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작도 오형제바위

작성일
2023-09-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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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작도 오형제바위 

 

(2023년 9월 16일 탐방)

 


이제 마지막으로 가봐야 할 곳만 남았다. 이름하여 '오형제바위'다. 보통은 대이작도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소개되고 있는 곳이니 또한 명소라고 할 만 하겠다. 

 


3분거리인 1km만 가면 된다. 치안센터 부근에 차를 주차하고서 오형제바위의 해변을 걸어가야 하는 구조이다.

 


찻길은 나 있지만 그래봐야 얼마 가지 못하지 싶어서 입구에서 걸었다. 막상 가서 보니까 저만치 보이는 곳까지는 들어가도 될 뻔했지만 선원들이 그물일이라도 한다면 아마도 눈총을 피하기 어렵지 싶기는 했다. 

 


거리는 오형제바위가 0.5km다. 해변으로만 가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변의 정자가 빤히 바라다 보이기도 해서 가볍게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이내 데크가 나타난다. 그리고 안내문도 있다.

 


정자까지 가는 과정에서 중간에 볼거리들에 대해서 설명한 안내문이구나. 오형제바위까지는 387m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다만 낭월이 궁금한 것은 오형제바위도 있지만 그 너머에 펼쳐진 해안이다.

 


목적지가 목적이라면 부지런히 걸어가면 된다. 다만 여행은 과정도 목적에 포함이 된다. 데크 아래로 펼쳐진 암석들이 있는 이상 그냥 걸음을 가볍게 옮길 수는 없지. 일일이 카메라로 참견하면서 가느라고 시간은 잊은지 오래다.

 


암벽을 보니 대형 역암(礫巖)으로 보인다. 바위 속에 바위들이 뭉쳐진 형태로 보여서이다. 서로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보여서 이것도 특이한 풍경이라고 생각되었다.

 


예전에는 목적지가 정해지면 우선 그곳부터 간 다음에 다시 나중에 나오면서도 훑어보는 방법을 택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당장 보이는 것부터 공략하는 방향으로 작전이 바뀌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에는 두어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①다음은 없다.

②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이 두 가지의 기준으로 인해서 보이면 바로 들여다보고 사진으로 담는다. 다음에 다시 이 풍경을 보게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닌 까닭이다. 가령 

 

돌아다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찍을 수가 없을 것이고, 

행여 폭우라도 쏟아지면 또한 찍을 수가 없을 것이고, 

배터리가 떨어지면 찍을 수가 없을 것이고

카메라가 떨어져서 고장이라도 나면 찍을 수가 없을 것이고

행여 바닷물이 들어와서 물에 잠기면 찍을 수가 없을 것이고

멀쩡하던 카메라도 고장이 나면 찍을 수가 없을 것이니

지금 바로 보이는 것을 담아두는 것이 최상책(最上策)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겪어가면서 깨달은 놀이법이다. 그러니까 이따가, 나중에, 다음에, 오다가, 이런 말은 사전에 없애 버려야 한다. 한두 번 속다가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이치이기도 하다. 모쪼록 낭월의 사진놀이는 이렇게 진행한다. 그러자니 항상 걸음은 더디고 일행들은 속이 터질 따름이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사진은 제법 영원하다고 할 수가 있으므로 작은 손실을 큰 소득으로 바꾸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는 장사요 수지맞는 계산이랄 밖에. ㅋㅋㅋ

 


알록달록한 풍경이 단풍 든 내장산보다 더 곱구나. 걸음을 붙잡는 장면을 보면서 그냥 뿌리치고 가면 예쁘게 치장하고 보여주려고 기다리던 석신(石神)이 서운타고 하실 것이 분명하지 싶다.

 


작은풀안에서 봤던 그림도 겹치는구나. 그러니까 솜씨 좋은 같은 석공의 작품이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구나. 오형제바위의 지질은 또 어떨지 궁금해서 찾아본다.

 


탐사지역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 것은 데크가 중간에 갑자기 산속으로 길이 올라가서다. 무슨 속셈으로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여하튼 만들어 놓은 길을 이용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긴 하다.

 


어? 지질이 입구 쪽과 오형제바위 쪽이 완전히 다르잖여? 누리끼리한 것은 이미 익숙하게 봤던 업벌층이구나. 그러니까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뻔했던 암석들은 계남해변의 암석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이 있었던 모양이다. 참 지질학자들도 대단하네. 구석 구석 다니면서 이런 것을 찾아내느라고 얼마나 발품을 팔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영흥도처럼 대이작도의 지질도 화려하게 나타날지 궁금해서 전체를 살펴봤다.

 


대이작도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니까 네 가지의 지질로 되어있다고 나온다. 작은풀안 주변은 중생대 쥐라기의 흑운모 화강암이고, 계남해변 주변은 원생누대 신원생대의 업벌층이고 선착장주변으로 누런 바탕에 갈색 줄을 삐뚤빼뚤 그어놓은 부분은.....

 


선캄브리아시대 시생누대 신시생대의 혼성편마암이구나. 편마암에 뭔가 섞여있어서 잔주름으로 표시한 모양이다. 나름대로 실제 상황을 나타내려고 애쓴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비슷한 계열이라서 바탕은 그냥 두고 덧씌워서 다르다는 표시를 했던 모양이다. 끄덕끄덕~!

 


그렇다면, 오형제바위를 포함한 초록초록한 부분은 전혀 다른 암석이겠다는 것을 짐작하겠는데 지질도의 내용을 보면 중생대 쥐라기의 덕적층으로 되어 있다. 덕적도에 나온 지층과 같다는 의미겠구나. 덕적도는 여기에서 멀지도 않으니까 그럴싸 한데 그래도 다시 덕적도의 지질을 봐야 이해가 되지 싶다.

 


넓은 덕적도에서 북쪽에 있는 지질만 초록색이었고 이것이 덕적층이었네. 여기가 어딘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 또 즐거운 것이다. 여기는 낙타바위가 있는 능동자갈마당이고, 먼저 덕적도 나들이에서 구석구석 살펴봤던 곳인데 그 사이에 잊어버리고 있었지. 여기가 덕적도에 있는 지질이어서 이름이 덕적층이었다는 것이구나. 그 풍경이 또 소상하게 떠오른다. 덕적도 전체의 면적에서 많은 부분은 붉은 바탕에 빨간 十자로 되어 있는 흑운모 화강암이니까 작은풀안의 암석과 같다고 보면 덕적도와 닮은 면이 꽤 많은 대이작도의 암석이다.

 


업벌층의 지질이란 말이지.....

 






























바닥에 물이 빠지고 났으니까 이렇게 살펴볼 수가 있어서 좋다. 














갯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적에 얼른 망설이지 말고 내려갔어야 했다. 왜냐하면,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서 계단을 오르내리느라고 무릎보살을 고생시켰다는 참회를 했어야만 한 까닭이다. 해안을 타고 가면서 암석도 구경하고 사진찍으면서 갔으면 업벌층과 덕적층의 경계면도 볼 수가 있었을 텐데 쉬워보이는 계단을 택한 결과는 득실로 따져봤을 적에 완전히 실패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벗님이 대이직도에 가서 지질탐사를 할 요량이라면 참고하시라고 권한다. 직접 겪어 본 것이니까 참고해도 될 것이다. 다만 해변으로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한 어떤 복병이 있을지는 단언할 수가 없음은 참고해야 할 게다. 왜냐하면 그 길은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윗길로 가면서 내려다 봤을 적에 그 정도의 위험부담은 없을 것으로 거의 확신이 든다.

 


혼자만 고생했으면 덜 속상했을 텐데 연지님까지 고생했다는 것이 쪼매~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우짜겠노. 오만 것에 다 호기심을 갖고서 거침없이 달려드는 인간을 만난 탓이겠거니 할게다. ㅋㅋ

 


아니~ 이렇게까지 높이 길을 만들어서 방문자를 고생시킬 필요가 있었느냐는 거지. 혹 공사비를 많이 타내려고 했나? 그 내막이야 알 방법이 없으니까.

 


여기에 오니까 부아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나뉜다. 그렇다면 부아산으로 가는 길을 만들면서 이쯤에서 오형제바위로 가는 길을 만든 건가? 두벌일을 하지 않고 공사비를 줄이고 방문자를 고생시킬 계산을 했단 말이지? 고얀지고~ 쯧쯧. 오늘은 날이라도 시원해서 그나마 다행인데 땡볕에 이 계단을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간 사람이라면 아마도 열에 아홉은 투덜거렸지 싶다. 열에 한 둘은 산타기를 너무나 즐기는 사람인 걸로. ㅎㅎ

 


이것 봐라~! 또 쓸데없이 올라왔다가 내려간다. 그래서 애초에 설계를 잘 해야 한단 말이지. 차라리 갯가로 내려가는 길을 만든 곳에다 이렇다는 안내라도 해 놓거나 말이지. 여하튼 꿍시렁거리면서도 다리는 계속 부지런히 움직인다. ㅋㅋ

 


올라온 김에 저만치 선착장도 건너다 본다. 마주 있는 섬이 소이작도구나. 생긴 것을 보면 덕적도에서 소야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은 뭐지? 어디....

 


바로 인접한 두 섬의 상황이 흡사해서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소이작도와 대이작도도 다리를 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마음도 은연중에 들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일부러 배를 기다려야 해서 소이작도는 가볼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도 없었을텐데 다리를 놓기에는 소이작도에 주민이 너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덕적도는 이렇게 연도교(連島橋)가 놓여있어서 언제라도 건너가서 둘러보니 참 편리했고, 그 바람에 세 섬이 하나로 이어지는 풍경도 볼 수가 있어서 해본 생각이기도 하다. 여하튼.....

 


놀면서 와도 결국은 도착했다. 멋진 곳에 정자를 세워놨구나.

 


작은풀안의 정자와 비슷하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고 땀도 났으니 시원한 갯바람을 맞으면서 땀을 들이기에 딱 좋은 정자로 보인다.

 


오형제바위의 전설도 써놨는데 잘 보이지 않는구나. 방문해주는 벗님을 위해서 읽기 좋게 옮겨적어나 볼까?

 

【오형제바위의 전설】

오형제바위는 옛날 효심이 지극한 형제가 어부인 부모님을 기다리던 곳으로, 지금은 바위만이 남아있다. 오래전 옛날 백제 시대에 대이작도 북서쪽 산허리 바위에서 형제들은 어부인 부모님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다리던 곳으로 유명하다. 어부인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하여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다로 나갔다가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슬피 울던 오형제가 죽어서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후 오형제바위가 있던 곳에서는 자주 불상사가 생겨 마을 사람들이 한 해의 마지막 날 대이작도만의 풍물놀이인 기원제를 올리고 대성배를 띄워 액운도 없애고 무사안녕과 만선, 오형제를 위한 제사를 지내주었던 장소이다.

 

오형제라고는 하지만 바위의 형태로 봐서 오형제인지 사형제인지 불분명하다. 그냥 오형제로 보기로 한 모양인데 오행놀이에 빠진 낭월에게는 가장 맘에 드는 말이기는 하다. 손가락도 다섯이고 자연도 다섯이고 형제도 다섯이면 딱 아귀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ㅎ

 


참, 근데 이러한 형태의 암석을 부르는 이름이 있었는데....?(뒤적뒤적 부시럭부시럭-클릭클릭) 아, 찾았다. 시스택이지.굴업도에서 토끼섬 끝에 있는 시스택을 공부한 것이었는데 자꾸만 잊어버린다. 이것도 치매증상인가? ㅎㅎㅎ 해안의 암석이 바닷물에 깎여 나가면서 해식동굴이 되었다가 또 그것이 무너지고 다시 깎여 가다가 단단한 암석의 남은 속고갱이, 촛대바위도 되고 망부석도 되는 것이 시스택이란 말이지? 자꾸 반복해야 그나마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므로 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들먹거린다. ㅎㅎ

  


그나저나 오형제가 맞는지 확인해봐야지. 뭐든 확실하지 않으면 따져보면 된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오형제인지 아닌지 따져보자. 2형제와 3형제의 사이가 따로 분리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렇게 놓고 보니까 오형제가 맞구나. 이렇게 확인하고 나면 뭔가 정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앞의 바위는 형제가 아닌 것으로 보면 되겠구나. 그 아래의 기원제에 대한 내용도 적어본다.

 

【기원제(祈願祭)】

한 해의 마지막 날(섯달 그믐 12월 30일) 소를 잡고 사물놀이패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새해 건강과 소원성취를 기원해주고 감사의 뜻으로 곡물 등을 섞어 만든 주먹밥과 떡을 해서 띄우는 것은 한 해의 액운도 없애고 무사 안녕과 만선을 기원하기 위하여 정월 대보름날 지역 주민 모두가 모여 기원하는 대이작도만의 풍물놀이 문화이다. 소도 잡고 떡도 해서 만든 음식들을 짚으로 만든 배(대성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던 곳으로 풍물(구락)놀이 기간은 정월 초하루부터 1월 15일까지 동네 각 가정을 다니면서 풍물(구락)놀이를 하고 마지막 날 대성배를 띄우는 곳이 바로 팔각정자와 오형제바위가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대이작도만의 색다른 재미는 민어의 울음소리를 마을 동네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세히 잘 써놔서 누구라도 읽으면 이해가 되지 싶다. 다만 옥의 티라고, 음력 섯달 그믐날은 29일이나 30일이다. 큰 달은 30일이지만 작은 달은 29일인데 이 글을 쓴 사람은 그것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그냥 (섣달 그믐날)이라고만 했으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것이기에 옥의 티라고 하겠다. 여하튼 그만하면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정자에서 산쪽으로 본 모습이다. 이것이 용맥(龍脈)으로 보이면 풍수가일게다. 지질공부 중이니까 암맥(巖脈)이라고 하면 되지 싶다. 덕적층의 느낌은 안 나는데 덕적층이라고 하니까 여기만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게고 저 뒤쪽으로도 둘러봐야 하겠다. 오히려 여기까지는 업벌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밝은 색은 노가리해변에서 본 층층의 멋진 바위에 가깝지 않은가 싶어서다. 지질도를 확대해서 보면 여기가 경계점이 되려나? 어디.....

 


다시 봐도 지질도에서는 정자가 있는 부분을 포함해서 모두 덕적층으로 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암석이 생긴 것으로 봐서 이렇게 허옇게 보인다면 바로 옆에 있는 업벌층의 영역까지도 초록색을 칠하다가 잘못해서 덧씌워진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어차피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봐. (참 많이 컸다. 지질공부 하룻강아지가 마구 달려드는 꼴이라니 ㅋㅋㅋ)

 


그냥 이렇게 보면 안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다는 거지. 지척에 있는 암맥이니까 이 정도는 오차의 범위에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다는 자유영혼의 지질놀이다. 그러니까 책임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ㅎㅎ

 


왼쪽과 오른쪽의 암석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가?

 


어쩌면 저만치 보이는 검은 바위까지를 업벌층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이렇게 돌아다닌 흔적을 보면서 상상의 세계를 펼쳐가는 재미도 현장답사를 하면서 얻은 기억의 보물창고를 채웠기 때문이지 싶다.

 


 

 

 


 

 

 


 

 

 


 

 

 


 

 

 


 

 

 


 

 

 


 

 

 


 

 

 


 

 

 


이쯤에서 능동자갈마당에서 놀았던 풍경이 떠오른다. 기왕 찍어 놓은 사진이니 두어 장 더 추가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닐테니까.

 


자갈마당의 덕적도층이라고 된 위치이다. 왼편에서 놀았던 암벽의 풍경이다. 대략 3개월 전이었구나. 참 재미있었던 기억에 미소가 절로~ 

 


다시 오형제바위 해변이다. 뭔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형태는 오형제바위 쪽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질도의 위치를 수정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동이다. 덕적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풍경이기도 하다. 또 생각나는 능동자갈마당의 풍경....

 


자갈마당 풍경인데 흡사한 면이 많아서 덕적층이라고 한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겠다.

 


추상화가 산수화로 변해가는 풍경으로도 보인다.

 


 

 

 


바위 속에 자갈도 보인다. 각진 것으로 봐서 각력암(角礫巖)으로 봐도 되지 싶다. 

 


넘겨다 보니 또 하나의 해변이 펼쳐지는데 저기까지는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체력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고, 연지님의 경고가 뒤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리하다가 탈이 나면 안 되니까 여기까지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거절을 할 이유가 없어서 고분고분 받아들인다. ㅎㅎ

 


덕적도에서도 역암이 있었는데 그 암석의 한 무리가 떨어져 나와서 대이작도의 한 부분이 된 것도 참 신기하다. 하기는 업벌층도 따지고 보면 그렇기는 하지만서도.

 


역암(礫巖)의 색이 다양한 것을 보면 굴업도의 토끼섬 앞에서 본 응회암의 풍경도 떠오른다. 

 


검은 바위도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많은 역사가 녹아있는 것같아 보인다.

 


색으로 봐서는 현무암에 포획된 역암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뜻 보면 아스팔트의 역청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제 그만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그만하면 충분히 둘러봤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다가 또 특색있는 돌을 발견하고는 눈길을 준다. 사실 특색이 없는 돌이 없다고 해야 옳지 싶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오형제바위와 그 뒤쪽의 해변에 펼쳐진 노두와 실컷 놀았다. 배가 들어올 시간은 3시이고, 지금의 시간은 1시이니 2시간 동안에 선착장으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할 시간으로 그렇게 많이 남은 것도 아님을 생각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지. 적당한 것이 적당(適當)한 것이니까. ㅎㅎ

 


걸음을 돌리는데 쾌속선 한 척이 들어온다. 우리 배는 아니다. 아마도 인천으로 가는 배가 아닐까 싶은 짐작 뿐.

 


이런, 습관이란~ 올 적에 고생했으면 갈 땐 그냥 해변으로 가면 될 텐데 생각없이 반복하면서 자연스러워한다. 왔던 길이 이미 뇌리에 각인이 되어서인 모양이다. 늘 새롭게 깨어나야 하는데 말이지. ㅋㅋ

 


식당이 그리 많은 곳이 아니구나. 선착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작회식당이 어쩌면 유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수고롭게 따라다녀 준 몸에게 보상을 할 수가 있어서다.

 


물회를 시켰더니 회덮밥을 권하는 아지매의 뜻대로 했다. ㅎㅎ

 


한나절 끌고 다닌 몸에게 조촐한 성찬을 베풀었다. 아마도 위로가 되었지 싶다. ㅎㅎ

 


든든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는 잠시 남은 시간을 활용해서 촬영지라고 되어 있는 곳이나 둘러보자고 옆으로 향했다. 시간은 2시 22분이다. 아직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까.

 


문희 소나무란다. 헛일삼아서 당시 영화의 장면이 있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누군가 추억의 영화를 방영하는 것을 폰으로 찍어서 올렸나 보다. 고맙구로. 

 

 

 


 

 

 


 

 

 


 

 

 


『섬마을 선생님』이 아니라 『섬마을 선생』이었구나. 떠나가는 선생을 소나무 뒤에 숨어서 바라보고 있는 여심이라니..... 이미자의 노래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한 흑백시대의 영화였구나.

 


1967년에 촬영했구나. 참 오래 된 영화군. 그런데 혹시나 하고 OTT를 돌아다녀 봐도 이 영화는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대이작도의 당시 풍경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싶어서 괜히 찾아다녔다. 그러고 보니까 여행하면서 본 영화도 여려 편이 된다. 섬등반도에서는 극락도 살인사건을 촬영했다고 해서 찾아봤고, 우도에서는 화엄경을 촬영한 배경이라고 해서 찾아봤는데 우도의 장면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해서 실망했던 기억도 나는군. 영화는 영화일 뿐 기대하지 말자~! ㅎㅎ

 


미리 감치 배를 탔다. 이제 좀 쉬었다가 귀가하면 되겠구나. 이번 나들이는 기대했던 만큼의 대만족으로 기억하면 되겠다.

 


소이작도 선착장의 풍경은 담았다.

 


배를 타고서 바라보니 조금 전까지 누비고 다녔던 오형제바위의 주변에 물이 가득 차오르고 있구나.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비를 잊고 있었구나. 비를 맞고 출발했다가 비를 맞으면서 귀가하게 생겼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하늘의 보우하심에 감사하면서.

 


빗길을 잘 달려서 무사히 귀가했다. 오래 묵었던 숙제를 잘 마무리 한 개운함이라니. 그래서 또 감사한다. 다음에는 또 어디를 가지? 변산의 채석강은 어떨까? 채석강은 노가리해변의 층층암석을 보면서 문득 떠올려 본 것인데 생각이 일정을 만든다고 까이꺼 가서 다시 둘러보지 뭐. 지질공부를 한 짧은 식견이라도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일지도 모르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