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나기 전
작성일
2019-03-26 17:27
조회
898
새싹이 나기 전
연지 : 여보, 도라지 좀 캐줘. 내일 49재에 나물로 쓰게.
낭월 : 아니, 떡대같은 아들녀석을 두고 왜 늙은이를 부려먹어?
연지 : 아들놈은 뭘 시키려면 이러쿵 저러쿵 탓이 많잖여 호호~!
낭월 : 그래서 만만한게 서방인겨?
연지 : 그건 아니지! 맛나게 무쳐드릴께요.
그래서 후다닥 뚝딱!! 도라지를 캤다. 언제 모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뿌리가 제법 실하게 자랐다.
세상의 만물은 때가 있는 법이다. 심을 때와 캘 때가 있으니 그것을 잘 알면 제대로 챙겨먹는 셈이고, 그것을 모르면 애써 농사를 지어놓고서도 쭉정이만 수확할 수도 있는 게다.
뿌리를 먹는 근채는 바로 지금이 제철이라는 것을 연지님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고 있으신게다. 겨우내 땅에서 지기를 담뿍 받은 도라지가 새봄을 맞아서 마악 싹을 틔우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이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다.
앞으로 보름만 지나도 싹이 솟아오르기 시작하게 생겼다. 그래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바로 이 시간에 도라지를 캐야 하는 것이다. 카메라를 미쳐 챙기지 못해서 폰으로 그 농부의 혜안을 기념한다.
그렇게 잠시 도라지를 캐준 덕분에 맛있는 도리지회를 점심에 먹을 수가 있었다. 머위나물과 도라지무침의 환상적인 조화라니~! 이것이 진수성찬(珍羞盛饌)이 아니고 무엇이랴 싶다.
그렇게 먹고 남은 도라지를 뒤적거려서 새싹을 찍어 봤다. 뽀얗게 올라오는 싹은 아기의 이가 솟아나는 것과도 많이 닮았다.
며칠만 더 있었더라면 땅을 뚫고 나올 뻔했다.
그리고 작년에 떨어진 씨앗에서는 다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순환하는 그들만의 삶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