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② 능동자갈마당

작성일
2023-07-0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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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② 능동자갈마당의 절경(絶景)  

 

(2023년 6월 20일 화요일)

 


밤에 모기가 들어왔었는지 몇 방 물어 뜯겼다. 문득 화인이 그립구나. 화인이 있으면 모기들이 모두 그녀에게 달려들어서 물리지 않는데 말이지. ㅋㅋ 

 

덕적도의 모기는 통도사 모기급인 걸로 봐도 되겠다. 예전에 통도사 극락암에 살 적에 스님들 이야기가 통도사 모기와 표충사 모기는 결혼을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니까 너무 쎈 놈들끼리 만나서 새끼를 낳으면 살인모기가 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ㅎㅎ 문득 그 생각이 들 정도로 덕적도 모기도 대단했다. 모쪼록 모기기피제를 붙이거나 조심하시길.

 


모기가 많게 생기기도 했다. 대충 들고 다니던 물파스로 응급조치를 했다. 참고로 모기에 물려서 가려울 적에 헤어드라이기가 있으면 매우 좋다. 적당히 지지면 가려움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초에 불을 붙여서 촛물을 떨어트리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도 효과는 같다. 모기와 같은 해충의 독성은 섭씨 60도가 되면 독성이 삭아지기 때문이란다. 그 내용이 말이 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효과는 보증한다. 다만 촛물요법은 단점이 있으니 피부가 약한 부분에 하게 될 경우 물집이 생길 수가 있는 것이 문제라서 봐 가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헤어드라이의 열기로 그 정도(따끈해서 지글지글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열풍을 쏘여주니까 효과는 양초요법과 같았다. 그래서 고전적인 방식에서 신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덕적도항이 궁금했다. 분명히 덕적도항이 있는데 왜 여객선은 진리항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바닥의 깊이가 얕아서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긴 했지만 여하튼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는 오늘의 일정을 따라서 능동자갈마당을 가는 길에 있는 덕적도항을 들리기로 했다.

 


숙소에서 능동자갈마당까지는 21분의 거리에 있었고, 그 중간에 덕적도항을 거치게 되어 있다.

 


고개를 넘어서니까 바로 덕적도항이 내려다 보인다. 과연 분위기가 파장(罷場)의 느낌이구나. 옛날에는 굴업도와 덕적도에서는 민어 파시(波市)가 열렸었다고 한다. 민어가 엄청나게 잡히는 바람에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불야성을 이뤘었다는데 지금 봐서는 과연 언제 그랬었나 싶은 풍경이다. 어촌은 어획량에 따라서 성쇠가 결정될 수밖에 없긴 하지.

 


한 때의 왕성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장꾼도 사라지고 난 다음의 쓸쓸한 풍경에다가 바다의 수심도 얕아서인지 큰 배가 들어오기 어려운 까닭에 이용을 하지 않게 되었던 모양이다. 

 


덕적도항도 지나는 길에 본 걸로 하고 길을 재촉할 따름이다.

 


드디어 능동자갈마당이다. 차량은 진입하지 말라고 바윗돌을 가져다 놨구나. 

 


가는 곳마다 지도를 찍는 이유는 '현위치'가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세월이 흐른 다음에 여기가 어디더라..... 싶을 적에 이러한 사진 한 장은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능동자갈마당이다. 왜 능동일까? 행정명칭은 북2리인데 동네 이름이 능동이었구나. 동(洞)은 알겠는데 능이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본다. 혹 지질과 연관이 있으려나 싶은 생각도 있고.... 왕릉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누구의 능인지도 확인해 볼 겸으로 찾아봤지만 마땅한 자료는 없으니 그냥 능동인 걸로. ㅎㅎ

 


바람마을이었구나. 풍력발전기가 좀 빈약하기는 하다만 작으면 작은 만큼의 발전을 할 테니까 주민들이 쓸 정도만 되면 충분하겠지.

 


엇? 저게 풍력발전기? 날개는 없고 기둥만 남았구나. 바람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날개를 날려 먹었을까 싶다. 아마도 공사비를 잘라먹고 시늉만 냈던가 싶기도 하다. 그 내막이야 어찌 알겠는가만 처량하게 늘어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구나. 한 무리의 관광객이 휘둘러 보고는 이내 돌아간다. 아마도 기대했던 풍경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능동자갈마당의 마스코트가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구나. 지질노두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승배 선생의 『우리땅 돌 이야기』에는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덕적도를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적어 놨었고 지금 도착했다.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낙타바위로 가도록 두고 혼자서 반대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재미있는 풍경이길래 따로 항목을 지어서 설명했으랴 싶은 믿음이 있었다. 화산력 응회암은 굴업도에서 충분히 봤고 다음에 다시 가도 충분히 즐겁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덕적도의 능동자갈마당의 앞에 섰으니 돌꾼들의, 아니지 바위꾼들의 성지가 될 수도 있는 풍경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왼편의 벼랑이 부른다. 그런데 모래만 많이 보고 다녀서인지 오랜만에 보는 몽돌해변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몽돌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백령도 콩돌해변, 완도 구계등, 덕적도 자갈마당, 보길도 공룡알해변, 거제도 학동몽돌해변이 유명하다는데, 그 중에서 콩돌해변과 공룡알해변과 학동몽돌해변은 둘러 봤는데 이제 자갈마당까지 둘러봤으니 하나 남은 곳은 완도 구계등이로구나. 남쪽으로 갈 일이 생기면 그것도 기억해 둬야겠다.

 


과연 심상치 않은 풍경이다. 역암들이 바닥에 널려 있는데 저마다의 모양들이 볼만 하구나. 우선 지질도를 볼까?

 


위치를 정확히 확인한 다음에 지질도를 덮어 씌워야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호~! 그림이 얼룩덜룩하구나. 지질의 변화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겠네. 노랑색은 신생대 제4기의 충적층일 테고 그 초록은 앞서 방아머리에서도 봤는데 색이 같으면 암질도 같은 것일까? 아니면 색은 같아도 내용은 다를까? 방아머리는 선캄브리아 시대였으니까 어디.....

 


색은 비슷해도 내용은 다르구나. 여기는 중생대 쥐라기였군. 우리나라는 중생대 쥐라기에 지질의 변화가 극심했다지. 여기도 그 시기에 만들어진 암석이라고 보면 되겠다. 덕적층이니까 덕적도에 있는 특별한 암석층이라는 의미겠다. 역암, 사암 및 이암의 교대, 식물화석 파편 산출이라고 대표임상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해수욕장의 왼편도 같은 지질이라는 말이겠거니.

 


당연하구나. 같은 암질로 되어 있고 중간에는 바닷물에 깎이고 자갈이 싸여서 해변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왼쪽의 
회색에 붉은 줄을 그어 놓은 지층은 또 뭘까? 궁금하면 눌러보면 된다. 

 


엇? 원생누대에서 신원생대에 생겨난 것이라고? 이건 예상 밖인걸. 운모편암으로 된 지층이고 성영과 운모 편암으로 되어 있단 말이지? 엄청 연세가 높으신 어른이잖아? 몰랐네. 

 


다시 지질족보를 소환한다. 모르면 자꾸 불러와야지. 신원생대는 선캄브리아 후기였군. 그러니까 약 6억 년대 전의 암층이었구나. 대이작도에 가면 고원생대의 25억 년전의 최고령 어르신이 계시니까 못 봤더라도 크게 억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승배 선생이 언급을 했더라면 혹 잠시라도 들려서 사진 몇 장은 담을 수도 있었을 텐데 싶기는 하다. 공부는 그쯤 하면 되었으니 이제 현장학습이다. ㅎㅎ

 


지질학자가 그렇게도 칭찬한 이유를 공감할 것도 같으니 이제 입문은 마친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자꾸만 바닥을 보면서 두리번거리게 된다.

 


사진도 회색보다는 컬러가 예쁘듯이 돌풍경도 알록달록한 것이 영판 칼라사진이로구나.

 


돌품돌이라고 하셨던가? 해품달이라고 하더니 그 이름의 패러디인 모양이다. 책에 설명을 재미있게 해 놔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조각품처럼 형상을 보고 싶은 사람은 낙타바위로 가면 즐겁고 추상화처럼 형질을 보고 싶은 사람은 왼쪽의 절벽으로 가면 돌 들과의 대화가 재미있다. 즐거운 것과 재미있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낭월은 즐거운 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지 싶기는 하지만서도.

 


설명할 것도 없지만 설명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는데 지금이 딱 그때인가 싶다. 그래서 그림만 보는 것으로. ㅎㅎ

 


 

 


 

 


 

 


 

 


 

 


 

 


 

 


 

 


 

 


 

 


 

 


 

 


 

 


 

 


 

 


 

 


 

 


 

 


 

 


 

 


 

 


 

 


 

 


 

 


 

 


 

 


 

 


이렇게 바위들과 억 년의 세월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더 놀아도 되는데 아무래도 동행들이 심심해 할 것에 대해서도 배려를 해야지.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10역 년 전에 지하에서 압력을 받아서 만들어진 편암들이라고 이승배 선생이 알려준다. 

 

낭월의 호칭 기준의 최상위는 선생이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낭월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공(孔) 선생, 장(莊) 선생, 석(釋) 선생 등과 같은 반열이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도움을 준 분에게는 선생이라고 한다. 물론 대접상의 선생도 당연히 있기는 하다. 다만 뭔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선생으로 호칭한다. 도올 선생이나 유시민 선생도 그런 의미이다. 낭월의 서재에는 동서고금의 많은 선생들이 함께 해서 항상 한가롭게 놀 겨를이 없다. 그러니까 선생들의 책을 읽으면 마음에 와서 닿는 뭔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ㅎㅎ

 


이제 반대편으로 가야 할 시간이구나. 건너다 보니 연지님이 어른거려서 전화했다. 건너 쪽을 보면서 서 보라고 했던 것은 지질학자의 망치와 같은 용도로 쓰기 위함이다. 낙타바위의 규모가 이렇게 사람이 서 있으면 대략 가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목소리가 듣고 싶기도 했고요. ㅋㅋ

 

 각도와 거리에 따라서 보이는 그림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멀리서 건너다 보이는 모양을 확대해 보고서 자리를 떴다. 

 

 물질도 중요하지만 형상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동행들이 낙타바위와 놀이에 빠진 것을 보니 안내자의 역할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 

 


이쪽도 재미있구나. 저쪽에 비하면 대략 30%의 재미는 되겠다. 동행들은 그쪽의 풍경을 모르니까 여기의 모습이 100%일 테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된다. ㅋㅋ

 


 

굴업도 남단의 풍경이 스쳐간다. 유황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사진놀이가 바위놀이와 융합되었을 적에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바위 하나와 놀아도 사진 100장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를 향해서 셔터를 눌러도 작품이 된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카메라와 함께 24-105mm의 렌즈도 동반자다. 항상 카메라에 붙어있다. 왜냐하면 중간이기 때문이다. 넓은 것은 24가 담당하고 좁은 것은 105가 감당한다. 웬만하면 여기에서 해결이 된다. 24로 봐서 좌우가 잘리면 비로소 광활렌즈 12-24가 출현하게 된다. 그리고 105로 당겨도 원하는 만큼 다가오지 않을 적에는 100-400mm도 활약을 한다. 이것은 토끼섬에서 제대로 활약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 저것 많이 사서 가방 끈이 끊어질 정도로 넣어서 돌아다녀 본 결과이다.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리고 들이댈 필요가 있는 매우 작은 피사체가 있을 적에 가령 꽃이나 벌레같은 것들을 담고 싶을 적에는 가끔 쓰이는 100매크로가 있지만 풍경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어서 집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여행에는 동행도 참 중요하다. '여기를 왜 온 겨? 뭘 볼 것이 있다고...'와 같은 말을 들을 적에 가이드는 상처를 받는다. 그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는 죄를 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절대로 어디를 가도 '같이 가겠느냐?'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부득이 단체로 움직이게 되면 마음 속에서 제외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 동행들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그들도 낭월이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까닭이다.

 


건너편과 같은 암상(巖狀)이어서 분위기는 비슷하다.

 


 

 


 

 


 

 


 

 


 

 


 

 


이제 다 놀았다. 대부도로 돌아가는 배는 오후 3시에 출항이다. 그 전에 진리해변과 어제 가봤던 소야도의 갈라지는 바다도 봐야 하니까 시간의 안배도 중요하다. 

 


옆에 붙은 선미도까지는 다리를 놓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다리가 완공되면 그 기념으로 다사 찾아와도 되지 싶다. 

 


해당화 열매가 익어가고 있는데 처제가 먹어도 되느냐 기에 빨갛게 익으면 먹어도 된다고 알려 줬다.

 


중국어로 장미를 매괴(
)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매괴라고 할 만 한 열매가 장미에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료를 찾다가 보면 해당화를 매괴라고 한다는 것이 튀어 나와서 의문을 풀어 주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 보름에서 한 달 쯤 지나면 예쁘게 익을 게다. 이렇게 빨갛게 익어줘야 그래도 명색이 매괴라고 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안면도 사람은 해당화 열매를 깽마람이라고 한다. 한여름에 땡볕이 내리 쏟아지는 해수욕철에 바다에서 멱감고 놀다가 배가 헐출하면 깽마람을 따먹고는 껄꺼러운 털은 물에서 헤엄치면서 씻어버리면 된다. 물론 열매의 껍질만 먹으면 된다. 어차피 속은 먹을 수도 없다. 씨만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괴석이고.

 

 

 

매괴석 팔찌다. 그러니까 장미석이라고 읽고 해당화열매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냥 몰라도 되는 잡다한 상식이다. ㅎㅎ

 

 


주차장 옆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어서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여다 본다.

 


조난자(遭難者) 위령지비(慰靈之碑)구나. 여기에서 큰 해상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네....

 

 

그러니까 1931년 폭풍으로 희생된 56명의 어부를 위로하기 위해서 세운 비였구나. 더 상세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고인의 사후는 안락(安樂)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자갈마당과 하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