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正財 - 人物畵, 靜物畵

작성일
2007-09-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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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의 그림은 육감적이다. 그래서 누드화 방면에서 대단한 실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생명력이다. 살아서 숨을 쉬는듯한 그런 그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인을 그리면 숨을 내쉴것만 같은 표현을 하려고 한다. 가장 현실적인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다가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 화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초상화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가장 구체적인 실물을 표현하는 소질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물화(靜物畵)에도 일가견이 있다. 꽃에서도 생명력이 느껴져야 정재는 만족을 한다. 해바라기에서는 해바라기의 분위기가 나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해바리기에서 우주의 실상은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우주라고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추상적인 영역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데 가장 충실한 노력파이다.

그리고 상징적인 그림을 보면 평가절하를 시켜버린다. “이게 그림이야? 장난을 친 것이지 그림은 무슨 그림, 이런 만화를 어떻게 예술이라고 내놓을 수가 있나, 정말 염치도 좋지.” 이렇게 단정을 해버린다. 그래서 서예작품 등은 별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이다. 애초에 글자에는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재가 그리는 그림은 언제나 살아있는 것이다.

쩍 벌어진 밤송이를 하나 그려도 그 밤알이 튀어 나올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석류를 그리면 입안에서 침이 고이는 것을 느끼면서 감상해야 한다. 그렇게 냄새조차도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현실적인 그림이 되는 까닭이다. 샤워를 마친 여인의 몸을 그리게 되면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이 금새 바닥에 떨어질것만 같다. 이런 그림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흉내도 낼 수가 없다. 오로지 정재만이 갖고있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만약 전화기를 그린다고 하면, 전화기의 그림을 바라다 보고 있으면 당장에 벨이 울릴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만약에 편재가 전화기를 그린다면 그 주변에 해설을 붙여야 마음이 놓인다. 즉 전화기의 다이얼 하나하나에 어머님의 얼굴, 애인의 얼굴, 소방관의 얼굴을 그려넣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이것이 편재의 친절함이다. 정재는 그러한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 그냐 있는 그대로의 전화기만을 그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