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견문록(9) 휴양지 풍경

작성일
2016-05-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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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견문록(9) 휴양지의 한 나절


 

아침부터 든든하게 먹어야 또 하루를 즐겁게 놀 것 아니냔 말이지. 그래서 부지런히 식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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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슬슬 걸어가도 되기는 하는데 일행 중에는 노약자가 있는 고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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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리조트의 규모 만큼이나 식당도 넓직하다. 먹을 것도 별 다섯에 어울리게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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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노출을 맞추기가 참으로 분주하다. 밖에서는 ISO를 100으로 놨다가 실내로 들어가면 순식간에 깜깜해진다. 그래서 부랴부랴 400으로 올려봐도 셔터 속도는 1/15초 밖에 나오지 않아서 움지이는 사람은 유령화가 되어 버린다. 물론 우길 핑계는 있다. 동감(動感)을 살리가 위해서였노라고.... 그렇지만 게으르고 동작이 굼뜬 사진가의 핑계일 뿐이다. ㅋㅋㅋ

노이즈가 자글자글 할 지언정 흔들리진 말라고 남들에게는 이바구 하면서 정작 이런 사진을 보게 되는 것은 뒷골이 쪼매~ 땡기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달리 방법이 없고 또 그런대로 괜찮아서 사용한다. 왜냐하면 우물거리고 이런거 맞추고 있다가는 아침을 굶을 수도 있기 때문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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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내 몸을 위해서 요만큼의 에너지를 흡입하기로 했다. 안남미의 쌀밥에다가 콩도 있어서 반갑다. 많은 뷔페의 음식들 중에서 손이 가는 것이 내 인연이려니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어르신들이 '알랑미'라고 하는 말을 어려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알랑미는 안남미(安南米)를 말하는 것이란 의미는 나중에 알았고, 그것을 묶어서 장립종(長粒種)이라는 것도 알았는데 보통 '불면 날아간다'는 말로 표현하는 밥을 말한다. 풀끼가 없어서 금방 소화가 된다고 하고 안 좋은 선입견을 심어 놓으셨지만 막상 먹으보면 속도 편하고 그야말로 소화도 잘 되는 좋은 쌀이란 것을 알게 된다. 내친 김에 안남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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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백과의 정보이다. 베트남의 중남부를 프랑스가 지배할 당시의 명칭이 안남(Annam)이었던 것이다. 하노이가 포함된 북부는 제외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호치민 지역도 제외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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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안남의 깃발인 모양이다. 프랑스의 국기가 당당하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노랑색.... 호이안에서 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의 베트남 깃발에 포함된 노랑 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당시에 사용된 안남을 나타내는 노랑색은 황금색의 표현이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도 되지 싶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 쌀이 부족할 적에 안남미를 수입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시골의 사람들 조차도 알랑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출의 주체는 프랑스였을 것이라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본다.

이렇게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 프랑스이다. 그리고 다낭도 안남이었다는 것. 그래서 안남에서 안남미로 지은 밥을 먹으니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지만 통일벼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 벼의 기본 품종이 장립종인 안남미와 조선 토종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그래서 쌀이 조금 길쭉했던, 그래서 이것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공공연히 없는 사람들의 쌀이라는 분위기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벼와 상대되는 곳에는 '아끼바리'라는 일본틱한 이름의 단립종이 있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그야말로 우리의 입맛에 익숙한 쌀밥이다. 또 지식인에게 도움을 청해 본다. 아끼바리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

1954∼1955년 일본 아이치농업시험장에서 '만다이니시키'을 모본으로 하고, '와카바'와 '김마제' 사이의 F5계통을 부본으로 인공교배하여 육성되었다. 1969년에 한국에 도입되어 1970년 장려품종으로 결정되었다.

벼의 키는 약 84cm이다. 잎의 빛깔은 녹색이고 길이는 보통이며 나비가 약간 좁다. 줄기는 약간 가늘고 세기와 분얼개도는 보통이며, 포기당 이삭수가 많은 편이다. 이삭추출이 좋은 편이며 착립밀도는 보통이고 이삭당 벼알수는 적은 편이다. 벼알은 약간 긴 까끄라기가 드물게 붙어 있고 잘 떨어지지 않으며 빛깔이 좋다. 쌀의 모양은 단원형이고 백미의 투명도가 높아 겉모양이 좋다. 아밀로오스 함량, 호화온도 등이 낮아 밥에 윤기와 찰기가 있고 밥맛이 좋다.



그랬지. 통일쌀은 잘 쏟아져서 참새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농부들이 싫어했던 기억이 문득 난다. 아끼바리는 단단히 붙어 있어서 그럴 일이 없다는 것도 이유가 있었구먼. 그렇다면 내친 김에 통일벼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아래는 박래경 前 한국작물학회 회장님의 말씀입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 농업사정은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매우 좋지 않았네.

1960년대 후반에 전국 평균 쌀 수량은 약 300kg/10a수준으로 전국 쌀 생산량은 360만톤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굶어죽는 사람들도 많았을 뿐더러 2~3차 산업 발달에도 큰 지장을 주었네.

게다가 부족한 쌀을 수입하려니 경제 사정마저 더욱 어려워져서 말 그대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됐다네.

그래서 ‘식량의 자급자족’이야말로 국가적인 숙원사업이라고 생각하고 각 작물시험장을 비롯하여 각도 농촌 진흥원, 서울대 농학과 육종학 연구실,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 등의 연구진들이 획기적인 안전다수확 벼 품종개발 연구에 주력하고 있었다네.

그 소망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작물시험장의 최현옥 박사님과 동료인 배성호, 김동욱, 안수봉, 조정익 박사등은 외국에 나갈 기회만 있으면 무조건 육종법에 관한 책만 사가지고 왔을 정도였네.

이렇게 7년간의 노력 끝에 1971년에 ‘통일벼’가 탄생했다네.

기존의 자포니카 품종에 인디카 종을 교배한 통일벼는 도열병 및 줄무늬 잎마름병에 강했고 내비성과 내도복성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수확량이 많았다네.

당시 전국 평균 쌀 수량의 50%가 증가될 만큼 ‘기적의 볍씨’라 불리기도 했지.

그러다 1972년에 큰 냉해가 닥쳤는데 하필이면 이 통일벼가 내냉성이 약했던 거야.

그 해 농사를 망쳐버리자 피해가 매우 심각했다네.

게다가 통일벼는 아밀로스 함량이 적어 밥맛이 일반형 품종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네.

이러한 이유로 기대한 만큼 확대, 보급이 되지 못하자 큰 좌절감에 빠졌지.

그때부터 통일벼의 단점을 보완하는 육종연구에 치중하였네.

초기엔 주로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벼의 조숙화, 적정 탈립성, 생리장해와 주요 병충해 저항성, 내냉성 등을 가진 품종들이 개발되었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밀양벼, 만석벼, 금강벼, 샛별벼 등인데, 1985년에 보급된 장성벼는 병충해에 강한 작물로 일본 및 다른 외국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네.

연구가 진행되면서 1977년에는 전국 평균 쌀 수량이 약 493kg수준으로 자급자족을 하고도 남자 인도네시아에 첫 수출까지 이룩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완전한 자급자족이 이루어져서 양보다는 고도의 미질향상을 위한 품종들을 주로 연구하게 되었다네.



맞아..... 그랬구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리핀에서 개발된 품종이었구먼. 국민이 먹고 남아서 수출까지 한 쌀이고, 그 전에는 쌀로 막걸리를 빚으면 세무서 직원이 집을 뒤져서 벌금을 물리곤 했었지. 그래서 밀가루 술과 보리 술을 빚어 먹었지만 보리 술은 그렇게도 잘 시어버려서 오래 두고 먹을 수가 없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우리의 빈곤했던 시절의 초상이다.

통일벼를 보급하고 나서야 비로소 쌀 막걸리가 되살아 난 이야기는 연배가 조금 있으신 벗님들이라면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여행의 현장에서 하나의 이름, '알랑미'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이렇게 역사 놀이를 하게 되니 또한 여행지에서의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해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안남미 밥을 먹으니 느낌이 또 새롭다. ㅋㅋ

안남미에 대한 자료를 보면,

인디카 쌀(영어Indica rice) 또는 안남미(安南米)는 전 세계 의 9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쌀 품종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주로 생산, 소비되는 자포니카 쌀은 10% 밖에 되지 않는다.[1][2]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모두 인디카 쌀이다.

이렇게 설명이 나온다. 아, 인디카 쌀이었구나! 또 하나 배웠다. 배운 것을 써먹을 일이 없더라도 좋다. 그냥 모르던 것을 하나 알았다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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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게 밥을 먹은 여인들이 방송에서 본 장면을 해보고 있다. ㅋㅋ 행복하다. 파라솔 아래에 비시감치 누워서 폰으로 집의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그래 오늘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도인 인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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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물에서 놀다가 해변으로 걸어서 숙소에 가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야자를 보더니 하나 따 보겠다고 달려든다. 역시 고향이 시골인 사람은 못 속인다. ㅋㅋㅋ

결과는? 물론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냥 끙끙대다가 말았다는 이야기만 전한다. 그래도 즐겁기만 하단다. 이러한 장면을 묵묵히 기록하는 낭월. 또한 역사의 현장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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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딱해서 이렇게라도 만족하라고 연출을 해 줬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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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들이 잔디가 죽은 곳을 수선하고 있기에 삽을 들라고 했더니 지체없이 삽을 들고 연기를 한다. 물론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일을 하던 아저씨들도 잠시나마 웃음을 얻었을 것이니 또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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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서는 수영장에서 즐거운 물놀이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베트남 커피의 진한 향을 즐겼다. 그리고는 문득 지폐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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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통용되는 베트남 최고액 권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낭월의 주머니에 있는 돈 중에서 최고액 권이라고 해야 하겠다. 자료를 보니까 50만 동도 있는 것 같아서이다. 액면가는 20만동이다. 영감님의 모델은 호치민이 아닐까 싶다. 중국 돈은 마오쩌뚱이 주요 모델인데 베트남 돈은 호치민이 주요 모델이다. 공산권의 특징인가 싶기도 하다.

특징은 인물의 오른쪽에는 투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이 돈의 가치는 한국 돈의 1만원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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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면에는 하롱베이의 바위 섬이 모델로 되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자랑이 하롱베이라는 의미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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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1만동이니 500원의 가치가 되는 돈이다. 실제로 돈을 써 보니까 택시를 탈 때나 입장권을 살 적에 사용하지 싶다. 팁을 줄 적에도 최소 2만동은 주는 것 같다. 그래봐야 1달러 정도에 불과하니까 그럴만도 하다.

마침 검색을 해 보니까 베트남 화폐를 잘 정리해 놓은 블로그가 있어서 링크한다.

http://tripadviser.xyz/220653671562

돈의 종류가 제법 되는데 낭월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두어 종류 뿐이라서 이것만 찍은 모양이다. 그래서 경험자의 상세한 정보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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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시끌벅적하게늘 잘 놀고 계신다. 시합도 할 모양인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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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나절을 놀고는 또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숨을 잔 다음에 오늘의 나들이 코스로 정해진 오행산을 오르기로 했다.

 

[계속 다음 편으로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