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다솔사

작성일
2016-05-27 18:11
조회
1986

사천(泗川) 다솔사(多率寺)


 

봄이 오고, 또 봄이 간다.

그리고 여름의 문턱인 입하(立夏)를 지나서 소만(小滿)까지 지나고 보니 문득 녹차의 향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참으로 오래 전.... 그러니까 20대 초반의 자유롭던 시절에 마셔 본 적이 있는 반야차(般若茶)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 구수한 증차(蒸茶)의 맛은 불로 덖은 것에서 나는 고소함 보다는 구수한 느낌.... 그 향이 떠오르면서 연달아서 다솔사를 생각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역마의 바람이려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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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개인지도가 있어서 열심히 설명을 한 다음에 오후의 후끈한 열기를 안고 사천 나들이에 나섰다. 그렇게 오가면서도 다솔사에 들려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문득 찾아가게 되는 것도 시절인연일까 싶기도 하다.

매일 밥만 먹으면 가끔 국수가 생각나듯이, 늘 보이차만 삶아대다가 보니까 문득 향기로운 녹차가 생각났음직도 하다. 다만, 녹차의 가격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품질이 그만한 가치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선뜻 구매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그러니까 쪼매~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 맘을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끔 우황청심원 만큼이나 아껴 먹던 차가 다 떨어진 이유도 무시 못하지 싶다. 불쑥 한 마음이 생겨서 그냥 다솔사에 가보자는 것으로 차를 사러 간다는 이유만으로 출발을 했다.

거리지도

네이버에서는 대략 220km라고 한다. 부지런히 가도 두어 시간은 되어야 되겠고, 이럭저럭 간다면 3시간은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리 측정이 나온다. 그렇게 작정하고 출발한 길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서 6시 무렵에 다솔사 주차장에 도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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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의 느낌이 드는 입구의 풍경이 친근하다.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 다녔는데 다솔사를 이제서야 와 보다니.... 문득 생각을 해 봐도 참 새삼스럽다. 예전에 이곳에서 차(茶)를 연구하셨던 스님이 쓴 책도 구입해서 읽었었다.

책 이름은 『한국의 차도』였는데, 차도를 다도라고 해도 그만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茶는 차로 읽는 것으로 통일을 한다. 차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냥 관심이 가서 읽었던 기억만 나고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혹시나 하고 교보문고에 검색을 해 봐도 절판인지 검색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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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버티고 있는 전각이 특이하다. 보통은 법당 앞을 열어놓거나 천왕문이 서 있기 마련인데 다솔사는 배치가 조금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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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재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매점이 입구에 있는데..... 문이 이미 굳게 닫혀버렸다. '아뿔싸~!' 영업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낭패다..... 그래도 아무나 찾아서 생떼를 써서 차를 사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절 안으로 향했다.

부처님을 친견하거나 가람을 참배하러 간다고는 하겠지만 이렇게 단지 차를 살 목적으로 절을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처음 있는 일이기조차 하다. 다솔사 차는 다솔사에서만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던 간에 차는 사갖고 가야 한다는 목적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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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저녁 예불 시간인지 보살 한 분이 안채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다가갔다.

낭월 : 안녕하세요~!
보살 : 안녕하세요....
낭월 : 차를 사려고 왔는데요.
보살 : 아, 5시까지만 매점을 해서 문을 닫았는데요...
낭월 : 그럼 어쩌나요?
보살 : 직원이 퇴근을 해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데.....
낭월 : 멀리서 왔으니 편의를 좀 봐 주세요~!

좋은 산천에서 부처님 모시고 맛난 차를 마시면서 살아서 그런지 얼굴에는 한 없이 평온한 기운이 감돌고 누가 무슨 부탁을 해도 거절하지 못할 것만 같은 용모는 흡사 관음보살인가 싶기도 하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얻는 것 없이 고운 사람도 있기 마련인가 보다. 더구나 차를 얻게 해 주셨으니 당연히 더 고와보였을 수도 있겠다. 하하~

이렇게 해서 일단 말문이 트인 다음에는 우찌우찌 해서 원하는 차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목적이 있으니 뜻을 이루게 된다는 이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목적을 이룬 다음에는 더 어둡기 전에 주변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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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다솔사 답게 차 전시관이 있어서 이런저런 기념을 할만 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이미 어둠이 깊어질 조짐인지라 법당으로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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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고, 나중에 또 지나는 길이 있다면 차분하게 들려서 이런저런 것들도 살펴보면 되지 싶은 마음으로 법당부터 찾아서 주인께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부처님 참배도 차를 사고 다음이라고 해야 할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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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치면 어쩌나.... 했다가 차를 손에 넣고 보니까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진 모양이다. 현판이 대웅전이 아니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이것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쓴 것이다. 통상 불교인들은 보궁이라고 한다. 보배로운 궁전이라는 뜻이겠다.

그럼 적멸은? 부처가 고요의 열반에 머문다는 뜻이라고 이해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고요하고 고요하여 일체의 경계가 다 끊어진 것'을 적멸이라고도 한다. 열반과 유사한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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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와불이 계시고 뒤로 구멍을 냈는데 석탑이 보인다. 아마도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모양이다. 적멸보궁은 이러한 형식의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통도사가 그렇고, 법흥사도 그렇고 도리사가 그렇다.

그리고 그냥 창문만 내어놓기가 심심했음인지, 아니면 와불이 계신 것으로 부처님이 없다는 불평분자들의 입막음을 했으려니.... 싶었다. 별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삼배를 올리고는 바로 뒤로 돌아갔다. 사진만 아니면 이렇게 서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사진은 빛으로 말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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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이다. 아마도 부처의 어느 부분을 모셨나 보다. 여하튼 뭔가 있으니까 사리탑이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는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바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 차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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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칼로 백호를 치듯이 빡빡 밀어놓은 차밭이다. 아마도 봄에 차를 수확하고는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전지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다. 야생의 차 밭에서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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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옆에는 재미있는 제단이 있다. 이름하여 만덕산왕위(萬德山王位)이다. 그러니까 산신님의 휴게소를 이렇게 야외에 마련한 모양이다. 보통은 산신각을 지어서 모시는데 여기에서는 좀 특이한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아, 산 이름이 만덕이라고 생각하실 벗님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하~

다솔사의 산은 봉명산이다. 아마도 봉황이 우는 산이라는 뜻이겠지 싶다. 봉황이 왜 우노? 그야 모를 일이지만 맞은편 산 자락에 봉황이 산다는 서봉사(棲鳳寺)가 있어서 봉명산이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덕(萬德)은 덕이 일만 가지나 된다고 하니까 산신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의미로 붙여진 호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산천의 아름다움과 빼어남이 중생을 품어주고도 남음이 있으니 그 산의 주인은 덕이 일만가지가 되고도 남는다고 해도 되겠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제멋대로 자란 차밭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도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 스님께서 심었다는 차나무가 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법당 뒤로 있는 삭발한 차나무도 효당 스님께서 심은 것이겠지만 그걸로 차나무 본 것인양 하기에는 조금 섭해서이다.

그래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왼쪽의 산 기슭으로 차나무가 그대로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니깐, 그냥 쉽게 포기하지 말고 자꾸 찾아야만 열리는 것이 오늘의 일진인가 보다. 그래서 부리나케 뛰어 갔다. 왜냐하면, 해가 어둠 속으로 잠겨들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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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럽다.

근래에 본 차밭은 강진의 오설록 차밭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는데 반듯반듯하게 만들어 놓은 군대 차밭은 풍성하기는 하지만 운치가 부족하다. 자연미가 전혀 없어서 그렇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나름 멋은 있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차나무를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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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멋대로 삐쭉삐쭉 자란, 그래서 아무런 눈치도 안 보고 자유롭게 삶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역시 멋있다. 강진차밭을 군대라고 한다면 다솔사 차밭은 자유인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인공적으로 가꾼 것도 좋지만 자연의 맛은 그윽하다.

그러니까 대략 50~60년 전에 효당 스님께서 토종의 차 씨를 손수 법당 주변에 심었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연결이 된다. 그렇게 차를 가꾸면서 연구한 것이 '한국의 차도'이다. 무엇보다도 직접 겪어가면서 기록을 해야 생명감이 있다. 상상으로 쓰거나, 꾸며서 쓰는 것은 생명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가는 성공을 하면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명성도 크게 얻을 수가 있지만 그래봐야 소설가(小說家)에 불과하다. 작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그 가치를 명성보다는 작게 매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에 학자는 그것을 쓰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 그러니까 수십 년의 세월을 궁구하면서 실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글을 쓴다.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다고 하더라도 명성을 소설가 처럼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논한다면 비교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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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검색해서 어느 블로그에서 얻은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그만큼 잊혀져 가는 책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스스로 차에 대해서 연구하고 심어보고 만들어 본 과정에서 얻은 것을 포함하여 기록한 것이기에 그 가치는 한국의 차에 대한 중흥조라고 하기도 한다.

낭월이 예전에 구입했던 책도 세월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수중에 없으니 문득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적에는 아쉬움도 함께 생기지만 유랑시절에 짐스럽게 생각했던 터에 어쩔 수가 없이 누군가에게 줘버렸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다솔사와 효당 스님과, 한국의 차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까닭에 잠시 이러한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효당 스님은 원효 사상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으셨던가 보다. 교보에서는 3권으로 된 문집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안에 저술의 모든 자료가 포함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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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를 뒤로 하고 산문을 나오는데 맞은 편의 언덕에 부도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 길도 없는 곳을 찾아서 올라가 봤다. 절 주변에서는 아무리 둘러봐도 스님의 부도가 보이지 않아서 어쩐 일일까.... 싶었는데 이렇게 입구에 외롭게 서 있는 부도를 보면서 혹시 효당 스님의 부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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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曉堂凡述之塔(효당범술지탑)이다. 효당 최범술 스님의 부도탑이라는 뜻이겠군. 반가웠다. 그 자리에서 삼배 하고, 보니 문득 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엉? 뭘까.....? 싶어서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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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차문화 축제에 초청장을 갖고 왔었던가 보다. 문득, 뭉클~하는 마음이 일면서 내용도 궁금했다. 어떤 초청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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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 선생은 진주에서 차와 연관된 일을 하면서 늘 효당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부도에다가 초청장을 두고 갔을까..... 사람은 떠나고 없건만, 그것을 그리는 마음은 여전히 살아있음이려니......

일정을 보니 이미 행사가 끝난지 닷새가 지났구나. 만약 내일이라고 한다면 진주에서 하루 머물러서라도 그 모임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또한 서로의 엇갈림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효당 스님을 이처럼 그리워하는 분이라면 한 번 만나서 차를 얻어 먹어도 되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의 같은 공간에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그래서 일단 기억해 두기로 했다. 언젠가 만나면 효당 부도에 놓인 초청장을 매개체로 자연의 도리를 논할 날도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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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들고 가게"

문득 조주 스님이 방문한 객승들에게 던졌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효당 스님, 차 한 잔 주십시오~~!!"

비록 차를 얻어 마실 인연은 못 되었지만 스님께서 심으신 나무에서 딴 차잎으로 만든 작설차를 얻게 되었으니 만족이다. 만든 이는 다르고 세월도 다르지만 차 맛은 여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봉명산을 바라 본다.

다솔사 차 전시관 앞에 붙어있던 액자의 글귀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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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반향초(茶半香初)


차는 반 밖에 안 남았는데 향기는 첨이나 같네~!


 

76세의 효당 스님께서 쓰신 글인가 보다. 경봉 스님의 글씨와는 또 많이 다른 느낌이 든다. 뭐랄까.... 소탈하다고나 할까...? 친일을 했다고도 하고, 독립운동을 했다고도 하는 평가가 남아있지만 그건 내 알바 없고, 그냥 차 향이 좋다고 허허롭게 웃으시는 모습일까?

 

다솔사에서 구입한 차를 한 잔 마시고서 여행기를 작성하는데 내내 회감(回甘)이 계속해서 솟구쳐 올라온다. 이럴수가~~~ 이것이 다솔사 차였던가.....?

주지 스님께서 제차법을 제대로 전수 받으셨던가 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녹차의 회감이기에 경봉스님 회상에서 가끔 시자에게 이끌려서 살짝 들어가 얻어마신 차의 여운과 연결이 되는 것 같은 것은 추억의 연결고리가 초끈으로 이어졌음일 게다.......

과연, 차반향초이다.

어쩌면, 인생은 반 평생을 살았지만 마음은 처음 그대로? 오늘 몇 개의 찻잎이 켸켸 묵은 생각의 추억 보따리를 끄르게 하듯이, 또 언젠가 누군가는 낭월의 책을 읽으면서 추억에 잠기는 이도 있을 법 하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되도록 한설(寒雪)을 뒤집어 쓰고 향기를 품어낸 찻잎처럼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을 적셔 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