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췌한 오소리

작성일
2019-03-22 11:38
조회
963

초췌(憔悴)한 오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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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차를 끓여놓고 연지님에게 마시러 오라고 한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를 했다. 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건 낭월이 좋아할 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낭월 : 왜?
연지 : 창문으로 내다봐요.
낭월 : 왜? 노루라도 내려왔어?
연지 : 아녀, 어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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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밖을 내다 봤지만 얼른 보이지 않았다. 바닥 색과 비슷해서였다. 꿈지럭대는 한 녀석이 보인다. 오소리였구나. 창문이 미세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것을 탓할 상황이 아니다. 문을 열면 달아날 것이기 때문에 창문너머, 방충망 너머로 녀석을 담아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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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방충망이 없는 쪽에서 찍어서 라이트룸의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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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다른 곳에 있던 디헤이즈 기능이 위로 와서 붙었다. 조금씩 개선되어가고 있는 라이트룸이다. 렌즈 앞에 뭔가 장애물이 있을 적에는 곧잘 이용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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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박고 있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배가 고픈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밥이라도 한 그릇 주고 싶지만 그것을 준다고 먹고 있을 오소리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기에 그냥 자연의 흐름에 맡기고 조용히 주시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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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겨우내 뭘 먹고 살긴 살았던 모양인데 모습을 보니 초췌하다. 아무래도 계룡산을 떠날 시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병이 들었든지, 노화가 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저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녹녹한 환경이 아니다. 열매가 나오기까지는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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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한 때는 생기발랄한 순간을 누렸었을 게다. 이제 세월이 흘러서... 기운이 빠지고 나니까 뭘 하나 찾아 먹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그또한 자연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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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이 아니라면 이 시간에 여기에서 어정거리고 있지도 않았을게다. 그야말로 떠나기 전에 영정사진을 찍고 싶어서 찾아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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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배회하다가는... 포기하고 다시 산길로 올라간다. 제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겠거니.... 집에 가봐야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여기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칠 인연이 아닌 것도 분명한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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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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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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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하다....