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십리포 노두(露頭)

작성일
2023-09-2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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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십리포 노두(露頭) 


155 십리포(옹진군 영흥면 내리) 선캠브리아시대 저탁류퇴적층

 

(2023년 9월 15일)

 


지난 8월 26일에 안산에 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들려봤던 영흥도의 십리포를 그로부터 20여일 만에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대이작도를 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1박2일로 나선 길인지라 제대로 둘러보려고 단단히 준비하고 나선 길이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는 이른 아침 6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챙기다 보니 7시가 다 되어서야 나설 수가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인가를 목적하고 나선 길은 항상 설렘과 기대감이 반반이다. 오늘 아침에도 이러한 느낌을 즐기면서 집을 나섰다. 영흥도를 향해서 빗속을 뚫고 길을 나선 것은 하늘의 사정은 하늘에 맡기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추진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예보대로 도로는 온통 물천지다. 

 

 


 

출발하기 사흘 전인 9월 12일에 살펴본 예보에서도 온종일 비가 온다는 영흥도의 상황이었지만 태풍만 불지 않으면 그냥 나설 요량이었다. 태풍이 불면 대이작도로 가는 여객선이 출항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인데 다행히 태풍은 모두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어서 안심했다.

 

 


오늘 아침에 출발하면서 본 예보에서도 중남부를 뒤덮고 있는 비구름이 있었지만 다행히(?) 영흥도가 있는 경기도 해안은 비구름이 걸쳐 있는 것은 하나의 희망이기도 했다. 평양까지 완전히 덮였더라도 길을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영흥도가 비구름의 변두리라는 생각은 일말의 희망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늘 사정은 아무도 몰러~!'라고 하는 생각이 항상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기도 했을 게다. 

 

 


영흥대교를 앞에 두고 시간은 9시 38분이구나. 준비를 하면서 예상하기로 9시쯤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길은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고, 거리도 있는지라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장경리도 가야지. 다만 먼저 가야 할 곳은 십리포(十里浦)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 마을이 진두마을이었구나. 

 


조수석에 앉아있으니 이정표를 찍기에 만고 편리하다. 십리포는 여기에서 십리를 가면 있다는 의미로 십리포란다. 과연 그런지 거리를 재 볼까?

 


오호! 도로가 3.1km구나. 옛날에는 길이 달랐을 테니 과연 십리포(十里浦)라고 할 만 하겠다. 여하튼 7분이 남았구나. 빗줄기는 매우 가늘어져서 이슬비로 변했다. 이 정도면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간조(干潮)는 11시 19분이다. 간조를 전후해서 2시간 정도가 해안의 노두를 살필 수가 있는 기회이고 오늘 그 시간 안에 둘러봐야 할 곳이 적어도 너댓 곳이다. 아마도 보나마나 시간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은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9시에 도착하기를 바랬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10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게 생겼으니까 예정에서 한 시간이 줄어든 시간이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열심히 운전하는 연지님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ㅎㅎ

 


그래도 10시 전에 천리포해수욕장에 도착했지 않은가. 20일 전에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텅 빈 해변이 반겨준다. 그래 뭐든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려니 싶다. 바닥의 물은 앞으로 1시간 정도 더 빠지겠거니......

 


우산모자를 눌러쓰고는 천리포의 노두를 향했다.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연지님이 차를 주차시키고 쫓아 나와서 찍은 사진이 쪼맨하구나. ㅎㅎ
 

 


출발 며칠 전에 날씨를 살펴보니 비를 피하기 어렵다는 예보를 접하고는 이미 3년 전에 준비를 해 둔 우산모자를 찾아냈다. 한두 번은 사용했나 싶은데 지금이 바로 이것을 써야 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바람만 심하게 불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봐서 우산을 들고 다니느라고 한 손을 빼앗길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손을 하나 벌었다. 카메라에 비를 맞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해서이다.

 


어? 사람들이.......? 마땅히 비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음.....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였다.

 


남자: 경계선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쪽은 어민들이 양식하는 곳이고 그래서 내가 지키고 있는 거요~!
여자: 그럼 고둥을 잡으려면 어디에서 하나요?
남자: 저쪽.... 경계선을 넘어가서 하세요. 그곳은 관리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아, 고맙구로. 촬영에 부담을 없애 주려고 산신님께서 사자를 보내셨구나. 이 빗속에서 양식장을 지키는 부지런한 할아버지 덕분에 두 사람은 바로 쫒겨 났다. 그래서 다시 해안은 고요를 찾았다. 

 


낭월: 안녕하십니까? 수고많으십니다~!
관리: 빗속에도 촬영나오셨습니까. 좋은 작품 담으세요.
낭월: 고맙습니다.(진심으로 ㅋㅋㅋ)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해변에서 만나는 바위들을 보면 심장의 흥분지수(興奮指數)가 상승한다. 굴이며 따개비들과 같이 살아가는  노두의 모습을 보면서 썰물때를 이용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는 풍경임을 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비가 내려서 바위를 적셔주니 색이 더 곱다. 다만 미끄러운 것은 조심해야 할 조건이 하나 추가될 따름이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음양의 이치이니 달게 받아들인다. 수석(壽石)을 감상할 적에도 색이 고우라고 물을 뿌려주는데 하늘이 알아서 물뿌리개를 사용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ㅎㅎ

 


어장관리인이 두 사람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확실하게 몰아내고 있었다. 이제 이 넓은 노두에는 단 세사람만 남았다. 낭월과, 관리인, 그리고 연지님 뿐이구나. 

 


한국의 지질노두 155번으로 안내하는 곳이다. 저탁류(底濁流) 퇴적층(堆積層)이라고 소개했다. 저탁류라면 낮게 흐르는 탁한 것이라는 의미인가? 글자는 알겠는데 의미를 잘 모르겠군.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어딘가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열심히 검색하는 신공(神功)일 따름. ㅎㅎ

 

 

이번에는 해양학백과에서 도움말을 준비해 줬구나. 고맙구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류(流)였다. '물이 흘러가는데 아무리 탁하다고 해도 그것이 바위를 만든단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래서 모르면 모름지기 물어야 한다. 모르는 것은 허물이 아니지만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 것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날려보내는 어리석음임을 늘 믿고 있다.

비로소 설명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연상되는 용어는 「토석류(土石流)」다. 흙과 돌이 흘러가는 것도 흐름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셈이로구나. 그러니까 팥죽같이 생긴 탁한 걸쭉한 것이 흐르다가 굳어서 바위가 되었단 말이로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어서 답답한 속이 시원해진다. 배우는 즐거움과 깨침의 환희다. 

 


여하튼 퇴적암은 분명하구나. 그리고 층이 얇은 것이 바로 탁류로 인해서 생긴 흔적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낭월의 지질공부방은 「지질대동여지도」의 블로그도 포함된다. 여기에서 살펴보면 천리포의 노두는 경기육괴(京畿陸塊)에 해당하는데 고생대(古生代)의 변성퇴적암(變性堆積巖)으로 태안층(泰安層)의 상부에 석회질(石灰質) 저탁암(低濁巖)으로 사암(沙巖)과 이암(泥巖)이 서로 뒤섞여서 만들어진 심해층(深海層)으로 구성되었는데 십리포층에 포함되어 있는 저어콘의 절대연령은 3억8100만년 전으로 나오고 이 시기는 석탄기(石炭紀) 이후인 고생대의 말기(末期)에 해당하는데 석회질층(石灰質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당시의 얕은 해저의 대륙붕(大陸棚)의 환경이란다.

 


저탁류층이라는 것은 이렇게 생겼구나. 그래서 지층의 경계가 뚜렷하기도 하고 뒤섞여 있기도 한 모양이다. 모양이 예쁘다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름 특색이 있어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퇴적암이 변성되어서 변성퇴적암이구나.

 


그냥 글만 읽어서는 그런가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이러한 장면을 보고 나서 다시 글을 읽으면 비로소 그 의미가 확연히 체감된다. 그래서 불원천리하고 비가 내리든 말든 이렇게 해변을 서성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탁류층의 변성퇴적암이라........

 


그렇더라도 퇴적층이 거의 60도는 되게 세워져 있는 것을 봐서는 그후로 지각이 요동을 쳤다는 것도 짐작이 된다. 완전 수평으로 되었을 지층이 이렇게 세워졌을 적에는 좌우에서 얼마나 큰 힘으로 밀어 붙였겠느냐는 상상을 하면서.....

 


퇴적층을 보는 재미가 또 색다르단 말이지. 퇴적마다 모양과 색이 달라서 천변만화(千變萬化)이니 아마도 이러한 것에 팔려서 산하를 누비고 다니는가 싶다.

 


석영이 관입된 것인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흰 색의 암석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조용한 해변에 셔터 소리만 적막을 깬다. 바위와의 대화, 세월과의 교감이라고나 할까? 세상의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다 무엇이냐는 가르침을 묵묵히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얇은 셰일층이 교호한다더니 이것을 두고 말하는 모양이다. 이것은 전에 보령의 오천에서 봤던 형상을 닮았구나. 진흙이 굳어서 된 것이 셰일층이다. 따개비들이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태안층이라면 선캄브리아 시대인데 바닥의 암석은 태안층이 기반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싶다. 그러니까 아래는 선캄브라아 시대의 태안층이고 그 위에 쌓인 것은 고생대의 변성퇴적암이란 말이지? 아 참, 지질도를 잊고 있었구나. 살펴봐야지. ㅎㅎ

 


지오빅데이터 오픈플랫폼에서 지도를 열어놓고 알아보고 싶은 지역의 정확한 위치부터 찾아 놓고 여기에 지질도를 덧씌우면 된다.

 


이런! 보통 지질도에서 말하는 무슨무슨 암이 아니라 아예 이름조차도 「십리포층」이었구나. 그것 참 신기하군. 그러니까 하나의 특징적인 지층으로 이름이 되었다는 말이네. 고생대는 틀림없고....

 


태안층을 기반으로 하고 저턱류층의 변성퇴적암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십리포층이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지 싶다. 아마도 이 특색없는, 아니 이런 특색을 가진 것이 태안층이겠거니 싶다. 

 


대체로 생긴 모양은 비슷하고 나름 특색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십리포층이라니 태백과 정선을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장산층이 떠오른다. 장산에서 처음 발견된 지층이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니 십리포에서 발견된 것으로 그 이름을 삼았구나. 하긴, 태안층도 태안에서 발견되어서 붙은 이름일테니까.

 


엇? 모퉁이를 돌아서니까 또 색다른 풍경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검은 암석 위에 쌓여 있는 누런색의 규장질(硅長質) 암석층이 심심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듯하다. 관입(貫入)한 것은 보통 두께가 10cm 안쪽인 것만 보다가 이렇게 넓은 것을 보니까 관입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이러한 것도 관입이었구나. 하기야 암석이 지질운동으로 갈라진 틈이 수십 미터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니까 당연한데도 좁은 상식은 항상 여지없이 무너지고 또 깨어진다. ㅎㅎ

 


양식장 관리인을 안면도에서는 굴뚝쟁이라고 불렀다. 굴밭은 굴뚝, 조개밭은 조개뚝이다. 안면도의 바닷가에서 살게 된 인연으로 부친께서 겨울에 할 일이 없을 적에는 굴뚝쟁이도 하셨다. 사리때 바닥이 드러날 때면 아낙들이 거적때기를 짊어지고 바구니와 조새를 들고는 줄을지어서 바삐 갯가로 향하면 부친도 그들과 같이 동행을 하셨다. 굴을 채취하는 시기가 아닌데 굴 밭에 들어가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얼마간의 관리비용을 받아서 생활에 보탰을 게다. 그것이 얼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품값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저 할아버지를 보면서 부친의 그 시절이 오버랩되어서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런 모습들이 있어서 해안을 지나치면 자꾸만 눈길을 주게 된다.

 


누런 규장질에 이끼가 쌓여서 연둣빛을 띄는 모양이다. 온통 시커먼 암석만 있나 싶었는데 이렇게 밝은 지질도 있어서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자꾸 걸어가 본다. 그 다음은 또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궁금한 까닭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한 걸음 다가가는 기분이다. 시간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지층이 휘었구나. 이것도 습곡(褶曲)이겠지? 

 


 


대충 보면 그런가보다 싶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른 세계가 활짝 열린다.

 


이야기가 한 보따리구나. 단층(斷層)과 습곡으로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뭘지...... 

 


근래에 방송한 『알쓸별잡』의 한 선생은 건축물만 보면 흥분이 된다는데 낭월은 바위만 보면 흥분이 된다. 저마다의 코드가 달라서 그런 모양이구나. 설마 팔자에 금수(金水)가 용신(用神)이라서는 아닐테고.... 알 수가 없는 아득한 전생의 어느 세월과 연관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든 잘 모르겠으면 전생핑계다. ㅋㅋㅋ 

 


이만하면 십리포의 풍경은 잘 봤다고 쳐야 할 모양이다. 또 다음의 목적지가 부르고 있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밀물때가 뇌리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물이 빠지고 있다. 대략 30여 분을 둘러봤지만 범위가 넓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본다고 해서 많은 것이 보이는 것도 아닌 줄을 잘 알고 있기에 이 정도로도 만족할 따름이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공부가 더 많이 된다면 또 못 봤던 것도 보이겠지만 오늘의 공부로는 이만큼만 둘러본 것으로도 만족스럽게 여긴다. 이게 어디냔 말이지. ㅎㅎ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십리포의 노두를 잘 둘러봤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히 만족이다. 이제 다음 목적지로 향해서 서두른다. 아, 여기 해수욕장은....

 


그러니까 신생대 제4기의 해빈모래층이다. 끝까지 챙길 것은 챙겨야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