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작도 최고령 암석

작성일
2023-09-2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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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작도(大伊作島) 최고령(最高齡) 암석(巖石) 

 

(2023년 9월 16일)

 


어제(9월15일) 점심을 안흥찐빵으로 해결한 까닭은 먼저번에 메추리섬에 갔다가 만조로 인해서 제대로 습곡을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때문에 서둘러서 갔었는데 그럼에도 이미 밀물이 들이닥쳐서 맘껏 둘러보지 못했다. 그래서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으로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먼저 메추리섬의 퇴적암편에 추가했으니까 나중에 참고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도③ 메추리섬의 퇴적암(2023-09-15재방문)】보기 

 

저녁은 방아머리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진 모텔에서 푹 쉬고는 일찌감치 7시에 나서서 이제는 익숙한 방아머리선착장에 차를 줄세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먼저는 길 건너에서 칼국수를 사먹었는데 오늘은 육개장으로 아침을 해결하자는 연지님의 의견을 수용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표는 미리 살 수가 있지만 차량표는 현장에서 구매해야 하는 것이 방아머리선착장의 법칙이라는 것도 익숙한 까닭에 행여라도 차를 싣지 못해서 여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부지런히 대이작도행 배표를 차의 앞 유리에 꽂는데 성공했다. 

 


대부고속페리는 8시에 출항하는 덕적도행이다. 엇 그제 탔던 배 같은데 벌써 석달이나 흘렀구나. 배만 봐도 덕적도와 굴업도가 기억에서 튀어나와서 스쳐 지나간다. 이 배가 출항하고 나면 대이작도행 배가 들어온다. 그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렇지! 이런 샷이 좋거든. 왜냐면 오늘 현재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는 풍경이니까. 그런데 시계의 글자가 잘 안 보이는 것은 아쉽군. 뭐 그래도 괜찮다. 사진 찍은 시간이 대신 보여주니까. 7시 21분이구나. ㅎㅎ

 


오늘은 토요일이다. 주말을 기해서 길을 나선 것은 당일치기로 대이작도를 둘러볼 예정을 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1차만 운항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배가 없어서 부득이 일박을 해야 한다. 물론 볼 것이 많으면 그래도 된다. 그런데 봐야 할 것은 정해졌고 일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시간을 활용하려면 하루에 2차로 운항하는 주말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신속한 이동을 위해서 차를 싣고 가는 것은 필수다. 등산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체력과 시간을 허비하는 까닭이다. 오늘의 여객선 일정은 8시 40분 배로 갔다가 오후 3시 배로 나오는 것이다.

 


덕적도 배가 출항하는 동안 저만치 떠있던 대부아일랜드호가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덕적도유람을 하면서 대이작도까지 둘러보려고 나름 다각적인 궁리를 했지만 그러한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찾게 되었는데 내침 김에 어제는 영흥도를 훑어서 시간을 잘 활용했다. 십리포의 풍경도 좋았지만 장경리해변은 더 좋았고, 노가리해변의 업벌층 풍경은 또 특색이 있어서 별이 다. 매우만족이라는 뜻이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는 것이야 말로 여행의 재미가 아니겠느냔 말이지. 그래서 어제의 하루 일정은 충분히 즐거웠다. 메추리섬도 다시 가서 봤던 못 봤던 마음에는 마침표를 찍었으니까 내려놓으면 되었다. ㅎㅎ

 


선실은 여유가 있었다. 토요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은 꽤 많았다. 중간에 들리는 곳은 승봉도다. 실컷 구경했던 주변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자리에 앉아있다가 승봉도에 내릴 사람을 안내하는 소리에 뱃전에 나가서 둘러봤다.

 


승객들의 절반 이상이 승봉도에 내리는 모양이다. 뭔가 재미있는 것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특별히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미 마음 속에는 대이작도가 커다랗게 자리를 하고 있어서였지 싶다.

 


방아머리에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는 대이작도에 도착했다. 아마 30번은 더 봤을 대이작도선착장의 사진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낭월의 이야기에서도 그 사진은 등장한다. 이것이 대이작도 여행의 시작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봄부터 자료를 찾으며 공부하느라고 대이작도 관련 글을 클릭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큰대(大)형태의 표시다. 영화의 고향 섬마을 선생님도 익숙해서 영화를 다 본듯 싶기도 하다. ㅎㅎ

 


식상해도 어쩔 수가 없다. 말하자면 인증샷인 셈이다. 

 


그래서 디지털시대를 또 감사한다. 필름이 아까우면 이런 사진을 찍을 적에도 잠시 생각을 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된다. 셔터박스가 나갈 때까지 열심히 눌러야 한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튼튼해서 인지 여전히 잘도 작동한다. 고장이라도 나면 '소니알파1'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라도 꺼내 볼 텐데 처음 샀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잘 움직이니 당분간은 새 카메라를 만져 볼 기회가 없지 싶다. ㅠㅠ

 


거금 51,000원을 들여서 차를 싣고 온 이유가 명백해 진다. 비록 작은 섬이라고는 하지만 끝에서 끝까지 이동해야 하는 지도를 보면 거리는 불과 4km에 불과하나 걸어가는데 한시간, 돌아오는데도 한시간을 온전히 허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은 10시 20분에서 3시까지 4시간 40분인데 오고 가느라고 두 시간을 버릴 수는 없으므로 돈을 주고 시간을 사야만 했다.

 


계남해변에 도착하니 해수욕장과 해변을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반긴다. 대이작도에서 처음의 목적지로 계남해편을 찾은 것은 미리 지질관련 책을 읽고서 얻게 된 지식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작은풀안의 최고령 바위라고 써진 곳에서 사진을 찍지만 실은 제대로 된 최고령 바위를 보려면 계남해변으로 가야 한다는 말만 믿고서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최우선으로 가야 할 것을 결정했던 셈이다. 

 


더구나 이승배 선생의 『우리땅 돌 이야기』에서 계남해변을 언급했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가봐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에 찾아왔다. 하늘이 도와서 비는 멎었고, 바다가 도와서 잔잔한 항해를 잘 했으니 땅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서 즐거운 돌 놀이에 푹 빠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보면 언젠가는 도달하게 된다는 이치를 이렇게 확인한다.

 


이 책을 올 4월에 구입해서 읽으면서 이러한 대목이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잘 기억해 뒀다. 장소에 대한 안내는 선험자(先驗者)의 안내가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찜을 했었다. 그러니까 대이작도에 대해서 알게 된 후로 거의 5개월 만인 모양이다.

 


아하! 이렇게 안내를 해 놓으니까 웬만큼 지질에 관심이 깊지 않은 사람은 계남해변보다는 표지판이 서있는 곳을 찾을 수밖에 없겠구나. 낭월이야 책이며 자료들을 열심히 뒤진 탓에 당연히 계남해변을 찾았지만 또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거리가 멀지 않으냔 말이지. 배낭을 짊어지고 차도 없이 걸어서 계남까지 가느니 좀더 가까운 곳에 있는 바위를 보고 안내판까지 보게 되면 그런가 보다 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나쁘지 않을 게다. 물론 나중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통탄한들 이미 늦었으니 다시 가거나 포기하거나 할 수밖에 없을 게다.

 


계남해수욕장이지만 이미 폐장했으니 조용하다. 오른쪽은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왼쪽이다. 

 

 

 

아침에 본 일기도는 매우 양호하다. '하늘막'을 준비했으니 자외선은 걱정하지 말고 오라는 뜻이니 말이다. 오늘의 간조(干潮)는 영흥도 기준 11시 45분이다. 대이작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봐서 10시 37분이니까 아직은 한시간의 썰물이 있으므로 다시 밀물까지 포함해서 2시간은 충분히 여유가 있다. 여기를 둘러보고는 오형제바위 쪽에서도 봐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물때와의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지질탐사와는 무관(無關)하지만 대이작도 여행과는 유관(有關)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대이작도의 풀등이다.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모래언덕은 이미 1박2일 등의 방송에서도 소개를 많이 해서 익숙한데 그곳이 여기였다는 것은 이렇게 현장에서 봐야만 실감이 난다. 정보에 의하면 섬마을밴드가 공연을 하는 일정으로 인해서 오늘부터 내일까지 주말은 풀등으로 가는 배를 운항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물론 운항한다고 해도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단 1%의 미련이라도 사전에 잘라버리게 되면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된다. ㅎㅎ

 

계남해변의 풍경은 언뜻 봐서는 별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냥 큰 돌들이 나뒹굴고 있는 여느 해변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아서다. 미리 공부한 것이 없었다면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 싶다. 그러나 이미 그 속에 깃든 의미를 알아버렸으니 돌은 같아 보이는 돌이로되 그 돌은 또 다른 돌이라는 것을 말이다.

 


미리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풍경에서 특별히 더 찾아봐야 할 의미는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평범한 해변의 풍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말이 항상 정답이고, 여하튼 두번 걸음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 알고 있는 것만큼이라도 최대한 동원해서 잘 살펴야 한다는 것만 분명하다. 어차피 모르는 것은 안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노두를 찾아가면 암벽이 기다리고 있는데 계남해변에는 돌이 기다리고 있었구나. 돌과 바위의 기준도 어디에서 봤는데, 한 손으로 가득차면 돌이고, 그보다 크면 바위라고 해야 한다지?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모든 돌들은 바위인 걸로. 이제부터 몇 달을 별러서 왔으니 여유를 갖고서 천천히 둘러보자. 3개월을 별러서 온 곳인데 나중에도 미련이 남지 않도록 샅샅이 살펴보고 가야지. 또 오는 것도 쉽지 않으니 말이지.

 


바위들이 일관성이 없구나. 저마다 생긴 모양이 다르고 색깔도 다르구나. 이 돌이 생성될 25억1천만년 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본다.

 


하긴.... 3억 년 이전에는 추정을 하기도 어려운 모양이구나. 그만큼 오랜 세월을 머금고 있는 대이작도의 토날나이트질 편마암이란 말이지. 남한에서는 통상 19억 년 전의 암석을 최고령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어콘으로 조사를 하면서 25억년 이전에 생성된 암석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더라지. 북한에는 더 오래 된 암석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보면 남한의 최고령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이승배 지질박물관장의『우리땅 돌 이야기』에 의하면 2004년에 암석학자 조문섭 선생이 친구들과 낚시하러 왔다가 낯선 돌이 보여서 조금 떼다가 연대측정을 해 봤더니 25억 1천만 년의 세월이 나왔더란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토날라이트질 편마암」이었는데 토날라이트는 알프스산맥의 토날레 고개에서 발견한 암석에 처음 붙인 것에서 유래하게 되었단다.

 


토날라이트는 심성암(深成巖)인 화강암(花崗巖)의 변성암(變成巖)으로 된 편마암(片麻巖)이다. 밝은 색을 띠는 것은 석영(石英)과 사장석(斜長石) 알칼리 장석인데 각자의 비율에 따라서 색은 또 다양하게 달라지게 된다. 대이작도의 토날라이트는 석영이 20%~60%가 되는데 나머지 성분의 대부분은 사장석(斜長石)이다.

 


또 추가되는 이야기는, 이 암석의 분포가 가까운 소이작도에 더 많이 보인다고 한다. 지질 학자들이 지질도를 만들면서 여러 차례 드나들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소이작도의 젊은 이장이 방송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봤다는 책의 소개다. 이렇게 전문가의 이야기를 언급하면 그냥 바위들만 보는 것보다 이해에 보탬이 될듯하여 책을 보면서 추가해 본다. ㅎㅎ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이작도까지 가볼 생각은 없다. 이렇게 대이작도에서 토날라이트질 편마암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얼룩말같은 문양의 암석들이 있다고 했는데 여하튼 여기에서나 잘 둘러보는 것으로 대이작도를 찾아 온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볼 요량이다.

 


 

 

 


편마암이라더니 시커먼 것을 보니 과연 편마암인가 싶기도 하다. 땅속 깊은 곳에서 열을 받아서 편마암이 되어서는 어느 인연에 의해서 이곳으로 솟아올랐단 말이구나.....

 


 

 

 


이건 밝은 것으로 봐서 사장석이 많이 포함되었겠구나. 화강암의 일종으로 봐도 된다고 했으니 그래서인지 화강암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떤 암석은 변성암으로 압력을 받았고, 어떤 암석은 그냥 화강암으로 있다가 노출되었던 모양이다. 밑천이 짧다 보니까 뭐 아는 대로 생각할 뿐이다. ㅎㅎ

 


 

 

 

 

 

 


 

 

 


사실, 카니카지, 최고령 암석이라는 이름의 돌이 대이작도에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고, 그렇기에 이렇게 그 자리에 와서 돌이랑 놀고 있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이것을 뜯어다가 실험실에서 확인을 할 것도 아닌 바에는 그냥 보여지는 것이 전부일 따름이지만 그 내용물까지 궁금하지는 않다. 그래서 행복한 아마추어인 모양이다. ㅎㅎ

 


 

 

 


 

 

 


뭔진 몰라도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있다. 편마암에 석영맥이 관입한 형태겠거니 싶다. 그냥 한 줄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방으로 뻗히면서 맥을 이루고 있는 것도 특이하기는 하다. 그러니까 편마암이 조각조각 뜯어져 있는 것을 마치 석접착체를 흘려 넣어서 한 덩어리로 만든 것처럼 재미있게 생겼구나. 엇?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이지?

 

 

 

깜빡 속을 뻔했다. 이승배 선생이 이것을 알려주면서 힌트로 적어 놓은 것은 겨우 '선명한 띠'밖에 없는 것이 아쉽구나. 그래서 이 돌덩어리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했다. 친절한 이 선생이 사진까지도 넣어놨구나.

 

 

과연 그럴만도 하겠다. 소이작도는 모르겠고 대이작도의 암석이나 잘 봐야겠구나.

 


젊은 혼성암이구나. 이렇게 생긴 것은 편마암이 아니라 혼성암(混成巖)이란 말이지? 토날라이트질 편마암과 같이 녹았다 굳었다를 반복하면서 이렇게 되었다니 지질공부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군. ㅎㅎ

 


지질도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니까 이것도 확인해 봐야지. 2004년도에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지질도에 업데이트가 되어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들여다 보자.

 


어라? 업벌층이네? 업벌층은 이제 익숙하다. 노가리해변에서 실컷 봤으니까 말이지. 그런데 돌의 형태는 좀 다르구나. 하긴 업벌층이라고 해서 모두 같진 않을 테니까. 그나저나 여기에서 업벌층을 보니 왠지 더 반갑기는 하다. 원생누대의 신원생대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대략 10억 년 정도로 본단 말이구나. 이것은 수정이 되어야 할 모양이군.

 

선캄브리아 시대→원생누대(原生累代)

고원생대(古原生代-시데리아기25억~23억-한반도 발생기) 

토날라이트질 편마암

 

 

이렇게 말이지. 아무래도 데이타베이스는 업그레이드 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까 낭월지질사전에만 이렇게 등록을 해 놓는 셈이구나. ㅎㅎ

 

그건 그렇고, 그래도 눈으로 봐서 이게 구분이 되나....?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전문가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으니까 비전문가야 말해서 뭘 하겠느냔 말이지. 이런 구분은 이승배 선생에게 맡겨 두고 그냥 그렇게 믿는 걸로. 아울러서 이렇게 한마디 추가로 써 놓는 것은 혹시라도 낭월의 글을 믿고서 헛갈리시질랑은 마시라는 의미로. ㅎㅎ 

 


 

 

 


그렇다면 이 돌도 2억살? 선명한가? 안 선명한가? 그걸 뭘 기준으로 알아 보느냔 말이지. 그래서 하나를 알면 둘을 모르게 되는 모양이다. 정신건강을 위해서 모조리 25억살이라고 우기는 것이 더 낫지 싶다. 아무렴. 뭣이 중헌디~! ㅋㅋ 

 


 

 

 


 

 

 


이건 퇴적층일까? 아니면 관입한 것일까? 언뜻 봐서는 퇴적층으로 보이기도 한다. 퇴적했다면 바닷속에서 세월을 많이 보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마른 땅위에서 퇴적하는 것은 화산의 응회암(凝灰巖)일텐데 응회암이라는 말은 없으니 말이지. 

 


 

 

 


 

 

 


붉은 기운을 띄면 철이 함유된 것이려나? 또 다른 모양의 바위들을 보면서 궁금증만 쌓여갈 뿐이다. 아, 25억년 전에 생성된 암석이니까 그 속에는 산소(酸素)가 없겠구나. 24억 년 이전의 지구 대기층에는 질소(窒素). 이산화탄소(二酸化炭素), 메탄은 많았으나 산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아노박테리아가 산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쌓인 산소는 겨우 1%정도 축적되었다는데 후기에 만들어진 바위에는 산소가 다량으로 들어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바위에 있는 산소라면 고체인 모양인가? 또 그것이 궁금해 진다. ㅎㅎ

 


 

 

 


 

 

 


 

 

 


바닥에 깊이 박혀 있는 검은 암반도 있다. 기반암이라고 하면 될 듯. 아마도 이것도 편마암이겠거니 싶다.

 


 

 

 


 

 

 


가을풍경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암석도 있고.....

 


아, 이 바위구나. 책에 소개한 사진만 보면서 대표적인 이작도의 최고령 바위겠거니 하다가 실물을 보니 연예인을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구먼. 그러니까 이승배 선생이 본 것을 낭월도 보고 있더란 말이지.

 


 

 

 


 

 

 


 

 

 


 

 

 


 

 

 


 

 

 


책에서야 지면관계상 많은 사진을 담을 수가 없지만 여행놀이가 좋은 것은 얼마든지 많은 사진을 찍어다 놓고서 천천히 봐도 된다는 점이다. 서버에 공간이 모두 차버리면 하드 하나 더 추가하면 된단 말이지. 이렇게 사진을 정리하는 시간은 갯바람을 맞으며 누비고 다니는 것과는 또다른 안락함과 즐거움이 주어진다. 그래서 계획할 적에 행복하고, 확인할 적에 즐겁고 이렇게 여행을 다녀와서 정리할 적에 재미있다.

 


 

 

 


혹등고래가 하늘을 향해서 솟아오르는 듯한 힘이 느껴진다.

 


 

 

 


돌을 돌이 감싸고 있으니 이것은 포획암(捕獲巖)일까? 안에도 돌이 박힌 것을 보면 포획암의 포획암인가? 

 


 

 

 


 

 

 


 

 

 


어? 이것은 각력암(角礫巖)이잖여? 붉은색의 돌들이 갇혀 있으니 말이지.

 


 

 

 


포획암이 맞는 것으로 봐도 되겠구나. 하긴 기나긴 세월을 살아남았으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참 여러가지를 볼 수가 있는 작은 해변이다.

 


 

 

 


 

 

 


 

 

 


 

 

 


 

 

 


 

 

 


 

 

 


 

 

 


 

 

 


 

 

 


 

 

 


 

 

 


 

 

 


 

 

 


 

 

 


 

 

 


 

 

 


 

 

 


 

 

 


 

 

 


넓이로만 본다면 별로 넓지 않은 공간에서 참으로 다양한 그림을 봤다. 보령의 죽도 해변에서도 바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감탄을 했는데 여기에서도 그렇게 다양한 그림을 보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구나. 

 


지도로 위치를 보면 계남해변의 앞 부분에서 놀았다고 봐야 하겠다. 더 앞쪽으로 가지 않은 것은 지형이 낭떠러지라서 갈 마음도 생기지 않았지만 지질학자들도 여기에서 놀았다는 흔적을 확인했기 때문에 추가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판단해서다. 이제 이만하면 목적한 바를 이뤘다고 봐도 되지 싶어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이동을 했다. 지나가면서 들려야 할 곳은 작은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