. 고로 여기는 화성암(火成巖)으로 봐도 되겠다. 퇴적암(堆積巖)은 분명히 아니니 말이지. 그래서 국립공원인 모양이구나. 퇴적암과 화성암이 쌓여 있으니 수성암(水成巖)과 화성암의 만남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원래는 호수였다니까 물이 만든 퇴적암(堆積巖)에 불이 만은 화성암이 겹쳐 있으니 말이다.

 


변산은 반도 전체가 공원이 아니라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바다 쪽은 외변산이라고도 하면서 「격포지구」로 관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점은 틀림없지. 이 정도로 볼 것이 많으면 국립공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계룡산은 뭘 봐서 국립공원이지? 가끔은 그것이 궁금하긴 하다. ㅎㅎ

 


돌밭에서 금덩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이런 것일겠다. 사암(沙巖)이 끓어올라서 가운데 이암(泥巖)을 녹이지는 못하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가운데의 이암은 그 상황에서도 퇴적암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층을 이루고 있으니 이런 모습을 보는데도 감동의 물결이다. 이게 뭐라고. ㅎㅎ 이 모두가 썰물의 기회를 타고 왔기 때문에 만날 수가 있는 인연들이로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 물 속에서도 분명히 볼만한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렇게 장관을 보여주는구나. 멋찌다~!!

 


주변의 사람들은 게와 조개를 잡느라고 기쁨에 잠겨 있을 적에 낭월은 이렇게 7천만 년 전의 암석들과 조우하면서 그 세월의 흔적을 보면서 기쁨에 잠기니, 서로 기쁨의 원인은 달라도 그 마음에 느끼는 행복은 같을 게다. 조개를 줍는 사람은 몸에 이롭고 바위를 보는 낭월은 마음에 이로운 것이 다르려나? 아마도 그렇지 싶기는 하지만 마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돌을 보러 돌아다니느라고 운동도 될 테니 몸에도 이롭기는 할 것이고, 조개를 줍는 사람도 마음에 기쁨이 충만할 테니 또한 영혼에도 이로울 것이므로 결과는 모두 같은 것으로. ㅋㅋ

 


대략 20여 군데의 노두를 돌아다닌 영향으로 이렇게 무엇인가를 만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생겼다는 것도 공부의 공덕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풍경은 굴업도의 남쪽에서 만난 역암질(礫巖質) 쇄설(碎屑) 응회암(凝灰巖)과 흡사하구나. 그래서 또 안다. 이 암석은 응회암이라는 것을, 그리고 화산활동에 의해서 분출했던 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도 겸해서 이해가 되니까 머릿속의 물음표가 많이 줄어들었다. ㅎㅎ

 


그런데 적벽강(赤壁江)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까 강(江)이 그 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태백을 팔아서 이름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해(海)인데 그것을 강(江)이라고 한다는 것은 옛 선비들의 생각을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며칠 전에 적벽강과 채석강을 가보려고 준비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고, 이미 8년 전에도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 결론을 내려도 되지 싶다. 그러니까 적벽강(赤壁江)은 적벽강(赤壁崗)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서 스스로는 그렇게 보는 것이 맞는 것으로 정리했다는 뜻이다. 강(崗)은 화강암(花崗巖)의 그 강이고, 뜻은 '언덕 강'이다. 어떤가? 붉은 바위언덕이 더 근사하지 않은가? 옛날에 이름을 지은 사람은 赤壁崗이라고 썼을 게다. 그것을 나중에 이태백에 미친 어느 학자가 '崗'은 '江'을 잘못 쓴 것으로 생각해서 고쳐 놓고는 고쳤다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게다. 또 주자(朱子)의 '경탁위청(涇濁渭淸)'이 떠오른다. 혈암(頁巖)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



그러니까 적벽강(赤壁崗)이고, 채석강(彩石崗)이라고 해야 현실적으로 부합하는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으니 이렇게 江도 아닌 곳에 억지로 꿰어 맞추려고 끙끙대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물론 적벽강도 있다. 화순의 적벽은 적벽강이라고 해도 되고, 금산의 적벽도 금강의 줄기에 있으니 적벽강이라고 해도 된다. 그렇지만 여기는 아니지 않은가 싶은 생각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결을 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ㅎㅎ



이암(泥巖)의 입자가 좀 거칠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암(沙巖)이겠구나. 무늬는 용암이 식으면서 생긴 흔적일까? 물결무늬는 분명 아니겠고, 벌레가 기어 다닌 생흔(生痕)도 아닐 테니 그렇게 이해를 해 보는 것도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암석은 모를 것들로 가득하고 그래서 또 재미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혼자서 바위랑 노는 재미가 오붓해서 좋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풍경과 마주 하는 순간이다. 셰일층이 먼저인가? 응회암층이 먼저인가? 그것이 궁금해서 또 흔적을 찾는다.



뭐든 그릏듯이 아는 만큼 보이고 열심히 찾으면 또 얻는다. 이 모습을 봐하니 셰일층이 먼저이고 그 위에 화산이 폭발했다는 것으로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겠다. 여하튼 지질도를 봐야지.



간만(干滿)의 영역에 있는 암석층은 표시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이니까 혹시나..... 하고 들여다 본다.



그러나 역시 암벽은 중생대 백악기로 나오는데 바닥의 암석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한 것이 없구나. 그것도 이해가 된다. 아마도 지질학자의 노트에는 표시가 되어 있을 법도 한데 여기에서는 생략되었던 것으로 봐야 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또 미뤄서 소설을 써야지. 아, 없지는 않았구나. 저 아래에 조그맣게 Kbgsrdl라고 표시한 곳이 있는 것을 보니까. 다행이다.



바다의 중간에 표시된 것은 왼쪽의 물결모양과 같고 그 암석은 곰소유문암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곰소는 변산반도의 남쪽에 있는 염전으로 유명한 부안의 지명이지 않던가....? 언제 시간이 나면 그 곳에도 가봐야 하겠구나. 비슷한 암석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해 본다.



검은 셰일층은 중생대(中生代)의 백악기(白堊紀)시절 7천 만 년 전 이곳이 깊은 호수(湖水)였을 적에 차곡차곡 쌓인 이암과 사암들이고 다시 그 위에 화산이 폭발해서 응회질(凝灰質) 역암(礫巖)이 쌓이게 되어서 이뤄진 곳이라고 정리하면 되겠다. 응회질 역암이 맞는 건지, 역암질 응회암이 맞는 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구나. 자료에 나온 것이 그래도 더 전문적일테니까 그것을 따르는 것이 좋겠구나. 응회질 그러니까 역암인 걸로.



화산이 터지기 전까지 호수는 잔잔했었다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는구나. 일직선으로 쌓인 지층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을테니까 미뤄서 짐작을 해 본다. 그런데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로 옆에서는 또 멋지게 생긴 습곡(褶曲)이 펼쳐진다. 고목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 이런 모습은 같은 호수에서도 한쪽은 평온했고 또 다른 한쪽은 압력을 받아서 지층이 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적벽강이다. 어디를 봐도 멋진 그림들이 펼쳐지는 장관을 이 바닥에서 만나게 되니 서해의 조수(潮水)가 고맙기도 하다. 밀물이 있어서 이렇게 멋진 노두(露頭)를 바닥에 펼쳐놨을테니 말이지. 아마도 원래는 적벽의 암벽이었을테지만 풍화로 인해서 깎이고 또 깎여서 이렇게 넓은 해변을 만들었으려니 싶다.

 


갑자기 낯선 녀석이 등장을 한다. 페퍼라이트다. 적벽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주요 암석이 떨어져 나와서 같이 놀자고 꼬리치는 강생이인가 싶다. 

 


페퍼라이트는 후추암이란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암석에 붙인 이름이 시작이라는데, 후추는 한자가 없어서 후추를 한자로 뭐라고 하는지 찾아보니 호초(胡椒)라고 하는구나. 글자대로 풀이하면 '오랑캐 산초' 정도가 되려나? 초(椒)는 산초나무를 말하는데 그 열매가 후추니까 그렇겠거니 하면 되지 싶다. 여하튼 호초암보다는 후추암이 더 직관적이구먼. ㅎㅎ

 

 

지질학백과에서도 적벽강의 자료를 인용해서 설명했구나. 페퍼라이트는 뜨거운 상태의 용암이나 지하의 하천을 뚫고 들어간 마그마가 물을 포힘한 미고화 퇴적물과 접촉하면서 발생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화산쇄설암의 한 유형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미고화는 뭐지? 이런 것은 제발 한자를 병기해 주면 고맙겠구먼시나.... 여하튼 손가락이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그리고 찾았다~!! 찾는 즐거움을 줘서 감사하고. 


미고화(未固化)였구나. 아직은 굳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군. 한자를 보면 이렇게 뜻이 바로 들어오는데 왜들 한자 쓰는 것을 그렇게나 싫어하는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백과(百科)'라는 자료에서도 이렇게 한글로만 써 놓으면 어떻게 의미를 이해하느냔 말이지. 참 내. 쯧쯧~!
 

  

처음에 프랑스에서 발견된 페퍼라이트는 밝은 색상의 석회암에 어두운 색상의 현무암 입자가 분포하는 모습이 음식에 검은 후추를 뿌려 놓은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보다는 검은 엿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암석들이 더 궁금하기는 하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 바닥이 끝나갈 무렵에 언덕 앞에 나타나는 풍경이다. 검은 부분은 중생대의 퇴적암층이고고, 페퍼라이트는 그 무렵에 발생한 화산작용의 의해서 생성되었단 말이지? 중생대는 2억 5천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이고, 그 중에서 백악기(白堊紀)는 1억 4500만 년~6600만 년 사이의 7천900만 년 까지라니까 모두 그 사이에 이뤄진 사연으로 보면 되지 싶다. 아마도 마그마가 뒤범벅이 되면서 검은 암석층의 반죽이 역암들과 뒤섞이면서 접착제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다.

 


돌이나 모래나 진흙이 돌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천만 년이 걸린단다. 그러니까 중생대의 2억 년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테니 층이 다른 것도 모두 지구의 격변기를 보낸 그 시절의 풍경으로 보면 되겠다. 그러고 보니 공룡들이 살았던 시절이기도 하구나. 더 자세한 것은 지르콘으로 측정하면 되겠지만 그것은 암석놀이의 영역 밖인 걸로. ㅎㅎ

 


진흙길에 돌을 넣으면 이렇게 되겠구나. 현무암(玄武巖)에 붉고 누런 암석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모습들은 적벽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하튼 적벽 바닥의 구경은 이만하면 실컷 했지 싶다. 다음은 벽으로 다가가서 또 살펴보자. 뭔가 볼만한 그림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